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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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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철환의 이즘, 열다섯 번째
갈 수 없는 나라




어김없이 한 해의 마지막 달이 찾아왔습니다. 저는 무심코 ‘찾아왔다’고 썼지만 사실 어떤 사람에게는 12월이 닥쳤고 어떤 사람 앞으로는 12월이 다가왔을 겁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12월이 찾아오지도, 닥치지도, 다가오지도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2월이 오지 않았으므로 죽은 이에겐 당연히 1월도 오지 않을 겁니다.
이맘때가 되면 다시 듣고 싶은 추억의 노래들이 몇 곡 있습니다. 제가 대학 다닐 때 유명했던 소설가 조해일이 작사를 하고 듀엣 해바라기의 이주호가 곡을 붙인 <갈 수 없는 나라>도 그런 노래들 중 하나입니다. 젊었을 때 애창곡이었으므로 가사를 술술 적어 내려갈 수 있습니다.

사랑 없는 마음에 사랑을 주러 왔던 너
너의 작은 가슴 그러나 큰 마음
정의 없는 마음에 몸 바쳐 쓰러진 너
너의 작은 손 그러나 큰 슬픔

네가 헤매어 찾던 나라
맑은 햇빛과 나무와
풀과 꽃들이 있는 나라
그리고 사랑과 평화가 있는 나라

그러나 그곳은 갈 수 없는 낙원
네가 가버린 갈 수 없는 나라


TV에서 이 노래를 만난다는 건 행운에 가깝습니다. (<콘서트 7080>에서 아주 가끔 이 노래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이 노래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아서라기보다 노래를 부른 해바라기에겐 <행복을 주는 사람>, <모두가 사랑이에요>, <어서 말을 해>, <내 마음의 보석상자> 등 불멸의 히트곡이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라는, 모두가 손을 높이 올려 물결을 만들었던 그 노래, 한때 <열린 음악회>의 마지막 곡으로 안성맞춤이었던 <사랑으로>도 해바라기의 작품입니다.
기록을 검색해보니 오리지널 <갈 수 없는 나라>는 1985년 초에 발표한 해바라기 2집에 수록돼 있습니다. 그런데 인터넷에 떠 있는 가사를 훑어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30년 이상 ‘정의 없는 마음에 몸 바쳐 쓰러진 너’라고 듣고, 또 그렇게 불렀는데 그 어디에도 ‘정의’라는 가사는 없고 그 자리에 ‘정’이라는 글자가 동그마니 남아 있는 겁니다. 내가 그리워했던 노래 속의 ‘너’는 정의 없는 마음에 몸 바쳐 쓰러진 게 아니라 정(情)이 없는 마음에 몸 바쳐 쓰러진 거였습니다.
팩트 체크를 해보지 않아서 아직까진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다만 허탈감이 잠시 머물렀고 깨달음은 오래 저를 휘감았습니다. 각성의 정체는 이러합니다. 아주 긴 시간 동안 저는 제가 듣고 싶은 대로만 들었던 겁니다. 귀가 그러했으니 눈도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문득 지난가을에 밤하늘의 달을 보다가 끼적였던 자작시 한 편이 떠오릅니다.




발행인의 말 관련 이미지




달은
자기가 이렇게
이름이 많다는 걸 알고 있을까
사람들은 그냥
보이는 대로 이름 붙인다
반만 보이면 반달
반의반만 보이면 초승달
안 보일 땐 그믐달
그러나
달은 언제나 보름달이었다
가볍게 사는 사람들이
제 눈에 보이는 대로 이름을 갖다 붙였을 뿐


몽상가의 생각은 원래 꼬리가 깁니다. 정의냐, 정(情)이냐. 문득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가 살아난 적이 얼마나 됐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불의의 상징이 된 전두환 군부세력이 만든 정당의 이름은 ‘민주정의당’이었습니다.) ‘정의’라고 써놓고 실제로는 ‘정’의 크기에 따라 사람들을 분류했던 적은 없었는지 반성도 해봅니다. 정의와 정의감은 분명 다를 텐데 그 둘을 혼동한 적은 없었는지도 돌아보게 됩니다.
올해는 유난히 따끔한 말들이 많이 떠돌았습니다. 뉴스를 보다가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배우 김영철이 내뱉은 명대사 “넌 내게 모욕감을 줬어”가 오버랩되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반성은 없고 반발만 무성하게 만드는 세상은 결국 보복의 악순환을 가져올 겁니다. 지금 핏발 선 눈으로 야단치는 그 사람이 다시 그 자리에서 눈물 흘리지 않으려면 정의감과 함께 인간적인 ‘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세상을 이기는 게 세월이라는 것을 어느 지점에서 알아챈 덕분입니다.
세월 앞에서 당당해지기란 웬만해서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12월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달입니다. 한때 ‘희망고문’이라는 말이 전염병처럼 돌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은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할 뿐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유효합니다. 정의도, 정(情)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정의만 소리를 내고 정은 종적을 감춘다면 우리가 꿈꾸는 나라는 영원히 갈 수 없는 나라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조금씩 듭니다.
첫 문장을 ‘어김없이’로 시작했는데 어김없이 마지막 문장 가까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어기지 않고 사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약속도 어기지 않고 다짐도 어기지 않기란 더더욱 힘이 듭니다. 이제 12월의 단상을 마무리할 때입니다. 얼마 전에 끝난 드라마 <사랑의 온도>를 쓴 하명희 작가는 제목을 참 잘 짓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도 그분이 지은 드라마 제목입니다. 세상이 추워질수록 사랑의 온도를 조금 높이는 건 따끔한 말 한마디보다 따뜻한 말 한마디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따라 맑은 햇빛과 나무와 풀과 꽃들, 그리고 사랑과 평화가 있는 나라가 그립습니다.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주 철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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