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언제나, 완벽하게, 당신, 곁에

박혜수

손옥주

제221호

2022.06.30

외톨이라서 늘 부모를 걱정시키는 자녀에게는 호기로운 친구를, 크리스마스를 맞아 옆구리가 시린 싱글에게는 다정한 연인을, 홀로 지내는 노년의 어머니에게는 친구 같은 딸을 보내준다. ‘휴먼 렌탈’을 골자로 하는 <퍼펙트 패밀리>의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광고 시리즈를 보고 있노라니, 광고가 끝날 때마다 반복되는 한 줄의 어구 안에서 21세기형 휴머니즘의 원형이 재발견되는 듯하다. always on your side. 언제나 당신 곁에 있겠다는 이 의미심장한 고백 내지는 선언 앞에서 사전적 의미로서의 가족은 지극히 피상적인 관계 재현의 등가물이 된다. 기존의 가족 관념이 보여주는 피상성은 피와 살과 보이지 않는 유전자의 공유, 다시 말해 혈과 육이 맺는 관계의 운명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어딘지 모르게 과거적이다. 그에 비해 <퍼펙트 패밀리>가 제공하는 가족이란 대여가능하고 대체가능하며 대리가능한 관계의 방식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미래지향적으로 다가온다 (마치 경우의 수를 눈앞에 늘어놓고 그 안에서 본성상 예측 불가능한 관계의 도식을 이리저리 그려보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이때의 가족이란, 관계 맺음에 있어 특정한 기능만을 타인에게 위탁한다는 점에서 가족이라는 기존 개념 자체를 편집 가능한 노마드적 관계로 재정립하기도 한다. 운명보다는 선택을, 의무보다는 필요를, 인내보다는 취향을. 한없이 피상적이기보다는 오히려 지극히 실질적이고자 하는 관계의 양상,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요청하는 미래형 가족이 아닐까. 그야말로 완벽한 가족(Perfect Family).

본문이미지01
PERFECT FAMILY.INC SHOWCASE 2022 ⓒ STUDIO SOOBOX

이처럼 가족이라는 단어에 담긴 과거형의 관성과 미래형의 가능성은 서로 다른 용례 안에서 대립하는 듯하지만, 이 모두는 엄연히 현재라는 시간성 안에 용해되어있다. <퍼펙트 패밀리> 프로젝트를 통해 불현듯 경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완결된 대안적 개념 혹은 상(像)의 제시가 아니라 그와 같은 개념의 변화를 요청하는 나의 현재라는 점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듯하다.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가족입니다’라는 희망찬 비전에 경도되기 이전에 ‘나는 대체 왜 이런 가족을 필요로 하는 걸까’라는 새삼스러운 자아 성찰을 하게 되는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퍼펙트 패밀리>의 관람은 시작된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관람의 과정이란 곧 가족 관념에 대한 자기 욕망의 객관화에서부터 출발해 욕망이 구성되어온 지난 과정을 거슬러 올라 최종적으로는 바로 그 욕망의 실현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여정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의 내가 그리고자 하는 가족이란 어떤 모습인가. 또한 그러한 가족을 지향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만약 그것이 실현된다면 나에게,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사회 생태계 전반에 어떠한 의미로 자리매김할 것인가.

<퍼펙트 패밀리> 속 가족이란 사실상 가변적인 지형(topography)에 가깝다. 이는 아마도 이 프로젝트가 동명의 가상회사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퍼펙트 패밀리>는 박혜수 작가가 2019년부터 발표해온 프로젝트 연작의 제목이자 가짜 가족을 제공하기 위해 작가가 고안해낸 가상기업의 이름이기도 하다. 작가는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가족제도를 비판하기 위해 이 같은 기업을 선보이게 되었다고 하는데, 작가가 제안해온 일종의 ‘의사 가족(擬似家族, pseudo-family)’은 해를 거듭할수록 실제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이나 가족 개념에 대한 재고를 넘어서서 가족 전반의 재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상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 같은 상상의 한 단면을 살피고자 ‘파라다이스 아트랩’ 현장을 찾았다. 올해로 3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지난 5월 20일부터 29일까지 열흘간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개최되었는데, 디자인 스튜디오 ‘티슈오피스’, 건축사무소 ‘표표’와의 협업 하에 진행한 박혜수 작가의 최근 작업 또한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Perfect Family. Inc 쇼케이스>(이하 <쇼케이스>)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는 ‘쇼케이스’라는 통합적 명칭에 상응하는 다양한 방식의 형식 실험을 선보였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메타버스 앱상에 구현된 미래가족 공동체 타운 <메타 파라다이스>, 미래가족 공동체 구성을 위한 웹 설문조사 <모여살래요?>, 관객참여형 퍼포먼스 및 상황극 등의 방식으로 구현된 <휴먼 렌탈 서비스> 등의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다.

본문이미지2
Ⓒ 스튜디오 수박

각각의 프로그램은 새로운 대안적 가족 형태를 제시하고 그들이 생성해가는 새로운 환경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독특한 유기성을 획득한다. 이와 관련해 전시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개별 모바일기기를 사용해 참여할 수 있는 웹 설문 <모여살래요?>의 시작 문구는 사뭇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작가의 시선에 포착된 미래의 가족, 즉 ‘가까이, 그러면서도 좀 멀리 모여 사는 동반자적 관계’이자 ‘서로에게 어울리는 선택적 관계’로서의 가족 개념이 사실상 동시대적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음을 매우 명확하고도 간결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모여 살래요? / 저는 살고 싶은 곳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 당신은 누구와 어디서 살고 싶은가요? / 같이 살자니 불편하고, 혼자 살자니 불안하고.. / 하지만 혈연 가족은 싫고. / 필요한 가족을 선택할 수는 없을까요? / 우리는 가까워지다가 멀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 혼자지만 외롭진 않도록 가까이, 좀 멀리 모여 사는 건 어때요? (웹 설문 <모여살래요?> 중에서 발췌)

전시 팸플릿에 따르면 비혈연 가족공동체, 말하자면 일종의 가족협동조합 구성을 위한 이 설문조사는 2030년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실제 설문지에는 답변자가 원하는 가족 형태와 가족 수, 함께 살아갈 구성원의 선택 기준과 공통의 관심사와 같은 기본사항뿐만 아니라 사용한 에너지에 대한 지불 분담 방식 및 조합원 간의 매칭 방식 등 생활의 편의를 위한 실무적인 부분까지도 아우르는 25가지 질문들이 나열되어있다. 나아가 <퍼펙트 패밀리>는 완료된 설문조사의 답변을 취합해 그 가운데 높은 답변율을 보이는 가족협동조합의 형태를 도출해낸 후, 이를 바탕으로 메타버스 앱상에 가상의 공동체 타운 <메타 파라다이스>를 건설하는 방식으로 응답자의 소망이 투영된 공간모델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가상의 형태로 제시된 대안적 모델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 가족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결코 특정인만의 기호를 반영하는 일방향적 방식을 취할 수는 없다. 필요한 가족을 선택한다는 행위는 곧 선택된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서도 열려있음을 전제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어쩌면 이처럼 열려있음으로 상정되는 관계의 근본에 보다 더 충실하기 위해 오늘의 우리는 ‘퍼펙트 패밀리’를 그토록 요청하는 것이 아닐까. 관계의 이상에 보다 더 다가서기 위해, 그토록 한없이 낯설면서도 그토록 한없이 닮은 ‘의사 가족’을 재구성하려는 것이 아닐까. 관계의 두 항인 나와 타자가 때로는 능동적으로, 때로는 피동적으로 서로를 바라볼 때 형성될 수 있는 이 같은 가족의 예시를 다름 아닌 관객참여형 퍼포먼스 <휴먼 렌탈 쇼케이스>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본문이미지34
Ⓒ미디어스코프

<휴먼 렌탈 쇼케이스>는 ‘주식회사 퍼펙트 패밀리’가 보유 중인 대여 가능 모델 가운데 다섯 명을 관객들에게 소개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모델들은 파라다이스시티 내 플라자 공간 이곳저곳에 마치 조형물처럼 전시된 채 시간에 맞춰 입장한 관객들과 대면하게 된다. 관객은 전시물을 관람하듯이 정해진 시간 내에 자유롭게 모델들을 관람하며 그들 곁에 놓인 ‘휴먼 렌탈 서비스’ 설명문을 읽을 수 있다. 설명문 상단에는 모델에게 부여된 번호와 기본성향, 소통방식이 기재되어있고 그 뒤로는 자신을 대여하는 사람들의 성향과 자신을 대여할 수 있는 방법, 그리고 대여 시 주의사항 등이 이어진다.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 안에서 관객은 시를 읽는 모델과 교감할 수도 있고, 관객 스스로도 알 수 없었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새삼 비춰주는 모델을 만날 수도 있고, 모델의 손바닥에 하고 싶은 말 두 글자를 적어주며 서로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모델과 관객의 마음이 통하게 되면 그때서야 비로소 관객은 모델을 대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바로 이 <휴먼 렌탈 쇼케이스>에 부여된 기본 규칙이다. 이때 무엇보다도 인상적인 것은 바로 관객 누구나가 원하는 대로 모델을 대여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고객으로서의 관객은 어디까지나 모델이 제시하는 거래조건을 수용한다는 전제하에서만 모델을 대여할 수 있으므로 이들 사이에서는 구매상품과 구매자 사이의 일반적인 위계가 작동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퍼펙트 패밀리>가 제안하는 ‘휴먼 렌탈’의 경우에는 서비스에 대한 일방적인 소비와 선택의 가능성이 애당초 폐기되어 있는 셈이다. 이처럼 대여와 대체와 대리의 메커니즘 안에서 구현되는 휴먼 렌탈 혹은 가족 구성이 다름 아닌 엄격한 상호성을 실질적인 조건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퍼펙트 패밀리> 전반에 나타나는 작가적 사유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이번 <퍼펙트 패밀리> 전시 팸플릿에는 다음과 같은 사업 소개 문구가 뚜렷하게 적혀있었다: 휴먼 렌탈 비즈니스의 선두주자. 당신이 꿈꾸는 행복한 가족. 퍼펙트 패밀리. 소개 문구 바로 위에는 기업 연혁이 미래완료형으로 제시되어있었는데, 그에 따르면 2025년에는 휴먼 렌탈 서비스 오프라인 매장이 오픈되며 2030년에는 동반자 보험과 동반자 등록 서비스도 시작된다고 한다. 아직 채 도래하지 않은, 그러나 이미 예기된 시간 앞에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혈연관계가 점차 생활동반자라는 이름의 선택적 비혈연 계약 관계로 재규정되어가는 과정을, 그 역사적 서사를 목도한다. 비혼커플, 동성커플, 돌봄가족(노인/장애인), 친구가족, 1인가족, 가족협동조합 등의 점진적 확장에 지속적으로 주목해온 <퍼펙트 패밀리> 프로젝트는 바로 그와 같은 서사 쓰기의 중심에 발을 디딘 채 새로운 가족‘들’의 도래를 예견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실질적이고, 지극히 미래적이며, 지극히 완벽하다.

박혜수 <Perfect Family. Inc 쇼케이스>
일자
2022.5.20 ~ 5.29

장소
파라다이스 시트 플라자, 아트스페이스

작가, 기획
박혜수
출연
김기린, 박시호, 백예빈, 서지원, 안부, 이지원, 정순욱, 한영준
사진
미디어스코피, 스튜디오 STUDIOSOOBOX
관련정보
http://www.phsoo.com/board_NeVm29/15288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손옥주

손옥주 공연학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 무용학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무용 오리엔탈리즘에 관한 포스트닥터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였다. 현재 학술 연구와 동시에 리서치 파트너와 드라마터그로 공연 현장에서의 활동도 이어가고 있다. '춤의 감수성과 문학적 상상력은 서로 맞닿아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춤을 닮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 중이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