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전(萬神傳)



   작두밭


    늑대 남자들은 나무에 앉아 하늘을 울린다. 소맷부리 속의 감나무 씨앗에 놀라 외팔이 남자가 우물 하나를 말려버리고, 오늘 밤의 하늘은 닦지 않은 바닥처럼 지저분하다. 침을 흘리며, 있지 말아야 할 곳에 떠 있는 달의 신통력이 몰려올 무리의 생몰연대를 어두운 창고에 부려두었다.

    어둠 속에서 낡은 사찰이 기어 나오고, 오늘 막 신부와 함께 잠들려던 남자가 달려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자신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지금 막 알아버린 신부가 잠들지 않기 위해 손톱을 뽑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신랑은 무엇을 보았는가. 눈을 감는 순간 길어지는, 목을 더듬어 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아무도 신부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구멍과의 맹세를 저버리고 쥐들은 냄새를 갈망한다. 무덤 위에 놓인 뿔피리와 마루 위의 무명천을 훔치는 것이 쥐들의 일, 죽어서도 붉은 혈색을 가진 시신과 살아 잠든 몸에서 혼이 빠져나가 나쁜 일을 저지르는 사건들의 덕택으로 더 많고, 더 진한 냄새가 태어난다.


   붉은 날


    그러나 잘린 팔에서 돋아나며 피를 빨아들이는 식물은 조금 다른 생각을 갖게 된다. 열매 맺지 못할 싹을 뽑는 자들에게 저주 있으라, 한 몸에 셋이 함께 사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아야 이 길을 지나갈 수 있다. 반드시 나쁜 것을 품어야 안개의 삶은 시작된다.

    붉은 것을 푸르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남자는 영험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볏짚을 모아 불태우는 의식을 마친 뒤, 수레 끄는 남자의 뒤에서 걷는 여행의 길의 결말은 예언된 것, 도착해야 한다. 잠드는 순간 남자의 귀에 속삭이는 것을 사람이나 귀신이라고 부르는 자는 화를 초래한다.

    고향에서 죽은 여자가 남자와 혼례를 치르기 위해 타향에서 태어났을 때, 남자는 일흔여덟의 나이로 하나의 처와 셋의 첩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때 푸른 것이 붉어지고, 껍질을 벗겨 남자에게 다시 청년의 몸과 혼을 돌려준 뒤에, 아름다운 여인 오오키는 네 번째 첩으로 들어가 천수를 누릴 예정이다. 예언을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소문 벽


    결국 수만 번 죽은 것이 개구리로 태어난다. 다리 밑의 아름다운 방랑자와 함께 노닐다 온 사람은 피가 서서히 물로 바뀌어 죽게 된다. 사찰의 견실한 몸종 하나가 거진 죽게 되었을 때, 몸종의 머리에 연못을 만듦으로써 운명을 뒤바꾼 일로 방랑하던 승려가 명성을 얻게 된다.

    가을이 되어 물이 바닥나자 마을 사람들은 몸종의 다리를 잘라 공터에 우물 하나를 심는다. 원하는 이도 없이 벌어지는 악행들로 무쇠솥은 끓어오르고 쇠죽이 여물통에 담길 수 있다. 얼음이 얼면 짚신에 쇳날을 동여맨 아이들과 망치와 낚싯대를 든 남자들이 공터로 모이고, 실눈을 뜬 저녁이 바라보는 것은 두통을 앓는 표정.

    호롱을 들고 돌아와 검을 쥐게 되어도, 승려의 명성에는 흠집 하나 남지 않는다.


    미어(謎語)


    이즈음 장터에는 귓속이 가려워 잠들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난다.


    만신(滿身)


    너무 많은 것들이 몰려나와서 밤의 낯빛이 허옇게 질린다. 저들이 펼칠 의식에 관하여 나무들은 관심을 끈다. 벌거벗거나 털이 달렸거나, 춤사위는 하나같이 비슷해 보인다. 그들을 광신자라고 부르기 위해 열흘 밤낮을 뒤따라온 사내를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아는 자가 없어 모닥불은 버려진다.

    객사한 나그네의 봇짐을 훔치기 위해 숲에 들어온 여자는 재투성이 손목 하나를 들고 나왔고, 여자의 어린 딸이 그것을 자신의 배꼽이라고 믿는다. 손목이 길어지는 동안 다 크지도 못하고 늙어가는 어린애를 보러 여자의 집에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살결이 희고 부드러운 것은 숲의 횡단자들에게 두려움의 대상, 어느 날 혼자 돌아온 나귀는 목이 잘린다.


    옹기의 말


    드디어 피곤할 때가 되었다.

    안짱다리 시동의 등어리에 술상을 차려두고 흥겨운 판이 벌어진다.

    춤을 추는 건 내생이 확실한 이들,

    요절한 여자의 유방을 잘라 속을 파내면 훌륭한 술잔이 만들어진다. 몇 차례 잔을 부딪고 난 뒤, 혹자가 목을 갈라 열목어를 꺼내놓는다.

    혀가 없는 자들의 회합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

    시동의 팔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릴 때마다 잔 속의 술이 요동치고, 불안한 귀인은 비늘을 잡아 뜯는다.

    혹자가 붓을 들어 불참한 자를 기록한다.

    부모의 불경으로 인하여 어려서 눈을 잃었으나 출중한 음색과 능창을 인정받아 신분이 높은 가문에서 소리꾼을 하던 자가 신년을 맞아 사찰에 머물게 된다.

   날이 저물면 주지는 제를 지내기 위하여 인근 마을로 떠나고, 혼자 남아 소리를 키우던 자는 여인의 환상을 상상하려다 울고, 아이가 가지고 싶었던 아낙들이 옆방에서 두두둑 부러져 내리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음력


    다시, 남자는 낮에 떠 있는 달을 보며 눈을 뜬다. 입술에 칼이 꽂힌 채 잠든 자와 바닥의 피를 빨아들이며 간신히 맥박이 뛰는 자들과 함께. 이제 널어둔 몽유를 걷어 공중에 돌려주어야 할 필요를 몸이 느끼고,

    돌아가라고, 생전 볼일이 없었던 여자가 스스로의 이마를 두드리며 운다.

    여자는 또 어느 누구의 누이라고 내게 대답할 것인가,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전에

    헤매며 이루었던 것들이 수면을 흐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계집아이가 삶이 지겹기 시작한 민들레를 꺾었네
    아버지의 치마를 장식하려고 지난밤은 수척하고 아름다웠네
    병상에 누워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의 얼굴도
    계집아이의 기분을 망칠 수 없어
    들판에 핀 민들레의 힘이란 그런 것이지
    해가 뜨기도 전에 계집아이는 들판으로 달려가고
    들판에 들어서면 들판은 계집아이의 것,
    마른 풀들이 굶주림 짐승들이 전속력으로 시들었네
    마주치는 사람에게 던져주려고
    주머니 가득 돌을 채우는 얼굴이 붉고 반짝였네
    저물도록 노랫소리는 들판을 떠나지 않고
    한 아름 가득 꽃을 품에 안고도 계집아이의 눈은 들판을 헤집지만
    공중을 맴도는 왜가리는 알지,
    꽃을 전부 꺾으면 계집아이는 되돌아가야 해 그러나
    꽃을 꺾는 일은 도무지 질리지 않고
    들판의 민들레는 이 모든 것이 지겹기 시작했네
    아무것도 모르고 계집아이는 꽃을 꺾고, 또 꺾고
    들판에 마지막 남은 민들레에게로 손을 뻗었네
    솔기가 터진 주머니에서 돌이 쏟아지고
    이제 들판에 핀 꽃은 하나도 남지 않았네
    병상에 누운 아버지는 한숨도 자지 못하고 계집아이를 부르고
    달빛에 환하게 빛나는 꽃들을 바라보다가, 알아버렸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갔음을

변혜지

입속에 유리구슬 하나를 물고 녹아라, 녹아라. 기도 중이다.
그다음 기도의 내용은 맛있어져라.

2018/10/30
1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