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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료는 누구인가

김지연

제213호

2022.01.27

지난 1월 24일 소셜 네트워크에 올라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현장소통소위원회의 ‘2021년 다원예술 활동지원 사업 내 블라인드 방식 동료평가 심의제도 도입에 대한 현장소통소위원회의 입장문’을 읽었다. 문제제기가 있고 얼마 만에 나온 답변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이슈가 된 이후 해가 바뀌었다.

지난 해 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예술위)에서 다원예술에 대한 지원 사업 공고를 발표했을 때, 주변의 동료 예술가들은 고민에 빠졌다. 예술위가 내놓은 심사방식이 당혹감을 넘어 불쾌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해당 사업의 지원자들끼리 서로의 기획안을 평가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심사방식은 ‘동료평가제’라고 명명되어 있었다. 그 심사방식은 내가 살아남으려면 상대를 떨어뜨려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 같았다. 물론 지원제도에서 누군가는 선택되고 누군가는 탈락하는 일이야 일상이지만, 지원자가 심사위원이 되어, 경쟁자를 평가한다는 것은 어딘지 선정적이었다.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모으려고 경쟁자들끼리 상대편을 평가하고 탈락시키는 오디션 프로그램도 떠올랐다.

‘공정한 심사’를 생명처럼 여기는 지원 기관이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지원자들에게 심사를 맡겨 ‘공정성’을 함정에 빠뜨린 것도 쉽게 납득할 수는 없었다.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에서 경쟁자를 평가해야 하는 입장에 있던 출연진들이 다양한 전략으로 상대편의 점수를 매기던 장면을 기억한다. 평가 기준에서 ‘실력’은 일 순위가 아니었다. 그들은 어떤 경쟁자에게 좋은 점수를 줘야 우리 팀에게 유리한지 고민했다.

블랙리스트로 인해 폐지되었던 사업이 6년 만에 부활한다는 사실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던 동료 예술가들은 예술위가 새롭게 설계한 심사 방식에 위화감을 느꼈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에게는 활동가의 피가 흐르지 않기 때문일까. ‘동료’들은 그때까지 예술위를 향해 어떤 의견을 직접적으로 내놓지는 않았다. ‘공공기관’은 힘이 세고, 기관이 발표한 결정을 스스로 번복하는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고, 지원서 제출 마감일은 정해져 있고, 그러니까 각자의 선택만이 남은 셈이었다.

제도에 문제가 있으니 아예 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한 동료들이 있었고, 이 제도가 어떻게 운영될지 궁금하니 신청해보겠다는 동료들이 있었다. 제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는 동료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제도의 문제점이 무엇이든 일단 기금이 절실하게 필요하기 때문에 신청한 동료들이 가장 많았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우리는 모두 다른 가치를 가지고 각자 선택하는 개인들이니, 그리고 서로가 서로의 선택을 자기 당위로 상대에게 강요할 수 없는 관계이므로, 의견과 선택은 그렇게 달랐다.

심사제도에 대해 현장에서 예견했던 문제점들이 표면으로 불거져 나오면서부터 동료 예술가들은 본격적으로 이 제도를 제대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동료평가’가 무엇인지 폭풍검색을 시작했다. 외국에 있는 동료 예술가들에게 자국에서 실행하고 있는 ‘동료평가(peer assessment)’에 대한 자료도 요청해서 살펴봤다. 내 검색 역량과 네트워킹의 한계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외국의 예술계 지원제도 안에서는 ‘동료평가’의 이름으로 지원자들이 다른 지원자를 평가하는 사례를 찾을 수 없었다. 예술교육현장에서 언급하는 ‘동료평가’의 경우에는, 수업 시간에 동료의 작업을 함께 비평하는 성격으로, 예술위가 말하는 ‘동료평가’와는 거리가 있었다. 권위가 차고 넘치는 공공 기관이 ‘동료평가’를 합의되지 않은 개념으로 심의과정에 적용한 덕분에, 현장에서는 ‘동료평가’에 대한 착시효과가 작동했다. 예술위가 말하는 ‘동료평가’가 명칭만 ‘동료평가’일 뿐, 사실은 ‘동료평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동료들은 외국에서 사용하는 ‘동료평가’와 예술위가 언급한 ‘동료평가’를 단지 명칭이 동일하다는 이유만으로 동일시했다. 동료평가제가 지향하는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태도가 이번 다원예술 심의과정에서도 당연히 적용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개념의 노예인 것일까. ‘동료평가’라는 단어가 우리의 예술현장에 투척되고 적용된 방식 때문에 사람들은 같은 단어를 다루면서도 다른 세계에서 이야기했다. 하나의 개념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릴 때, 그 첫 사례란 얼마나 중요한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덕분에 한국사회에서 ‘동료평가’라는 단어는, 안타깝지만 오염되고 말았다. ‘동료평가제도’를 연구하는 연구자가 있다면, ‘동료평가’ 적용의 희귀한 사례로 예술위의 2021년 다원예술 사업을 꼽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후, 본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본 이들이라면 다 알만한 일들이 전개되었다.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예술현장의 서명운동이 있었고, 예술위는 현장의 예술가들과 몇 차례 간담회를 진행했고, 몇 차례 입장문을 발표했고, 최종적으로 2022년에는 다원예술에도 다른 장르의 지원사업과 동일한 심의제도를 적용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한 차례 온라인 간담회에 참여해 보고, 사과인지 변명인지 자기방어인지 알 수 없는 입장문들을 읽으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기관의 잘못된 행정에 대한 입장을 밝힐 때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의 전개패턴을 유심히 살펴보게 되었다. 예술가들의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변을 피하고 수세적이고 추상적이고 교묘한 답변을 반복적으로 이어가는 예술위 관계자들의 일관된 화술은 기묘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기계적으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예술위의 프로토콜은 무엇을 지키는 방향으로 설계되어 있을까.

예술위가 이번 다원예술 공모사업을 통해 거둔 성과라면, 예술현장에 ‘동료’가 누구인지 깊이 생각할 기회를 던져줬다는 것이려나. 동료 예술가들은 우스개 소리처럼 ‘나의 동료는 누구인가’를 물었다. 또 한 가지, 한국사회의 동료 예술가들은 아무리 권위 있는 기관이 호명했다 하더라도 그 개념은 오용되고 왜곡될 수 있으므로, 기관의 말을 순진하게 믿지 말고, 각자 다른 루트로 검색해보아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으니, 고맙다 예술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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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김지연 d/p 디렉터, 전시기획, 미술비평
김지연은 국문학, 미술사,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정신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최근에는 전시 형식이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가시화하는 전략을 살피는 중이다. 가나아트센터, 학고재갤러리 기획자로 일했고, 세계문자심포지아,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는 <예술가들의 대화> 등이 있다. 현재는 1인 기획사이자 출판사인 소환사와 전시공간 d/p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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