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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린다는 것.

[큐투큐] ㅋㅌㅋ

구자혜

218호

2022.05.12

큐투큐(Cue-to-cue)는 극장에서 이뤄지는 리허설의 일종으로, 큐와 큐를 중심으로 연극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맞춰보는 작업입니다. 객석 오픈 시점, 조명 변화, 음향 타이밍, 무대 전환 포인트 등 모든 지점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큐로 존재하며, 공연 한 편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큐로 구성됩니다. 큐투큐는 연극 제작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작업으로, 여기에는 프로덕션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합니다. 누군가는 큐를 지시하고, 누군가는 고 버튼을 누르며, 누군가는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고 흩어집니다. 웹진 연극in에서는 극장 리허설을 넘어, 연극 작업 전 과정에 존재하는 수많은 큐와 큐 속에 흐르는 각자의 관점과 생각을 들어보려 합니다. 하나의 큐가 주제로 던져지고,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필자들이 그 큐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예정입니다.

극장 안 객석이 아닌 로비에 앉아 모니터로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공연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고, 커튼콜이 시작되었다. 그때 누군가가 내 옆으로 왔다. 그 사람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기척이 느껴졌는데도 그 사람을 신경 쓰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서 알게 되었는데, 그 사람은 극장에 늦게 도착한 관객이었다. 극장과 가까운 역의 엘리베이터가 작동되지 않음을 해당 지하철역에 도착해서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가 작동되는 지하철역까지 한 정거장을 더 가서 내려 극장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하차를 하자, 이미 예정된 공연 시작 시각에서 10분 정도가 흐른 시각이었다고 했다. 극장까지 가는데 15분 정도 더 걸릴 것인데, 추가 입장이 있을까, 잠깐 생각했지만 지하철역을 빠져 나오고 나자 극장에 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여유 있게 집에서 출발했는데, 라는 의문이 순간 스쳐 지나갔지만 어차피 공연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먹었다고 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애초에 가기로 했던 그 극장에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극장으로 향했다. 극장으로 향하며 오늘 자신이 외출한 이유 그리고 외출을 하기 위해 쓴 시간과 노력에 대해 생각했다고 한다. 로비에 들어서니, 스피커를 통해 박수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 공연이 끝난 건가? 여기까지 오는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렸나? 모니터를 통해 그 사람이 본 것은 커튼콜뿐이었다. 그리고 박수를 쳤다. 나는 이 이야기를 그 사람에게 삼 년이 흐르고서 들었다.

그로부터 또 몇 년 후 공연을 준비하며 워크숍을 진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동, 접근성 문제로 극장에 늦게 도착하는 관객이 있을 수 있다. 관객이 극장에 미리 연락을 할 수 있도록 창구가 열려 있는지 극장 측에 질문했다. 혹은 공연 시작 십 분 전 정도에 도착하지 않는 관객에게 미리 연락을 할 수 있는지. 기다릴 수 있는지. 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때,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기다리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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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어디에든 존재할 수 있으므로, 누구나 어디에든 갈 수 있다.

공연을 예약했음에도, 다양한 이유로 극장에 늦거나, 극장에 오지 않기로 결정하거나 오지 못하는 관객들이 있다. 그 경우를 다 헤아려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동과 접근의 문제로 극장에 늦거나 오지 못하는 관객이 있을 때, 공연 시작 시각이 지났지만 그 관객이 공연을 볼 의사가 있다면, 극장은 공연 시작 시각을 지연시킬 수 있는지. 현실에서 누구나 무엇이든 될 수 있듯이, 무대에서도 누구나 무엇이 될 수 있다. 극장은 여러 존재를 기다리고 있는 곳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를 지지한다.

한 관객이 이런 말을 했다. 3년 전에 본 당신의 공연이, 그다음 해 어느 날 아침 새로운 감각으로 다가왔다고. 시간이 지나서 관객에게 이런 메시지를 받을 때가 있다. 나는, 내가 만나지 못한 혹은 않은 관객들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만든 공연이 애초에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었음을 생각한다. 몇 년 전에, 극장에 들어오지 못한 관객을 생각한다. 아니,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관객은 그 공연을 봤다면 어떤 감각을 느꼈을까. 재미없었을 수도, 의미가 없는 공연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상관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말이 혹은 무대 위에서의 이 순간이,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리허설은 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채워진다. 관객이 연극을 통해 무엇을 어떻게 감각하고 사유할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지만,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가 수신자가 될 수밖에 없는 물리적 위치에 있을 때 우리는 어떤 발신을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알 수 없지만 우리의 생각을 전언하고 마법처럼 객석의 반응을 체감할 때가 있다. 커튼콜 때 관객의 박수 소리만으로 관객의 사유와 감각을 판단할 수 없으니 그저 커튼콜 때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관객을 마주하는 것이 커튼콜의 유일한 전략이다. 모든 것을 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충만하게 느끼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 때로는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순간이 있는 예술을 좋아한다. 때로는 그저 흘러가는 시간이 있는, 때로는 관객에게 의도를 온전히 전달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의도와 생각을 전언하기 위해 무대 위에서 에너지를 쏟는 배우들의 무대를 좋아한다.

쑥스러워서도 아니고, 쿨한 척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기역니은 이름 순서로 걸어 나와 관객과 이제야 마주할 때 무대 위의 배우들은 무대 밖의 다른 창작진들과 함께 우리의 고민을 연극이라는 형식을 빌려 관객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기뻤다는 감각을 나누며 마주할 뿐이다. 말을 하던 배우들이, 조용해지고 그저 관객을 마주하는 그 순간. 누군가의 침묵이 다가오는 시간. 서로가 침묵하는 그 시간. 삼 년 전에, 그 시간을 모니터를 통해 바라보고 박수를 친 관객이 있다.

여러 빗댐과 여러 경험을 상기해가며 글을 썼지만, 사실 이런 것들을 다 걷어내고서라도

당연히,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를 지지한다.

[사진: 필자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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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혜

구자혜
‘여기는 당연히, 극장’에서 글을 쓰고 연출을 한다.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드랙X남장신사>, <로드킬 인 더 씨어터>등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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