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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닮은 작은 아이, 나무도령 이야기

서울돈화문국악당 음악극 축제
아트플랫폼 동화 <나무의 아이>

최권화

제219호

2022.05.26

가정의 달 5월이다.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5월이다. 나는 스무 살을 지나며 아이들과 만나는 일을 몇 번 경험했다. 다양한 모양의 가정에 속한 아이들이 있었다. 가족구성원의 형태는 어느 것 하나 틀리지 않았고 다만 다를 뿐이라고 배웠지만, 암묵적으로 정의된 ‘정상가족’의 궤도에 속하지 않은 아이들을 향한 시선은 다소 폭력적일 때가 있었다. 이런 차별적 시선은 우리나라 밖에서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민자로 살았던 시절이 있는데, 애국심으로 응집된 교민 사회에서 ‘정상가족’이 아닌 가정의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 사이에선 걱정으로 포장된 이야기의 소재였다. 국어사전에서 어른의 정의는 ‘1. 다 자란 사람.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자기 일’에는 약자를 보호하는 일도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비가 내리는 날, 7살 아이와 함께 서울돈화문국악당으로 <나무의 아이>를 보러 갔다. 관객들은 마스크로 얼굴의 절반을 가렸지만, 아이들은 뒷모습만 봐도 들뜬 마음이 느껴졌다. 모든 어린이들이 비슷한 마음이기를 바라며 아이와 공연장으로 들어갔다. 시끌시끌하던 공연장이 암전과 함께 조용해졌다가 금세 다시 조명이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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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중앙에 한 소녀가 등장한다. 더워서 짜증이 난 상태다. 큰 책이 날아와 부채질을 해주고, 기분이 좋아진 소녀는 책을 잡아서 읽기 시작한다. 나무도령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잠을 자던 마고여신은 갑자기 불어난 물웅덩이에 옷이 젖어 잠에서 깨어난다. 마고여신은 그 물웅덩이를 들어 올려 세상을 만든다. 어느 날 마고여신은 세상을 둘러보다가 이상한 아이를 발견하게 된다. 바로 나무가 아빠라는 나무도령. 나무도령은 다른 친구들과 다른 모습의 아빠를 가졌다는 이유로 놀림을 받는다. 그러던 중 마을에선 큰 나무들을 베어버린다는 소문이 떠돈다. 이 소문을 들은 마고여신은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기 위하여 홍수를 일으킨다. 나무도령은 나무아빠의 도움으로 홍수를 피할 수 있게 되었지만, 나무도령을 놀리던 친구는 홍수로 인해 아빠를 잃게 된다. 이 사건으로 나무도령을 놀리던 친구는 비로소 자신의 아빠와 나무아빠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름을 받아들이고 모두 친구가 된다.
이 공연은 액자식 구성이다. 공연의 시작과 마무리는 한 소녀가 책을 읽는 장면으로 이뤄져 있다. 그 덕분에 아이들은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공연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공연에는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상상력을 자극하는 요소들도 자주 등장한다. 무대 위에서 사용되는 대도구들은 이동이 가능한 블록 형태의 모양으로 필요에 따라 의자, 배, 나무도령이 숨는 공간 등으로 그 쓰임새를 달리한다. 나무도령과 나무아빠가 대화를 할 때는 무대 뒤로 그림자가 크게 나타난다. 멧돼지와 개미는 각각 동물의 특징적인 일부분만 소품으로 등장하고, 모기는 소리로만 등장한다. 블록, 그림자 그리고 소품을 사용한 상황극은 대다수 아이들이 열광하는 놀잇감이다. 공연에서는 연주자와 배우 사이의 경계도 자유로웠다. 연주자가 갑자기 대사를 시작하기도 했고, 연기를 하던 배우가 연주자와 어울려 악기를 연주하기도 했다. 짧은 시간 내에 다양한 장치들이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이 공연은 우리나라의 홍수설화 중 하나인 <목도령과 대홍수>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설화 속에서 홍수의 역할은 자연을 거스르는 존재를 벌하고, 자연을 지키는 것이다. <나무의 아이>에서 마고여신은 자연을 파괴한다는 이유로 인간은 쓸모가 없다고 말을 한다. 마고여신은 나무도령에게 썩은 씨앗을 주며, 살고 싶으면 꽃을 피우란 숙제를 낸다. 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서로 도와주고 아껴주는 인간의 힘이다. 나무도령은 나무아빠에게 배운 대로 이 썩은 씨앗에게 정성을 다한다. 그리고 꽃이 핀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보다 강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애는 자연과 비견될 만큼 위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꽃이 피었을 때, 나무도령이 탄 배가 홍수로 떠돌다가 섬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환호하며 박수를 했다. 나무도령이 나무아빠와 헤어질 땐 관객석 아이들이 소리 내서 울었다. 몸이 작다고 공감의 크기가 작은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극 중 상황과 등장인물에 공감하고 있었다. 아동극에서는 마치 공연장 전체가 무대인 것처럼 아동 관객들의 반응 또한 작품의 일부라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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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이 있어서 아이를 데리고 카페에 갔다가 노키즈존이란 이유로 가게를 나온 적이 있다. 내가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와선 노키즈존이라고 말을 했다. 직원의 정중한 목소리와 손님들의 고요한 시선이 뜨거운 얼음처럼 느껴졌다. 노키즈존을 만드는 건 업주의 자유지만, 내가 출입금지를 경험하고 나니 지금의 아이들은 쉽게 차별을 체감하고 당연하게 혐오를 이용하며 자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한 개인의 언어와 사고는 개별적이지 않다. 그런데 사회가 먼저 ‘No’라는 단어를 약자를 향해 허용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 아이들은 보호받고 대접받아야 한다. 아이들은 스스로가 약자였던 시절의 경험들로 성인이 되었을 때 또 다른 약자들을 당연하게 배려할 것이다. 누구든 약자가 될 수 있다. 아동극 공연장에는 큰 소리를 내는 아이들도 있지만, 보호자의 제지로 금세 조용해질 때가 많다. 아이들은 경험으로 세상의 규칙을 배운다. 아이들은 무질서하지 않다. 코로나19 시대, 아이들의 마스크 착용이 그 증거다. 아이들은 규칙을 잘 지킨다.
작가 델리아 오언스의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주인공 카야는 가족 없이 혼자 지내며 습지와 습지의 생명들을 가족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사람들은 카야를 마시 걸(Marsh Girl)이라 부르며 함부로 대한다. 그럼에도 카야가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나무도령은 나무를 아빠로 여기며 살아간다. 나는 이 나무아빠를 보며 장애를 가진 부모들이 떠올랐다. 카야를 도와주던 사람들처럼 나무도령의 상처에 공감하는 어른들이 더 많아지기를 바랐다.
공연의 주제곡 제목은 ‘뭐가 보이니’다. 아이들은 이 공연을 통해 무엇을 보았을지 그 시선이 궁금했다. 나는 7살 아이와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나무도령의 엄마는 누구일까?
투명해서 안 보이는 게 아닐까? 원래 다 엄마는 있잖아.
홍수가 났을 때 나무도령은 왜 멧돼지, 모기, 개미를 구해줬을까?
물에 빠졌으니깐 구해야지.
공연은 어땠어? 슬프지 않았어?
음악도 아름답고 재밌었어. 슬픈 것도 재밌는 거지. 그거는 진짜가 아니잖아.
그런데 나무가 아빠인 사람이 있을까?
아니 그건 좀…….

막이 내리기 전, 무대 위 모두가 부른 노래는 이 공연이 전하고픈 가장 큰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그 가사를 공유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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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나무야 우린 꽃이야 우리 같이 살아갈 세상 함께 싹을 틔우자 무럭무럭 자라서 남과 다른 빛깔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리만의 숲을 만들자 여기 보이니 여기 보이니 이 세상이란 아름다운 숲 이제야 보여 서로가 보여 남과 다른 빛깔의 서로 다른 모습의 아름다운 우리 우리가 여기

- 우리만의 숲 -

[사진제공: 서울돈화문국악당]

서울돈화문국악당 음악극 축제
아트플랫폼 동화 <나무의 아이>
일자
2022.5.7 ~ 5.8

장소
서울돈화문국악당

배우
정예지, 이준혁, 윤희연, 박두리
악사
신정하, 이수아, 양예은, 이상훈
대본·작사
구도윤
작곡
민찬홍
연출
홍성연
안무
이윤정
의상
조경희
제작
아트플랫폼 동화, ACI아시아문화원, 이비컴퍼니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2004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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