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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란을 잘 일으켜야 좋은 질문이 됩니다”

웹진 연극in 창간 10주년

임성현

제220호

2022.06.16

2012년 4월 창간준비호에서부터 총 네 번의 준비 과정을 거친 연극in은, 2012년 6월 제1호 웹진을 발행했습니다. 그사이 많고 많은 연극과 사람들이, 무대와 객석의 이야기들이, 새로운 소식과 담론들이 연극in이라는 세계를 만들어왔습니다. 2022년 창간 10주년을 맞아 편집부에서는, 그 세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기획을 준비했습니다. 1기 편집위원이었던 이진아 평론가와 현재 4기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임성현 연출가가 만나 웹진의 변화와 그 방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 편집자 주
일시:
2022년 5월 16일 2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참여:
이진아(1기 편집위원), 임성현(4기 편집위원)
임성현(이하 임)
웹진을 요즘에도 자주 보시는지요?
이진아(이하 이)
자주 보긴 해요. 요즘에도 메일링 서비스를 하나요?
구독 신청하신 분들께 메일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언제부턴가 받질 못한 것 같아서 이제는 안 하는 줄 알았습니다. 연극in을 처음 창간할 때 뉴스레터 형식으로 출발했거든요. 당시엔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았어요. 모바일로 무언가를 읽거나, SNS로 소식을 접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연극in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PC로 열어보는 환경이었던 거죠.
창간 당시 편집위원회의 풍경은 어떠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출발하셨으며,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운영하려고 하셨는지요.
초기에는 편집위원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어요. 10명 정도가 모여 편집 회의를 했거든요. 아무래도 초반이다 보니 계속 자문을 구해야 했어요. 연극계 내외 다양한 분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확장 회의 같은 것들도 여러 번 가졌죠. 연극계에 잡지가 여러 개 있잖아요. 소위 연극 전문지 또는 비평지라고 할 수 있는 『연극평론』, 『공연과 이론』, 『공연과 리뷰』 등 계간지가 있었고, 월간지로 『한국연극』이 있었죠. 그런 구도 안에서 연극in이라는 웹진의 역할이나 위치가 무엇일지 고민했죠.
그럼 그때는 주로 어떤 독자를 타겟으로 삼았나요?
그때는 오로지 관객 대중을 위한 저널로 시작했어요. 첫째로 연극계의 소식들을 공유하겠다는 의도였죠. 앞서 언급한 연극 관련 저널들이 일반 관객 독자에게는 접근하기가 너무 어려운 거예요. 연극 자체만으로도 일반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마이너 장르잖아요. 막연하게 연극을 보고 싶어도 어디서 정보를 얻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어떤 공연이 어디에서 공연되는지도 알기 어렵죠. 나의 취향이 뭔지를 알기는 더 요원하고요. 이런 상황에서 독자들에게 연극이 이런 것이고, 연극계와 연극의 역사는 이러저러하며, 다양한 공연들이 대학로에 있으니 만약에 당신의 취향이 이렇다면 이러저러한 극장이나 극단들을 따라서 공연들을 보기 시작하시면 좋겠다고 알려주기 위한 잡지였던 거죠.
확실히 관객 가이드 역할에 충실하려고 했던 것이군요.
가이드 역할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관객 대중을 위한 저널이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진지한 이야기나, 여타 잡지에서 볼 수 있는 전문가 리뷰 같은 것보다는 우리가 매일같이 드나드는 대학로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극장들이 있는지, 그 공간들이 왜 거기 있는지가 궁금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대학로’라는 이름이 왜 생겼는지 모르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래서 그 역사라든지 유래를 재미있게 풀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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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아
저도 그 기획 기사를 찾아 읽고선 대학로의 유래를 알게 되었습니다.1) 제가 공연 하는 극장, 공연 보러 자주 드나드는 극장의 역사에 관해서도요.2)
한편으로 ‘여기서 이런 공연도 해요’라는 것을 많은 관객에게 알려주고 싶기도 했어요. 초기 [프리뷰]와 [꽃점]은 그렇게 시작된 거예요. 되도록이면 많은 작품이 지금 공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자는 취지였죠. 그래서 [꽃점]이 초기에는 평가보다는 ‘이건 이런 공연이고, 당신 취향이 이와 비슷하다면 여기엘 가보세요’라는 식으로 알려주려는 소개에 가까웠어요. [리뷰]도 있기는 했었는데, 초반 2년 정도는 독자들의 리뷰를 중심으로 올렸죠. 전문가 리뷰를 싣는 잡지는 너무 많잖아요.
일반 관객 분들이나, 블로거 분들이 리뷰를 쓰시고 그랬더라고요.
학생도 있었고 강사, 취업 준비생으로 자기를 밝히는 분들도 계셨고요. 굉장히 다양하게 독자 리뷰를 공모 받았지요.3)

10년의 세월, 격변하는 현장, 연극in의 현재

그렇다면 10년이 흐른 지금의 연극in은 어떻게 달라진 것으로 보이세요?
독자를 누구로 상정하는지부터 여러 방향성이 현재는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마 시대적 요구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고, 또 연극인들의 요구로 인한 것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변화의 흔적이 보이시나요?
연극계 내부의 이슈를 담아내는 담론지로 생각하고 계신 것 아닌가 싶어요. 기존의 잡지들이 담지 않는 논제를 발굴하고, 자신이 말하고 싶은 이슈를 담아낼 지면을 찾지 못한 젊은 친구들의 목소리를 이 잡지가 담아내려고 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말씀하신 내용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네요. 물론 창간 초기처럼 관객 독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고민이나 그런 콘텐츠를 많이 생각하긴 합니다. 그러나 그 관객 독자와 연극인 독자라는 구분이 점점 명확하지 않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현재 편집위원회는 작년 가을부터 활동을 시작했는데요. 바로 전 편집위원회부터 방향이 조금씩 바뀌게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담론 중심으로 콘텐츠들이 꾸려지게 된 것 같고요. 한편으론 [리뷰]를 비롯한 여러 지면에서 기존의 전문지, 비평지와는 다른 필자를 발굴해보려 하고 있습니다. 리뷰로 다루는 공연 대상도 좀 덜 알려진 공연 위주로 다루려는 의도가 이어지는 것 같고요.
그런 것들은 지난 10년 동안 어떤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변화해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10년 전에는 웹 콘텐츠에 진지한 내용을 담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당시 연극계 저널들에서 채워주지 못했던 부분들을 채워주자는 의도가 더 컸죠. 지금은 대부분 극단에서 인터넷 베이스로 홍보를 하고 있고, 모바일 환경으로 많이들 변했기 때문에 검색창에 그냥 작품명이나 극단명을 쳐도 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요. 10년 전에는 안 그랬어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모아줄 수 있는 플랫폼이 하나 정도는 필요하겠다는 생각이었고, 웹진의 방향성으로 삼았던 것이죠.
그럼 그때 당시 편집위원회의 구성은 어떻게 된 것이었나요?
저희가 구성한 것은 아니고요. 서울문화재단과 서울연극센터에서 웹진 창간을 정하면서 저희를 섭외한 거죠. 다양한 연극계와 관련된 사람들, 그리고 연극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려고 하는 의도가 있었죠.4)
현재는 편집위원들이 전원 창작자로만 구성이 돼 있다는 점도 조금 다른 것 같네요. 매번 평론가 구성원이 포함돼 있었는데, 현재는 편집위원 전원 현장 창작자로 구성이 돼 있습니다. 또한, 그동안 남성 편집위원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더 많았던 반면, 현재 편집위원회에는 남성이 한 명이라는 점도 어떠한 변화를 나타내는 지점인 것 같고요.
그건 아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네요.
현장이 변하면서 웹진도 자연스레 변한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웹진 연극in의 지난 10년간의 변화는 한국사회의 변화, 그로 인한 연극 현장의 변화와 떼어놓고 얘기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비록 10년이지만 그간 한국사회는 수많은 변화를 겪었죠. 당시 이명박-박근혜 정권으로 보수 정권이 연장되던 시기였고, 그 이후 세월호 참사, 블랙리스트, 국정농단-탄핵, 정권 교체, 미투 운동, 그리고 최근에는 다시 정권이 바뀌었죠. 이런 다이나믹한 변화에 따라 웹진 연극in도 10년간 변화를 겪었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현장 변화와 함께 바뀐 것 같다고 느끼시는지 궁금합니다.
담고 있는 쟁점이나 내용은 당연히 바뀔 수밖에 없죠. 그런데 개별 섹션이나 전체적인 구성은 크게 바뀌지 않았던데요. 좀 전에 웹진 연극in이 현재는 대안 담론지 같은 성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코너의 구성이나 형식의 변화로 들어오지는 않거든요. 여전히 [리뷰] 있고, [기획] 있고, [현장] 있고, [칼럼] 있고 그런 방식인데, 창간호도 똑같아요. 결국 크게 변화했다는 것은 담겨 있는 내용의 변화죠. 형식적인 변화가 있다면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한 것이겠죠. 아까도 말했듯 당시에는 대부분이 PC 환경에서 웹진을 접했으니까요.
지금은 웹진이라는 플랫폼이 그렇게 신선하게 다가오지 않는 것이 사실이죠. 독자마다 정보를 접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공연 정보를 얻는다거나 공연 후기를 접할 때,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사람인지,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사람인지, 트위터 이용자인지에 따라 얻는 정보의 결이 상당히 다르더라고요. SNS를 아예 안 하는 사람들은 소식조차 접하지 못하는 공연들도 많이 생겼으니까요. 웹진은 SNS보다 접근성이 훨씬 더 떨어지죠. 어떤 이슈를 만든다거나, 많은 독자를 새로 유입하기에는 웹진 플랫폼 하나만으로는 어려운 시대가 되었어요. 물론 그런 변화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영상 콘텐츠도 만들어보고 여러 시도를 하지만, 예산을 비롯한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급진적인 변화를 모색하기는 어려운 듯합니다.

“독자는 누구인가?”

초창기에 저희는 독자가 누구인지에 제일 관심이 많았어요. 웹 저널은 그때 안 읽히면 10년만 지나도 사라져요. 웹 저널을 누가 창간호부터 차례대로 들여다보겠어요? 아무도 안 그러거든요. 그럼 현재의 독자에게 어필할 수밖에 없죠.
선생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저는 이미 웹진 연극in을 올드한 매체로 규정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불특정 다수 독자를 별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현재 구독자를 포함해 계속 팔로우해주시는 적극적인 독자 분들 위주로 생각했던 것 같네요.
서울연극센터가 웹진을 없애버리면 서버와 자료가 통으로 날아가는데요. 순식간에 모든 게 없어지는 거예요.
그 생각은 아예 안 해봤는데요. 설마 그럴 것이라고는…
디지털 자료라는 게 그런 거거든요.
그 생각은 차마 안 해봤던 것 같아요(웃음). 저는 연극in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기 전에도, 연극 또는 연극계에 관한 어떤 정보를 얻을 때 여기부터 들어와서 검색했어요. 대학로의 역사나 유명한 극단들의 역사 같은 것도 여기를 통해 처음 알았거든요.
연극in에 대학로의 역사에 관한 자료가 있을 거라고 알고 찾아보는 것은 임성현 연출님이니까 하는 거겠죠. 대부분의 독자 모를 거예요. 대학로의 역사를 알고 싶다면 초록창에 치지 웹진 연극in에 들어가서 찾지는 않을 거란 말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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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얘기하면서 느끼는 건데요. 새로운 독자의 유입을 고민하거나, 과연 누가 이걸 읽을까 고민하는 게 창작자가 본인 공연 만들면서 하는 고민과 되게 비슷한 것 같네요. 공연 만들면서도 ‘과연 이걸 누가 볼까’, ‘또 연극계 사람들과 지인들만 보는 건 아닐까’, ‘근데 그러면 안 되는 걸까’ 이런 식의 고민을 하거든요. 이게 웹진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연극 자체의 문제일까요(웃음)?
연극이 마이너한 장르이니까 연극을 다루는 매체도 마이너할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연극에 관심이 없어도 웹진을 통해 연극 관련된 콘텐츠를 즐겁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걸 시작했죠. 대학로에 공연 절대로 안 보러 오는 사람도 지나가면서 ‘저 붉은색 건물은 뭐지?’, ‘마로니에 광장은 왜 이름이 마로니에지?’라는 식으로 궁금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여기가 원래는 서울대학교가 있었던 자리예요’ 이런 식으로 얘기해주면, 읽는 사람들이 ‘여기가 그런 이름을 갖고 있구나’, ‘그래서 여기에 이 붉은색 건물이 들어섰구나’, ‘이 붉은색 건물들이 사실은 다 연결된 한 세트구나’, ‘그게 그 건축가가 지었구나’ 알게 되면서 관심이 생길 거고, ‘그럼 한번 들어가서 공연도 봐 볼까’라는 생각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굉장히 귀여운 낭만적인 생각을 했던 거죠. 하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아요. 아시죠(웃음)?
그렇지요(웃음).
그런 기대는 지금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이미 거기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왔고, 그런 게 더는 필요하지 않죠. 잡지를 만드는 사람은 콘텐츠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우리 자체가 뭘까’, ‘어떤 플랫폼에 어떤 형식으로 내가 얘기하고 있는 걸까’, ‘듣고는 있는 걸까’ 이 고민을 계속해야죠. 그러니까 어떤 게 더 효과적으로 말을 거는 방식인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요. 독자가 관심을 갖고 페이지에 들어와도 클릭해 보는 기사는 최대 2개까지인 것 같거든요. 그런데 웹진의 특성상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아요. 종이책이면 들고 다니면서 다시 펼쳐 보겠죠. 근데 웹진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렇다면 기존처럼 격주로 한꺼번에 기사가 출고되는 방식이 맞는지 고민을 해볼 필요는 있는 거죠.
그렇다면 지금 웹진의 역할은 무엇에 가까워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비마이너』, 안타깝게도 지금은 서비스를 중단한 『닷페이스』와 같은 온라인 매체들은 중요한 이슈들을 빠르게 쟁점화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연극계에서 중요한 이슈들을 발 빠르게 쟁점화해서 공유하게 만드는 게 현재 웹진의 중요한 역할이 아닐까요. 다른 잡지들은 계간지이거나 월간지이기 때문에 그런 속도로 반응할 수 없지요. 때문에 웹진이 그런 역할을 해야 된다고 봐요.
최근 연극in에서 하는 일이 어느 정도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최근의 [기획]은 반년 정도 기간 동안 주제를 하나 정한 후 그걸 꾸준하게 다루는 방식인 것 같아요. 아마 이전 편집위원회 때부터 이런 형태로 된 것 같은데, 연극계의 이슈를 발 빠르게 기획해서 반영하는 방식은 사실 아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젠다 설정을 나름 잘 해왔다고 생각해요. 『닷페이스』나 『비마이너』는 상근 기자가 있잖아요. 반면에 여긴 기자가 없죠. 때문에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요.
발 빠르게 현장의 어떤 이슈를 쟁점화하기보다는, 현재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어떤 공적인 이슈를 주제로 삼아서 그걸 꾸준히 다루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지요.
저는 그것도 의미 있다고 봐요. 요즘의 웹진에서는 그런 기획 부분을 잘 읽고 있거든요. 매주 따라가는 것을 조금 놓치더라도, 계속되는 기획인 줄 아니까 그전에 있었던 기획 기사를 찾아보기도 하고 그렇게 되죠. 제 개인적으로 웹진을 보게 되는 이유는 [칼럼]이나 [리뷰], [대화]보단 [기획] 파트를 챙겨보기 위해서인 것 같아요.

리뷰와 꽃점, 연극in의 비평적 역할?

[리뷰]는 왜 잘 안 보게 될까요?
아까도 말했듯 웹진의 특성상 최대 2개까지만 기사를 눌러보게 되는데, [리뷰]까지 손이 안 가는 거죠. [리뷰]는 보통 그 공연을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견이 궁금할 때 주로 보게 되죠. 갑자기 어느 날 [리뷰]의 조회수가 확 올라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어떤 선생님이 과제를 내셨나보다 생각하죠(웃음).
그럴 수도 있겠네요(웃음).
그런데 웹진에 꼭 리뷰를 담아야 할까요. 리뷰를 담아내는 잡지들은 되게 많잖아요. 기존 잡지에 리뷰가 실릴 가능성이 없는 공연을 찾아서 다뤄준다는 취지면 그것도 좋다는 생각은 들어요. 하지만 그 리뷰가 독자에게 가닿는 것은… 글쎄요. 창작자와 지인 외에는 모르지 않을까 싶네요.
연극in에서 리뷰를 다룰 때는 작품뿐만 아니라 필자에 관한 고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글을 쓰고 싶은데 매체가 없어서 활동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죠. 이제 막 졸업한 분들 중 비평을 전공했거나, 비평을 하고 싶은 분들을 위주로 섭외하는 것 같은데, 필자 섭외가 쉽지는 않다고 들었어요.
연극in이 가지고 있는 큰 장점 중 하나인데요. 기존 잡지들은 모두 비평지잖아요. 필자들이 대부분 연구자이거나 비평가예요. 연극인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해 또는 자신과 자신의 주변 동료들의 작업에 대해서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어요. 물론 전문지나 비평지도 그런 분들의 글을 받으려고 엄청 노력하죠. 근데 잘 안 써주시거든요. 연극in은 처음 창간했을 때부터 비평가들이 글 쓰지 않았던 잡지예요. 독자들이 쓰기도 하고, 연극계 언저리에 있는 다른 장르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이 쓰기도 했고요. 작가나 연출가들이 직접 쓰기도 하죠.
그 지점에서 지난 10년의 기사 중 지금 기억에 남거나 혹은 의미 있다고 생각하시는 기획은 무엇이 있을까요?
저는 김신록 배우가 다른 배우를 만나서 대담한 그 기획이 되게 좋았어요. 연출가는 그래도 글을 자주 쓰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어요. 그런데 배우는 그럴 기회가 별로 없거든요. 그리고 작품 내용이나 작가, 연출에 대한 리뷰들은 있지만 배우 연기에 대한 리뷰는 굉장히 드물죠. 그 부분을 김신록 배우와 함께 이야기 나눈 배우들이 언어로 잘 풀어냈다고 생각해요. 또, 배우가 보는 연극 리뷰, 작가가 보는 연극 리뷰, 기획자가 보는 연극 리뷰, 이렇게 기존에 리뷰를 쓰지 않던 사람들이 작업일지처럼 올렸던 적도 있었는데, 그런 것도 의미 있던 것 같고요. 김민조 선생님과 김방옥 선생님의 [세대교차]도 재미있게 보았어요. 물론 결과물이 기획 의도에서 점점 벗어나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끝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요. 이전 편집위원회 때부터 지금까지 하나의 주제를 택해 꾸준히 기획 기사를 내보내는 방식도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옛날 인터뷰들도 현재까지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제가 느끼기에 예전에는 소위 연극계 ‘인싸’들이 주로 지면에 등장했던 것 같은데요. 연극계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여서 제가 처음 진입했을 때 어떤 분들이 계시는지, 어떤 분들인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얻었고요. 초기에 기획하셨던 ‘대학로 연대기’와 ‘극장전’은 여러 번 찾아 읽게 되는 기사예요. 유명한 극단들의 역사를 다뤘던 ‘극단적인 연극사’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극단 체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한 사람인데요. 이제는 주변에서 극단을 많이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요. 기존의 극단들은 어떻게 작업을 했고, 그게 이어져 왔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초기 기획은 연극인보단 일반 관객에게 ‘당신들이 매일 술 마시고 밥 먹으러 오는 대학로가 사실은 이런 곳이에요’라고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컸죠.
[꽃점]은 어떠신가요? [꽃점]은 상대적으로 독자들의 관심도가 높은 축에 속하고 그에 관한 이야기나 논란은 꾸준히 있었지요. 아까도 말씀하셨지만, 초기에 [꽃점]을 기획하셨던 기사들을 살펴보니까 처음에는 평가의 의미가 있지 않았다고 들었어요. 관객 대중을 가이드하는 역할, 다양한 공연 추천을 목적으로 시작했다는 것이죠. 당시에도 논란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꽃으로 할지, 소주잔으로 할지 박카스로 할지 고민하셨다는 얘기도 보았고요.5) 당시 [꽃점]을 기획하게 된 배경과 초기 운영에서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현재 운영 방식에 관해서도요.
현재 [꽃점]이 지향하는 바가 뭔지를 잘 모르겠어요. 초기에는 [꽃점]이 평가의 의미보다는 관객에게 다양한 공연들을 알리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었거든요.6) 물론 아무래도 비평가 선생님들은 직업이 그렇다 보니, 자꾸 평가를 하게 되죠. 그러나 다른 분들은 또 자신의 관점대로 ‘꽃점’을 남기실 것이고, 특히 아예 연극계 인사가 아닌 분들은 더 관객과 비슷한 관점에서 공연에 접근할 것이니 다양한 관점이 반영될 거라는 생각이었죠. 한 저널에서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프리뷰를 한다고 하더라도 다룰 수 있는 범위의 한계가 있잖아요. 소개하지 못한 공연이 엄청 많은데 그 공연들이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는 것이 좀 안타까웠어요. 그걸 [꽃점]이 가능하게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전문가 ‘꽃점’ 이외에도 관객들도 ‘꽃점’을 남길 수 있게 해서 그걸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었어요. 그래서 연말에 이것만 가지고 통계를 내도 올해 관심을 많이 받은 공연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었죠. ‘꽃점’을 몇 개 줬느냐와 무관하게 많은 사람이 무언가를 남겼다는 것은 그만큼 관심이 높다는 얘기인 거잖아요. 전문가 ‘꽃점’은 적은데 관객의 ‘꽃점’이 오히려 상당히 많다거나, 그 반대이거나 이런 것들을 보는 재미도 있었어요.
지금은 그 기능을 잘 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작년에 편집위원이 되고 나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편집장께서 물으셨을 때 [꽃점]에 대해 얘기했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꽃점을 없애고 싶다”고 얘기했거든요. 그러나 [꽃점]은 독자들이 쉽게 유입하는 경로이기에 매체 접근성을 고려하면 함부로 없애지는 못하겠지만요.
없애고 싶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뭐예요?
[꽃점]이 처음에는 평가로 시작하지 않았지만, 결국에는 평가로만 읽히게 되는 것 같거든요. 공연 정보를 유통하고 그걸 관극으로 이어지게 하는 역할도 못하고 있는 것 같고요. [꽃점]이 애초에 기획하고 의도했던 바를 잃어버린 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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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현
개선을 해도 되는 거잖아요.
과연 개선이 될까 싶어요. 저는 회의적이거든요. 물론 당장 없애는 것이 어려우니, 개선안을 얘기하고 있긴 합니다. 우선 최소한 전문가와 관객을 나누는 건 하지 말자는 의견이 있어요. 전문가와 관객을 나누는 게 현재 큰 의미가 있는지 의문이거든요. 전문가가 먼저 ‘꽃점’을 남긴 공연에 한해서 관객이 ‘꽃점’을 남길 수 있는 시스템이 이어져 오고 있는데요. 적어도 관객이 먼저 남길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장벽을 낮추면 어떨까 논의 중입니다.
그럼 인터파크 ‘한줄평’과는 뭐가 다를까요?
거기는 그 공연에 관한 것만 볼 수 있죠. 연극in에서는 어쨌든 다 모아놓은 채로 보게 되니까요.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꽃 몇 개와 한 줄 평으로 작업을 기록하는 게 연극과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라고 생각해 부정적이에요. 영화 매체에서도 별점과 관련해 논쟁적인 부분이 있는 걸로 아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와 같은 매체는 별점을 확인한 뒤에도 누구든 별점 대상인 작업물을 확인할 수 있어요. ‘도대체 어떻길래 이런 별점과 이런 평일까’ 궁금해지면 그게 영화를 찾아서 보는 일로 이어지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영화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별점에 대한 평가/재평가도 가능해요. 반면에 연극은 작업물이 없어지잖아요. 나중에 찾아볼 수도 없고 재평가도 불가능하죠. [꽃점]이 올라온 뒤엔 이미 내가 볼 수 있는 기회는 사라져 있어요. 그게 더 많은 관심이나 비평적인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이어지지도 않는 것 같고요. 오히려 그러한 논의로 가는 것을 막고 있진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창작자로서 ‘꽃점’이나 ‘별점’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좋은 평을 받아도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어요. ‘이 공연은 꽃 몇 개’라는 식으로만 납작하게 기억되거나 인식되는 건 아닌가 싶어 회의감이 드는 것이죠. 작년에 연극in에서 비평에 관한 주제로 기획했던 게 있는데요. 거기에도 [꽃점] 얘기가 있더라고요. 현재의 [꽃점]이 불편하다면서 대안으로 주신 의견 중 하나가 꽃 몇 개가 아니라 꽃의 종류를 고른다든가 그런 식이면 어떠냐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그런 방법도 생각해 볼 만하죠.7)
그러니까 신선도나 느낌을 골라서 꽃으로 표현한다든가
네, ‘이 공연은 빨간색 느낌이야’ 이런 식으로요.
그것도 재밌네요. [꽃점]을 하려면 연극을 굉장히 많이 봐야 되는데, 연극을 많이 보는 창작자가 생각보다 없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꾸 평론가들이 들어오게 되는 것인데, 일반 독자 중에서 [꽃점] 위원을 선정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겠죠. 연극을 좋아하고 많이 보는 매니아들 있잖아요. 뭐, 더 이상 [꽃점]으로 공연을 소개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냥 없애는 것도, 뭐(웃음).
재차 말씀드리지만,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웃음).
이런 건 있는 것 같아요. 뭔가 논란이 있다고 했을 때 [꽃점]부터 들여다보게 되는 것.
항상 논란은 [꽃점]에서 일어났던 것 같고요. 근데 저는 [꽃점]이 비평적으로도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합니다. 어떠세요? 선생님께선 비평가로서 웹진 연극in이 어떠한 비평적인 역할도 어느 정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비평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좀 회의적이에요. 웹진이 꼭 그럴 필요는 없죠.
『연극평론』을 읽으면서 선생님의 필자 소개 부분에서 ‘비평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에 비평에 대해 고민한다’라고 쓰신 걸 봤거든요.
이젠 고민 안 해요(웃음).
아직도 비평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비평이 필요하지 않은 시대라고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이 역설인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다들 비평을 원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누구라도 내가 본 작품이 어떻게 다뤄지고 있는지 궁금하잖아요. 그런데 그것을 충족해 줄 만한 비평지가 약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긴 호흡으로 쓰는 리뷰들도 어떤 쟁점을 내놓는다기보다는 대개 작품 내용 안에만 갇혀 있잖아요. 비평이 이래서는 안 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실제로 많은 창작자들이 비평을 되게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동시에 저를 포함해서, ‘정말 우리는 비평을 원하는가?’ 자문을 해보기도 합니다.
내 작품에 대한 리뷰든 다른 사람 작품에 대한 리뷰든 읽었을 때 나에게 영감을 주는 글이어야 되는데, 그냥 잘 이해해주시고 열심히 의미를 파악해 주시고 이런 건… 영감을 주지도 못하고 도전적인 질문을 던져주지도 못하죠.
그래서 저는 아까 말씀하신 [세대교차] 기획이 되게 좋았거든요. 특히 김방옥 선생님 글 중에 기억에 남았던 게 젊은 창작자들의 여러 작품들을 두고 어떤 경향성을 읽어주셨던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8) 제 작품 비평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고, 제가 봤던 작품도 거의 없었거든요. 근데도 비슷한 위치에 있는 창작자로서 큰 힘을 얻었던 것 같아요.
굳이 새로운 필자가 아니더라도 이런 식의 결합을 해보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김방옥 선생님은 본인의 관점과 의견을 되게 명확하게 내놓으시잖아요. 그렇게 내놓아야 거기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대화를 할 수 있죠. 그런데 거의 대부분의 리뷰는 대화할 수 없는 리뷰예요. 그래서 점점 비평이 읽히지도 않고, 의미도 없고, 필요로 하지도 않는 시대가 되었다, 그걸 비평가들이 스스로 자초했다, 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논쟁 공간으로서 연극in의 과제와 의무

그래서 저는 연극in이 비평지는 아니지만 그런 역할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는 것 같아요. 비단 [리뷰]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기획]을 통해 담론이 형성되고 창작자들한테 영감을 주는 매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선생님께선 독자로서 연극in이 다뤘으면 좋겠다 싶은 것이 있으신지요?
연극계 이면에 존재하는 어떤 문제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을 쟁점화하는 것이죠. 겉으론 평온해 보이지만 사실은 문제를 눌러놓고 있는 경우가 많죠, 분란을 잘 일으켜야 갈등이 아니라 좋은 질문이 되는 거거든요. 지금 아무도 그런 일을 하고 있지 않잖아요.
저 같은 경우엔 웹진이 조금 더 논쟁적인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동안 좌담이나 포럼을 열 때 그런 동의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 사람은 발언권 더 이상 주지 말자’는 식으로요. 안전한 청정 구역을 형성하는 게 중요했고, 지금도 그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안전감이 없으면 더 이상 얘기가 불가능한 주제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 이제는 동시대적 주제에 관한 논쟁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그래서 비슷한 이야기하는 사람 말고, 다른 말 하는 사람도 같이 불러보면 어떨까 싶은 거죠. 너무 여기를 청정한 멸균실로 만드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재미가 없어지잖아요. 어떻게 하면 동시대적 감수성을 놓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논쟁이 될 수 있는지, 다양한 목소리가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현재의 고민이에요. 이건 창작 현장에서도 비슷하게 공유되는 고민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예전에는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 구시대적인 관점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싫다’, ‘같이 있기도 싫다’는 입장에 가까웠다면, 지금은 ‘한 번 만나서 토론이라도 해볼까’ 하는 정도는 오지 않았나 싶어요.
논쟁적인 이슈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잡지의 중요한 의무예요. 모순적인 어떤 것들이 같이 놓인,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틀렸다고 얘기할 수 없는 관점들, 이런 딜레마적인 상황들, 이런 것을 끊임없이 수면 위로 불러오는 것이죠. 예를 들어 모든 정책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고 불만 있는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책을 밀고 나가는 국공립 단체라면 그 정책을 실행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와 논리가 있어야 하거든요. 그걸 현장과 대화해서 설득해 나가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인데, 설득하지 않고 어떻게든 말이 나오지 않게만 하려는 방식으로, 민원 잠재우기 방식으로만 처리를 하죠. 지난 5년을 돌아보아도 분명히 문제가 있는 현안인데도 문제를 명확히 쟁점화하거나 정면으로 다루려고 하는 시도를 하지 않았어요. 어설프게 타협해 버리곤 했죠. 그런 문제를 짚고 의제화하는 것이 잡지가 해야 되는 일이거든요. 계속 이슈를 발굴해야 하고, 첨예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야 멍하니 민원 처리만 하고 있는 정책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싶고요.
요즘의 이슈들은 하나의 목소리로 묶이기 어려운 현장의 개별 이슈들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원래 어려워요. 그걸 제대로 된 질문으로 정리하고 명확히 볼 수 있게 가시화하는 것이 담론지의 역할이지요.
그렇군요. 앞으로 잘 참고하겠습니다(웃음). 오늘 긴 시간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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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진아, 「예술과 낭만의 거리는 어떻게 탄생했나 - [대학로 연대기] ⓵대학로의 기원上」, 웹진 연극in 12호, 2012.11.15.
    https://www.sfac.or.kr/theater/WZ020300/webzine_view.do?wtIdx=10461
  2. 박은희, 「작은 무대에서 무한한 실험과 자유가 펼쳐지는 곳 - [극장전]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웹진 연극in 창간준비 2호, 2012.05.03.
    https://www.sfac.or.kr/theater/WZ020300/webzine_view.do?wtIdx=10365
  3. 소행성, 「경계에 선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웹진 연극in 창간준비 1호, 2012.04.19.
    https://www.sfac.or.kr/theater/WZ020600/webzine_view.do?wtIdx=10341
  4. 고재열, 「연극의 성취를 전하는 역할 - 웹진 연극in을 말한다」, 웹진 연극in 1호, 2012.06.07.
    https://www.sfac.or.kr/theater/WZ020500/webzine_view.do?wtIdx=10372
  5. 최윤우, 「창간 100호를 맞이한 웹진 연극in의 어제와 오늘」, 웹진 연극in 100호, 2016.09.22.
    https://www.sfac.or.kr/theater/WZ020300/webzine_view.do?wtIdx=11229
  6. 웹진 연극in 편집부, 「무대에 꽃을 던지듯」, 웹진 연극in 38호, 2013.12.19.
    https://www.sfac.or.kr/theater/WZ020300/webzine_view.do?wtIdx=10665
  7. “저는 꽃점이 불편합니다. (중략) 더불어 꽃으로 점수를 매기는 일도 재고가 필요합니다. 꽃은 한 송이가 다섯 송이 보다 덜 예쁜 것이 아니잖아요. 꽃 숫자를 매기는 게 아니라 꽃 색깔을 정하고 꽃의 종류를 선택하게 하면 안 될까요?”(임승태)
    웹진 연극in 편집부, 「비평에 대한 몇 가지 질문」, 웹진 연극in 194호, 2021.01.21.
    https://www.sfac.or.kr/theater/WZ020300/webzine_view.do?wtIdx=12253
  8. 김방옥, 「[세대교차] 연극, 할머니, 타인의 고통」, 웹진 연극in 157호, 2019.04.11.
    https://www.sfac.or.kr/theater/WZ020400/webzine_view.do?wtIdx=1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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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현

임성현 본지 편집위원
연극이 적성에 안 맞아 난감한 연극 만드는 사람
6563zzz@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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