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방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지쳐서 당분간 아무 일도 하고 싶지 않아지는데 그럼에도 걷는 것만은 왜인지 계속할 만했다. 할 만하다기보다 하고 싶어진다. 주로 서서 일을 했기 때문인가 피곤하지만 좀더 걸으며 바람을 맞으며 노동의 기운을 조금 씻어내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문득 꽤 오랫동안 개의 가죽을 뒤집어쓰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그것을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
  그날도 일이 끝나고 한참을 걸었다. 길에는 사람들이 오가고 사람들은 개를 산책시키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걷기도 하고 가게들이 있고 모자와 슬리퍼가 가게 앞에 정리되어 있고 빵 가게가 있고 세탁소가 있고 많은 것들이 있다. 일을 마치고 나와 거리를 걸으면 그 모든 것들이 평소와는 다르게 보이는데 스스로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그저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라 이 근처 어딘가를 지키는 사람과 같은 감각으로 공간을 차지하는 사람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감각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 감각을 가진 채로 걷고 걷다보면 그저 지나가는 사람 스쳐가는 사람의 감각을 조금씩 되찾게 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 씻기 전까지 그 감각을 완전히 되찾지는 못하고 어느 정도는 일하는 곳 근처의 공간을 차지하는 사람의 감각을 가진 채로 돌아오게 된다. 살아가는 공간에 평소와 같은 감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 늘 언제나 가능한 것 같지는 않다. 평소와 같은 감각은 의식하면 사라져 있고 고개를 돌리면 방은 평소와 다른 모습으로 있다.
  일을 마치고 밥을 먹었지만 왠지 허기진 기분이 들어 아침에 가방에 넣어둔 빵을 먹기 위해 인적이 드문 골목에 멈춰 서서 아침보다 딱딱해진 빵을 먹었다. 빵을 먹다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바라보았을 때 시무룩한 표정을 한 다리가 짧은 얼룩 개를 보았다. 개는 멈칫거리며 다가올 듯하다가 거리를 두고 서 있었다. 내가 개의 털가죽을 쓰고 개가 되었을 때 나는 저런 시무룩한 얼굴의 크지도 작지도 않은, 아니 작은 쪽에 가까운 개였다. 하지만 내가 나의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어쩌면 그다지 시무룩하지 않은 개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저편에 개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빵을 먹었다. 천천히 먹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허기져서인지 금세 다 먹어버렸다.
  학생 때 공부를 잘했다거나 미술 실기 시험 준비를 했다거나 육상부였다거나 아니면 이십대 때 내내 술을 마셨다거나 합격하기 어려운 시험공부를 했다거나 한 친구와 줄곧 함께했지만 그 친구가 외국으로 갔다거나 그런 식으로 어느 시기에 몰두했으나 이제는 더이상 하지 않는 일들이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런 일을 했었구나 문득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 단거리 선수용 신발이나 오래된 운동복 같은 물건, 혹은 삭제하려고 열어본 메일함에서 발견한 이름 같은 것을 보고 비로소 떠올리게 되는 것들. 나는 그것을 일을 하고 돌아가는 골목에서 시무룩하고 잔뜩 주변을 경계하고 있는 개를 보고 떠올렸다. 개는 어느 곳에나 많은데 사람 없이 혼자 다니는 개는 오랜만이었다. 도시의 개는 대개 사람과 함께였고 사람과 함께 있는 개를 보면서는 내가 이전에 종종 개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저 개는 저 사람과 함께 하는군’ 같은 생각을 할 뿐이었다. 내가 털가죽을 쓰고 개가 되어 골목을 오갈 때 내 옆에 사람은 없었고 나는 잠시 개가 된 사람이었으므로 오가는 사람들을 판단하며 안전을 가늠하며 인적이 없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가끔 개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을 볼 때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쉬기도 했다. 하지만 보통은 사람이 없는 골목에 앉아 쉬다가 사람이 없는 곳으로 없는 곳으로 뛰다가 걸었다. 그렇게 네발로 뛰며 시간을 보내다보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갈 마음이 들고는 했다.
  말을 하다보면 말을 하는 것이 힘들고 그럼에도 어느 때나 잘 떠들고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었는데 종종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 괴롭게 느껴지고 어느 날 눈을 뜨면 그 괴로움이 몸살처럼 온몸을 사로잡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개가 된 것은 아니고 대개는 이런 날이 있을 수 있다 하고 몸을 일으켜 일을 나가고 청소를 하고 할 일을 할 때가 대부분이었는데 그러다가도 아무도 보지 않는 인적 없는 골목이나 텅 빈 상가 화장실에서 문득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가벼운 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자주 벌어졌던 일은 아니었고 두 달에 한 번 정도였을까. 대개 속초에 살던 때의 일이었다. 개가 되면 왠지 발걸음이 가벼워져 무작정 뛰게 되었고 나는 사람으로 나를 기억하지만 개일 때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하지 않았다기보다 생각이 나지 않아서 떠올리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뛰고 나면 모든 것이 그럴 만한 일로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늘 마음 편한 것만은 아니었는데 누군가에게 끌려가서 죽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발로 차이거나 담뱃불에 지져질지도 몰랐다. 그러고보면 나는 사람이므로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사실 어떤 사람을 경계해야 할까 어느 정도는 감지되는 것이 있을 테지만 그것은 개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완전히 확신을 가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람이 없는 곳을 뛰어다녔다. 그럼에도 개인채로 종종 어떤 사람을 알게 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을 잊고 지내다 십여 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주눅 든 기운 없는 개를 보고서야 내가 어떤 사람들을 알고 지냈다는 것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이제는 말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개가 되지는 않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그런 식의 변화가 그 나름의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는 힘든 일에 마음 깊이 힘들어하는 에너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힘들어하다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될 때 털가죽을 뒤집어쓰고 개가 되었다.
  나는 일하는 식당에서 싸게 산 당근절임을 반찬통에 옮겨 담으며 내가 만났던 사람들과 개로서 안전함과 쓸쓸함을 동시에 느꼈던 장소들을 떠올렸다. 개가 되었던 장소는 모두 한국으로 외국에서 개가 된다면 넓은 바다나 숲을 뛰어다닐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보호되거나 여권을 호텔 방에 둔 채로 종적을 감춘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서 외국에서는 늘 사람으로만 지냈다. 거침없이 개가 되지만 알 수 없는 지점에서 소심한 선택을 하고는 마는 것이다. 식초에 절여진 야채의 냄새를 맡으며 다리가 짧아서 조금 답답하고 애처로운 느낌을 주는 개로 실컷 달렸던 시간을 떠올렸다. 이제는 거의 잊어버린 오래전의 시간들. 멍하게 그때를 떠올리다 가능하다면 그것을 짧게 정리해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은 골목에서 빵을 다 먹고 집으로 돌아와 터미널 근처 빵집에서 산 잡곡 식빵과 당근절임, 삶은 계란으로 늦은 저녁을 가볍게 먹었다. 얼마 전에 산 플라스틱 욕조에 따뜻한 물을 채우고 몸을 담근 채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다시는 개가 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지금보다 나이가 들어서 삼십 년쯤 후에는 다시 개가 되기 위해 털가죽을 뒤집어쓸지도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개가 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물속에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달리 말하면 개가 될 에너지가 부족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개로서 살아가는 기분도 거의 잊어버렸다. 누군가 내게 ‘너는 그때 그런 기분이었지’라고 알려주면 조금은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그렇군요’ 하게 될 것 같았다. 아마 방금 들은 설명과 정반대되는 설명을 어느 날 듣는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대체로 수긍할 것만 같았다. 대부분의 감정과 기분이 휘발되었으니 기억을 더듬어 몇 가지 사실들을 사실이라 기억되는 것들을 적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나는 그것을 간단하게라도 해보려 한다.


1. 속초에서

내가 가장 오래 산 도시는 서울인데 서울에서는 늘 사람으로 지냈다. 외국에서 사람으로 지낸 것과 비슷한 이유인데 서울은 사람이 많고 보는 눈도 많고 어쩌면 일이 복잡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도 무서웠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보살핌을 받는 것도 무의식중에 경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면 다시 사람으로 돌아가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집을 도망 나와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는 있겠지만 마음먹고 그러면 되겠지만 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나를 안아주는데 도망쳐야 해요? 그 답을 찾을 수 없을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그런 이유들로 그게 다는 아니지만 서울에서는 개가 되지 않았고 될 필요성은 가끔 느꼈지만 내키지 않았다.
  속초에서 개가 되어 뛰어다녔던 곳은 교동과 청학동, 금호동 일대이다. 이 일대는 사람들도 많이 오가고 아파트도 많고 상점들도 많지만 잘 찾으면 한 블록 건너 인적이 없는 골목들도 많았다. 나는 오래된 텅 빈 여관과 두 자릿수 국번의 전화번호가 창문에 붙어 있는 역시나 텅 빈 학원 건물 사이를 뛰어다녔다. 나는 대체로 아무와도 마주치지 않았고 건너편에서 사람이 다가오면 눈을 마주치지 않고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여관 맞은편 상가에 앉아 있던 파마머리의 할머니가 여관에서 나오는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멈추지 않고 달렸어야 했는데 잠시 머뭇거렸다.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 나를 안은 채 원래 앉아 있던 의자로 돌아갔다. 나는 할머니 무릎에 웅크린 채 안겨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이대로 가다가는 할머니의 집으로 함께 가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몸을 털며 일어나 달려갔다. 그건 밤이 되면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낮에는 봄의 냄새가 멀리서 다가오는 2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하지만 대개는 혼자 이곳저곳을 뛰었다. 바닥의 냄새를 강하게 느끼며 바람의 냄새를 미리 감지하며 속초의 구석을 뛰었다. 개가 되면 무엇보다 냄새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비냄새는 멀리서도 강렬했다. 비가 오기 전부터 멀리서 흙냄새가 섞인 물냄새가 강하게 맡아졌고 마음속으로 비를 준비하게 했다.

멀리서 바다 냄새가 난다고 늘 생각했다. 그것은 개일 때도 사람일 때도 느끼는 바이지만 개일 때 더욱 강렬히 느낄 수 있었다. 바다는 넓고 트였고 그 때문인가 바다에 가는 것은 외국에서 서울에서 개가 되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로 조심해야 할 일처럼 여겨졌다. 지금 생각하면 사람이 없는 바다라면 괜찮지 않았을까 싶지만 나를 가려주는 것이 없는 탁 트인 곳이라는 것이 왠지 개가 될 수 없게 했다. 그러고 보니 개가 되어도 무엇인가를 아니 어쩌면 사람일 때보다 어떤 것들을 조심하며 살았다. 그래서 속초에서는 사람으로서만 바다 주변을 산책했다. 개일 때 바다를 산책했다면 더욱 신이 나고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든다.
  속초에 살던 때에는 가끔 차를 타고 낙산 해수욕장에 가기도 했다. 이웃에 살던 친구가 속초에 살며 양양에 있는 낙산 비치 호텔의 시설 관리 일을 했는데 사십 분에 한 대쯤 지나가는 버스를 타고 낙산에 갔다가 그 친구의 퇴근 시간에 맞춰 함께 속초로 돌아오고는 했다. 친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대에 갔다가 제대를 한 뒤 호텔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아마 제대를 한 뒤 호텔에서 일을 하기까지 이런저런 일을 한 듯했지만 그때는 그것을 물어보지 않았다. 왜인지 조심스러워 물으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지금이라면 아무렇지 않게 물어볼 수 있을 것 같다. 너 고등학교 때 조금 놀지 않았니? 친구들은 뭐해? 왠지 친구는 어이없어하며 웃기지 말라고 할 것 같다. 그 친구 이름은 진교였는데 어느 날 진교와 낙산에서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흰 스피츠 한 마리가 천천히 다가왔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다가왔지만 분명 시선은 우리를 향해 있었다. 둘 다 손에 든 것은 커피뿐이라 진교가 편의점에서 소시지를 사와서 주었지만 왜인지 먹으려고 들지 않았다. 나는 말을 하고 싶지 않을 때 답답함이 차오를 때 털가죽을 뒤집어쓰지만 그렇다고 모든 개의 마음을 알 수는 없다. 진교는 천천히 부드럽게 스피츠를 쓰다듬었다. 우리는 개가 너무 깨끗해서 주인이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진교는 개를 데려가고 싶어했다. 진교의 집은 내 집보다 조금 넓었지만 우리는 모두 좁은 방 하나와 주방과 이어진 거실이라기에는 역시나 너무나 좁은 공간으로 된 오래된 빌라에 살고 있었고 개를 데려갈 형편은 아니었다. 사실 좁은 집이어도 개와 함께 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때 우리는 스스로가 그럴 형편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뿐이다. 진교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개를 내려놓고 갔다. 돌아오는 길에 방금 전의 진교의 얼굴을 떠올리며 문득 어느 날 내가 개가 되어 진교 앞에 나타났을 때 이 사람은 아마도 나를 데려갈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니 나는 흰 스피츠가 아니고 조금 시무룩해보이는 얼룩 개이므로 진교는 나를 잠깐 보고 조금 볼품없는 개라고 생각하며 스쳐지나갈지 모른다. 진교와 내가 함께 있다 내가 갑자기 얼룩 개가 된다면 그때는 그러면 나를 데려갈지도 모르겠다. 그때의 진교를 떠올리면 특별히 눈에 띄는 구석은 없었지만 시간 약속을 잘 지켰고 지각을 하지 않았던 것이 떠오른다. 약속을 잘 지키고 책임감이 있으므로 내키지 않아도 나를 추운 거리에 버려둘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몰라. 하지만 진교가 어느 날 문득 내 앞에서 개가 된다면 어떨까. 어떨 때는 사람이었던 진교를 떠올리며 그 개를 내 방에 들이겠지만 어느 때는 모른척하고 갈 길을 갈지도 모른다. 지금이라면 어떨까. 글쎄. 요즘은 그런 생각보다는 그때는 몰랐지만 지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무척 드물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속초에서는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처음에는 학원에서 만난 다른 강사들을 경계하고 벽을 세웠지만 다들 내게 별 관심이 없었고 선생님들은 대체로 친절했다. 하지만 그때는 왜인지 누구와도 친해지지 못했다. 아마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를 섣불리 판단하여 경계하고 있는 것을 자연히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 이제야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그런 것이 잘되지 않았으니 개가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수업이 없는 날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기도 했고 바다로 가 산책을 하기도 했다. 속초에 살았으면서도 다른 곳을 찾아다니지 않고 그때는 집 근처 분식점에서 김밥이나 떡볶이를 자주 사먹었다. 롯데리아 햄버거도 자주 먹던 메뉴였다. 속초에 사는 동안 누구도 나를 찾아오지 않았고 회는 진교의 누나가 왔을 때 셋이서 사먹었던 것 외에는 먹은 기억이 없다.
  그렇게 속초를 떠날 때까지 새로운 친구 없이 종종 털가죽을 뒤집어쓰는 일 외에는 수업을 하고 돈을 벌고 도서관에 가거나 시장에 갔다. 가끔 바다를 걷기도 했지만 낙산의 바다가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속초를 떠날 때에도 진교는 여전히 호텔 시설을 관리하고 있었고 그즈음 진교는 개가 아닌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했다. 진교가 길에서 데려온 것은 개가 아닌 검정색과 오렌지색이 섞인 고양이였다. 이후로도 진교와는 종종 연락을 했다. 진교는 몇 년 뒤 골프장 관리일을 시작했는데 이 년쯤 하다 다시 원래 일하던 호텔로 돌아갔다. 관리일이라 비슷할 것 같았는데 골프장일은 잘 맞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2. 선배들과

부산에서는 이 년을 살았다. 속초에서는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부산에서는 커다란 칼국숫집에서 일을 했다. 그 사이에 베를린에 사는 친구네에서 삼 개월 가까이 지냈고 니가타 여행을 갔다가 고등학교 때 일본어 선생님을 우연히 마주치기도 했다. 선생님을 마주치기 전까지 한동안 개가 되어 뛰고 싶다는 것을 의식한 적이 없었는데 왜인지 니가타에서 선생님과 함께 걸었을 때 강렬하게 개가 되고 싶었다. 고민도 크게 없고 (하려고 들자면 끊임없이 이어지겠지만) 여행중이라 즐거운 상태였는데 왜 개가 되어 뛰어다니고 싶었을까. 아마도 무언가를 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니가타도 항구가 있었고 역 주변은 커다란 빌딩이 가득한 도심이었지만 그럼에도 바닷가 동네가 가지는 여러 모습들이 순간적으로 속초를 떠올리게 했다. 속초에서는 개로 자주 지냈지. 그리고 니가타는 물의 냄새가 공기에서 선명하게 맡아졌다. 개가 되어 물의 냄새를 선명하게 맡고 싶었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오래전 선생님을 마주치고 마주친 순간 동시에 서로를 알아보고 지난 시간들이 한순간 휘몰아치고 우리는 각자의 이야기를 터놓으며 즐겁게 이야기했는데 그 시간의 강한 밀도만큼이나 혹은 강한 밀도 때문에 처음 온 이곳을 아무도 없는 구석을 개의 시선으로 낮은 곳에서 보이는 것들을 보고 느끼며 뛰어다니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여 있었다. 선생님을 만난 순간의 놀라움과 이야기를 나누며 생긴 개가 되어 뛰어다니고 싶은 욕망이 지나칠 정도로 팽팽하게 나를 양쪽에서 당기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차분해지는 기분이었는데 그것은 단지 나의 생각일 것 같고 선생님은 그때 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다고 느꼈을까.
  선생님 이름은 강지윤이었고 강지윤 선생님은 나보다 열 살쯤 많았는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를 가르쳤다. 첫 시간에 자기소개로 일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에 있는 회사에서 일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과 각별한 기억이 있거나 했던 것은 아닌데 졸업 후 자주 가던 카페에서 몇 번 마주쳤고 그때마다 짧게 이야기했던 기억이 있다. 선생님이 늘 커피를 사주셨고 서로 짧은 근황을 조금 반가워하며 조금 어색해하며 나누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나 도쿄나 오사카가 아닌 니가타에서 선생님을 마주친 것이 놀라웠고 서로 왜 지금 이곳에…… 하고 놀랐던 순간과 좀더 걷다 선생님이 데려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한 왜 지금 이곳에 관한 이야기가 좋았다. 선생님은 니가타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고 했다.

아니 일본어 선생님이었잖아요.
  일본에서 일본어를 가르칠 수는 없잖아.

나는 웃으며 아니 그렇기는 한데 하며 말했고 선생님도 활짝 웃으며 아니 내가 여기서 일본어를 가르칠 수는 없잖아 하고 재차 답했다. 내가 졸업한 뒤로도 몇 년 더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도쿄로 유학을 갔고 이후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결혼을 했고 남편의 전근으로 니가타로 와서 산 지 삼 년이 넘었다고 했다. 나는 대학을 졸업했고 이곳저곳에서 일을 했다고 간단히 근황을 이야기했다. 이곳저곳에서 일을 했다고 말하는 것이 때로는 어려울 때가 있었는데 거의 쉬지 않고 일을 했는데 때로 무얼 하는 사람인지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드는 것이다. 선생님은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이 맞지 않는 것 같아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는데 그것은 그것대로 만족스럽고 좋았지만 무언가 답답한 기분을 참을 수 없어서 다시 유학을 갔다고 했다. 거기서는 또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했다. 그러다 지금은 또 무언가를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요즘은 가능하다면 회사를 다니고 싶다고 웃으며 말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을 하고 정해진 돈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본가가 부산이었는데 내가 현재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다고 말하자 이모가 부산에서 큰 식당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늘 바쁜 이모가 지난달 큰맘 먹고 사촌들과 니가타에 놀러왔다는 이야기를 하였고 그리고 그 이야기가 내가 부산에 가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식당 매니저로 일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선생님의 소개가 있었고, 여기저기에서 쉬지 않고 일을 했다는 것과 대학 내내 식당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 선생님 이모의 칼국수 가게는 하루 종일 장사가 잘되는 곳이었는데 특히 점심시간에는 쉬지 않고 손님이 몰려드는 곳이었다. 일 년 반쯤 일을 했는데 첫 삼 개월은 너무 힘들었고 그다음 삼 개월은 조금 힘들었고 그 이후로는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조금 힘든 상태로 일을 했다. 그리고 그만둔 뒤로는 또다시 얼마간 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쳤다. 식당 일을 시작하고 한동안은 적응을 하느라 힘이 들어서인지 개가 될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육 개월쯤 지나 일이 몸에 익었을 때부터는 구도심 인근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개가 되어 뛰어다니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곳에서 의외로 할머니들과 마주치는 일이 종종 생겼고 할머니들은 아무 이름이나 나를 향해 불렀다. 나는 어떨 때는 멈췄지만 익숙해지자 쉼 없이 그냥 가던 방향으로 계속 뛰었다. 그러는 동안 할머니들과 함께 있는 개를 마주치기도 했다. 무릎 위에 앉아 있는 머리가 긴 시츄들은 늘 느리게 반응하였다. 나는 시츄가 반응하기 전에 빠르게 뛰었다. 꿈벅꿈벅 반쯤 졸고 있는 개들. 부산역 부근은 바다가 가까웠지만 속초 같은 물냄새는 나지 않았다. 공기에선 먼지 냄새와 모래 냄새가 섞여 있었다. 영도대교를 지나 인적이 드문 창고 앞에서 개가 된 적이 있었는데 바다가 눈앞에 보였지만 창고와 오래된 건물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사이 폐어구들이 쌓여 있기 때문인지 탁 트인 느낌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마음 편히 개가 되어 바다를 따라 뛰었다. 해수욕장이 아니니 모래밭이 있지도 않았지만 바다 냄새를 맡으며 바다를 따라 뛸 수 있었다. 어둠이 깔리고 어디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때 걸음을 멈추었다. 저 멀리 보이는 창고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창고 옆에 쌓인 폐어구 뒤에서 숨을 고르다 다시 사람이 되었다. 고개를 들자 통통한 고양이가 가만히 앉아 엄한 선배처럼 꾸짖는 얼굴을 하고 나를 보고 있었다. 영도는 그 이후로도 종종 들렀는데 언제나 사람인 채였고, 영도의 고양이는 귀엽다기보다 모두 선배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3. 얼룩 개

사람임을 잊은 적이 없고 늘 한두 시간 골목을 헤매고 나면 아무렇지 않게 털가죽을 벗고 사람으로 돌아왔지만 일단 개가 되고 나면 사람의 일을 생각하지는 않았다. 반쯤 잊은 채로 새롭게 보이는 세상을 냄새 맡고 누볐다. 그래서 얼마 전 골목에서 빵을 먹다 시무룩한 개를 마주치기 전까지 내가 종종 개가 되었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개가 되었던 것도 언제 어디였는지 헷갈린다. 부산이었거나 광주 아니면 여주였을지도 모르겠다. 일기를 뒤지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기억이 나는 대로 적어두고 있는 것이니 일단은 더 찾지 않기로 한다. 마지막은 헷갈리지만 그즈음 만났던 목포의 흰 개는 기억한다.
  목포는 진교가 골프장을 관두고 호텔로 재입사를 앞두고 있던 때 함께 여행으로 간 곳이었다. 속초에서 목포는 너무나 멀었는데 사실 너무나라고 말할 만큼 먼가 싶지만 여섯 시간 넘게 운전해야 했으니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멀었다. 나는 서울에서 열차를 타고 갔고 진교는 속초에서 운전을 해서 왔다. 우리는 터미널 근처 호텔 주차장에서 만났다. 나는 그때 베를린 여행에서 산 티셔츠를 뒤늦게 전달했다. 티셔츠에는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나는 호텔에서 일을 합니다 그러니까 나는’이라는 문장이 독일어로 프린트되어 있었다. 그걸 어디서 샀더라. 진교는 식탐이 없었는데 그런데도 목포에서는 평소보다 많이 먹고 맛있다고 여러 번 말했다. 우리는 두 사람뿐이라 시키지 못한 것들을 아쉬워하며 그러나 이미 상에 깔린 많은 반찬들을 즐거워하며 먹었다. 우리는 여객터미널 근처 오래된 호텔을 예약했는데 호텔 방 안에 누구를 위한 것인지 작은 방이 따로 있었고 그 안에 이부자리가 깔려 있었다. 작은 방은 화장실 맞은 편에 있었고 화장실 문과 똑같이 생긴 문이 달려 있었다. 진교는 지나치게 넓은 침대를 내게 양보하였다.

왜 이런 방을 예약한 거야?
  아니 자세히 안 봤지 뭐.

우리는 호텔에서 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봤는데 목포 지역 방송에서는 내일 밤 몇십 년만의 폭설이 예상된다고 제설 작업이 각 지역에서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외출을 삼가고 운전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고보니 공기에서 물냄새가 맡아졌던 것 일기예보에서 눈을 본 것도 같았지만 깊게 생각 안 하고 넘겨버렸던 것이 떠올랐다.

내일 저녁이 되기 전에 움직여야겠다.
  강원도에 비하면 많이 내릴 것 같지도 않은데.

눈이라면 익숙하다 못해 자연스러울 진교가 남쪽 지방에 눈이 내려봐야 얼마나 내릴까 하면서도 일기예보를 유심히 보았다. 돌아갈 시간을 정하지 않았던 우리는 내일은 점심만 먹고 일찍 출발하기로 하였다. 뉴스를 보다 각자 씻고 일찍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 내일 눈을 뜨면 눈이 내리고 있을까 생각했다. 자기 전 나는 침대에서 진교를 향해 ‘고마워’ 하고 말했다. 아마 멀어서 들릴 것 같지 않았지만.
  저 너머에 바다가 있다는 생각을 하며 잠이 들었다. 꿈을 꾸지는 않았던 것 같고. 새벽에 잠이 깨어 눈을 깜박이다 문득 하루 만에 어느새 목포에 익숙해진 기분이라고 생각했다. 여행지에서는 늘 이런 기분에 휩싸이는 것 같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아쉬워진 나는 조심스럽게 옷을 걸치고 길을 나섰다. 어둠은 무섭다. 어떨 때는 괜찮지만 대개는 무섭다. 그런데 왜 빠져나온 것일까. 여객터미널 주변을 따라 걸으며 담장 너머로 쌓인 컨테이너를 보았다. 부산에서도 자주 본 풍경이었다. 한참 컨테이너를 보다 고개를 돌리자 맞은편에서 희고 주눅 든 얼굴을 한 큰 개가 겅중겅중 나를 향해 왔고 흰 개가 다가오는 것과 함께 하늘에서는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없어. 나는 줄 것이 없어. 줄 것이 없어서 개를 따라 잠시 걷다가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는 불 꺼진 버스정류장 근처 의류수거함 뒤로 가 조심스럽게 털가죽을 뒤집어썼다. 흰 개는 의아한 표정으로 멈춰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눈 오는 날 맡아지는 물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뛰기 시작했다. 흰 개는 어떻게 짖을까. 짖을 만한 상황에서도 흰 개는 짖지 않았다. 얼룩 개와 흰 개는 목포여객터미널을 지나 함께 눈을 맞으며 뛰었다. 한참을 뛰다 방향을 바꿔 흰 개를 처음 만난 컨테이너 근처를 향해 뛰었다. 컨테이너와 가까워질수록 멀리서 키가 큰 남자가 우리를 바라보고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냄새로 진교인지 알 수 있었는데 진교는 우리가 함께 흰 스피츠를 쓰다듬었을 때와 달리 조금은 멀뚱한 표정으로 개 두 마리를 보고 있었다. 나는 걸음을 멈춰 진교를 쳐다보았다. 진교는 나를 쓰다듬지도, 흰 개를 쓰다듬지도 않았는데 나란히 서 있는 흰 개와 얼룩 개를 보자 왜인지 픽 하고 웃었다. 왜 웃지. 나는 흰 개와 함께 진교를 지나쳐 뛰었다. 그리고 사람이 없는 트럭 뒤로 가 다시 털가죽을 벗고 사람이 되어 주변을 살핀 뒤 길을 건넜다. 진교는 나를 보고 어디를 갔다 온 것이냐고 걱정이 되어서 나왔다고 했다. 나는 핸드폰을 깜박 잊고 두고 나왔다고 말했다.

눈이 오더라고.
  응, 점점 함박눈이 될 거야.

그렇게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이것이 내가 마지막으로 개가 된 것은 아니지만 그즈음의 일이고 그 이후로 목포에 가야지 가야지 여러 번 생각을 했지만 아직 가지 못했으므로 이것이 마지막 목포 여행이기는 하다.

박솔뫼

소설가. 여러 편의 단편소설집과 장편소설을 출간하였다. 작년에는 『책을 읽다가 잠이 들면 좋은 일이 일어남』이라는 에세이집을 출간하였다. 올해 새로운 단편소설집을 출간할 예정이다.

왜 또 개가 되는 이야기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2025/06/04
7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