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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투큐] ㅋㅌㅋ

전진모

제221호

2022.06.30

큐투큐(Cue-to-cue)는 극장에서 이뤄지는 리허설의 일종으로, 큐와 큐를 중심으로 연극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을 맞춰보는 작업입니다. 객석 오픈 시점, 조명 변화, 음향 타이밍, 무대 전환 포인트 등 모든 지점들이 하나의 독립적인 큐로 존재하며, 공연 한 편은 수십 개에서 수백 개의 큐로 구성됩니다. 큐투큐는 연극 제작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하는 작업으로, 여기에는 프로덕션의 모든 구성원이 참여합니다. 누군가는 큐를 지시하고, 누군가는 고 버튼을 누르며, 누군가는 타이밍에 맞춰 등장하고 흩어집니다. 웹진 연극in에서는 극장 리허설을 넘어, 연극 작업 전 과정에 존재하는 수많은 큐와 큐 속에 흐르는 각자의 관점과 생각을 들어보려 합니다. 하나의 큐가 주제로 던져지고,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필자들이 그 큐에 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눌 예정입니다.

괄호 열고, 괄호 닫고.
대체로의 커튼콜은 괄호를 닫는 일이다. 무대의 시간은 대체로 그렇게 커튼콜로 닫힌다.

한 번쯤은 공연들의 커튼콜만 모은 영상을 만들고 싶다 생각해본 적이 있다. 커튼콜에 선 배우의 표정들을 살피는 일에는 색다른 즐거움이 있다. 비로소 역할에서 벗어난 배우들이 관객의 반응을 살피며 오늘을 곱씹고, 객석 어딘가 앉았을 지인들을 찾기도 한다. 때때로 기쁨과 환희, 혹은 어떤 보람, 고마움, 더러는 아쉬움과 같은 것들이, 커튼콜의 표정들 가운데 어려 있다. 수많은 표정들이 커튼콜에 들어있다. 연출한 공연의 커튼콜이라면, 오늘 공연도 무사히 끝났구나 하는 안도와 함께 감사한 마음이 들곤 했고, 때로 이런저런 마음들이 뒤섞인 일종의 멜랑꼴리한 기분을 맞기도 했다. 긴장이 풀리면서의 허전함 같은 것일까, 생각해본 일이 있다. 어쨌든, 공연의 끝을 나 역시 그렇게 커튼콜로 맞이하곤 했다.

어느새 연출만 하던 시간보다, 극장장 노릇을 함께 한 시간이 보다 길어졌다. 무대이기보다 극장에 머물기 시작했다. 대체로는 관객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사이, 이를테면 극장의 시간이다. 극장 건물 1층 주차장1)에서 적잖은 시간을 보냈고, 재작년 어느 날부터는 극장 계단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문이 열리고, 문이 닫힌다. 무엇이 시작되고, 무엇이 끝을 맞이하는가. 주차장에서라면, 가끔 1층까지 들려오는 박수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계단의 등들이 내려오는 관객들에 의해 층층이 점멸할 때에라야 ‘끝’임을 알 수 있었다. 주차장에서, 그 사이의 시간은 자주, 텅 비어있었다. 그에 비해 계단참에서의 시간은 조금 다르다. 계단참에서는 공연을 듣는다! 가만히 들으며 장면들을 지나 보내고 나면, 이윽고 들려오는 박수소리. 계단참에서의 시간은 공연의 시작과 끝에 가깝고, 또 가득 차있는 셈이다. 다시 문을 열고 계단의 불을 켠다. 그러나 주차장에서 올라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무대 위 커튼콜의 장면은 이미 지나고 난 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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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극장 주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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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극장 계단참

곰곰 생각해보면, 물리적으로 어디에 위치해 있든, 극장의 시간은 좀처럼 끝나질 않는다. 눈을 뜨면 밤새 변동되었을 예약/예매 리스트를 살핀다. 사실 리스트를 살피는 일은 밤낮, 좀처럼 중단이 없다. 이런저런 안내문자들을 비롯해 공연과 관계한 연락들을 주고받다 보면, 극장이다. 좌석을 정돈하고, 티켓을 준비하고, 공연이 시작하고, 공연이 끝나고, 관객을 배웅하고, 다시 극장을 정리한다. 아직 끝이 아니다. 오늘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공연을 끝낸 공연 팀, 다시 오늘의 관객이었던 지인들을 찾은 자리에서 공연 얘기를 나눈다. 비단 공연 얘기 뿐은 아니다. 요사이의 공연들, 요사이의 극장들, 요사이의 연극판을 두루두루 경유하고 나면 (물론 서로의 안부도 빠지지 않는다) 그제야 극장의 하루가 끝난다. 아, 잠들기 전의 연락들도 쉽게 지나칠 수 없다. 이 공연이 끝나면 다시 다음 공연이다. 이번 주를 마치고 다시 다음 주, 다음 달, 그다음 해, 저 멀리 있던 공연의 일정들이 성큼성큼 오늘이 되고 또 어제가 된다. 그러니 언젠가부터 극장의 시간은 끝도 시작도 없다. 잠깐 비껴나는 시간이 있는 것 같지만, 그러나 반드시 다시 계속해서 돌아온다. (정말 끝낼 때까지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나는 계속해서 시작과 끝을 본다. 사람도 바뀌고, 내용도 바뀌고, 계속 변하고는 있지만, 나는 계단참에 앉아 있다. 이 일은 비단 나에게만 일어나고 있는 일일까? 다행일지 불행일지,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애써 다른 점을 발견하고 애써 다른 이름을 붙여 봐도, 조금씩 모습을 달리 한 채 같은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 사실 누구라도 알고 있을 일이다. 그 와중에 커튼콜은 무엇일까? 아주 짧은 휴지기. 어쩌면 그것에 지나지 않는다. 극장에서 나는, 다섯 번의 가을과 겨울, 그리고 봄을 보냈고, 이제 여섯 번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은, 119번째 공연의 끝과 120번째 공연의 시작을 앞두고 있다. 몇 번의 커튼콜이 지나갔을까. 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극장장을 병행하며 겪은 커튼콜은 그렇게 많다. 단순 계산은 반드시 틀린 답을 내겠지만, 연출작에서 지나보낸 커튼콜에 비하면 아마도 열 배쯤 많은 것 같다. 이 무수한 커튼콜을 지나보내며, 그것은 내게 더 이상 끝이 아니게 되었다. 여전히 한 회 한 회의 마무리가 소중하고 감사하지만, 그러나 끝의 감각은 자꾸만 무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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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흰공책 가득 그것들이 씌어지는 밤이 왔다>(2018)

공연은 언제 시작하고 언제 끝나는가. 한 회 한 회의 커튼콜들을 지나 마지막 회의 커튼콜. 연출만 하던 시간 동안 쉽게 단정하던 시작과 끝이, 어쩌면 커튼콜이 야기한 착각들은 아니었을까. 하긴 일상의 시간에는 이렇게 잦은 커튼콜이 없다. 다시, 어떤, 시간을 생각한다. 괄호를 열고, 괄호를 닫고. 그 사이 단어나 문장을 넣어두곤, 때로 그것을 기억이라 불렀다. 괄호 안에 제멋대로 구겨 넣은 단어들을 통해 그 순간을 정리하고 또 떠올렸다. 때로 그것은 공연이다. 괄호 열고 다시 괄호 닫고. 그 사이의 것은 단순한 제목 이상의 공연 그 자체가 되기도 한다. 괄호를 열고 괄호를 닫기까지 그 사이의 시간들을 생각한다. 그것을 무대의 시간이라고 불러본다. 대체로 커튼콜로 그 괄호가 닫힌다. 무대의 시간은 대체로 그렇게 닫히는 듯했다. 그러나 괄호를 닫는다고 하여, 극장의 시간이나 연극의 시간이 끝나지는 않는다.

하긴. 내게 제일 궁금한 연극의 시간은 커튼콜 이후의 시간이다. 어떤 마음으로 극장을 나서 집으로 돌아가는가. 또 어떤 일상을 보내다 드문드문 떠올려질까. 내게 시간이란 어차피 그저 기분이고 기억은 모래와 같은 것이라서, 무엇이 얼마나 빠르게 밖으로 새어 나가고 있을까 무엇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를 생각하는 일은 정말이지 부질없다는 결론에 이를 따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한 것이다. 연극의 시간은 어떻게 끝을 맞이하는가, 또 어떻게 사라지는가. 그러고 보면 어떤 날의 커튼콜 박수는, 연극의 시간이 앞으로 얼마나 이어질까를 가늠하게 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것이 힘차거나 혹은 조용하거나 그것만으로는 예단하기 어렵다. 다만 연출인 나는 실낱같이 얇고 가벼운 무언가 반드시 남기고 싶다고 남을 것이라고 애써 믿으며, 그 ‘끝’을 자꾸 부정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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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그루의 숲>(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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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야 시작이야>(2022)

한때는 무대와 객석 그 사이가 연극하는 나의 모든 즐거움이었던 때도 있었던 것 같다. 한때는 그게 다였다. 모든 질문도 거기에 두었었다. 공연이 무대에 올라가면, 그 밤에 모든 것이 시작되고 또 종료되었다. 당연하게도 어젯밤과 오늘 밤, 그리고 내일 밤의 공연은 다르다.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점차 그렇지 않기도 하다. 무대와 객석 사이가 여전히 궁금하고, 그 자리에 그 순간에 여전히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지만 범주는 점차로 확장한다. 무대와 객석을 넘어 극장과 극장 밖, 무대와 각 개인의 일상으로. 한 회 한 회, 공연, 공연들, 극장. 어떤 맥락이 한 자리에서 끝나지 않고, 끝없이 이어진다. 얼마 전 나는 신촌극장에서 나름의 3부작을 끝냈다.2) 2년에 한 편씩 4년에 걸친 3부작이다. 여기에도 끝이란 단어를 붙여보지만, 되짚어보면- 사실 작업을 마친 적이 없고, 완성한 적은 더군다나 없다. 다만 이쯤에서 잠깐, 조금은 할 수 없다는 심경으로 괄호를 닫았을 뿐이다. 공연은 끝나지 않았고, 지난 것이 자아낸 질문이 남아 눈앞에 버티고 서있다. 그렇게 질문은 계속 이어질 테다. 더 이상 질문이 남지 않는다면, 연출도 극장도 연극도 모두 끝이 날 것이다.

시간이 쌓이고 또 이어진다.
괄호 안의 것들은, 대체로 괄호 밖을 향해 있다.

[사진: 필자 제공]

  1. 신촌극장 초기 매표 공간은, 건물 1층의 주차장 셔터 안쪽이었다. 3년여가 흐른 뒤부터는 옥탑의 극장 반 계단 바로 아래 계단참에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2. <그리고 흰공책 가득 그것들이 씌어지는 밤이 왔다>(2018), <세 그루의 숲>(2020), <끝이야 시작이야>(2022). 공교롭게도 최근의 작업은 끝과 시작에 대해 생각해 본 일이었고, 글을 쓰며 생각해보건대, 아직 끝나지 않은 생각이기도 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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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모

전진모
연출가이자 신촌극장 극장장. 가끔 쓰고 연출하는 가운데 소재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보다 유연한 표현과 발화의 방식들을 찾고 있다. 여전히 글/언어를 주요한 재료로 작업하고 있는 중, 최근에는, 보여주고 들려주려 애쓰기보다는 관객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사유를 채워갈 수 있는 사이와 여백을 어떻게 쓰고 연출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신촌극장(*2017년 6월 개관)은 물리적인 한계와 제약이 가득한, 아주 작은 옥탑 공간이다. 다 만 장르불문의 공연예술이 함의하는 다채롭고 진취적인 자기표현의 장으로 기능하는 것을 목 표하며, 매년 작가(창작자) 중심으로 꾸려진 라인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mmozzz@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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