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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OF SEOUL

7월호

이상의 집 미완의 건축
여전히 서촌은 정적이다. 유명해진 거리의 북적임 속에서도 동네 사람들은 제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 안에서 건물은 점점 낡아가고 오래되어간다. 누구도 빨리 가라고 재촉하지 않으며 변화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조용하고 오래된 풍경 속을 거닐다 보면 아주 긴 찰나의 여운을 느낀다. 그저 그 자리에 오랜 시간 동안 머물러 있을 뿐이다. 긴 서촌의 시간 속 ‘이상의 집’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상의 풍경 안에 더디게 놓여 있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1 한옥 마당에서 보이는 하늘.
2 육중한 철문은 너무나 가볍게 열린다. ‘이상의 방’은 내면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만나는 공간이다.
3 골목길에서 전면 유리창 너머로 이상의 집 내부가 들여다보인다.

이상의 흔적을 찾아서

통인동의 거리 한편에 ‘이상의 집’이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이상이 살던 집이 아닌 그가 살았던 집터이다. 이상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3살부터 23살까지 20년 동안 살았던 집터이기에 인간 김해경(이상의 본명)의 흔적을 유일하게 살펴볼 수 있는 장소이다.
서재의 묵직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 좁고 어두운 계단을 오른다. 2층 베란다에 서면 멀리 인왕산 줄기가 보인다. 기와지붕 위로 어지럽게 전선들이 얽혀 있다. 1층 마당과 전면 유리창 너머로 살짝살짝 내려다보이는 골목길과 사람들을 바라보다 보면, 이상이 이 건물 터의 집에 살았고, 언젠가 이 땅을 밟고, 이 하늘을 바라보고, 이 골목을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아주 잠깐이지만 적당했던 그 골목 위에 나와 이상이 함께 서 있다.
이상이 23살 때까지 살았던 통인동 본가는 큰 한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집의 옛 모습은 전혀 남아 있지 않지만 본채, 행랑채, 그리고 사랑채까지 약 300여 평의 넒은 집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32년 큰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장사에게 팔린 집은 여러 개의 필지로 나뉘어져 그중 일부는 도로에 편입되었고 남은 10여 개의 작은 필지에 도시형 한옥이 지어져 팔려나갔다. 이상의 집은 2009년 문화유산국민신탁이 후대에 남길 첫 보전재산으로 매입해 재단법인 아름지기와 협력 사업으로 개관을 진행했다. 2011년 4월 개관하여 2013년 개보수 작업을 거쳐 2014년 3월에 지금의 모습으로 재개관했다. 매입할 당시 공간이 너무 협소해 5명의 건축가와 함께 ‘어떻게 하면 이상다운 공간을 재창조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였고, 그 결과 큰 간판에 가려져 있던 기와지붕을 본래 모습대로 되돌렸다. 원형 그대로의 기와와 대들보를 살리고, 좁은 내부 공간은 벽을 허물고 통유리를 적용하여 최대한 넓게 사용하고자 했다. ‘ㄱ’ 자 한옥 뒤에는 콘크리트 박스로 새로 증축한 2층 구조의 ‘이상의 방’을 만들었다.
설계자인 이지은 건축가는 “많은 고민 끝에 기존 한옥의 기억과 과거의 흔적들을 최대한 살리면서 리노베이션했다. 이 집에 덧대어져 있던 불법 부위들을 철거하고, 이상의 방을 증축하는 과정을 거쳐 현재의 이상의 집을 완성했다. 이곳은 과거의 켜(오래된 도시 한옥)와 현재의 켜(이상의 방), 그리고 서촌다움과 이상다움이 공존하는 집이다”라고 설명한다.

서울 건축 읽기 관련 이미지4 2층 베란다에서 바라보면 기와지붕과 골목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5 ‘ㄱ’ 자 한옥과 노출 콘크리트 건물이 어우러져 있다.

지금 여기에 담긴 이상

이상의 집은 투명하고 가벼운 유리창과 불투명하고 무거운 철문의 재료 대비와 함께 ‘ㄱ’ 자 한옥 한 채와 콘크리트 박스가 어우러져 있는 공간이다. 무엇보다도 골목길에서 전면 유리창 너머로 이상의 집 내부 전체가 들여다보인다. 내부의 벽과 문을 통유리로 만들어 현대적인 느낌과 전통 가옥의 분위기가 공존한다. 통유리는 자연스럽게 이상의 집 안과 밖을 연결한다. 사람들의 시선은 투명한 유리를 통해 골목에서 서재를 지나 마당까지 하나로 이어진다. 서촌의 골목길을 거닐던 사람들은 가끔씩 신기한 눈으로 전면 유리를 통하여 이상의 집 내부를 들여다본다. 때로는 통유리를 사이에 두고 서재에서 책을 읽던 사람과 눈이 마주치기도 하고, 마치 이상의 시 <거울> 속의 자신과 마주 서는 것처럼 빛의 영향으로 통유리에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전면 유리창과 마주 보는 곳, ‘ㄱ’ 자 한옥과 콘크리트 박스가 만나는 곳에는 육중한 철문이 존재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이다. 바로 ‘이상의 방’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을 여는 순간 밝게 비추던 햇빛은 사리지고 짙은 어둠이 맞이한다. 왼쪽 검은 벽에는 시인 이상의 삶이 영상으로 흐르고 계단 위로는 옅은 햇빛이 들어온다. 이상과 만나는 짧은 순간이면서 긴 지하통로와 같은 공간이다. 2층 베란다에 서면 현실의 세계와 마주한다. 이상의 집은 공간 하나하나에 이상을 떠올릴 수 있는 수많은 단서들을 새기고 있다. 이상이 살던 집은 아니지만 기억 속에, 그리고 시간 속에 남아 있는 완성되지 못한 이상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건축 공간 안에 미완으로 담아냈다. 이상의 문학이 ‘미완의 문학’이듯, 이상의 집도 ‘미완의 건축’으로 남아 있다.

글·사진 이훈길_ 천산건축 대표. 건축사이자 도시공학박사이다. 건축뿐만 아니라 건축 사진, 일러스트, 칼럼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도시를 걷다_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시건축, 소통과 행복을 꿈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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