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없는 괴물, 혹은 시선과 마주하기
사막별의 오로라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2>
윤성호_극작가·연출가
제127호
2017.11.09

하이드비하인드라는 정체불명의 괴물이 도시에 출몰하고, 사람들은 그로 인해 공포에 질린다. 그러나 그 괴물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즉, 괴물에겐 실체가 없다. 혹은 알 수 없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포가 우리를 옭아매고, 행동의 동기가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윤성호
- 먼저 간단히 공연 소개 부탁드릴게요.
- 황은후
- 저희가 3월에도 공연을 했었는데 그때는 여성들이 겪는 여성강박과 외모노동의 어려움에 대해서 탐구했었는데. 여자배우로서 겪는 어려움에서 출발하다보니까 확장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이번에 다시 청년예술단에 선정되며 기회를 얻어 긴 프리프러덕션 기간 동안, 단지 여자배우들의 이야기가 아닌, ‘하이드비하인드’라는 존재를 통해 좀 더 보편적인 이야기로 확장하려고 했습니다.
- 권세미
- 조금 부연하자면 ‘하이드비하인드’라는 존재에서 이야기가 확장이 되었다기 보다는, 저희가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는 구조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네가지 정도의 카테고리를 통해서요.
- 윤성호
- 오 그 카테고리가 뭔지 궁금해요.
- 권세미
- 첫 번째는 아름다움은 무엇인가? 왜 아름다우려 하는가? 두 번째는 아름다움의 기준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서 오는 것이고,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가? 세 번째는 우리는 그 기준 속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 네 번째는 우리의 몸을 다르고 새롭게 바라보기로 나누었어요. 그리고 그에 따라 탐구를 하면서 장면들을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하이드비하인드는 하나의 파트였다가 곧 작품 전체를 관통하게 되었죠. 그리고 그렇게 장면들을 관통하는 방식이 ‘사막 별의 오로라‘라는 단체를 잘 보여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이드비하인드는 본래 미국 미네소타 주에서 전설로 전해오던 괴물의 이름으로, 나무 뒤나 사람 뒤에 숨어서 모습을 아는 사람이 없고, 어떤 방법으로도 볼 수가 없다. 그래서 많은 벌목꾼들이 하이드비하인드에 의해 숲속에서 사라졌다고 한다. 작품에선 트렌드에 맞는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이들이 실종되는 사건에 네티즌들이 하이드비하인드 실종사건이라는 이름을 붙인다는 설정이다.)
- 윤성호
- ‘사막별의 오로라’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멤버가 아마 황은후, 김정 배우 두 분이죠? 어떻게 시작되었다거나, 어떤 작업들에 관심을 가진다든가하는
- 김정
- 문래예술공장에서 작업을 하면서 소액의 지원금을 받게 됐는데 제가 황은후 배우에게 같이 하자고 제안을 하면서 시작되었어요.
- 황은후
- 배우들이 각자 어떤 프러덕션에 소속되어있으면서 연기를 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때로는 공허한 순간이 찾아오는 것 같았어요. 내가 정말 창작하는 사람인가, 같은? 그런 면에서 이 ‘사막별의 오로라’를 배우 창작 플랫폼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배우 생활도 하면서 창작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실제로 큰 뜻을 품고 둘이서 독서모임도 하고 그랬어요. (웃음) 그러면서 공통의 생각도 갖게 되고, 그를 통해 하고 싶은 말도 모아보고 했죠. 그런 과정을 통해 <메이크업 투 웨이크업1>을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저희는 일단 여자배우면서 몸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고, 이 ‘여자’, ‘몸’이라는 키워드가 그간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어요. - 김정
- 무엇보다 노는 것이 중요한 집단이에요. 마음대로 해보자.
- 윤성호
- 그래서 공연 장면장면이 재밌었나보네요. ‘여자’와 ‘몸’적인 부분도 공연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다고 보였고요. 이 독특한 집단이 스텝과 만나는 방식도 궁금합니다. 이 분(윤혜숙)은 연출가로 알고 있었는데 여기선 무대감독이시더라고요?
- 윤혜숙
- 그래서 공연하는 동안 직업병이 도지더라고요. 연습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어디까지 얘기해야하는지. 어떻게 해야 이들의 색깔을 훼손하지 않을지. 이곳에선 모두가 선택의 권한이 있는 동시에 모두가 선택의 권한이 없거든요.
- 윤성호
- 그건 아주 무서운 얘기군요.
- 윤혜숙
- 그래서 리허설 때 고생 좀 했죠. 누군가 딱 정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근데 그때 스텝들이 모두 와서 각각 장면에 대해 모두가 한마디씩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느리지만 조금씩 진행이 되고. 하지만 굉장히 멋진 순간이었어요.
- 황은후
- 장면 하나하나마다 스텝들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들어가지 않은 게 없어요.
- 권세미
- 다같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두 배우가 만들어준 것 같아요. 기존 프러덕션처럼 연출이 독선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스텝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어요. 수다도 많이 떨고, 그러다 대본도 안나오고.
- 나희경
- 그래서 제가 계속 어서 대본을 내놓으라고...
- 윤성호
- 연출님이 여기 계셨네요. (모두 웃음)

- 윤성호
- 작품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볼게요. 저는 작품에서 등장하는 ‘하이드비하인드’가 어떤 시선으로 읽혀졌어요.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 혹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내가 나를 검열하는 시선 같은 걸로 보였는데.
- 황은후
- 상상동물들에 대한 책에서 처음 접했어요. ‘하이드비하인드’는 나무 뒤나 사람 뒤에 숨어서 기척은 느껴지는데 실체를 볼 수 없어서 더 두려움을 주는 존재에요. 그 지점이 우리가 느끼는 아름다움의 신화와 맞닿아 있다고 느껴졌어요. 내 몸에 대해 의식하게 하고 교정하게 하는 순간이 삶의 많은 부분에서 불쑥불쑥 찾아올 때가 있거든요. 길거리에 흔히 볼 수 있는 여자모델의 판넬, 사람들의 시선 등. 말씀대로 그런 걸 시선으로 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 윤성호
- 저는 남자고, 공연도 여자에 대한 소재와 이야기이긴 했지만, 우리 모두가 다양한 시선, 그리고 자기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공연을 재밌게 볼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아까 ‘교정’이라는 단어가 귀에 들어왔는데 작품 중의 ‘새뷰티운동‘이 그러한 교정과 연결되어 있는 포인트 같았어요.
- 황은후
- ‘새뷰티운동’은 아름다움이라는 기준이 작동함에 있어서, 한 가지 기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일방적이고도, 강압적인 움직임을 풍자적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새마을운동’이 모델이죠. 그리고 이 운동이 사실은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이었다는 결론을 통해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거나 하기 보다는 아름다움의 기준이라는 실체의 허상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김정
- 새마을운동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그 매커니즘에 ‘경쟁‘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도 참고가 되었어요. 아름다움도 여자들 간의 경쟁을 일으키는 방식으로 작동되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고.
- 권세미
- 이번 작업에 있어선 탐구라는 지점이 중요했던 것 같아요. 미의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것이 어떻게 전파되는가 등에 대해 우리 스스로도 알고 싶었고, 그 기준과 작동원리 등에 대해 수많은 리서치를 거쳤어요.
- 윤성호
- 리서치에 대해 더 듣고 싶습니다.
- 권세미
- 살다보면 수많은 트렌드를 만나게 되잖아요. 패션, 화장품 등에도 수많은 의도된 혹은 무의식적인 영향과 흐름들이 존재하는 것 같고. 사회문화적인 면 또한 이런 흐름에 강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외모에 대한 압력도 사회에 따라 아주 다르고. 가령 우리나라에서는 절대 못입을 것 같은 옷을 갖고 있었는데, 다른 나라에 가면 입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입었을 때 내가 너무 아름답게 느껴지는 사례도 있죠.
배우 김정(좌), 황은후(우)
- 김정
- 제가 갑자기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 윤성호
- 예 좋아요
- 김정
- 작품 중에 “요즘 누가 일자눈썹 하니?”라는 대사가 있는데 이게 여자들이 많이 시청하는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나왔던 말이었어요. 분명 예전에는 일자눈썹이 유행이었고 예쁘게 생각되었었는데, 그렇다면 누가 유행을 그렇게 바꾸는 걸까? 라는 의문도 들었고요. 황은후 배우에게 그 얘기를 듣는데 마침 그때 제가 일자눈썹을 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갑자기 제가 너무 촌스럽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많은 아름다움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사실 아직도 그것이 명확하게 잡히진 않아요. 너무나 복잡한 작동원리가 있는 것 같고.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그간 ‘사막별의 오로라’ 작업들을 통해 여자로서 받는 강박, 외모노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아름다움의 틀, 외모에 대한 지적들을 살펴보다 보니까, 신기하게도 오히려 거기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사실 저 같은 경우도 절대 일상에서든, 무대에서든 종아리를 드러내지 않았었거든요. 연기할 때 종아리가 드러나면 연기력이 떨어지는 느낌도 들고. 하지만 그간 공연들을 하면서 느낀 건, 아름다움의 기준들이 내가 꼭 따라야 하는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구나라는 거였어요.
- 황은후
- 저 같은 경우도 배우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어떤 여성성이라는 것을 습득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여성적 제스쳐라든가, 화장같은 것들도 공연들을 하면서 배웠거든요. 그래서 프리프러덕션 단계에서 그것들에 대해 언급하는 것이 불편했어요. 그것들이 어느새 나의 취향과 기준점이 되어있던 거죠. 하지만 탐구를 하다 보니, 아름다움에는 너무나 세부적이고 다양한 기준이 있고 어느 순간 이게 나의 취향이 아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내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특정한 미의 기준에 맞춰 그곳으로 기어가고 있는 개미 군단 중 하나였구나! 그리고 그런 인식을 갖게 되면서 실생활에서의 나의 태도나 인식도 많이 바뀐 것 같아요.
- 윤성호
- 여자든 남자든 그런 기준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물론 전적으로 그럴 순 없겠지만.
- 황은후
- 물론 그럴 순 없죠. 우리가 이 공연을 통해서 조금은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사회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 안에서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고, 또한 무대 위에서 배우로 존재하고. 그래서 공연을 통해서도 무엇인가를 제시하기보단, 우리가 발견한 아름다움의 기준을 공유하고, 이것을 가지고 무대 위에서 놀아보면서 어디로 가야할까라는 질문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공연 마지막에 우리가 탑 조명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춤을 추는 장면도, 우리가 진정 그런 속박에서 벗어났다기보다는 어떤 바람이었던 것 같아요.
보러온 지인이 했던 말 중 인상 깊었던 건, “너무 재밌고 공감하며 봤다, 하지만 나는 그 조명(기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 였어요. - 윤성호
- 관람한 관객이 그런 느낌과 생각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이 있을 것 같아요.
- 권세미
- 어쩌면 새뷰티 운동이 화장품 회사의 마케팅으로 밝혀지는 단계에서, 마지막에 조명을 빠져나오는 흐름이 다소 점프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3월 공연에서는 거기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이 더 있었는데, 이번 작업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조명에서 빠져나오는 순간, 공연의 역할에서 벗어나 그냥 두 명의 여자로서, 두 명의 배우로서 거기에 있는 것이었어요. 모든 것을 논리적으로 풀고 설명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식으로 풀고 싶었어요. 어쩌면 그것이 ‘사막별의 오로라’적인 걸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

- 윤성호
- ‘사막별의 오로라’, 추후 작업이 궁금합니다.
- 김정
- 아무래도 저희가 여자이고, 나이를 먹으면서 여자로 살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들을 내러티브에 기대기보다는 몸과 직관적으로 풀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 황은후
- 여러 워크숍을 하면서 우리만의 창작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동시에 몸에 대한 탐구를 계속하며 ‘안절부절하는 몸’, ‘결정되지 못한 몸’, ‘어디로 갈 줄 모르는 몸’을 표현하고, 작업에도 꾸준히 반영해나가고 싶어요. 그런데 그것보다 당장 다음은
- 황/김
- 대본이 있고 연출이 있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이번 방식의 작업은 재미는 있지만 너무 힘들어서.
- 윤성호
- 음 제가 하려던 말은 못하겠는데요. 하지만 하겠습니다. 전 지금처럼 ‘여자’, ‘몸’, ‘대본 없이’, ‘연출 없이’의 작업을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물론 힘드시겠지만.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시면?
- 윤혜숙
- 여자의 이야기가 많긴 하지만 남자관객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공연 보시고 페미니즘 연극이라고 하면서 다소 한정시켜버리는 시각도 있었거든요.
- 나희경
-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이라고 할 때 그것이 단지 여성의 이야기이다, 라고 하는 것도 문제라고 봐요. 저도 처음 이 작품이 너무 여성의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결국에 작품이 궁극적으로 보여주려고 하는 것은 남자/여자, 그리고 그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남자/여자로 규정되어지는 존재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이거든요. 그러니 젠더 구분 없이, 많은 관객이 보고, 함께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작품 말미에, 두 배우가 자신들의 일상에서의 옷을 입은 채 조명 밖으로 점차 벗어나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우리에게 존재하는 속박과 검열에서 과연 벗어날 수 있는 걸까. 그러나 동시에 사람이기에, 이 세계 안에서 살고 있기에 우리는 사랑받고 싶고, 그렇기에 그저 조명 안에 머무르고 싶기도 하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사막별의 오로라’는 그 밖으로 나갈 수 있냐 없냐의 문제보다, 먼저 그 조명이라는 기준과 틀을 들여다보자고 말하는지 모른다. 어쩌면 살면서 마주치는 수많은 종류의 망설임과 두려움은, 그것이 무엇인지 조용히 지켜보았을 때 조금은 사그라 들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