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기록을 남긴다는 것 – 무엇을, 어떻게

웹진 연극in 창간 10주년

김태희

제219호

2022.05.26

2012년 4월 창간준비호에서부터 총 네 번의 준비 과정을 거친 연극in은, 2012년 6월 제1호 웹진을 발행했습니다. 그사이 많고 많은 연극과 사람들이, 무대와 객석의 이야기들이, 새로운 소식과 담론들이 연극in이라는 세계를 만들어왔습니다. 2022년 창간 10주년을 맞아 편집부에서는, 그 세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매체와 기록에 대한 이야기로 그 첫 번째 기획의 문을 엽니다. - 편집자 주

생각해보면 평론을 시작했던 무렵부터 매체를 만드는 일에 참여해왔다. 매체 발간을 위한 행정적인 지원에서부터 지면을 기획하고 원고를 편집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매체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다종다양한 노동이 요구되었고 나는 생각보다 그런 종류의 노동을 좋아했다. 물론 모든 노동이 좋았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매체를 만드는 일은 확실히 재밌었다.
매체를 만드는 일이 뭐가 그렇게 재밌었을까. 돌이켜보면 매체를 만드는 나의 머릿속에는 늘 그것이 연극사를 위한 기록이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공연을 기록하는 수단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연극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 공연에 대한 평, 관련된 담론들까지 아울러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연극사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매체는 동시대 연극계의 무수한 이야기들을 수집해서 다음 세대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엄청난 운명(!)을 부여받게 된다.

수집의 기준: 기획의 중요성

당연한 소리지만, 무수한 이야기들을 수집해야 한다고 해서 모든 이야기를 무작정 모을 수는 없다. 어떤 이야기들은 수집의 대상이 되지만 또 어떤 이야기들은 너무 가볍다는 이유로, 혹은 중요하지 않아서 수집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수집에도 매체마다 기준과 방향이 있다는 의미다.
필자로 참여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연극in은 다른 매체에 비해 다양한 성격의 필자들이 참여하는 매체다. 그만큼 현장의 이야기를 다양한 시각으로 수집하고 전달하는 역할에 중점을 둔다. 웹진이라는 발간 형식을 활용해서 독자/관객들의 참여를 유도한다는 것도 중요한 지점이다. 당대 일반 독자/관객들의 반응이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은 사(史)적인 기록에도, 동시대 창작자들에게도 매우 유의미한 도움이 된다. 한편 작가, 평론가와 같이 특정 주체들이 주도하는 매체의 경우에는 참여 주체의 시각과 특성이 매체 기획에 상당 부분 반영되기도 한다. 요컨대 매체를 만드는 주체에 따라 무엇을 수집해서 어떻게 전달할지 방향성이 달라진다.
지금은 잠시 쉬고 있지만, 『월간시선』을 만들었던 시간은 연극 매체에 대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였다. 소규모의 인원으로 운영되었던 매체의 특성상 지면의 기획은 유동성과 자율성이 높았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슈나 작품에 대해서는 지면을 조금 더 할애하기도 했고 필요할 때마다 새로운 기획의 글을 추가하곤 했다. 그것이 곧 기존의 매체들이 보여주었던 ‘매체의 권력’을 해체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매체의 발간 횟수가 늘어날수록 우리 역시 매체가 갖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매체 기획에 개입시킨다는 건 곧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매체가 권력을 갖는다면 그건 바로 이 지점 때문일 것이다. 선택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의 차이로부터 매체의 방향성이 드러나는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모두가 비슷한 것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할 필요도 있다. 다양하고 새로운 담론을 만들어내는 것, 그리하여 여러 가지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 그것이 매체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면: 거리 두기와 다시 읽기의 필요

아이러니하게도 매체가 곧 기록이 된다는 점 때문에 매체는 종종 곤란한 입장에 처하곤 한다. 한 번 기록된 것은 되돌릴 수 없다. 온라인으로 발간이 된 매체들은 기술적으로 추후 수정이 가능하겠지만, 오프라인의 경우에는 한 번 유통이 된 이상 추후 수정은 불가능에 가깝다. 덧붙이자면, 온라인 매체라고 하더라도 추후 수정에 대해서는 그대로 두는 편이 옳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매체의 권력과 기록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을 하게 된 것은 미투 운동 이후부터였다. 매체에서 많이 다루어지는 작품과 창작자들일수록 주목도가 높아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 약자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무수한 가해자들이, 그런 권력을 손에 쥘 수 있었던 데에는 매체가 일정 부분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미투 운동이 아니었다면 우리 연극사는 여전히 가해자들을 중심으로 서술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전에 기획되었던 글들을 삭제하거나 수정해야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건 지금 우리에게나, 훗날 이 기록을 읽게 될 이들에게나 그다지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이후를 어떻게 기록해 나갈 것인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메타비평 혹은 다시 읽기의 방식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본문사진01
본문사진02

매체에 대해서, 혹은 매체에 실렸던 글들에 대해서 메타비평을 찾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지금 당장의 이야기를 수집하는 것도 벅찬 상황에서 발표 시점이 한참 지나버린 글들에 대해 논의를 더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아울러 매체를 다시 읽어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서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더해야 할지 모르는 것도 원인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정 때문에, 연극in의 메타비평은 개인적으로는 흥미롭게 지켜본 기획이었다.
연극in은 “기존의 시각에 대한 비평적 발언이나, 불안정한 의제의 수정 및 새로운 의제 도출, 다양한 관점의 제시 등을 목적”으로 하는 메타비평을 기획한 바 있다. 누적된 글이 많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의 글에 대한 다시 읽기를 시도하고 새로운 관점을 더해주는 글들을 소개했다는 점이 반가웠다. 가령 배우의 연기를 분석하는 평론을 다시 읽고 적극적으로 기록되지 못했던 배우의 연기에 대한 기록의 중요성을 제시하거나, 퀴어/트랜스 연극 비평을 경유해 몸의 현존과 미학적 의미에 대해, 더 나아가 평론의 역할에 대해 성찰을 하는 식이었다. 이를 통해 기록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시간적 간극을 뛰어넘는 대화로, 생동하는 것이 된다.
기록이 어쩔 수 없는 매체의 운명이라면 그 기록을 어떻게 남기고, 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거리를 두는 것, 꾸준히 다시 돌아보는 것, 거기에 새로운 이야기를 더하는 것. 그것이 매체가 선택할 수 있는 건강한 방식의 기록일 것이다.

남는 고민들: 매체의 생태계

언젠가 매체를 만드는 일에 대해 “매체를 만드는 일은 더 이상 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공연 관련 매체는 언제나 필요하다. 이 간극을 어떻게든 메워보려는 것, 그것이 이 시대에 공연 관련 매체를 만드는 사람들이 마주한 숙명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1) 안타깝게도 이 문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매체를 운영할 인력은 늘 부족하고 지원금이 아니면 버티기 힘든 재정적 상황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건강하지 않은 생태계가 매체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심각하다. 이런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매체를 만드는 일에 점점 관성이 붙고 새로운 시도보다는 익숙한 것들을 선택하게 되어 버린다. 매체에 대한 성찰이나 기획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을 하기는 당연히 어렵다. 기록으로서의 매체를 고민하는 일이 매체의 생태계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져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1. 김태희, 「공연을 말하는 또 다른 방식 <여덟갈피>」, 『연극in』 168호, 2019.09.26.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김태희

김태희
연극비평집단시선의 구성원 부지런해지고 싶은 평론가 새로운 연극사를 꿈꾸는 연구자
shykth@hanmail.net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