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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인 상호돌봄- 정신질환/장애 당사자와 함께 공동창작하는 방법 연구

접근성, 공연의 창작/제작 과정 다시 쓰기

손성연

217호

2022.04.28

웹진 연극in에서는 현재 공연예술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배리어프리의 개념을 공연의 창작/제작 과정 전반에서의 접근성 문제로 확장해보고자 합니다. 전체 기획은 장애예술인들의 에세이를 연재하는 방식으로 구성되며, 필자들께는 공연의 창작/제작과 관련한 몇 가지 키워드를 제안드렸습니다. 이를 통해 연극in은 기존의 공연예술 창작/제작 관행이 비장애를 규범으로 삼고 있지는 않았는지, 모두에게 안전한 작업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나아가 접근성이 어떠한 창조적 상상력과 만나고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해나가고자 합니다. - 편집자 주

다양한 삶이 있습니다.
다양한 장애와 질병이 있습니다.
다양한 창작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합니다.

“정신질환인가? 정신장애인가?” 호칭에서부터 참 혼란스럽다. 정신질환/장애가 혼란스럽고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는 정신의학 때문이다. 정신의학은 ‘광기’를 정신질환/장애로 경계를 지었고 정의를 내렸다. 환자는 의사가 결정하는 만큼의 삶만 인정받는다. 이 의사의 인지적, 사회적 권위1)는 진료실 밖으로 뻗어 나간다. 정신질환/장애 당사자는 진료실 밖에서도 환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즉, ‘미쳤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신뢰를 잃어버린다. 정신질환/장애 당사자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성의 회복이다.
정신질환/장애 당사자는 정신적 어려움과 정신적 어려움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로 인해 이중고를 겪는다. 정신질환/장애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이기에 시각화가 되지 않는다. 감각과 감정의 변화는 당사자만이 느낄 수 있다. 감각과 감정의 변화는 말과 행동으로 표현된다. 정신질환/장애 당사자 간에도 소통의 어긋남이 일어난다. “정신질환/장애 당사자와 함께 공동창작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프로젝트를 제작하는 과정에서의 실수를 되짚어 보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대화

창작을 하기 전에 대화를 했다. 창작과 별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하는 시간이었다. 극단Y와 작업을 할 때 ‘상태공유’를 했던 것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서 따라 해본 것이었다. ADD(주의력결핍장애)의 의도치 않은 장점이라고 해야 될까? 나중에 승록과 대화하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상태공유’는 연습을 하기 이전에 자신의 상태를 공유해, 연습 도중 배려받아야 할 부분을 팀원과 나누는 시간이라고 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아무 말이나 다 해도 되는 것으로 착각했다. 상태 공유할 때 동생 얘기하다가 울고, 안티카에서 상근자로 일하는 거 힘들다고 말하다 울 뻔하고, 극작가로서 자존감이 낮다는 말도 하고…. 창피하다. 그런데 그때 나에겐 그런 공간이 필요했다.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장애 당사자에게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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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쳤다!>(2021) 휴식 중이랍니다 ⓒ김솔

의사들은 조현병의 양성증상(환각, 망상)은 약물치료 효과가 있지만, 음성증상(‘무의욕증’, ‘감정둔화’, ‘무사회증’, ‘무쾌감증’)은 약물치료가 잘 안 된다고 한다. 음성증상은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질병이라고 생각된다. 정신질환/장애 당사자는 자신의 세계를 표현할 때 거부당하면서 체념상태에 이른다. 또한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적어 쉽게 고립된다. 프로젝트가 끝난 후 “‘대화하는 시간’의 명칭을 TMI(Too Much Information)라고 하면 어떨까요?”라고 농담으로 얘기한 적이 있었다. 동물권 활동가 혜린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의 이야기, 나의 정체성 중 핵심적인 이야기를 말했는데 과잉된 정보로 받아들여질 때 그들의 삶이 자칫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 같아요”. 정신질환/장애 당사자와 함께 공동창작을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이란, 자신이 겪어왔던(겪고 있는 중인) 고통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그러한 고통을 듣는 것이 불안하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말하는 것과 듣는 것의 관계를 안전하게 설정하는 것에는 아직 좀 더 다양한 공동창작을 경험하면서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관계 맺기

공연 창작 과정은 캐릭터 창작 → 캐릭터의 서사 창작 → 장면 만들기, 이렇게 세 가지 단계를 거쳐 진행됐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관계 맺기의 변화가 일어났다. 캐릭터 창작은 김은성 극작가의 ‘극작수업-희곡창작워크숍’을 반영해서 계획을 세웠다. 계획한 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당사자 창작자에게 편안한 창작 방법이 무엇인지 대화를 나누고 계획을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캐릭터 창작을 하는 이유와 의도를 정확히 설명해주지 못했다. 당사자 창작자들은 자기 경험의 사실들만 적어야 하는 것인지, 경험과 상관없이 허구로 창작하는 것인지 혼란스러워했었다. 대화(인터뷰), 정신적 어려움 발표, 메모, 토론 등을 거쳐 수정과 보완을 했다. 캐릭터 낭독회를 준비할 때는 독백을 읽고 전달하는 최소한의 연습만 했다. 캐릭터 창작 과정을 통해, 본격적인 공연 연습 과정에서 정신적 어려움에 대비하는 안전조력자를 준비해야겠다는 얘기를 스태프들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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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낭독회 ⓒ옥상훈

당사자 창작자가 창작한 캐릭터를 토대로 대본을 만들었다. 대본은 두 가지 버전으로 작성했지만 모두 활용하지 않았다. 드라마를 재현하는 것이 기획의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쓰고 나서야 알게 됐다. 당사자 창작자와 대화하면서 장면을 함께 쓰고 읽고 수정했다. 문자 메시지와 전화로 수시로 대화(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기억들을 채집했다. 연출 수림과 드라마트루그인 윤지의 조율이 큰 도움이 되었다. 함께 쓰는 과정에서 참 많은 갈등이 있었다. 이런 과정에서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습을 하다가 ‘액팅버디’ 역할에 대해서 토론했다. 안전조력자, 액팅코치(액팅버디), 혹은 무슨 단어를 쓰든지 간에 정신적, 신체적 안전을 ‘역할’로서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신적 어려움은 예측 불가능하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모든 창작자 사이에 관계를 잘 맺어, 다양한 상황에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가 있다. 왈왈은 정신병동과 관련된 장면을 연습할 때마다 불안하고 우울해 급성기가 올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수림은 왈왈, 도이와 함께 대본을 살펴보면서 대화했다. 트리거가 되는 대사들을 함께 골라 도이가 읽도록 했다. 이밖에도 다양한 에피소드들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여러 방법으로 돌봐주었다. 내가 최악의 선택을 했을 때도 동료들이 다른 선택을 알려주면서 상황을 부드럽게 만든 적이 여러 번 있다.

난잡한 돌봄
: ‘난잡하다’는 것은 또 ‘차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는 돌봄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2)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정신질환/장애 당사자와 함께 공동 창작할 때 필요한 방법의 주요 키워드가 돌봄이란 걸 알게 됐다. 나 또한 돌봄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림은 연출 이외에도 기획으로서 내가 해야 할 업무를 도와주고 알려줬다. 정신질환/장애의 스펙트럼은 정말 다양하다. 같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어도 그것의 서사와 표현방식이 천차만별이다. ‘어떻게 도움을 받을 것인가? 어떻게 도움을 줄 것인가?’ 창작의 기술 연구보다 창작 관계 연구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이 프로젝트에서 돌봄의 관계는 부분적으로만 상호의존적이었다. 이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는 이유는 더 나은 대안을 함께 찾고 싶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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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쳤다!>(2021) 최고의 팀이에요 ⓒ김솔
  1.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 강진영·김은정·황지성 옮김, 그린비, 2013, 221쪽.
  2. 더 케어 컬렉티브, 『돌봄선언: 상호의존의 정치학』, 정소영 옮김, 니케북스, 2021,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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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연

손성연
공연예술 독립기획자입니다. 성인 ADHD와 불안장애랑 요란하게 삽니다. 미친존재감 프로젝트에서 공연들을 기획·제작하고 있습니다. 미친 얘기하는 걸 좋아합니다.
인스타그램 @madpres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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