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함정

극단 비행술 <하멜린>

김은한

제221호

2022.06.30

최근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 중에 첩보물인 줄 알았는데 SF소설이었던 작품이 있다. 처음에는 냉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첩보물처럼 보였다. 주인공은 아이에게 레드제플린의 음반을 사주기 위해 소련을 배신하고 역사를 바꾼다.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는 급변한다. 새로운 역사는 먼 훗날 지구를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에, 미래의 의로운 사람들은 역사를 다시 원상복구 한다.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아이의 자유를 바라지만 바뀌는 것은 없다.

연극 <하멜린>을 보면서 이 작품이 떠오른 까닭은 아마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감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미래 세대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는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하멜린>을 보고 처음 떠오른 건 어른들의 추악한 욕망보다는 무엇이 최선이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기후 위기와 같이 다소 명확한 것을 제외한다면, 지금의 시도가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연극은 다소 긴장감을 놓지 않고 팽팽하게 100분간 힘껏 달려간다. 언뜻 수사물처럼 보이나 곧 어른들이 아이에게 다채로운 무자비를 선사할 것이다.

무대 중앙에는 회전하는 원형 무대가 있다. 배우들은 무대 양쪽 가장자리에 놓인 의자에 앉아있다. 해설자는 원형 무대에 달린 기둥을 움직여 무대를 회전시킨다. 기둥 위에는 기괴한 비율을 가진 피리 부는 사나이의 모습이 있다. 무대가 가만히 회전하는 장면은 도시에서 끝없이 반복되는 비극을 연상케 한다. 무대 한쪽에는 빈 의자가 조용히 조명을 받고 있다. 희생되는 아이들, 구해야 하는, 무심하게 놓인 아이들, 하이메, 곤살로, 호세마리. 누구든. 피리 부는 사나이와 어디론가 가버릴지도 모를 아이.

본문이미지1

해설자는 이야기 안에서는 몬테로의 서기로, 무대 안에서는 장과 지문을 읊으며 관객을 이끈다. 작가 후안 마요르가는 이 작품이 영화가 아닌 연극이기에 이런 구성을 했다고 한다. 작중에 해설자를 등장시키는 건 연극을 연극처럼 보이게 하려는 다양한 시도 중의 하나이다. 마침 최근에 본 한국 창작 연극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어서 친숙했다. 영상 매체와 연극이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라는 고민, 관객이 무대 위 세계를 믿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선택하는 전략이라고 느꼈다. 배리어프리 연극에서 시도하고 있는 음성해설과도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해설자의 존재 덕분에 인물들은 현실의 사실적인 인간군상보다는 부조리극의 엉뚱한 인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야기는 구원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판단은 쉽게 걷어내기 어렵다. 주인공 몬테로는 뜨겁고 의로운 인물처럼 보인다. 잠든 도시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을 향한 끔찍한 폭력을 해결해내려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호세마리를 윽박지르듯 몰아붙여 진술을 받아낸다. 막상 자신의 아이 하이메가 서서히 일탈하는 모습은 극히 두려워하지만 다가가지 않는다. 철저히 방치하고 미뤄둔다. 몬테로의 관심은 집 밖에 있는 아이들이다. 잠든 도시를 평화롭게 하겠다는 그의 신념과 ‘하이메가 잠들어있으니 깨우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대화를 거부하는 모습이 대비된다.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아내는 건 아내 훌리아다. 하이메가 훌리아를 공격하는 사건이 있고 나서야 몬테로는 아이와 대화를 시도하지만 이미 두 사람 사이에는 칠흑 같은 어둠이 있다.

곤살로와 호세마리는 지역 유지 리바스의 총애를 받아 주말마다 호화로운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으며 시간을 보낸다. 곤살로는 18세. 리바스를 성추행으로 고발하지만 금세 그만둔다. 자신에 대한 관심이 호세마리에게 옮겨간 분노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호세마리는 10살이다. 배우는 아이 연기를 하지 않는다. 하이메와 호세마리의 상담을 담당하게 된 라켈은 아이와 어른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통역사처럼 보이지만 아이들을 철저히 보호해 외부와 격리하려고 한다.

리바스는 아이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있다는 의혹이 있다. 리바스는 취약한 아이들에게 많은 지원을 하지만 모두에게 공평하지 않다. 자신이 특히 흠모하는 아이만을 챙긴다. 리바스는 사적인 감정은 담겨있으나 결코 성추행은 없었음을, 자신의 욕망을 감추고 충분한 위선을 행했을 뿐이라며 분노를 터트린다. 이 이야기에서 확신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관객은 그저 우리 세계를 기준으로 작중 인물을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끔찍한 인간으로 보이나 작중에서는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파코와 펠리는 아이가 여섯이나 있는 빈곤한 부부다. 파코는 적성에 맞는 일을 찾지 못했다는 이유로 거리에서 캐리커처를 그리며 생계를 꾸린다. 그래서 리바스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이를 부추겨 전화를 걸게 해 돈을 받아낸다. 언젠가는 갚을 돈이라고 여기지만 갚을 길은 요원하다. 펠리는 어려운 와중에도 부엌을 깔끔하게 유지하는 살림꾼으로 장부를 꼼꼼히 기록하며 이 아슬아슬한 가족을 지탱한다. 파코는 리바스가 호세마리를 끔찍이 마음에 들어해 어쩌면 유학을 보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는다. 이것은 무능한 자신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더 나은 삶이다.

본문이미지23

의도적인 연출일까. 배우들 간의 힘의 균형이 기울어져 있었다. 이러한 부조화는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각 인물의 세계가 충분히 맞닿지 못하고 있다는 걸 상기시킨다. 서로의 마음에는 도저히 다가갈 수 없다. 무대 위 세계는 이미 심하게 부서져 돌이킬 수가 없다. 몬테로의 행동과 언어는 역동적이다. 리바스와 파코는 ‘남자 대 남자’로 대화해야만 간신히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약한 사내들이며 아이들은 시큰둥하다. 세상 물정을 몰라서라기보다는 너무 지나치게 알아버렸다. 어른들의 무자비함과 무심함을. 여인들은 압박에 눌려 공포에 질려있거나 모든 신경을 차단했다. 언론은 사건관계자들에게 가장 상처를 주는 방법을 어김없이 찾아낸다.

그 누구도 문제의 중심으로 다가설 수 없다는 점에서 이 버전의 연극 <하멜린>은 카프카의 소설을 떠오르게 했다. 무대는 마치 빚어가는 도자기처럼, 놀이터의 회전기구처럼 돌아간다. 작 중 몇 명만이 흰옷을 걸치고 있다. 그건 그들의 명백함, 또는 뻔뻔한 위선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삶을 가꾸려는 건 부엌을 깔끔하게 정돈하는 파코의 아내 펠리뿐인 것처럼 보인다. 다들 미래 세대의 나은 삶을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나? 아니면 그 모든 게 면피와 체면치레일 뿐인가.

‘하멜린의 피리 부는 사나이 이야기’는 몬테로에게는 힘이 되는 이야기였으나 호세마리에게는 다소 무력하게 느껴진다. 막바지에 몬테로는 도망친 호세마리와 만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한다. 그 손은 불안하고 위태롭다. 자신의 아이에게조차 제대로 다가갈 수 없었던 이가 누군가의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머리를 움켜쥐듯 강하게 쓰다듬어보려고 하지만, 둘의 눈빛은 다른 곳을 향한다. 마지막 장면은 강렬하게 다양한 오독을 불러일으킨다. 지독한 무력감과 그럼에도 끝까지 무언가 해주려는 손, 아무것도 모르는 손. 어찌해야 할 줄 모르는 자신의 모습. 그 둘의 상호교감은 끝내 천천히 암전되며 희미한 빛과 함께 사라진다. 이 빛은 난반사되며 관객에게 주어졌다.

[사진 제공: 보통현상]

극단 비행술 <하멜린>
일자
2022.6.16 ~ 6.19

장소
소극장 알과핵

후안 마요르가
연출
김지은
출연
김병철, 김보경, 홍성춘, 정종훈, 박경은, 조예현, 박인환, 맹선화, 한승우
번역
김재선
드라마터그
임은재
무대감독
정현기
무대디자인
김태훈
조명디자인
박민한
음악감독
이상우
조소
이하늘
사진 및 그래픽디자인
김솔
영상
백종민
진행
진영선
기획
김민솔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2005541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김은한

김은한
매머드머메이드 명의로 2015년부터 매년 서울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신작을 발표하고 있습니다.
쉽고 즐거워서 나도 당장 하고 싶은 작고 좋은 연극을 추구합니다.

2023년 남은 계획

8~9월 스튜디오 나나다시와 <스탠드업 씨어터> 진행 중
10월 신작 구상 중
12월 지금 아카이브와 코미디 캠프를 궁리 중

정보/문의 인스타그램 @mammothmermaid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