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하는 사람들
보이지 않는 협상들
2025년 10-11월, 연희문학창작촌은 ‘문학으로 모이는 방법들’이라는 만남의 자리를 열었습니다. 그중 4회차로 진행된 11월 27일의 행사 ‘문학×웹진 만들기의 협상들 - 웹진 《비유》 제작과정 살펴보기’를 이번 ‘문학하는 사람들’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이 행사는 2017년에 웹진 《비유》가 창간된 이후 누가 어떻게 웹진을 만들어왔는지, 그 과정에 어떤 고민이 있었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로, 실무적인 고민부터 웹진 《비유》의 시간성과 공공성까지 다양한 갈래의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성연주 편집위원의 이 글은 편집위원진의 고민과 행사에서의 주요 발언을 중심으로, 당시 현장의 풍경과 분위기를 전달합니다.
이메일함을 열면 나도 모르게 수북이 쌓여 있는 메일이 있다. 바로 ‘웹진’이다. 각종 문화예술 기관에서 발행하는 웹진부터 민간의 창작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발행하는 웹진까지, 나는 다양한 웹진을 구독하고 있다. 학교나 현장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들에게도 웹진 구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편이다. 쉽게 만나기 힘든 전문가의 인터뷰나 시의성 있는 주제의 칼럼을 읽을 때면 디지털 시대의 ‘예술 현장’은 대면의 공간이 아닌 웹진으로 구현되는 웹 공간이 아닐까 생각해보곤 한다.
그런데 웹진은 우리에게 항상 정돈되고 완성된 모습으로 존재한다. 웹진의 제작 과정이나 보이지 않는 이면의 논리는 일부러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생각될 때도 많다. 내가 웹진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가진 건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발행하는 웹진 《이음》에 짧은 칼럼을 기고했을 때였다. 분량도 많지 않고 내 생각을 자유롭게 적는 칼럼이니까 상대적으로 편한 마음으로 글을 적었는데, 편집자와 3교까지 수정본이 오갔던 것 같다. 제목도 정말 여러 번 수정했다. 그 경험은 웹진의 방향성이나 목적, 그리고 편집자의 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였을까. 2024년 7월 웹진 《비유》의 편집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그동안 내가 《비유》에 가졌던 애정과 관심 이상으로 웹진을 편집한다는 것, 특히 온라인 문예지의 하나로서 ‘문학 웹진’을 편집하는 일이 무엇일지 기대가 많이 되었다. 편집위원으로 일한 지난 18개월의 경험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협상’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스마트폰으로 《비유》에 빠르게 접속하고, 이 글과 저 글을 유연하게 오가고, ‘이번 호’라는 물질적 감각보다 특정 글이나 시리즈를 손쉽게 탐독할 수 있는 웹진이라는 형식은 편리함과 신속함을 기대하게 한다. 하지만 실제 회의에서는 지난한 협상의 과정이 이어졌고 수많은 대화가 오갔다. 우선 《비유》를 만드는 과정에 동원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았다. 다섯 명의 편집위원, 세 명의 재단 직원, 두 명의 편집자, 디자이너와 일러스트레이터, 웹 퍼블리셔/개발자 그리고 수많은 필자가 얽혀 《비유》가 최종 발행되기까지 함께 돌다리를 두드리며 여러 단계를 건너가야 했고, 그 과정 하나하나는 보이지 않는 협상과도 같았다. 그런 협상 끝에 내놓은 결과물은 웹상에 하나의 게시물로 보일 뿐이다. 이를 가능하게 한 노고를 따로 드러낼 길이 없었으므로 인풋(input)과 아웃풋(output)의 간극을 보며 헛헛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내가 글을 위해 고민하던 시간과 글이 게시되는 시기 사이에는 두세 달 정도의 시차가 되었기에 나의 헛헛한 마음이 과연 과거형인지, 현재형인지, 아니면 미래형이 되어야 하는지, 매체의 특수성과 교차된 시간성 속에서 협상의 고민은 커졌던 것 같다.
연희문학창작촌의 ‘문학으로 모이는 방법들’이란 프로그램 중 2025년 11월 27일에 열린 네번째 모임 ‘문학×웹진 만들기의 협상들 - 웹진 《비유》 제작 과정 살펴보기’는 재단 직원, 편집자 또는 편집위원으로 일하며 경험한 웹진 제작 과정의 구체적인 대화, 고민, 협상을 꺼내놓고 이야기해보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과거 편집위원으로 일한 소영현 문학평론가(2기), 김신식 감정사회학자(3기), 문학잡지 ‘악스트’를 만드는 백다흠 편집장과 현 편집위원 서윤후 시인(5기), 그리고 웹 플랫폼 제작 경험이 있는 김진주 큐레이터와 서호준 시인이 현 편집위원 김신재 큐레이터와 이야기를 나누며 《비유》가 지금까지 만들어온 것, 만드는 과정에서의 고민,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지점을 차례대로 짚어보는 시간으로 구성되었다.
이 행사의 테마를 협상으로 엮게 된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비유》가 ‘웹진’이란 플랫폼을 추구하면서 생기는 당연한 질문과 고민을 꺼내서 공유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웹진은 책으로 발간되는 다른 문학잡지와 어떤 점에서 다를까? 나는 사회/커뮤니케이션 카테고리를 기획하고 세부 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다른 문학잡지를 중요하게 참고하곤 한다. 이번 행사에서 백다흠 편집장이 언급한 것처럼 ‘문학잡지가 책의 형태이든 웹진이든 모두 권두언과 기획의 말에 이어 문학과 타 매체와의 협업 프로젝트, 기획 에세이 등이 균형감 있게 수록된다’는 점에서 두 매체의 큰 구성은 유사하다. 그러나 문학잡지는 설령 독자가 잡지에 담긴 글을 선택적으로 찾아 읽는다고 하더라도 책이 기본적으로 가진 물성 때문에 상대적으로 한 권의 책에 담긴 글을 한 맥락에서 이해하게 된다. 반면 웹진은 같은 호에 발행된 글이라도 이 글들이 모두 각자만의 세계를 구축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때로는 ‘같은 호’라는 정체성보다 ‘같은 코너(예: 비평 교환)’에 놓인 글들을 연이어 읽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맥락에서 ‘과연 같은 호에 발행된 글을 하나의 기획으로 강하게 묶어 놓는 것이 웹진이란 플랫폼에서 얼마나 적절하고, 또 가능한가’ ‘문학 코너에 게재되는 시, 소설과 비문학 작품을 연결하는 메타적 기획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질문이 매달 편집위원 회의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웹진 고유의 ‘시간성’에 대해서도 종종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다른 문학잡지를 보면 예컨대 계엄이라거나 시의성 있는 주제를 발 빠르게 기획으로 편성하는 경우도 많다. 반면 우리가 느꼈던 《비유》의 시간성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비유》를 읽는 사람들은 이 글이 빠르게 기획되고 바로 집필로 넘어가서 순식간에 업로드된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비유》에 게재되는 글은 네 달 전에 청탁이 들어가고 두 달의 편집 과정을 거쳐 세상에 나온다. 시의성 있는 주제를 기획하더라도 이 글이 여섯 달 뒤에 공개된다는 점을 잘 알기에 필자를 섭외할 때도 가장 감각적으로 현재를 짚어줄 수 있는 사람보다 주제의 맥락을 역사적인 흐름 속에서 조명하고 오래 곱씹어 읽을 만한 글을 써줄 수 있는 사람을 청탁하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때로는 이렇게 공들여 청탁한 이후 갑자기 터진 문학계 사태나 사회적 사건으로 인해 편집위원이나 필자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더 이상 그 글을 실을 수 없게 되기도 하였다. 웹진이라서 속도가 빠를 수도 있지만, 되려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우리만의 고유한 시간의 흐름 속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시간성은 무엇인지 고민이 이어졌다.
이처럼 웹진이라서 새롭게 경험하고 고민하게 되는 협상의 지점을 일일이 설명하자면 끝이 없겠지만, 이번 행사는 상세하고 구체적으로 웹진 제작기를 논하기보다 주요 매체(문예지)들이 수십 년 동안 구축한 공고한 문학 생태계 속에서 비유가 수행해온 협상이 무엇이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로 귀결되었다. 예를 들면 소영현 문학평론가는 미등단 작가를 발굴해온 《비유》의 지향점에 대해 신진 작가에게 주로 지면이 제공된다고 해서 문학잡지 자체가 젊어지거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며, 문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하다’ 코너의 작업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신선하고 혁신적인 기획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장르 간 경계 허물기가 예술계의 보편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을 때 《비유》가 어떻게 융합과 혁신의 방향성을 재설정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런 논의는 자연스럽게 《비유》가 가진 공공성에 관한 이야기로 나아갔다. “공공기관에서 만든 웹진을 한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다” “공공기관으로서 글의 내용에 대해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 “공공적인 차원에서 이 글을 싣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등. 《비유》가 수행해온 경계 넘기와 확장의 원천이 만약 공공적 관점이라서 가능했던 것이라면, 과연 이런 방향성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를 나 스스로에게도 자주 물어보곤 한다. 공공성이란 화두는 서윤후 편집위원과 백다흠 악스트 편집장과의 대화에서 특히 깊게 논의되었다. 민간 문학잡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성이나 경쟁에 덜 민감해도 되는 특성 덕분에 오히려 세월호나 작가 선언과 같은 문학계의 사회적인 이슈를 잘 담아낼 수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나누며, 백다흠 편집장은 《비유》가 공공성의 차원에서 지속해야 할 것은 민간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뚝심 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아카이빙’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맞는 말이다. 백다흠 편집장이 “《비유》는 자체적으로 아카이빙이 가능하다”고 말한 것처럼, 이미 웹 플랫폼에 모든 글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되어 있고 심지어 ‘큐레이션’이라는 코너를 통해 정리된 글을 다시 주제화하고 찾아 읽는 방법을 제안하기까지 하니, 아카이빙에 특화된 매체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웹진은 어떤 면에서 물질로서의 책보다 위태롭고 허약하다. 서윤후 편집위원이 경험한, 본인이 참여했던 지원사업의 도메인이 사라지면서 자신이 작업했던 글까지 그 자취가 깨끗하게 지워진 경험이나, 서호준 시인이 다른 동료들과 시도했던 ‘던전(온라인 문학 플랫폼)’이 더 이상 도메인을 유지하지 못해 기존 글을 확인하기 어려워진 것처럼 가장 손쉽게 글을 올릴 수 있는 웹진은 역설적으로 가장 손쉽게 글을 지우고 플랫폼을 없앨 수도 있다.
이날 모임의 마지막 라운드테이블에서는 그런 맥락에서 《비유》의 미래를 그려나가기 위해 다른 종류의 웹 플랫폼 운영자 두 분을 모시고, 각자의 경험과 고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진주 큐레이터는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연구실 ‘세마 코랄(SEMA Coral)’의 제작기를 간략히 설명했는데, 키워드를 부각하고 이를 통해 다양한 작가와 작품 사이에 연결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플랫폼’으로 확립한 점에서 《비유》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서호준 시인의 ‘던전’도 창작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매개체의 정체성을 확고히 했기에 이 또한 《비유》와는 달랐다. 하지만 이런 차이점과는 별개로 결국 ‘웹’이 가진 보이지 않는 특성으로 인해 더 많은 협상과 고민의 과정이 수반되고 그런 점에서 유사한 제작 과정의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 이날 행사에서도 많이 드러났던 것 같다.
이런 다양한 논의와 담론을 돌고 돌아, 결국 《비유》는 어떤 문학잡지가 되어야 할까? 《비유》라서 해야만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의 이야기로 돌아와보면, 《비유》는 편집위원에게 자율성과 독립성이 부여되는 만큼 편집위원으로서는 더 뚝심 있게 하고 싶은 걸 해볼 수 있는 장이라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나는 ‘문학하는 사람들’이란 코너를 만들고 운영하며 내심 삐딱한 마음으로 “어디서도 하지 못하는 문학계 이야기를 여기서 만큼은 직설적으로 해보자”는 개혁가의 마음을 품기도 했는데, 나뿐만 아니라 다른 편집위원 모두 주제나 기획 면에서 더 자유롭게 해볼 수 있는 것을 꿈꿨던 것 같다. 특히 ‘해상도 높은 장면’ 코너에서 책이었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사운드나 영상을 담는 글을 읽을 때면 새로운 세계가 확장되는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고민과 협상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여전히 편집 과정에서 어려움은 존재한다. 공들여 구성한 기획과 상당히 무관한 글을 작가가 보내기도 하고, 나의 기획이 작가에게 도달했을 때 과연 우리는 얼마나 소통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 적도 많았다. 때로는 나의 기획 의도와는 무관하게 생각하지 못한 방향의 글이 오히려 독자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었을 때 그렇다면 편집위원에게 필요한 역량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지도 고민이 되었다. 새로운 편집위원으로 일하며 지난 편집위원이 남겨놓은 유산을 혼자 만지고 두드려보며 나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는 과연 《비유》의 지속가능성은 무엇을 통해 담보되는 것일지 자문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보이지 않는 독자를 상상하고 상정하며, 그들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전제하에 뭔가를 기획하고 추진할 때면 독자가 눈앞에 나타나주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이번 행사를 통해 우리가 《비유》를 본격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 웹진의 지속가능성과 미래를 한 번 점쳐본 것이 유의미한 출발점이 아니었나 싶다. 이 글을 읽는, 보이지 않는 독자들이 수면 아래 백조의 무수한 물장구처럼 고요한 《비유》의 화면 뒤에 다양한 사람들의 협상이 존재함을 상상할 수 있다면, 다음의 대화 자리는 좀 더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것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성연주
웹진 《비유》 4기 사회/커뮤니케이션 카테고리 담당 편집위원. 예술과 사회가 만나는 지점에 관심을 가지고, 정책 설계, 컨설팅과 조사/연구를 하고 있다. 현재 한국방송통신대 문화교양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웹진 《비유》를 만드는 일은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밌고 흥미롭고 또 많이 배우는 시간이다. 가끔은 편집위원의 고민이나 기대를 독자들이 알아주길 기대하고, 독자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보곤 한다.
2026/02/18
7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