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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이 만난 사람] 박인선X신재훈

누구나 보기에 편안한 탈춤을 찾아서

정리_편집부

217호

2022.04.28

박인선 (이하 박)
어디세요, 재훈 연출님?
신재훈 (이하 신)
저는 삼일로창고극장 사무실 밑에요. 회의가 있어서… 인선 씨 몸은 괜찮아요?
제 주변 사람들은 거의 증상이 없었다는데, 저는 많이 아팠어요. 목도 간지럽고, 머리에서 심장이 뛰는 것처럼 아프더라고요.
아픈 시기는 좀 지났어요?
오늘이 6일차거든요,
내일부터는 자유인이네요. 무슨 이야기부터 해볼까요?
인터뷰를 준비하다 보니까 제가 연출님한테 궁금한 게 있더라고요. 저는 천하제일탈공작소(이하 천탈)와 초창기부터 작업을 같이 한 게 아니니까, 연출님하고 천탈 하고 어떻게 같이 작업을 하게 됐는지 정확히는 잘 모르거든요. 연출님이 탈춤과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잠깐 양주별산대놀이를 배워본 적이 있어요. 탈춤에 대한 관심도 없었는데, 무대감독으로 참여했던 공연에서 다 같이 배우니까 일주일 배운 게 전부예요. 천탈은 멤버들의 이름과 얼굴만 알고 있었는데, 당시 천탈 PD님이셨던 차정훈 PD님이 제 작품 <시간의 난극>을 보고 저랑 같이 작업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서 만났는데, 천탈 분들이 이런저런 질문을 갖고 있을 때였어요. 탈춤이 지금의 관객을 만날 수 있는지, 소외되고 있는 장르는 아닌지. 만나서 바로 공연을 하진 않았고요. 일 년 이상은 뭘 하려다 실패하고, 하려다가 말고 한 것 같아요. 그러다가 첫 목표의식을 가졌던 게 <오셀로와 이아고>죠. 탈춤으로 지금의 관객을 만나려면 동시대와 소통할 수 있는 보편적인 주제를 가져야 한다. 그러려면 고전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의 인물 중 이아고가 속마음과 겉모습이 다르니까, 그걸 탈의 속성으로 가져가 보자는 아이디어에서 시작되었어요. 거기에 인선 씨가 합류하게 된 거죠. 이게 전부예요. 우연. 천탈이 새로운 연출을 원할 때 나라는 사람에 관심을 가졌던 거고 저도 천탈을 만났을 때 그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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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선(좌), 신재훈(우)
천탈 멤버 분들이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연출님께 이야기를 했나요?
정확한 작업의 방향이라기보다는 질문들을 공유해주셨어요. 탈춤이 전통 연희에서 하나의 장르로 취급받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무용도 아니고 음악도 아니고. 또 자신들이 장애를 가진 인물로 등장해 춤을 추는데, 이 시대에는 춰서는 안 될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고요. 오랫동안 탈춤을 춰왔는데,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질문들이요. 사실 그 질문을 처음 들었을 때 저도 막연했거든요. 내가 느끼기엔 탈춤은 민족 대표 장르 같은데, 놀랐죠. 탈춤꾼들의 고민을 듣고 저도 생각을 보태기 시작했어요. 같이 고민을 하면서 공연을 해온 거고, 인선 씨도 고민이 있었잖아요. 장애인과 여성, 탈춤 안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에 대해서. 그런 게 합쳐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탈춤을 춰와서, 탈춤을 접하지 않았던 관객들이 탈춤을 어떻게 느낄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어요. 연출님은 처음에 탈춤을 접하시고 공연을 보셨을 때 어떻게 느끼셨나요?
천탈에서 제안을 받고, 멤버들과 질문을 나눈 후에 탈춤 공연을 보기 시작했어요. 소위 유명하다는 몇 개 전통 탈춤 보존회의 정기발표를 보러 다녔어요. 막상 가보니 보존회의 탈춤 공연이 한 시간을 못 채우는 거예요. 관객들이 지루해하니까 20분 하다가, 갑자기 풍물 팀이 나오다가…
초청공연이 없으면 진행이 쉽지는 않죠.
20~30분 하다가 또 마이크 들고 나와서 떡이랑 고기, 술을 나눠주고. 다시 20~30분 하다가 끝났어요. 전(全) 과장을 보고 싶어서 전통 탈춤 보존회의 공연에 간 건데. 탈춤이 그 자체로 지구력을 가지고 현재 관객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상을 봤을 때도, 20, 30명 나오면 뒤에 한 다섯 분 정도는 슬렁슬렁, 즐기기만 하시는 거예요. 그게 어떻게 보면 탈춤의 독특한 특징일 수도 있는데, 무대예술로 봤을 때 마음이 멀어지는 거죠.
제가 <오셀로와 이아고> 프로그램 북 첫 줄에 ‘한 시간 동안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춤을 추자’라고 썼거든요. 그거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본 탈춤들은 한 시간 동안 관객을 못 잡아냈거든요. 특히 실내 극장에서 하면서 야외에서 하듯이 탈춤을 연행하다 보니까 무대예술로 다듬어지지 못하고 긴장이 떨어진다는 게 제 첫인상이었어요. 자주 이야기했지만 무대화, 실내화, 극장화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야외에서 하는 건 다들 잘 하시니까요.
사실 전통 보존회에서 공연을 하면 인력이 부족할 때가 많아요. 사람이 없으니까 한 탈춤꾼이 여러 배역을 맡아야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데 그 시간을 벌어줄 인력이 단체 내에 없는 거예요. 결국 초청공연을 부르는 거죠. 탈춤을 본업으로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본업을 따로 가지고 병행하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공연 날짜랑 시간 맞추는 것 자체도 어렵고요. 실력 면에서 관객들의 눈에 미숙하게 비춰진다고 말씀하신 부분도 본업으로 탈춤을 추지 않다 보니 그렇게 보일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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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선
저는 인선 씨한테 궁금한 게, 남자 선배가 수두룩한 탈춤판에서 인선 씨가 느꼈던 것은 무엇인가요? 문제점일 수도 있고, 질문일 수도 있고요.
공연을 다닐 때 용이한 과장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관객들이 좋아하는 사자춤 과장이라든지. 그런 건 실질적으로 여자가 오래 연희하기에는 쉽지가 않죠. 물론 할 수 있겠지만. 그래서 보존회에서 남자를 중시하는 경우가 있고, 배역 분포상 남자가 많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여자 탈춤꾼이 오랜 시간 탈춤을 추며 살아가기 어려운 여러 현실적인 부분들이 있죠. 여자가 할 수 있는 배역도 굉장히 한정적이고요. 보통 여자가 배역을 맡는다고 하면, 치마저고리 입고 엄청 예쁜, 소무나 첩 같은 캐릭터인데… 대사가 없고 춤도 되게 정형화되어 있어요. 정해진 춤만 예쁘장하게 추면 되는 거예요. 자기의 끼나 재능을 마음껏 표현할 수가 없는 거죠. 남자 캐릭터가 이끌어가는 대로 춤을 춰야 하고 움직여야 되니까요. 반대로 할미라는 캐릭터는 자기 끼나 노래 같은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데, 탈춤에 엄청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도 이런 여성 캐릭터는 한두 명밖에 없어요.
이상적인 외모의 기준을 놓고 봤을 때 추한 생김새로 표현되고, 심지어는 남성 인물들에게 배척당하고 쫓겨나잖아요.
하지만 그런데도 여자 탈춤꾼들은 할미같은 캐릭터를 맡고 싶은 거예요. 자기를 드러낼 수 있는 캐릭터가 없거든요. 남성들은 자기 역량을 드러내면서 취발이, 말뚝이, 목중 같은 여러 캐릭터를 맡을 수 있는데 전통 탈춤판에서 여자들은 그게 쉽지 않죠. 맡을 수 있는 역할이 한정적이라서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탈춤꾼의 역량을 십분 발휘할 수 있는 할미 같은 캐릭터는 공연 때마다 빠지지 않고 연행하는 주요 배역이기 때문에 선생님들이 맡아서 하시는 경우가 많기도 하거든요. 보존단체에서 여성 탈꾼들은 남성보다는 조금 더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질 수 있는 거죠.
우리가 정동극장에서 <취발이 외전>이라는 작품도 같이 했잖아요. 그때 고민은, 대본을 보면 특히 여성을 너무 막 대하고 노골적으로 무시한달까요. 탈춤이 갖고 있는 이런 한계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대본을 볼 땐 문제가 확연히 보이는데, 막상 공연을 하면 너무 재밌게 넘어가는 거예요. 공연의 힘이 세잖아요. 음악 흐르고, 웃음이 나와 버리니까, 우리가 들춰내고 싶은 건 감춰지고, 그냥 재밌게 넘어가는 거죠. 무섭더라고요. 우리가 가진 고민들을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 질문이 생겼어요. 인선 씨는 그때 어땠어요?
취발이 과장 같은 전통 탈춤의 텍스트를 읽을 때는 문제가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들이 객관적으로 보이죠. 공연을 했을 때는, 특히 전통 탈춤판에서 그대로 하면, 탈, 의상이라는 화려한 외형에 스토리가 묻힐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더 위험한 것 같아요. 문화재라고 하는 건 남녀노소 누구나,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다 누릴 수 있는 건데, 정말 남녀노소가 다 즐길 수 있을 만한 내용인가? 어린 아이들이나 누군가가, 취발이가 소무라는 여성 캐릭터를 대하는 방식을 따라 하면 어떡하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 전통 탈춤이 앞으로 과연 지속적으로 보존되고 전승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놀랐던 게, 취발이가 ‘네 안방 구경 좀 하자’ 하고 소무 치마 속으로 들어가잖아요. 그러고 평가하잖아요.
‘방을 잘 꾸몄다’면서요.
공연을 볼 때는 하하호호 웃다가, 대본 보면 놀라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그런 고민이 생겨요. 우리가 갖고 있는 질문들이 충분히 공유되고 문제 제기되었는가를 질문했을 때도 아직 우리 안에서 머무르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질문이 밖으로 뻗어 나갈 수 없는 이유가, 우선 대중들이 탈춤에 대해서 잘 몰라요. 탈춤이 이야기가 있는 극인지도 모르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긴 휴지 같은 걸 손에 끼고 탈을 쓰고 덩실덩실 춤추고 끝나는 줄 아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번에 천탈에서 했던 <가장무도>가 재미있더라고요. 인물도 재밌고, 무대도 예쁘고, 춤도 즐겁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전통 탈춤 자체도 재미있구나, 이걸 어떻게 요리해서 올리느냐가 과제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각 지역별 탈춤을 15~20분씩 췄어요. 지역색도 다르고 장단도 각기 다른 탈춤들의 엑기스만 보여주니까 네 시간 동안 공연을 하는데도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또 아까 이야기 나누었던 지금의 관객들과 만나기에 불편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캐릭터들을 고르지 않았나 싶어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탈춤의 해학을 현재화할 필요성은 있는 것 같은데, 참… 쉽진 않은 것 같아요.
전통 탈춤의 문제점, 여성, 장애인,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다 같이 고민하고 있지만 그래서 이걸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는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우리가 배리어프리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도 그런 주제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 배리어프리를 김은정 PD님이 제안하신 거예요?
여러 사람들이 있었는데, 은정 PD님이 적극적으로 제안을 해주셨던 걸로 기억해요. 배리어프리가 장애인을 위한 서비스가 아니라 새로운 감각을 무대에 펼치는 것이라는 인식을 공유하는 데에서 시작이 됐죠. 너무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고, 되게 어렵고 막연하기도 했잖아요. 장애인이 편한 공연은 비장애인이 봐도 편하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형태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그다음은 뭘까,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인선 씨는 어때요?
저는 배리어프리 시도하면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길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희는 탈춤을 추는 사람이니까 무대 위에서 춤도 추고 대사도 하고, 움직임이 많잖아요. 그러면 수어통역사 분들이 어디 위치하는 게 관객들이 보시기에 편할까, 그리고 무대 위에서 연행하는 우리들도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연행할 수 있을까, 이런 합의점을 찾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던 거 같아요. 아예 연습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수어통역사 분들하고 함께 동선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해본다든지, 수어통역사와 탈춤꾼이 만나 색다른 시너지를 낼 만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본다든지… 이런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얘기도 나왔던 것 같은데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까 혼선이 있었던 건 사실인 것 같아요.
지금은 공연을 다 만들어놓고 막판에 배리어프리 요소들을 합쳤는데, 조금 더 근본적으로 처음부터 고민을 한다면 공연도 달라질 것 같아요. 아예 처음부터 같이 고민하면서 문제 지점에 동의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할 것 같고. 저도 깊은 고민을 해보진 못한 것 같아요.
참 풀기 어려운 문제예요.
그래도 되게 꾸준히 해온 거 같아요. <오셀로와 이아고> 때는 잘 모르고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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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공연예술창작산실 올해의신작
천하제일탈공작소 <오셀로와 이아고>(2017) 쇼케이스 배리어프리 영상
인선 씨 지금 탈춤에 대한 고민은 뭐에요? 김미란 연출님이랑 <탈춤의 목적> 공연도 했잖아요.
과연 전통탈춤이 미래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고민이 드는 거예요. 물론 관객들이 좋아하는 지점도 있지만, 지금의 관객들과 조응하지 못하는 여러 요소들이 있으니까요. 소수자, 장애인,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라든지, 어려운 고어, 사자성어, 방언이 많다든지. 옛날에는 유머러스한 연극이었겠지만, 지금의 관객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말들을 하면서 연행자 혼자 재미있어하는 거거든요. 그런 고민들로 시작해서 <탈춤의 목적>을 하게 됐어요.
저는 반대로 탈춤 추는 사람이 다른 걸 해도 탈춤이 남아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어요. 예를 들면 우리가 <오셀로와 이아고>나 <열하일기>를 할 때, 탈춤만 한 건 아니잖아요. 이상한 춤도 춰보고, <아가멤논>에서는 탈춤 무대 위에서 탈춤 이야기를 하면서 탈춤을 추지 않는 사람도 올라왔잖아요. 교과서에 쓰여 있는 탈춤의 정신이라든지 탈춤에 대한 무엇은,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그냥 탈춤 추는 분이 지금 바꾸면 바뀐다는 생각이 들어요. 탈춤에 대한 그 무언가가 탈춤 추는 사람의 감각 안에 남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래서 탈춤이 남을 거냐는 고민보다는 탈춤을 이용해서 무얼 하지? 라는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고, 탈춤의 동작을 이용해서 다른 행동의 패턴을 만들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탈춤의 소스를 이용하고 활용하는 거죠. 탈춤꾼들은 태어날 때부터 이미 절여져 있기 때문에 어떻게 요리해도 그 절인 냄새가 난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것저것 해보자고 하는 것 같아요.
허용호 선생님이 삼일로창고극장 ‘퍼포논문’에서 봉산탈춤의 여성 인물들에 대한 공연을 하신 적이 있어요. 이런 문제들을 꽁꽁 숨기지 말고, 탈춤꾼들의 논의들을 직면하고 문제 제기하는 걸로부터 시작할 수 있겠다고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요.
지금 탈춤을 추고 있는, 제 주변의 탈춤꾼들은 말씀하신 것처럼 오랜 시간 절여져 있기 때문에 이걸 다른 감각, 다른 시선으로 보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기존의 틀을 벗어나서 다른 식으로 하려고 하면 ‘이건 탈춤이 아니잖아, 탈춤이 뭐지? 어떻게 해야 탈춤이지?’ 이 고민들이 계속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다른 감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이 마스크, 마스크도 얼굴을 가리는 탈인 거고. 이걸 쓰고 행위를 하면 이것도 탈춤이지 않나? 탈춤이라는 형식적인 무엇이 포함되어야 탈춤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전통이 어렵다니까요. 그런데도 제가 탈춤에서 좋았던 건, 끝없는 절망에서 튀어나오는 넉살이었어요. 바닥에 굴러도 놀 사람들이니까. 그런 절여져 있는 특징은 어딜 가도 남아 있을 거라는 거죠. 우리가 지금까지 실험을 해서 극도의 슬픔, 비극, 고통을 만났을 때 탈춤의 넉살이 살아날 것이라는 전제를 찾고, <아가멤논>까지 왔잖아요. 그 이후로도 하고 싶은 것들이 나오는 건 좋은 것 같아요. 탈춤의 미래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무언가 생겨난다는 것.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탈춤을 고민하면서 엄청난 슬픔을 직면하자, 그러다가 지금은 다 집어치우고 야한 걸로 놀아보자. 이렇게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근데 성인탈춤극은 진짜 해보고 싶어요. 대놓고 드러내지 못하고, 연행을 못 하는 것이 많거든요. 양주별산대놀이도 대사 보면 진짜 야하거든요. 직설적으로 야한 것도 있지만 말을 막 꼬아 가지고 묘사를 하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어요. 탈춤의 그런 요소를 가져와서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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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훈
연출님은 천탈하고 <오셀로와 이아고>, <삼대의 판>, <열하일기>, <아가멤논> 이렇게 작업을 하셨고, 그 외에 <할미들의 수다>, <취발이 외전>도 있었죠. 그 작품들 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작업은 뭐였어요?
이상하게 <열하일기>가 좀 안 맞았던 것 같아요. 조금 추상적인 작업이 아니었나. 그런 면에서 <오셀로와 이아고>, <삼대의 판>, <아가멤논>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흥미로웠던 것 같고. 첫 작품 <오셀로와 이아고>가 이정표 없이 첫걸음을 뗐다는 것 때문에 소중한 것 같아요. 인선 씨는 어때요?
말씀하신 것처럼 <열하일기>가 힘들었어요. 표지판이 없는데 가는 느낌이랄까.
끝났는데도 표지판이 어디 있었지 싶죠. 다른 춤을 춰본 건 의미가 있었는데, 확실히 탈춤은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춤으로만 추상화시켜서 무대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탈춤이라는 건 확실한 이야기 전개가 있어야, 하는 사람도 보는 사람도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요즘 다른 작업도 있어요?
저는 뭐… 딱히 개인적으로 하는 건 아직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할지 모르겠어요.
계획이 엄청 많이 나올 줄 알았어요.
고민이야 하고 있는데, 이 탈춤이 우선 대중한테, 대중 앞에, 확실하고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방식이 효과적일지 모르겠는데. 그런 계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뭘까요 그게? 워낙 다 열심히 하고 있잖아요. 거의 365일 공연하는데, 다들.
그러니까요.
나머지 분들 열심히 하시면 저는 그냥 보다가 수확하겠습니다. 틈내서 또 놉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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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2021)와 <아가멤논>(2022) 공연사진. 사진제공: 천하제일탈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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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선X신재훈

박인선X신재훈
박인선
2001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4호 강령탈춤에 입문하여 강령탈춤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오셀로와 이아고>, <삼대의 판>, <팔도보부상>, <황해도 방앗간>, <탈춤의 목적>, <열하일기> 등의 작품으로 전통 연희의 확장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신재훈
극단 작은방에서 글을 쓰고 연출합니다. 전통예술 분야 창작자와도 활발하게 작업합니다. <비극을 찾는 무대>, <시간의 난극>, <정서진 별곡> 등을 쓰고 연출했으며 <오셀로와 이아고>, <우리는 모든 희망을> <오피스> <금조 이야기> 등을 연출했습니다.
zolzimaho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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