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리뷰]벗어날 수 없는 불화의 삶에 대하여
지금 아카이브 <티타임/밀사의 찻잔>
왹비_활동가
제176호
2020.02.20
찻잔에 담겨있는 차의 맛을 추측하는 것과 직접 혀를 통해 맛보는 건 다르다. 차를 마셔봐야 비로소 맛을 음미할 수 있고, 자신의 추측이 일치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은 우리가 어깨 너머로 오해하고, 짐작으로만 상상하던 밀사의 찻잔을 건네받아 밀사가 망설이고, 경험한 세계들로 초대받는다.

진정성
극중 진아는 숲을 지나 제일 먼저 진정성에 도착하게 된다. 진정성 사람들은 진아에게 자신의 물을 건네며 도움을 주고자 한다. 하지만 진아는 물보다 머무를 수 있는 곳이 필요해 묵을 수 있는 공간이 있냐고 묻는다. 그러자 방금까지 물을 건네며 당장이라도 진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줄 거 같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모두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진정으로 그렇게까지 도와주긴 힘들다"라며 "진정성 있는 행동들로 믿음을 키워서 더 훌륭한 마법으로 이 땅에 기여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진정성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궁극적으로 마법력(주류 여성운동의 대의명분)을 강화할 수 있고, 이 세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질 수 있기 때문에 진아에게 도움을 건넨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진아가 정말 필요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에서 진정성이라는 공간을 통해 여성운동이 성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고발하고 있다. 주류 중산층 시스젠더 여성들이 운동에 주체가 되는 여성운동에서 성노동자는 반성매매 담론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된다. 성매매는 무조건 근절되어야 하는 사회의 악이고, 성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성산업에 유입된 피해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노동자가 지속해서 노동할 권리를 이야기하기보다 성착취 상황에서 어떻게 구출할 것이냐에 대해 초점을 맞춰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당사자의 추측일 뿐, 실제로 성노동자 당사자들이 무엇을 욕망하고 필요로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되려 성노동자들이 성노동 운동에 주체적인 존재로 참여해 담론장에 요구 사항을 말할 때,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반성매매 담론을 공고하게 만들어 줄 당사자의 목소리가 아니면 주류 여성운동에서 배제하고, 성노동이란 단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포주라는 낙인을 찍으며 운동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에서 진정성이라는 공간을 통해 여성운동이 성노동자를 어떻게 대하는지 고발하고 있다. 주류 중산층 시스젠더 여성들이 운동에 주체가 되는 여성운동에서 성노동자는 반성매매 담론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소모품으로 사용된다. 성매매는 무조건 근절되어야 하는 사회의 악이고, 성노동자들은 어쩔 수 없이 성산업에 유입된 피해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노동자가 지속해서 노동할 권리를 이야기하기보다 성착취 상황에서 어떻게 구출할 것이냐에 대해 초점을 맞춰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당사자의 추측일 뿐, 실제로 성노동자 당사자들이 무엇을 욕망하고 필요로 하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되려 성노동자들이 성노동 운동에 주체적인 존재로 참여해 담론장에 요구 사항을 말할 때,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반성매매 담론을 공고하게 만들어 줄 당사자의 목소리가 아니면 주류 여성운동에서 배제하고, 성노동이란 단어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포주라는 낙인을 찍으며 운동사회로부터 고립시킨다.
성실성
진아가 진정성을 넘어 두 번째로 넘어선 곳은 성실성이다. 성실성 사람은 문 앞에서 진아의 계급을 묻고, 마법 노동자가 아니란 이유로 출입을 금지시킨다. 진아는 이곳에 도착해 마법 노동과 비-마법 노동의 존재를 알게 된다. 마법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가장 큰 가치로서 공헌할 수 있는 마법 노동은 사람들에게 환대받는 노동이다. 그리고 마법 노동의 계급은 어떠한 조건도 더 붙지 않고 성실성의 입성기준으로 판단된다. 성실성의 입성평가는 노동 안에도 스펙트럼이 존재하고 그 안에서 노동 계급이 갈린다는 점을 시사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이 노동계급을 누가 어떤 목적을 갖고 나눴는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떤 것을 가치 있는 노동으로 규정했는지, 가치 없는 노동,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하고 차별에 노출시키는지 우리 모두가 성찰해야 하는 과제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어떤 것을 가치 있는 노동으로 규정했는지, 가치 없는 노동, 노동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에서 어떤 평가를 받게 하고 차별에 노출시키는지 우리 모두가 성찰해야 하는 과제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

성성, 성성제
진아는 마지막으로 두 개의 성을 지나 성성제가 열리는 성성에 도착한다. 성성제가 끝난 후 미이해를 따라 성성의 지하에 도착해 소금들의 싸움을 목격한다. 소금들은 비-마법 노동자로, 소금 조합을 만들기 위해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지금까지 진아가 도착한 진정성, 성실성은 여성계, 자본주의 그리고 가부장제와 대치되는 성노동 운동을 비유했다면 돈돌, 로운, 이심의 갈등은 성노동 담론을 둘러싼 내부의 대치 상황을 보여준다.
돈돌은 소금 중에서 가장 멸시 받는 꽃 파는 사람에 대한 악의 없는 혐오를 드러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꽃 파는 사람 취급을 당해 기분이 나빴던 점에 대해 토로하며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가 하면, 소금 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금 또한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서 소금의 가치, 아름다움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자 로운은 우리가 각자인 채로, 소금인 채로 괜찮을 수 있기 위해 소금 조합을 만드는 게 아니냐고 로운에게 묻는다. 소금이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떤 점이 아름다운지 설명하는 건 임파워링의 일종이 될 수 있지만 혹여 소금이 그러한 가치나 아름다움이 없어진다면, 처음부터 없었다면 이 세상에서 소금으로서 존재의 정당성을 부여 받을 수 없다. 로운은 가치가 없어도, 더 나아가 우리가 윤리적이지 않고 이 세계에 살아갈 정당성을 부여 받지 못한 존재여도 괜찮을 수 있는,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한다.
돈돌과 로운의 갈등이 거세지면서 이심이 상황을 수습하고자 한다. 이심은 과거 자신이 소금이었을 때를 떠올리며,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탈염전을 운동의 목표로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심이 염전에 있을 당시 염전은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었고, 탈염전을 하고 마법 노동 스톤 계급이 되자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마법 교육 프로그램을 열자고 제안한다. 이심은 염전을 떠나 현재 소금들의 상황은 모른 채, 과거 당사자였던 경험이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되어 현직 소금들에게 시혜적인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심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지 않은, 배울 수 없는 소금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심은 자발적으로 열악한 염전에서 노동하는 소금들은 없으며, 소금에게 선택권이 있었으면 분명 자신의 손으로 염전을 택하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소금 조합 운동에 참여한다.
소금들이 노동을 지속하며 안전할 권리, 건강할 권리, 사회에서 평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을 권리는 해일이 몰려오는데 한가롭게 조개를 줍는다는 비난을 받으며 당장 소금들이 노동을 그만둘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심은 염전을 벗어나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걸 자신이 경험했고, 증명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지속해서 노동할 수 있는 권리와 원할 때 노동을 그만 둘 수 있는 권리는 서로 상충하지 않는데도 반성매매/성노동 운동은 꼭 한 가지만 택해야 하는 것처럼 비친다. 왜냐하면 반성매매 운동에서는 성노동을 지속할 권리가 성산업이 커지거나 유지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이고, 성노동을 그만 둘 권리는 성산업을 축소시키는 방향이 될 거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성산업이 사라져야 함은, 여/성착취적인 산업이고, 수많은 여성들이 착취와 폭력에 시달리는데 구제할 방법이 부재하며, 결과적으로 성산업이 유지되면 성상품화를 통해 여성인권이 하락된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돈돌은 소금 중에서 가장 멸시 받는 꽃 파는 사람에 대한 악의 없는 혐오를 드러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꽃 파는 사람 취급을 당해 기분이 나빴던 점에 대해 토로하며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가 하면, 소금 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금 또한 이 세상에 필요한 존재로서 소금의 가치, 아름다움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고 한다. 그러자 로운은 우리가 각자인 채로, 소금인 채로 괜찮을 수 있기 위해 소금 조합을 만드는 게 아니냐고 로운에게 묻는다. 소금이 어떤 가치가 있고, 어떤 점이 아름다운지 설명하는 건 임파워링의 일종이 될 수 있지만 혹여 소금이 그러한 가치나 아름다움이 없어진다면, 처음부터 없었다면 이 세상에서 소금으로서 존재의 정당성을 부여 받을 수 없다. 로운은 가치가 없어도, 더 나아가 우리가 윤리적이지 않고 이 세계에 살아갈 정당성을 부여 받지 못한 존재여도 괜찮을 수 있는,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한다.
돈돌과 로운의 갈등이 거세지면서 이심이 상황을 수습하고자 한다. 이심은 과거 자신이 소금이었을 때를 떠올리며,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탈염전을 운동의 목표로 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심이 염전에 있을 당시 염전은 너무나 열악한 상황이었고, 탈염전을 하고 마법 노동 스톤 계급이 되자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마법 교육 프로그램을 열자고 제안한다. 이심은 염전을 떠나 현재 소금들의 상황은 모른 채, 과거 당사자였던 경험이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되어 현직 소금들에게 시혜적인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심에게 마법을 배우고 싶지 않은, 배울 수 없는 소금들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심은 자발적으로 열악한 염전에서 노동하는 소금들은 없으며, 소금에게 선택권이 있었으면 분명 자신의 손으로 염전을 택하지 않았을 거라는 믿음을 갖고 소금 조합 운동에 참여한다.
소금들이 노동을 지속하며 안전할 권리, 건강할 권리, 사회에서 평등한 시민으로 대우받을 권리는 해일이 몰려오는데 한가롭게 조개를 줍는다는 비난을 받으며 당장 소금들이 노동을 그만둘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심은 염전을 벗어나면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이 있다는 걸 자신이 경험했고, 증명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지속해서 노동할 수 있는 권리와 원할 때 노동을 그만 둘 수 있는 권리는 서로 상충하지 않는데도 반성매매/성노동 운동은 꼭 한 가지만 택해야 하는 것처럼 비친다. 왜냐하면 반성매매 운동에서는 성노동을 지속할 권리가 성산업이 커지거나 유지되는 방향으로 흐를 것이고, 성노동을 그만 둘 권리는 성산업을 축소시키는 방향이 될 거라 주장하기 때문이다. 성산업이 사라져야 함은, 여/성착취적인 산업이고, 수많은 여성들이 착취와 폭력에 시달리는데 구제할 방법이 부재하며, 결과적으로 성산업이 유지되면 성상품화를 통해 여성인권이 하락된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러나 여/성착취적인 산업이 비단 성산업의 독자적인 특성은 아니다. 모든 산업군이 여/성착취적이라 말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외적인 모습을 지속적으로 가꿔 무대에 오르거나 대회에 나가야 하는 아이돌, 무용, 체육 업종만 해도 그렇다. 몸매 관리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적으로 작품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약물을 사용하거나 굶어서 살을 빼라는 압박을 받고, 성형을 요구 받는다. 여성들이 노동환경에서 이런 상황에 노출되는 게 정당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직군도 이런 현상이 나타남에도 그 산업을 무작정 근절해야 한다고 접근하지 않는다. 이미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고, 해당 산업이 사라지면 당장 수입이 끊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중잣대를 보이는 모습에서 내재되어 있는 섹슈얼리티 혐오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친밀감을 동반하지 않는 몸을, 성을, 성서비스를 판매하는 행위는 더럽고 비정상적이다. 또한 성노동자의 존재는 모노가미(일부일처제) 사회의 붕괴를 불러오는 악의 존재다. 어쨌든 성산업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자신의 파트너는 성매매를 할 것이고, 그건 곧 가정의 붕괴를 일으킬 것이란 생각이 창녀혐오로 이어진다.
현재 여/성착취적인 성산업에서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성노동자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성산업을 근절하는 순간까지도 존재할 수 없다. 성노동자가 탈성매매를 해야만 도움 받을 수 있고, 계속 성노동을 해야 하는 성노동자들을 처벌받게 하는 상황에 노출시킨다면 성노동자의 권리장전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소금들이, 성노동자들이 원하는 건 지레짐작하여 염전에서 자신을 구출해주는 게 아니다. 소금이어도, 꽃 파는 사람이어도, 성노동자여도 나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각자의 존재로서 살아가도 괜찮을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현재 여/성착취적인 성산업에서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성노동자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성산업을 근절하는 순간까지도 존재할 수 없다. 성노동자가 탈성매매를 해야만 도움 받을 수 있고, 계속 성노동을 해야 하는 성노동자들을 처벌받게 하는 상황에 노출시킨다면 성노동자의 권리장전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소금들이, 성노동자들이 원하는 건 지레짐작하여 염전에서 자신을 구출해주는 게 아니다. 소금이어도, 꽃 파는 사람이어도, 성노동자여도 나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각자의 존재로서 살아가도 괜찮을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정상성
진아는 진정성, 성실성, 성성을 끝으로 정상성에 도착하지 않는다. 작중에서 정상성에 대한 이야기가 깊게 나오지도 않는데, 진아가 정상성에 도달하지 못함은 사실 정상성이란 공간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정상성은 굉장히 모호하고, 시스젠더 헤테로 백인 비장애 남성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규범으로서 허상에 가깝다. 그 누구도 모든 정상성 기준에 부합하기 쉽지 않고, 부합한다 해도 잠시 동안만 도달할 수 있다. 진아는 정상성에 도착하지 않는 대신, 이브의 사탕을 뱉고 관객에게 차를 따라준다.
즐거움과 안락함만 남기는, 모든 의심과 불안을 녹일 수 있는 사탕을 모두 다 삼킬 때, 홀로 사탕을 뱉는 진아는 자신의 위치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버리는 걸 택했다. 그리고 진아의 세계는 무너지고 현실로 돌아와 밀사와 티타임을 갖는다.
즐거움과 안락함만 남기는, 모든 의심과 불안을 녹일 수 있는 사탕을 모두 다 삼킬 때, 홀로 사탕을 뱉는 진아는 자신의 위치에서 얻을 수 있는 이점을 버리는 걸 택했다. 그리고 진아의 세계는 무너지고 현실로 돌아와 밀사와 티타임을 갖는다.
[사진제공 : 지금 아카이브]
티타임/밀사의 찻잔
- 일자
- 2020년 1월 17일 ~ 2020년 1월 22일
- 장소
- 삼일로창고극장
- 연출
- 김진아
- 작가
- 공동 리서치 및 극작
- 조연출
- 나온유
- 드라마터그
- 밀사 안담
- 퍼포머
- 김진아, 배선희, 송이원, 안정민, 이지혜
- 무대
- 김재란
- 조명
- 정유석
- 음악
- 김현수
- 기획
- 최주희
- 제작
- 지금아카이브
- 관련정보
- 지금아카이브 웹페이지 https://nowarchive.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