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고전에 응답하는 웃긴 여성들

제43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
극단 여행자 <베로나의 두 신사>

김지수

제220호

2022.06.16

순정만화, 인터넷 소설, 『꽃보다 남자』…. 어떤 시절을 풍미한 문화의 아이콘에는 고유하면서도 중첩되는 이미지가 있다. ‘B급 감성’은 일부러 그렇게 연출되었다는 합의 아래, 고의로 과장한다는 사실을 매체 밖 사람들이 이해하고 있을 때 웃음의 코드로 변환된다. 같은 맥락에서 감정이 과잉된 연기는 신파조라는 말로 폄하되곤 하지만, 그것의 고의성이 보장된다면 위트와 익살로 포장된다.
지금 2022년 서울, 유쾌한 레트로를 지향한 공연이 있다. 여성국극의 연행 방식을 본따 동명의 셰익스피어 희극을 재해석한 극단 여행자의 연극 <베로나의 두 신사>다. 되돌아가지만 지금의 세련됨을 가미하는 것을 레트로라고 한다면, 그 방점은 반드시 ‘지금’에 있다. 낡지 않을 것. 연극 <베로나의 두 신사>는 셰익스피어의 시대와 1950년대로 회귀하면서도 동시대의 감수성을 감미하여 유쾌한 레트로를 만들어냈다.

약속된 과잉이 자아내는 웃음

천장에는 호화스런 샹들리에가 걸려 있고 붉은 벨벳 질감의 단이 세 면의 무대공간을 둘러싸고 있으며, 역시 붉은 벨벳 질감의 커튼이 무대 뒤편에 설치되어 있다. 옛 공연장을 떠올리게 하는 키치한 구성은 극장의 불이 채 꺼지기도 전에 무대에 등장한 배우들의 의상과 분장 그리고 그들의 대사 투와 곧잘 어우러진다. 화려한 프릴이 잔뜩 달린 의상과 과한 나팔바지는 남성 역을 맡은 배우들 중에서도 높은 신분의 젊은 청년들이 입고 있다. 그들은 곧잘 ‘오글거리는’ 독백과 방백으로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일상어가 아닌 문학 투의 대사를 읊고, 과잉된 감정을 가득 담은 노래를 난데없이 부른다. 그럴 때마다 관객은 웃음으로 반응한다.
이곳에서 모든 것은 흘러넘친다. <베로나의 두 신사>는 공연 포스터에서부터 ‘이곳에는 과장이 약속되어 있다’는 듯한 분위기를 풍긴다. 공연은 셰익스피어의 원작 희곡의 줄거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동시대에 맞추어 대사에 약간의 변화를 주기도 했지만 셰익스피어 특유의 아름답고 시적인 문장들을 그대로 두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공연화할 때 가장 큰 난관은 대사를 어떻게 발화할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윤색할 것인지고, 그 결정으로 공연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끝없는 수사들이 수 시간 공연장을 공명할 때 관객은 지루함을 느끼기에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연 <베로나의 두 신사>에서는 문학 투의 대사를 오히려 웃음의 촉발 지대로 이용한다. 미문(美文)들은 ‘오글거림’으로 역전되었고 고의성 다분한 느끼함은 곧 유쾌함에 이른다. 합의된 B급 감성이 머무는 공간, 공연은 까다로운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동시대로 영민하게 번역해냈다.

본문사진01

그래서 그들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을까요?

언급했다시피 공연은 원작을 거의 그대로 따른다. 결말부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결말을 완전히 반전시켰다.
셰익스피어의 희극에는 패턴이 있다. 남성 주인공과 여성 주인공이 모종의 이유로 엇갈리고 곤란을 겪다 마지막에는 결혼을 약속하거나 결혼을 하는 것으로 끝난다. 희곡 「베로나의 두 신사」도 이 전형성의 궤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 주인공 발렌타인은 그의 친구 프로테우스의 배신과 중상모략을 이겨내고 실비아와 결혼한다. 프로테우스는 줄리아를 사랑했지만 변심하여 실비아를 사랑하게 되고, 남장을 하고 찾아온 줄리아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다시 줄리아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지금 이 희곡을 읽는 독자라면 의문을 가질 것이다. ‘모두를 곤란에 빠뜨린 프로테우스가 발렌타인의 용서만으로 죄 없음을 인정받는다고?’, ‘갑자기 결혼을?’ 여성들의 의사가 배제된 두 남성 간의 화해와 갑작스런 결혼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되어 희곡을 희극으로 결론짓는다.
공연 <베로나의 두 신사>는 원작의 대사를 거의 훼손하지 않으면서 이 의문에 응답한다. 바로 두 여성 캐릭터 실비아와 줄리아의 연대를 강조하고, 두 여성이 불쾌를 비언어적 수단으로 표출하게끔 연출되면서다. 여성 인물들은 남성의 사랑이 쏠리는 대상을 미워하고 반목할 것이라는 왜곡된 상상을 뒤엎는다. 대신 그 자리에는 연대가 있다. 이러한 협력 관계는 결말부에서 더욱 도드라지는데, 발렌타인이 프로테우스를 갑작스럽게 용서하자 두 여성은 눈을 마주치며 의문 혹은 불쾌에 가득 찬 표정을 짓는다. 결혼 장면에서도 모두가 축제 속에서 들떠있는 가운데, 두 여성은 불행하다. 상반된 분위기는 꼭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결혼이 행복의 종착지라고 누가 그래?’

본문사진23

여성국극이라는 아이콘을 재구성하기

분명 유쾌하고 영민한 공연이었지만 오래된 고민 하나가 떠올라 이곳에 털어놓고자 한다. 여성국극에 대한 논의와 재평가가 활발한 지금, 여성국극에서 영감을 받았음을 강조하는 방식의 마케팅은 분명 효과가 있다. 여성국극은 알려져 있다시피 여성만 무대 위에 오르는 공연 양식이다. <베로나의 두 신사>도 여성국극의 이러한 특징을 집어내어 오직 여성 배우들로만 무대를 꾸렸다.
그런데 남장, 여성, 레트로라는 파편화된 이미지만을 취하는 것을 과연 여성국극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여성국극은 수성가락 반주에 맞춰 판소리나 민요 등을 부르는 창극의 한 형태다. 남성 창자들이 여성을 배제하는 환경에서 여성 소리꾼들이 의기투합하여 새로운 공연 장르를 개척한 것이다. 소리판과 창극의 폐쇄적인 분위기 속에서 여성국극은 그렇게 태어났다. 그렇기에 ‘전통’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지는 객체들을 모조리 성역으로 보호하자는 강경론자(?)가 아님에도, 창극을 완전히 거세시킨 여성국극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여성국극이 발생한 배경이나 그들의 발자취를 고려한다면 <베로나의 두 신사>는 악극이나 가극에 가깝지 여성국극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심볼로 잔존하여 입맛에 맞게 취사선택 되는 일이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하는지, 나조차 이 물음에 확답을 갖지 못하여 질문으로 남기고자 한다.

본문사진4

그럼에도 공연은 1950년대 여성국극의 특성인 젠더 프리 및 멜로드라마적 관습을 효과적으로 구현해냈다. 여성국극이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여성이 남성의 캐릭터를 소화해냄으로써 여성들이 가지는 보편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여성은 여성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그 미묘한 한 끗 차이를 파고들기에 용이했다. 공연 <베로나의 두 신사>도 이러한 점을 활용하면서 남성중심 서사를 전복시키는 모험에 성공했다. 배우들은 여성국극의 관습적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그러면서도 공연은 멜로드라마의 전형성을 레트로로 비틀어 재치 있게 풀어냈다. 고목의 나이테를 더듬거리며 읽어갔을 창작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사진 제공: 서울연극협회]

제43회 서울연극제 공식선정작
극단 여행자 <베로나의 두 신사>
일자
2022.5.20 ~ 5.28

장소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원작
윌리엄 셰익스피어
번역
신정옥
각색
한아름
연출
이대웅
출연
김기분, 김수정, 김은희, 남승혜, 박정민, 박하진, 이보미, 이화정, 정수영, 정인혜
드라마터그
허영균
안무
심주영
음악
배승혜
무대
이윤수
조명
김성구
의상
이명아
분장
전주영
소품
윤미연
음향
안형록
무대제작
정우근
무대감독
이은규
조연출
김가은, 안미혜
사진
이강물
기획홍보
코르코르디움
관련정보
https://theater.arko.or.kr/Pages/Perf/Detail/Detail.aspx?idPerf=257773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김지수

김지수
음악과 연극이 마주치는 순간을 보고 듣는 사람. 국립국악원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국립극장에서 (잠시) 노동하는 중이다. 요즘은 마을공동체 농부리더학교에 다니며 상추와 토마토를 심고 페퍼민트와 봉선화를 가꾼다. 국립극장 제2회 젊은 공연예술 평론가상에서 우수상을 수상했다. rlawltn95@g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