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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희희낭락’ 할래요?”

‘희희낭락’ 희곡읽기모임

김호준

제215호

2022.03.24

‘평범’에서 탄생한 모임

어찌 보면 시작은 단순했다. 몸을 대단히 잘 쓰는 것도 아니고, 얼굴이 대단히 잘생긴 것도 아니다. 게다가 연기를 대단히 잘하는 것도 아니며, 인맥이나 출신이 대단히 좋은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평범’ 그 자체. 배우로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무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근데 또 몸 쓰는 건 너무 싫다. 그래서 또 생각했다. 앉아서 할 수 있는 보람찬 일이 뭐가 있을까. 그래, 몸 쓰기 싫으면 희곡이라도 읽자.

2017년 1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세 명이 대학로에 모여 희곡읽기모임을 만들기로 했다. 각자의 목적은 달랐으나 함께 모여서 희곡을 읽자는 생각은 동일했다. 꼴에 갖출 건 갖춘다고 대표, 부대표, 총무까지 정했다. 모임의 이름만 남은 상황. ‘희’자가 들어가는 사자성어의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희희낙락 어때?” 내가 던진 말에 총무가 대답했다. “좋은데 ‘낙’을 낭독의 ‘낭’으로 하면 어떨까?”
유레카! 그렇게 ‘희희낭락’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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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희낭락 독회발표 포스터

희곡을 읽는 기쁨, 낭독의 즐거움

희곡을 ‘공부’의 개념으로 읽는 것이 싫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고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영화를 보는 게 아닌데 왜 ‘희곡’은 분석해야 되고, 공부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까? 그러다 보니까 희곡을 연극인들만 보게 되는 것 아닐까?
희곡도 문학 장르 중 하나다. 그 자체를 쉽고 재밌게 즐기면 된다. 희곡을 보는 게 ‘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건 ‘유희’가 아니라 정말 ‘일’이 되어버린다. 당연히 재미가 없어질 수밖에.

2017년 2월, 역사적인 첫 모임. 그러나 아무리 뜻이 같아 모였어도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갈 수밖에. ‘작품 분석을 통해 작가나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공부를 해왔으면 좋겠다’, ‘희곡을 읽고 연기적인 부분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하면 좋겠다’, ‘작품을 한 번만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한 달 동안 깊이 있게 읽고 싶다’, ‘희곡 말고 시나리오나 시도 읽어보면 어떻겠냐’ 등등. 6개월이 넘는 인내와 고통의 시간 동안 다채로운 시행착오를 통해 나름의 형태를 정립해나갔다. 그리하여 비로소 결정한 모임의 진행 방향은 일주일에 한 편 희곡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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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인 선택, 깊이 있는 경험

이 모임에는 강제성이 없다. 본인이 나오고 싶을 때 나와서 함께 읽으면 되고 나오기 싫으면 안 나오면 된다. 왜 안 나오냐 연락하거나 물어보지 않는다. 읽기 싫다는 사람 억지로 데리고 와봤자 역효과만 난다. 모든 건 본인이 선택하고 스스로 결정한다. 물론 그에 따른 결과 역시 본인의 몫. (참고로 희곡선정과 진행은 대표=필자가 도맡아 하고 있다)
모임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사실 희곡을 읽는 일이 아니라, 다 읽고 난 뒤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사람들이 한 작품을 읽고 그 작품을 받아들이는 방법은 전부 다르다. 어떤 이는 작가의 삶에 중점을 두고 바라보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희곡을 현시대에 비추어보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한다. 또 또 어떤 이는 대사를 중점적으로 보며 생각한다.
어떤 의견이든 좋다. 중요한 건 본인이 생각한 것들을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이니까. 작품을 읽고 줄거리만 파악한 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읽고 내가 한 어떤 생각들을 소리 내어 말하는 것, 그 생각들을 함께한 모든 이가 공유한다는 것은 ‘희희낭락’의 본질적인 이유이다. 혼자 읽을 때는 절대 겪을 수 없는, 함께 읽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희희낭락’은 1년에 한 번, 주로 매년 3월 초에 독회 발표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희희낭락’이 얇고 넓게 작품을 알아가고 읽어보는 시간이라면, 한 작품을 보다 깊이 분석하고 탐구한 후, 그것을 열심히 소화하고 나의 색깔로 표현하는 것이 1년에 한 번 하는 ‘희희낭락’ 독회인 것이다! 연극인이 아니라면 독회 발표를 통해 무대에 서 보는 귀중한 경험을 하는 것이고, 연극인이라면 마음껏 끼를 발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며, 관객들에게는 희곡을 보다 재미있게 읽어보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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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같이, 희희낭락 할래요?

‘희희낭락’은 매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최대 오후 2시까지 진행한다. 희곡이 길면 늦게, 짧으면 일찍 끝난다. 배역은 일찍 온 순서대로 본인이 선택한다. 배역을 다 정하고 나면 다 같이 희곡을 읽는다. 많은 사람들이 소리 내어 희곡 읽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하지만 제발, 그런 고민은 절대 하지 마시길. ‘희희낭락’은 연기공부모임이 아닌 ‘희곡읽기모임’이니까. 모임을 시작하고 현재까지 184편의 희곡을 읽었지만 단 한 번도 연기에 대한 이야기는 한 적이 없다. 연기는 아주 부수적인 일부분일 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잘 읽으려는 마음과 열정만 있으면 된다.

희곡읽기모임은 비단 ‘희희낭락’ 뿐 아니라 도처에 많이 있을 것이다. 각 모임마다 방향이나 목적은 다 다르겠으나, 필자의 ‘희희낭락’은 어떤 많은 의미와 목적들보다도 ‘즐거움’을 우선시한다. 희곡은 누구나 읽을 수 있고, 또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다는 것.
물론 그 ‘누구나’가, 이번 주 목요일엔 당신이 될 수 있다.

매주 목요일 오전, 어떤 기업의 대표, 꿈을 안고 서울에 갓 상경한 학생, 연극의 ‘ㅇ’과도 관련이 없는 교사 등등 ‘남녀노소’라는 말이 식상할 정도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
그리고 매주 월화수목금토일, 희곡읽기모임 ‘희희낭락’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함께 ‘희희낭락’하며 희희낙락하기를! 기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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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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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준

김호준
배우이면서 가끔 글도 쓰고 연출도 하는 연극쟁이. 희곡읽기모임 ‘희희낭락’ 대표이자 ‘극단 배다’ 부대표이면서 ‘극단 여행자’ 배우. 집에서는 아내만 바라보는 사랑꾼이자 딸바보인 운율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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