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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다 다른데, 결국 언제 모일 수 있을까?”

쉬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끝내 유보하는 노력의 시간

이연주

217호

2022.04.28

이번 [현장] 코너에서는 서울문화재단의 공간들을 중심으로 공동운영단 활동을 해온 현장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민관거버넌스라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현장과 행정이 어떠한 입장으로 정책을 시행하고 새로운 실천을 모색하고 있는지, 이러한 시스템의 역할과 기능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서로 다른 경험과 생각들을 나누었습니다.

일시: 2022. 3. 26(토) 오후 1시
장소: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연습실
참석: 김수희, 이강호, 황유택

이강호
안녕하세요. 저는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고, 작년까지는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공동운영단으로 2년 활동했고, 올해부터는 청년예술청 거버넌스 라운드 [SAPY]에서 활동을 하게 될, 하고 있는, 이강호라고 합니다.
김수희
저는 연극 연출하는 김수희고요. 청년예술청 공동운영단을 1년 반 했고, 이제는 활동이 끝났습니다.
황유택
저는 황유택이라고 하고요. 연극 연출과 함께 기획자로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2020년도에 공동운영단 활동 시작했고, 지금은 예술청 운영위원으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강호
처음 거버넌스 활동 시작하게 된 계기는 공모를 보고, 내가 공연에서 하지 못하는 얘기, 예를 들어 예술이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서교에서 지역성, 탈지역에 대한 것도 많이 고민했는데요. 서교 활동이 끝나가면서 좀 더 광범위한 담론을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청년예술청이 다른 거버넌스에 비해서는 지역성을 덜 갖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청년예술청에도 지원하게 됐었습니다.
황유택
저는 거버넌스에 대해 잘 몰랐는데 뭔가 변화를 시도하고는 싶었어요. 예전부터 창작 외에 연극계나 예술계의 부조리, 불평등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어요. 근데 방법을 몰랐고, 개인적으로 작게나마 시도는 해봤지만 확장성을 갖고 자력을 갖기엔 상황상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그렇게 문제의식만 갖고 제대로 실행을 하지 못하다가 2020년 삼일로창고극장 공동운영단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삼일로창고극장은 연극계에서 상징성이 깊고, 모집 공고에서도 기획하고 프로그램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담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내용을 봤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야심차게 떨어졌고. 아무래도 거버넌스, 삼일로의 고민점을 잘 모르는 형태로 지원을 해서 그랬던 것 같아요. 당시에 받았던 질문들이 솔직히 저에게 어렵긴 했거든요.
그 후 한두 달 뒤에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 모집을 또 한번 보게 되었고 이번에는 거버넌스나 서교예술실험센터에 대해 공부를 하면서 지원서를 냈고 운이 좋게도 2020년도부터 서교예술실험센터 공동운영단으로 활동하게 됐어요. 2021년 예술청 운영 준비단 모집공고를 보았고, 서교의 한계성을 넘어 더 넓은 이야기들을 듣고 실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예술청 운영준비단에 참여하였습니다. 홍대 앞 문화의 역사와 이슈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계를 예민하게 감각하고, 섬세하게 다가가는 것이 서교의 메리트였다면 예술청은 보다 더 많은 것들이 논의되는 거예요. 지역을 넘어서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논의 및 문화예술정책 등 꽤나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저에게 재밌는 경험이었고 많은 걸 배우게 됐던 것 같아요. 그걸 계기로 거버넌스, 정책, 예술인 권리 등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극적으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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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택
김수희
저도 거버넌스가 뭔지 모르고 청년예술청 공동운영단 모집 공고를 봤어요. 뭔가 운영하는 건가? 기획하는 건가? 이렇게 새로운 걸 해보는 건가? 호기심을 갖고 해보고 싶었어요. 마침 미투 운동이 막 일어나고 있었고 연극계에 대해서 좀 짜증이 나는 상황에서 새로운 창작자들, 특히 젊은 창작자들을 만나보고 싶은 거예요. 이제 선배 위치에 와 있지만 그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제 가치관이라든가 그동안 해왔던 것들을 깨고 싶고, 새로운 창작자들 만나서 새로운 걸 기획해보고 싶었어요. 특히 안전한 창작 환경이라는 건 뭘까? 미투 운동 이후 그런 관심이 생겨서 들어갔어요.
활동계획에 대한 서류를 내고 인터뷰를 갔는데,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모두가 다 같이 앉아서 다른 사람 발표를 들은 다음에 질의응답을 해요. 워크숍 형식의 인터뷰인 거죠. 저는 그런 인터뷰가 익숙하지 않았거든요. 인터뷰 끝나고 그 자리에서 바로 투표해서 세 분을 선정했어요. 저는 투표로 선정된 건 아니고, 전문가 심의로 세 명을 추가로 뽑는데 그때 선정됐어요. 공동운영단에 선정된 여섯 명 중에 저 빼고 모두 20대~30대 초반이셔서 저랑 나이 차이가 거의 띠동갑 이상이었어요. 분명 지원공고에 나이는 상관없다고 했는데 내가 엉뚱한 데로 왔나(웃음)… 제가 기존에 갖고 있던 어떤 방식들이 있잖아요. 그것들을 깨면서 여섯 명이 논의하는 과정이 참 재밌고 힘들기도 했어요.
황유택
전문가는, 혹시 어떤 분들을 전문가라고 하죠?
김수희
기존에 거버넌스 활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었어요.
이강호
서교도 비슷한 방식인데, 결정 자체는 동료 평가로만 선정해요. 2020년도에 유택 님이랑 저랑 지원했을 때는 전문가 심의는 없었던 걸로 기억해요. 동료 평가제로 뽑았고, 그 후에는 공동운영단 경험했던 분들이 토론해서 선정하는 방식이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운영 방식

김수희
청년예술청 들어가서부터 하나하나 다 저희가 정하는 거예요. 회의는 언제 하고, 어떻게 결정하고, 호칭 정하고. 다 결정하느라 한참 걸렸어요. 장르가 다르고, 나이도 다르고. 서로 이해하는 데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청년예술청은 저희가 1기였거든요. 운영 수칙, 약속문이라고 해야 될까요? 그걸 만드는 데도 한참 걸렸어요. ‘청년예술청 공동운영단을 정의한다’ 여기서부터 시작했거든요. 그때부터 거버넌스에 대한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저는 공부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초반 6개월은 거버넌스가 뭐지 이러면서… 처음에 어떠셨어요? 저처럼 헤맸는지 궁금해요.
이강호
사실 저도 거버넌스가 너무 생소했어요. 거버넌스에 대한 이해보다는 예술가로서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것만 이해하고 들어갔거든요. 과정에서 거버넌스를 이해했던 것 같아요. 아마 예술가들이 2020년 이후에 청년예술청, 예술청 생기면서 거버넌스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생각도 들어요. 저도 수희 님이랑 똑같았어요. ‘내가 잘못 들어왔나?’ 생각을 잠깐 했을 정도로, 그랬습니다(웃음).
황유택
서교예술실험센터의 공동운영단은 예술인으로 구성된 6명의 운영단이 존재하고, 센터 매니저가 당연직으로 운영단에 포함이 되어있어요. 행정을 위한 실무 주체가 따로 있고, 현장 문화예술인인 공동운영단이 현장 경험을 토대로 같이 서교예술실험센터의 방향성과 정체성을 만들어요. 예술청은 서울문화재단 예술청 직원과 민간위촉직이 거의 반반의 인원수로 구성을 이루고 있어요. 예술청은 구조가 좀 다른데, 예술청을 운영하는 민-관 구성원 모두를 예술청 공동운영단이라 부르고, 구성은 재단 직원들은 예술청 팀, 현장문화예술인으로 구성되어 있는 공동예술청장 2인과 운영위원 9인을 민간위촉직이라고 불러요. 이렇게 모두가 예술청 공동운영단이기 때문에 의결권도 비등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지속적으로 상호 간 이야기하고 창조해 나가는 형태인데 서교에서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것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서교는 공동운영단 시스템을 운영하는 10년의 시간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관성이 있어 의견을 모으고 실행하는 게 수월했는데, 예술청은 이제 처음 시스템을 만들면서 민과 관이 합의해가는 시간이 생각보다 꽤나 오래 걸리는 거예요. 긴 시간 논의하다 보면 지쳐서 결정되는 것들이 있는데 효율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로는 효율적인 측면으로 접근하려고 하는 관성을 끊임없이 의심하며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문화예술계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으로서, 문화예술생태계에 접근하는 과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 바라보는 것이 거버넌스 운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기라고 해서 ‘나중에 바꾸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서로가 합의해버리면 선례가 되잖아요. 그래서 예술청은 지난하지만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부분들을 서로의 입장에서 최대한 충분히 이야기하며 논의하고 있습니다.
김수희
사안을 바라보는 시선과 경험이 다르다 보니까 차이를 쉽게 좁힐 수가 없는 거예요. 그렇다고 다수결로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예요. 전원이 합의해야 하는 일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러면 설득될 때까지 얘기를 하는 거죠. 사실 저는 극단의 대표로서 제가 결정하고, 진행하고, 결정하고, 그거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까 처음에는 토론이 너무 부대꼈어요. 물리적으로도 힘이 들고. 설득의 언어도 다 썼어요. 그러고 나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울컥울컥하고 막. 그래서 저희가 어떤 방법을 쓰기 시작했냐면 그날 회의에서 나온 문장들이 있잖아요. 그 문장들을 정확하게 적고, 모두가 그 문장을 읽고, 확인했어요. 회의 끝나고 6명이 사인하는 그런 방식. 근데 그것도 하다 보니까 사인했다고 마치 합의한 것처럼 넘어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최대한 긴 시간을 갖고 토론하고, 6명이 어떤 결정이든 끌어낼 수 있도록 해보자, 그렇게 다시 바뀌었어요.
한 6개월쯤 지나가니까 제 나이 또래의 연출들 중에 이런 과정을 겪을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한테 너무 귀한 시간이구나. 지금 토론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시간들이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구나’ 경청하는 법이라든가, 남의 말을 끊지 않으면서도 내 의견을 내고, 설득의 언어에서 감정을 빼고 얘기할 수 있는 방법들을 배웠어요. 그래서 토론이 굉장히 중요하고, 장르가 다른 사람들끼리 모여서 말하는 방법, 듣는 방법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6개월 넘어갈 때부터는 토론에 적응이 됐고,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이강호
저는 이 부분이 거버넌스에서 되게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각자가 거버넌스에 참여하고, 감각하는 예술 생태계가 너무 달라서 그 접점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자체가 되게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영역과 영역이 만나면 결국에는 충돌할 수밖에 없는데, 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영역이 확장되는 것이 거버넌스의 핵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수희
청년예술청에서는 재단 직원들이 행정적으로 서포트를 하면서 기록하고 공유해 주는 역할을 주로 하셨어요. 그 긴 대화들을, 사실은 그분들이 계속 정리하셨어요. 그 역할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공동운영단에서 갈라지는 이야기를 다시 모으고, 다음 회의로 잘 넘어갈 수 있게끔. 저희는 끊임없이 차이를 맞추고, 인식의 차이가 합의에 도달해 가는 과정에서 그걸 정리하고 기록하면서. 배소현 매니저님, 김은나 주임님, 그 두 분이 도와 주셔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황유택
서교는 돌아가면서 기록을 했고요. 예술청은 회의에 따라서 달라요. 다 같이 모여서 얘기하는 날은 예술청 팀에서 작성을 해주시고 각 사업이나 분과별 회의 있을 때는… 저희가 회의가 좀 많아서(웃음)… 예술청은 정기적으로 모두 모이는 정기회의가 있고, 예술청의 방향성에 따라 분과가 구성되어 있어서 분과회의가 별도로 진행되거든요. ‘창작기반조성 분과’와 ‘공론의 장’ 분과가 있어요. 창작기반조성 분과에서는 문화예술계 창작 기반과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와 사업을 구성해요.
그리고 공론의 장 분과에서는, 예술청이 문화예술계의 이야기를 모아 담론을 형상하고 확산할 수 있는 플랫폼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예술인 권리, 현장이슈, 정책 등 다양한 공론장과 아카데미 등을 형성하고, 담론들이 발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정책, 제도화나 또 다른 방향으로 연대, 확장될 수 있도록 많은 논의와 사업을 구상합니다. 그래서 정기회의, 분과회의, 그리고 분과 안에 각 사업 회의가 다 있어요. 정기 회의를 제외하고는 다 돌아가면서 기록합니다.

#공론의 장

김수희
첫 이슈가 고용보험이었어요. 저희는 월별 인건비를 받는데, 어떤 활동을 했는지 결과보고서를 작성해요. 매달 입금이 되지만 비정규인지 단기 예술인지 사실 개념이 잘 안 서 있었어요. 근데 매달 월급을 받고 있고 재단의 운영공간에서 공동운영단으로 일하고 있는데 고용보험 가입이 안 되는 게 좀 이상했고,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됐으니까 혜택을 받든 못 받든 적용을 해봐야 되지 않겠나. 저는 거버넌스 활동을 하면서 법규가 바뀌면 우선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시도해봐야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공동운영단에서 얘기해봤는데 그게 왜 문제냐는 얘기가 나왔어요. ‘나는 예술가인가?’에 대한 의식도 서로 달랐던 것 같아요. 공동운영단이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행정직에서 결정할 문제인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공론장으로 갖고 나왔냐면, 재단 내 공동운영단인 예술청, 삼일로창고극장, 서교예술센터, 청년예술청, 이렇게 전체 거버넌스 회의를 하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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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희
황유택
현장예술인으로서 거버넌스 체계에서 다양한 노동을 하고 있는데, 왜 이것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을까? 왜 예술인고용보험에 들지 못할까? 그럼 일단 계약서에 고용보험에 대한 내용을 넣어보고 이 계약서가 유효한지 한번 검토해 보자. 재단 노무사분과 얘기하고 강의 들으면서 근로복지공단의 해석 및 의견을 확인하는 절차까지 가게 됐는데, 결론은 근로복지공단에서 판단하기에 거버넌스 활동은 예술가의 노동으로 보기 어렵다는 거였어요. 왜냐하면 창작 활동이 아니고, 기획자의 활동으로 보기에도 애매하다는 거예요. 당장에 실현할 수는 없어도 지속적으로 이야기해보자고 했죠. 아직은 숙제로 남아 있어요.
김수희
이건 거버넌스 활동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예술인고용보험이 시행되는데 혜택 받았다는 사람을 못 봤어요. 제 주변에서는요. 극단이 중장기사업을 진행하면서 단원들 계약서 쓸 때마다 고용보험 가입하거든요. 근데 공연 끝나고 바로 다음 공연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공연 끝나고 3개월을 쉴 때도 있고 6개월 쉴 때도 있는데, 고용보험을 잘 활용했다는 분은 아직 못 만나봤어요. 이런 문제를 거버넌스 안에서 담론화하고, 온도 차를 맞추면서 결과적으로 예술 창작 활동으로 인정받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논의가 흐지부지되면서 저만 유별난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았어요. ‘생각이 다 다른데, 그걸 좀 이해하고 같은 속도로 맞춰서 걸어가야 되는데, 그런데 당장 고용보험 들어야 되는데, 이거 왜 안 하지?’ 미투 운동 때도 느꼈지만 내 입장에서는 맞다고 생각해서 주장할 때, 상대에게는 비명에 가까운 소음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걸 알게 된 다음이었어요. 6개월 정도의 토론에 익숙해지는 과정을 거치고 난 다음부터는 밸런스를 맞추면서 천천히 가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저의 경험이나 방식을 강요해서는 절대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하죠. 그래도 토론할 때 마음이 좀 안 좋았긴 했어요. 관철됐으면 했는데, 법적인 해석도 예술 활동이 아니라고 하고.
황유택
예술 노동은 현재 과정보다 결과물 발표에 치중돼 있는데, 사실 예술 활동이라는 것이 단번에 결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잖아요. 거버넌스가 왜 노동이지? 이런 말씀도 하시는데, 이런 이야기 전제는 노동, 생산, 투여 등이 아닌 ‘근로’에 맞춰진 것 같아요. 예술인이 어디 출근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고용돼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예술이라고 하는 건 자유롭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는 건데 이게 노동일까? 그런 생각. 그렇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서도 최종 결과에 대한 보상은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거든요. 과정을 노동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도 예술이 노동이 될 수 있다는 가치는 공유되고 있는 것 같아요.
결국 우리나라의 제도가 ‘고용된 후의 근로에 대한 기준’을 자꾸 얘기하니까 예술인들도 거기에 맞춰서 생각하는 게 아닐까. 누군가는 재단이나 행정가들이 알아서 해줘야 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사실 누구도 얘기 안 했으면 결국은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시행 지침으로 고용보험 가입해야 된다고 내려오지 않으면 아마 안 했을 거고. 이런 것들이 현장이 참여하는 거버넌스의 좋은 작용일 수 있겠죠. 생태계 안에서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방법을 찾아보자고 민과 관이 만나서 경로를 찾았던 거잖아요. 물론 정부나 상위기관의 해석, 또는 상위 규칙 등에 막혔지만, 그럼에도 그런 이야기를 시도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지 않았나? 저는 사실은 되게 좋았어요. 그 회의가 답답하기는 했는데, 거버넌스의 전체적인 상인 것 같아서 저는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김수희
마무리를 잘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석연치 않게 끝났다는 거죠. 저희는 블랙리스트를 겪고, 미투 운동을 겪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그래서 작업하고 있는 이 한 순간, 한 순간이 굉장히 소중하잖아요. 작업환경이 안전하지 않을 경우에 생길 수 있는 불상사들을 겪었고 그걸로 어떤 식의 싸움이든, 승리든, 그런 기억들이 있는 사람인가 봐요. 그래서 예술인들이 본인의 경력을 갖고 거버넌스 활동을 하거든요. 그것이 어떤 담론이나 공론장으로 끄집어내지지 않았던 것이 조금 아쉬웠던 것 같아요.
황유택
전체 거버넌스 회의 관련해서 약간 정정해야 될 게 있는데 처음 모인 건 ‘Y 작가 사건’ 때문이었어요. 그 사건 터지고 나서 도대체 이렇게 무력한 거버넌스가 있나? 아니 현장예술인이 재단 안에 이렇게 밀접하게 함께 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관련 사건들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리고 거버넌스는 도대체 뭔가? 이러면서 자기반성을 하고 그 해결점을 찾고자 서울문화재단 안에 있는 거버넌스들이 모였어요. 물론 Y 사건만이 아닌 거버넌스에 대한 다양한 의심들이 서로 있기도 했고요.
김수희
청년예술청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저희가 공동운영단으로 들어가기 전에는 개관 기획단이 있었어요. 청년예술청 개관 축하 페스티벌 같은 걸 했던 거죠. 거기에서 Y 작가가 예술 감독으로 개관 준비를 하면서 성희롱 사건이 발생한 거예요. 서울문화재단에 신고가 들어갔는데, 제대로 해결이 안 되면서 국가인권위원회까지 올라가게 됐어요. 모두가 충격을 받은 거예요. 공동운영단도 성명서를 내고, 개관 기획단도 성명서를 내면서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개관 기획단은 개관 기념식을 하지 않겠다, 이렇게 된 거죠. 그러면서 서울문화재단이 Y 작가를 고소했고요. 거버넌스 안에서 창작자들이 보호를 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보호를 못 받았다고 하는 이유가 뭐냐면, 계약서를 분명 썼는데 해석에서 피해자가 아예 소외가 된 거죠. 개관 기획단의 Y 작가가 업무상으로는 예술감독이 분명한데 계약서상으로는 정확하게 관계를 정하지 않았어요. Y 작가도 서울문화재단에 용역 계약서를 쓰고 들어오고, 피해당사자도 재단이랑 용역 계약을 한 거죠. 그러니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용역도 없기에, 사실은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돼버렸어요, 계약서상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는 계약서상 기간이 끝났다, 그 기간 밖에 있다, 그러니 직장 내 성추행 사건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건 안전하지 않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예술 감독이나 대표, 연출이 다른 창작자들을 섭외하는 게 관행이잖아요. 직접 섭외를 했는데, 행정 서류상으로는 직접 계약 관계가 아닐 수 있는 거예요. 전혀 안전하지 않은 방식인거죠.
황유택
Y 사건 때 궁금해진 거죠. 각각의 공간은 어떤지, 거버넌스는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고, 프로그램 참가나 평가 방식, 심사 방식은 또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아쉬웠던 건, 파편처럼 있다가 처음으로 모여서 서로의 생각과 의식을 공유했고, 그러면 다시 공간으로 돌아갔을 때, 공유된 이야기들을 각자의 플랫폼에서 시도했어야 했는데 이야기만 꺼내고 끝나버렸어요. 거버넌스 간의 연대감, 현장과의 연대감이 필요한데, 그 연대가 지속되지 못해서 좀 많이 아쉬웠던 것 같아요.
이강호
저도 아쉬웠어요. 거버넌스마다 운영 구조나 구성된 인원, 임금 체계 등이 다 달라서 같이 모였을 때 거버넌스의 의미를 한 번 정의해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그게 흩어져서 좀 아쉬운 지점이 있기는 하죠. ‘이렇게 다 다른데, 결국 언제 모일 수 있을까?’ 하는 고민도 함께 들고요. 우리 너무 부정적인 얘기를 하나요(웃음)?
김수희
딴 얘기합시다(웃음).

#거버넌스 #시도 #교류 #지속

이강호
꾸준히 이어지는 것도 있어요. Y 사건 이후로 문화예술계 성평등, 탈위계에 대한 고민이 사업으로 이어져서 성평등 살리기 문화 조성 사업을 하게 됐어요. 여기 계신 수희 님, 유택 님도 같이 했어요.
김수희
올해 두 번째 사업인데 예산이 절반으로 줄었어요. 서울시 예산으로 했었는데 청년예술청으로 사업이 이관되면서 다른 기획 사업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사업이 연계성을 갖고 꾸준히 성장, 발전할 수 있으려면 예산이 적건 많건 간에 안정적으로 가야 되는데. Y 작가 사건으로 의제는 받았지만, 여전히 유효한 사업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안전하고 위계 없는 문화가 조성되면 지속할 필요가 없지만, 아직까지는 그렇지 않으니까요. 근데 공모하고 심의하는 데도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거예요. 예산이 없는데 진행할 수 있겠냐, 그래서 총 8명의 운영단이 있었는데, 4명으로 줄이고, 1년을 더 가져갔죠. 사건이 발생하고, 급하다 보니까 거버넌스 안에서 TF팀처럼 꾸려졌고, 지속적으로 이어가려는데 예산이 줄면서 연임을 하게 된 거죠. 외부에서 변화가 있으면 자꾸 거버넌스 활동을 흔들어대요. 불안해요. 올해는 성평등 탈위계 문화 조성 사업을 안정적으로 뿌리내린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리고 외부로 확장해나가는 것.
황유택
거버넌스라는 체계가 흔들리고, 예산이 변경되고, 충분히 그럴 수는 있죠. 문화예술의 거버넌스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거버넌스가 기관장이나 지자체장이 바뀌면 매번 엄청 흔들려요. 사실 예산의 편성 권한이 기관장에게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버넌스 체계는 여타 떠오르는 위원회와는 다르거든요. 결국 시민성의 발현인데, 이 가치를 충분히 알고, 예산을 삭감하더라도 중심 가치가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결국, 개별 거버넌스 참여자들 간의 교류와 현장 문화예술계가 계속 연대해야 되는 미션이 있는데, 사실 그게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일부 현장에서는 거버넌스 참여자들에게 친 재단 거버넌스니, 독식을 한다느니. 이런 얘기가 나오고 있는 거죠. 우리는 생태계 구성원으로서 무언가를 대표해서 온 게 아니라 연대하는 조직이라는 이야기를 같이 해보면 좋겠어요. 그런 이야기를 해야 흔들리지 않는 거버넌스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수희
저는 청년예술청 하면서 신촌문화발전소나 서교예술실험센터를 바라봤거든요. 저기는 굉장히 독특하다. 그러면서 재미있는 사업들을 주목하게 됐어요. 예산 분배 토론회를 한 적이 있는데, 너무 신기했어요. 보통 지원서를 내면 예산은 심사위원이 깎는다, 이렇게 알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예산을 써내고 그 예산이 타당한지 안 타당한지에 대해 참여자가 토론하고, 모자라면 더하고 넘치면 빼는 식으로 해서 예산에 대해 토론을 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이강호
서교에서 가장 브랜딩이 된 사업은 ‘소액多컴’이었어요. 정산이 필요하지 않고 시드머니를 100만 원 제공하는 사업이었는데, 저한테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지원 체계 시스템을 처음 접했거든요. 기획했던 것 중에 가장 기억나는 건 이라는 사업이었는데요. 코로나 터지고 나서 ‘어떻게 연극이라는 장르를 정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시도를 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을 했고, 기획자면서 참여자이자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동료로서 너무 재밌게 작업했던 것 같아요. ‘소액多컴’은 작년에 사업 개편하면서 ‘링크’라는 공성장형 창작 지원 사업으로 개편이 됐어요. 작년에 커뮤니티성의 과정 지향성에 중점을 두면서 개편했고 올해는 보완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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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
황유택
예술청은 계속 합의하는 과정이에요. 시간이 많이 걸리죠. 예술인들이 보장받아야 할 사회 안정망, 인권, 문화권이나 반차별, 이런 고민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인의 창작 역량 강화에 대한 고민도 있잖아요. 계속 부딪치면서 절충해 나가고 있는 거죠. 저작권만 해도 도대체 왜 저작권이 중요한지, 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계약서는 어떻게 쓸까, 같은 실무적인 단위의 이야기도 해야 하거든요. 담론과 실무에 대한 생각이 계속 맞물려서 가는 거 같아요. 그렇게 같이 운영을 하는 입장이어서 재밌어요. 공간 운영이나 예술인 상담센터는 예술청 팀원분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해요. 저희도 피드백 드리면서 서로 간의 역할을 계속 나누고 있어요.
그런데 잘 조율되지 않는 문제는 예술인들의 활동비 문제에요. 공론장, 사회안전망, 예술 노동, 이런 얘기를 하면서 활동비에 대한 이야기가 안 나올 수 없거든요. 창작을 하면서 결과가 나오지 않아도 예술가들은 활동을 지속하잖아요. 그런데 예술청에 시간을 내서 생산적인 활동을 하면서도 이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죠. 왜냐하면 행정실무 기준에는 활동비에 대한 근거가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산출 기초도 없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재단 직원들도 공감과 실행에 대한 부담을 동시에 갖고 있어요. 공감하면 같이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행정적인 문제 때문에 실행할 수 없는 게 말이 되냐, 그런 문제제기도 있고요. 어쨌든 완벽한 거버넌스는 사실 아직까지는 없다고 생각하고, 거버넌스에 대한 시스템을 같이 만들어 나가고 있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문제 제기와 논의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전문성 #현장

황유택
거버넌스가 기획자 집단도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프로그램 실행보다 담론이나 정책, 이슈,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하고 싶어요. 거버넌스 운영이 프로그램 기획에만 초점이 맞춰지면 그냥 사업 기획단이라고 부르는 게 더 낫지 않나. 작년 예술청에서 저희가 구성하고 설계한 사업 규모가 커서 운영은 용역 업체에 맡긴 경험이 있거든요. 실행하면서 서로 모니터링하고 운영되는 걸 점검하는 것도 괜찮았는데, 우리가 나름의 전문성을 갖고 여기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면서도 논의를 하게 되면 다른 전문가 집단에 대한 이야기가 지속적으로 나오게 돼요. 운영단에서 논의한 내용에 대해 전문가 자문이나 공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물론 여러 가지 방법들을 잘 강구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거버넌스라는 게 현장 예술가들과 거버넌스 주체들의 자력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강호
거버넌스의 전문성이란 말에는 저도 고민이 많은데요. 전문성에 대한 질문이 과연 거버넌스에 한해서 유효한 질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거버넌스는 전문성보다는 당사자성을 더 큰 속성으로 갖고 있는 체계라고 생각하거든요. 전문성이라는 말이 거버넌스와 예술 생태계를 더 거리감 있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제가 지금 참여하는 회의 중에 서울청년예술인회의가 있는데, 여기에는 예비 예술인 혹은 지금 진입 단계 예술인, 활발히 활동하는 예술인, 다양한 층위의 예술인들이 계세요. 다들 어떤 분야의 전문가라고 생각을 해서 거버넌스에 참여한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있는 층위에서 당사자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바로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참여한 거예요. 그게 거버넌스의 중요한 속성이 아닐까요.
김수희
저희가 지원서를 쓰잖아요. 떨어지면 이게 왜 떨어졌을까? 뭐가 문제인가? 심사를 누가 하나? 그런 의문이 생기고, 심사평을 면밀히 읽어보는데, 왜 떨어졌는지 잘 모르겠어요. 누가 좀 얘기해 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도 없잖아요. 그 많은 지원서에 어떻게 일일이 다 코멘트를 해요. 불가능한 거죠. 지원에 선정되신 분들은 열심히 사업을 해요. 급하게, 급하게 사업을 하는 거예요. 1년 안에 끝내야 되니까. 거기에 e나라도움 정산까지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저는 그게 가장 힘들었거든요. 사업 설계하면서 그런 지점을 녹여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전문성이 아니라 현장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이라는 지원 사업을 제안했어요. 정산 안 하는 사업을 하자. ‘소액多컴’도 검토했어요. 그러면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을 최대치로 끌어올렸어요. 500만 원까지 올렸거든요. 그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100만 원이 최대였어요. 그리고 지원사업에서 신청자나 선정자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있거든요. 전체 지원자를 대상으로 진행하지는 못했지만, 선정자들 대상으로 1:1 가이드 겸 인터뷰를 진행했어요. 심사위원 혹은 사업 설계자와 선정자 간의 스킨십을 만들어내는 거죠. 우리가 이 사업을 왜 설계했고, 과정은 무한히 열려 있다는 애초의 기획 의도를 얘기할 수가 있었어요. 그게 현장성이죠. 그리고 전문성이죠. 그 이후에 지금 한국문화예술위원회도 그렇고 서울문화재단도 그렇고, 500만 원 규모의 과정 지원이 엄청 많아졌어요. 현장에서 지원서를 쓰고 지원금을 받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얘기할 수 없었을 거라는 자부심이 있었죠.
황유택
저는 누가 전문가인지 잘 모르겠어요. 학위 여부나 현장 경험 정도로 전문성을 따지는 것 같기는 해요. 근데 거버넌스에서는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공익적 차원과 입장에서 안전한 실패의 장들을 여러 번 만들고 그 시도를 통해서 무언가를 생성해내야 하는데, 아무래도 과거의 경험들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안전한 방식을 자꾸 찾게 되거든요. 심사 방식이나 동료 평가제, 예산 분배에서 참신했던 방법이 점점 줄어들고, 기존의 전문가 심사라고 불리는 형태로 다시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기관들이 현장과 현장 예술가들의 참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봤으면 좋겠어요. 최근 들어 과거로 회귀한 형태로 해석하거나 추진하는 추세가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거버넌스가 정말 왜 필요한지 질문이 필요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고용보험 논의에서 제도나 법에 대한 전문가들이 필요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성평등이나 사회 안전망, 창작에 대한 것들은요? 이전에 문화예술가들, 특히 청년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 사업은 거의 다 인큐베이팅, 육성 사업이었거든요. 결국에 현장이나 청년이나 모두 미성숙하거나 부족한 사람들이 아니고 다 자기 위치에 존재하는 것인데, 마치 이들이 어떤 정상 궤도에 올라가야지만 실력을 인정해주는 방식이 회귀하고 있는 것 같다는 감각을 최근 다시 목격하게 돼요.
이런 책임에는 지금까지의 거버넌스가 제대로 역할을 못 했을 가능성도 분명 크다고 생각해요. 그것 또한 거버넌스 안에서 진단이 필요하지 않을까. 사실 거버넌스에서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저희의 전문성을 인정받기보다는, 말씀해주신 대로 문화예술계 현장과 계속 스킨십을 만들어나가는 식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거버넌스에 대한 마주침을 계속 만들어 내고, 특정 전문가 그룹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동료로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스킨십의 발현이 필요해요. 거버넌스가 흔들리거나 사라지는 것에도 같이 연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러면서 현장이 거버넌스에 대한 연습을 계속하는 거죠.
이강호
거버넌스에 대한 거리감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거버넌스에 간 거잖아요. 기획 사업이나 지원 사업 위주의 거버넌스 활동이 아니라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공론장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거버넌스 형태가 되어야 거리감을 좁힐 수 있지 않을까요. 근데 어떨 때는 그 거리감을 꼭 좁혀야 하는지도 생각하게 돼요. 주체로 참여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을 거버넌스와 함께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만으로도 사실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황유택
결국 거버넌스라는 것은 예술인들이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는 방법 중에 하나의 도구일 뿐인 거죠. 근데 이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장을 열고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관에서 배포하는 귀찮은 설문조사도 진짜 적극적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 10분 정도의 시간을 투여하는 거지만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기관에 전달되고, 중간에 거버넌스 조직이 있다면 그 거버넌스에 전달이 되거든요. 기관과 거버넌스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얻고, 그걸 통해서 실태를 알 수 있어요. 거버넌스가 직접 활동하고 스킨십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도 있지만, 현장 주체들이 일상에서의 소통 창구들을 많이 이용하고 참여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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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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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주

이연주 본지 편집위원
연극 쓰고 연출합니다. thukushi9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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