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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를 맞대기 위해 홀로 서기

접근성, 공연의 창작/제작 과정 다시 쓰기

호종민

제216호

2022.04.14

웹진 연극in에서는 현재 공연예술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배리어프리의 개념을 공연의 창작/제작 과정 전반에서의 접근성 문제로 확장해보고자 합니다. 전체 기획은 장애예술인들의 에세이를 연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필자들께는 공연의 창작/제작과 관련한 몇 가지 키워드를 제안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연극in은 기존의 공연예술 창작/제작 관행이 비장애를 규범으로 삼고 있지는 않았는지, 모두에게 안전한 작업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나아가 접근성이 어떠한 창조적 상상력과 만나고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나가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코로나가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된 지금, 나는 과거를 회상하거나 장애인 연극을 사랑하는 관객들을 떠올리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장애라는 말이 그렇게 흔하게 쓰이지는 않았다. 장애라는 말이 낯설지 않게 통용이 되고 더 이상은 음지에서만 쓰이지 않았던 시기는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인 1990년대쯤이다.
그때까지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의 사회에서 언제나 배려를 받으면서 살아야 했는데, 2000년대 이후에는 상황이 바뀌었다. 장애인들의 숫자도 늘어났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2022년, 한국에서도 포용 정책을 시행하면서 장애인들의 사회 진출이 늘어나고 법적으로 이를 지원한다. 법을 어길 시에는 일정 정도 불이익을 당한다. 근데, 과연 법적으로 진출을 허용한다고 장애인들이 비장애인들의 사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동등한 자격으로, 동등한 능력으로, 동료로서 동등하게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 살아갈 수 있을까?

“장애인들의 예체능은 아직 비장애인들이 침범할 수가 없거든… 왜냐? 장애가 있기 때문이지… 물론 비장애인들의 예체능과는 비교할 수 없어, 없겠지만… 예체능이야말로 천차만별 아니겠어…? 가지고 있는 신체적인 조건이라면 장애인들이 훨씬 더 불리하지만, 그것을 자기만의 것으로 승화를 시킨다면… 어떨 것 같아?” 누군가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장애인들의 예체능에는 침범할 수 없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다.
그래서 대학교 2학년이 되던 무렵 나는, 예체능을 하면서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컴퓨터그래픽 전공 98학번이었던 나는 IMF 직후 대학을 다니면서 광고 혹은 영화 쪽 일을 두고 고민했다. 그러다 영화 쪽으로 결정을 하면서 연극영화를 복수전공했고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졸업이 다가오자 취업 시장이 더 얼어붙었고 결국 졸업을 하고는 일산 장애인 직업학교를 1년 동안 다녔다. 그 이후 성동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다시 1년 동안 일하다가 6개월간 행정 서포터즈를 했다. 그러던 중 동생이, 장애인 연극배우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다며 알려주어서 마침내 장애인 극단 휠에 들어가게 된다.
2006년 8월이었다. 그때 극단 휠에서는 한창 연극에 대해 배우고 있었고, 연극모임에서 극단으로 나아가기 위해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장애인 연극을 시작한 지 4년이 조금 넘은 터라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때는 진짜 사명감 반, 신비감 반으로 운영을 하고 있을 때라, 뭐든 배워야만 했다. 무대에 서는 법부터 호흡, 발성, 조명, 의상, 소품, 음악, 음향, 안무, 예술 감독, 조연출, 연출, 드라마투르기 등등 하나부터 열까지… 연극은 재미있었다.

보통 연극의 3요소만 있으면 연극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배우, 희곡, 관객. 이 3요소 중에서 제일인 요소가 무엇인지는 누구나가 다 알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관객이다. 하지만 처음에 관객과의 만남에 대한 에세이를 청탁받았을 때는 글이 도저히 나아가지를 않았다. 내가 관객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이 이렇게 없었나 하고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처음 극단 휠의 공연에 대한 관객 호응도는 컸다고 했다. 장애인 연극이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했었는지 관객들이 많은 응원을 했던 것이다. 관객들이 냉혹한 평가를 할 때면, 연출부에서 그 의견을 수용해 다음 작품에 반영했다. 관객들은 연출부를 믿고 다음을 기약했으며, 이후 공연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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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휠 <Bien & 약고기>(2020) 공연 홍보물과 커튼콜

무대에 서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훈련과 연습을 한다. 나는 너무 숫기가 없어서 처음에 무대에 설 때는 앞에서 달달달달 떨기도 했었고,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대사도 잘 하지 못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무대에 오르는 배우이다. 전달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배우고 훈련한다.
관객들은 나에게 시험감독과도 같다. 한두 달 동안의 연습 결과를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하는데, 외모에 자신감이 없다는 것도 영향이 컸다. 하지만 막상 무대에서 연기를 하기 시작하면, 무대가 내게 익숙한 공간으로 바뀐다. 때로는 머릿속에서 그렸던 그림들이 날아가고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그림들을 그리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배우 생활을 하다 보니, 배우라는 직업을 이전과는 다르게 보게 되었다. 배우가 되기 전에는 단순히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고, 배우가 아닌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배우라는 직업만큼 조심스러운 일이 없었다. 늘 다른 이들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었고, 공인이기에 말도 행동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를 생각해주는 관객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스스로 노력하고 변화하려고 애썼다. 나는, 문득문득 관객들이 떠올리고 흐뭇해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객석에 장애인 관객이 있으면 서로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기운이 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된다. 관객들이 내 연기를 보고 내가 전달하고자 했던 것을 잘 가져갈 수 있을까? 비장애인 관객들을 만날 때면 좀 더 긴장되어서 한 번 더 호흡을 들이마신다. 이제는 무대에서 관객들 반응을 보면, 장애인들의 연극을 오래 지켜봐 왔는지 아닌지까지 알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웃는지, 얼마나 진지해지는지, 이런 것들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웃긴데도 주위를 살피고 입을 틀어막는다든지, 진지한 장면에서 숨을 죽이며 눈치를 본다든지, 배우들이 실수를 하면 걱정을 하는 관객들은, 장애인 배우의 연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이다.
아직도 나는 내가 무대에 오른다는 게 생시 같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왕 배우를 하는 거, 내 연기를 보는 장애인 관객들이 꿈꿀 수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바라도 될지 모르겠지만, 누군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현재 장애인 극단 휠은 인권운동이라든지 인식개선이라든지, 오로지 장애인들을 위해서 연극을 한다. 그럼에도 이제는 더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돈을 벌고 수입을 올리는 극단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배우를 하면서 안정적인 생활이 가능하다. 지금까지 장애인 극단들은 운동의 힘으로 잘 버텨 왔지만, 앞으로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어떻게 관객을 만날 것인지에 대한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사진 제공: 영상꼼수놀이터 ⓒ변자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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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종민

호종민
장애인 문화 예술 극회 휠 대표 겸 장애인 배우. hojongm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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