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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의 말

1월호

주철환의 더다이즘, 열여섯 번째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올해 가을학기부터 모든 초등학교에서 주 2시간씩 합창 수업을 한다는군요. 음악수업의 연장이 아니고 따로 합창만 가르치고 발표하는 수업입니다. 그 시간을 통해 아이들은 노래의 의미와 삶의 재미를 동시에 터득하게 될 테죠. 중학교에서는 일단 선택과목으로 시행한답니다. 가짜뉴스 아니냐고요? 진짜긴 한데 우리나라가 아니고 프랑스 얘깁니다. 한국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는 건 설마 아니겠죠.
‘합창이 사람을 만든다, 프랑스의 교육 실험’이 소식을 전한 신문기사 제목입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동안 숱한 교육 실험이 있었죠. “왜 우리가 애꿎은 실험재료가 되어야 하나요?” 숱한 항의가 있었지만 교육관료들의 ‘실험정신’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국가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창의력 있는 인재를 길러야 한다고요. 하지만 실제로 경쟁력을 기르기보다는 경쟁심을 부추긴 실험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다재다능’보다 ‘다정다감’한 사람, 창의와 협의를 모두 존중하는 사람, 혼자 이기는 사람보다 함께 즐기는 사람을 기르는 교육은 도대체 언제부터 가능할까요?
‘문화국가’ 프랑스의 자부심은 기사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함께 노래를 불러보면, 함께 사는 법을 알게 된다.” 저 역시 그랬던 순간이 있습니다. 중학교 1학년 학기 초 음악시간에 <도나 노비스 파쳄>이라는 노래를 합창곡으로 연습했습니다. 외모가 베토벤 같았던 김현중 선생님은 진지하고 짓궂은 표정을 번갈아 보여주시며 학생들을 어르고 감싸 안았습니다. 친구 창학이, 광선이의 개성적인 입놀림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도나 노비스 파쳄’이 ‘우리에게 평화를 주소서’라는 뜻이란 걸 알게 되었죠. 평화롭고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갔지만 우정과 사랑의 온기는 오래도록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노래는 불러야 노래죠. 부르지 않는 노래는 악보에 불과합니다. 노래를 만든 사람의 기쁨과 슬픔은 그 노래를 불러줄 때 비로소 재생하고 부활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그 시간, 그 자리야말로 예술가와 시민이 하나가 되는 공감의 시간, 공간이 될 겁니다.
과거로 돌아갈 순 없죠. 하지만 현재 또한 과거가 되리라는 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현재의 즐거움과 깨달음이 매우 중요합니다. 음악이 없는 추억, 친구가 없는 교실은 얼마나 삭막합니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어른들이 마련해주어야 할 것은 1등의 자리가 아니라 공동의 무대가 아닐까요? 상 받은 한 명 옆에 상처받은 여러 명이 기죽는 풍경보다는 함께 박수 치며 노래하고 움직이던 기억을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동대문중학교에서 합창발표회가 열렸는데 그 자리엔 교육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도 관객으로 참석했습니다. 합창을 지도한 교사는 “아이들의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데 합창만큼 좋은 교육이 없다”고 증언했습니다. 발표회가 끝난 후 두 장관은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합창을 초·중·고교 정규 교육과정으로 편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발행인의 말 관련 이미지


죄송합니다. 가상뉴스였습니다. 실은 작년 12월 프랑스 파리 13구(區)의 귀스타브 플로베르 중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번안’한 겁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대선 당시 “모든 아이가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며 “각급 학교에서 오케스트라, 합창, 연극 등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습니다. 장관들 역시 “합창은 여러 목소리로 하나의 음악을 탄생시키는 작업”이라며 “합창은 즐거움 속에서 아이들 간 결속력과 연대의식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합창’이라는 말이 들어간 오래된 시집이 있습니다. 1949년에 나온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입니다. 김경린·임호권·박인환·김수영·양병식 등 5명의 시 20편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거의 70년 전 시집인데 <매혹의 연대>, <장미의 온도> 등 소제목들이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출판사 이름조차 ‘도시문화사’입니다. 요즘 트렌드인 ‘문화를 매개로 한 도시재생’과 어딘지 맥이 닿아 있는 느낌입니다.
‘문화를 매개로 한 도시재생’의 사례를 찾아서 영규, 대성, 준걸 등 직원 3명과 함께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저희가 간 곳은 대만의 가오슝(高雄)이라는 지역입니다. 지하철 곳곳이 특색 있는 갤러리로 꾸며져 인상적이었습니다. 문화철도라는 말이 어울리는 풍경이었죠. 가는 곳마다 사진을 찍었고 우리는 점점 가까워졌습니다. 지금도 사진 속의 우리는 여전히 웃으며 서로를 반겨줍니다.
예술은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여행은 사람들을 이해하게 해줍니다. 마지막 밤 숙소에서 저는 가장 편안한 자세로 직원들에게 음악 퀴즈를 냈습니다. 제 휴대폰에 수록되어 있는 1,000여 곡 중 일부를 들려주며 곡의 제목, 혹은 가수 이름을 맞히는 단순한 프로그램(?)입니다. 스토리 있는 음악을 들려주며 과거를 들추어내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밤이 깊도록 음악과 사연에서 저는 헤어나지 못했습니다.
음악은 과거를 되살려주고 현재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줍니다. 음악을 공유하는 이 순간조차도 또 하나의 스토리를 만들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먼 훗날 그들은 새로운 도시에서 젊은 후배 직원들에게 말할 겁니다. “그 음악을 들으니 그때 음악을 들려주던 그분의 따스한 표정이 떠오르네. 그런데 그분 지금도 살아계실까?”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주철환 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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