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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공감

3월호

책 <죽음과 죽어감>과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죽을 것인가, 죽어질 것인가
누구나 죽는다는 점에서 죽음은 공평하다. 그러나 죽음의 질은 균일하지 않고, 죽기 전에 겪어야 하는 고통의 양 또한 제각각이라는 점에서 죽음은 지극히 개별적이다. 살기 위해 생계를 고민하는 것처럼, 죽음을 기억하고 준비하는 일은 중요하다. 삶이 펼쳐놓은 거대한 계약서의 마지막 실천 조항이기 때문이고, 누구나 죽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만 한 해 28만 명이 죽는다. 각종 암과 질환과 사고사. 그모든 죽음의 단계 앞에서 숨이 붙어 있는 한 인간은 결정해야 한다. 죽을 것인가, 죽어질 것인가. 회생 가능성 없는 환자가 스스로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한 연명의료결정법이 최근 시행되면서, 죽음의 시점을 선택의 문제로 조명하려는 책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교양서적으로 분류된 만큼, 자극적 핏대를 세우는 대신 다분히 차분하고 교양 있다. 저자는 모두 죽음의 전문가들이고, 맞닥뜨린 환자와의 내밀한 교감에서 비롯된 제언을 내놓는다. 삶이 아니라 그 반대를 말함으로써 다시 그 반대의 삶을 건드린다.

죽음을 직시하라<죽음과 죽어감>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이진 옮김, 청미

“나는 누구나 실제로 죽음과 맞닥뜨리기 전에 평상시에 습관적으로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족 중 한 사람이 받는 암 선고가 우리 자신의 죽음을 냉혹하게 일깨워줄 것이다. 따라서 병을 앓는 시간 동안 자신의 죽음과 죽어감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면, 실제로 죽음과 조우하게 되건 혹은 삶이 연장되건, 그 시간이 축복일 수도 있다.”
책은 1969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으나 주제는 시대를 초월한다.스위스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결혼 후 미국으로 건너와 호스피스 운동을 전개한 저자는 이 책에서 죽음의 5단계, 즉 부정과 고립, 분노, 협상, 우울, 수용의 과정을 최초로 정립한다. 2년 반 동안 루게릭병, 재생불량성 빈혈 등을 앓는 시한부 환자를 심층 인터뷰하며 죽어가는 사람의 심정과 그들 주변인이 처한 환경과 감정을 옮겨 적었다. 평생 자기 삶의 통제권을 쥐고 있던 인간이 그것을 내려놓아야 할 때의 상태를 책은 충실히 보여준다. 어쩔 수 없는 죽어감의 과정. 그 어쩔 수 없음의 과정은 그러나 균상식육종을 앓고 있는 53살 환자와의 인터뷰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고 때로 위장된 모습으로 찾아오는 희망의 모습을 통해 감동으로 변한다.
“가족을 포함하지 않고서는 시한부 환자를 제대로 도울 수 없다” 는 주장, 환자의 질병이 가족에게 미치는 영향은 또 하나의 핵심이다. “유족들이 얘기하고, 울고, 필요하면 소리를 지르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나누고 분출하게 하되, 그들이 원할 땐 곁에 있어줘야 한다. 죽은 자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나면 유족에게는 긴 애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의료 기술의 발전과 별개로, 현재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 앞에서 드러눕는 대신 직시하고 걸어가는 것. 저자는 각 장을 시작하며 인도 시인 타고르의 문장을 인용한다. 마지막 장에 이르러 <길 잃은 새>의 한 구절을 넣었다. “드는 발도 걸음이고 딛는 발도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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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죽음을 위하여<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허대석 지음, 글항아리

이번엔 한국이다. 서울대병원에서 30년간 교수로 일하고, 현재 서울대병원 의료기관 윤리위원회 위원장인 저자가 한국인의 죽음에 대해 기록한 보고서다. 저자가 바라본 한국인의 죽음은 병원이라는 특정 공간에 과몰입돼 있다. 한국인 사망자의 75%가 병원에서 눈을 감는다. 그러나 한국인은 정말 병원에서 삶을 마감하길 바랄까?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 설문조사에서 ‘그렇다’고 답한 사람은 1,500명 중 16.3%에 불과했다. “이제 병원은 사람을 살려내는 곳이면서 동시에 죽음을 가장 빈번하게 치러내는 곳이 돼버렸다.” 그러니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책인 동시에 병원을 고찰하는 책이기도 하다.
자연히 직접 병원에서 마주한 여러 죽음의 형태가 등장한다. 간암 말기 상태에서 금식기도원에 들어갔다가 사흘 만에 응급실에 실려와 나흘 뒤 사망한 50대 후반의 대학교수, 남편이 죽자 목을 맸다가 뇌사 상태로 143일간 버티다 숨이 끊어진 27살 여성 등. 자연사와 존엄사, 소극적 안락사 등의 명확한 설명과 함께, 평소 왕래도 없던 자녀가 임종 직전 나타나 환자의 연명치료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경우를 뜻하는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 신드롬’ 같은 용어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다.
책의 핵심 논지는 ‘의료에 집착하는 사회’ 비판이다.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연명치료는 중단돼야 한다는 쪽이다. 256개 의료기관의 회신 결과,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 가운데 약 1,500명이 연명장치에 의존한 채 생을 이어가고 있다는 2009년 보건복지부 조사를 예로 든다. 이는 저자에 따르면 죽을 수 있는 자유의 박탈이자,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비합리적인 일이다.
간암 말기 할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자 담당 의사와 누나를 친족살인죄로 고소한 동생 등의 예에서 보이듯, 동시에 윤리의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하는 쉽지 않은 일이다. 후반부로 진행되며 책은 품위 있는 죽음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 호스피스에 대한 필요성으로 넘어간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1965년 아시아 최초의 호스피스 도입국이면서도, 지난해에야 건강보험제도에 정식 편입했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도 등장한다. 죽음에 대해 말하면서도 “병원 내에 울 공간이 없다” 같은 산 자를 위한 지적은 여러 생각거리를 던진다.

글 정상혁 조선일보 기자
사진 제공 청미,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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