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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을 향한 질문: 어둠 속에서도 손잡고 가보기

혜화동1번지 [2022∞세월호] 신작 희곡 낭독공연

송서연

217호

2022.04.28

다른 사람에게 차마 말을 할 수 없었던, 부끄럽고 사소한 혹은 지나치게 비대한 고민이 있다. 오른쪽 손목을 내려다볼 때 가끔 하는 생각이다. 오른쪽 손목에는 노란 세월호 기억팔찌가 있다. 나는 이걸 언제쯤 뺄 수 있을까? 혹은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노란색 팔찌 하나로 연대한다고 하는 건 부끄럽고, 그렇다고 더 나아갈 자신도 없다. 언젠가 한 번은 두꺼운 겨울 니트를 벗다가 팔찌를 잃어버리고선 뒤늦게 알았는데 순간 ‘이번 기회에?’ 생각했다. 팔찌는 방 안 어디에선가 발견되었고 오른쪽 손목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끔 생각한다. 나는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할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은연중에 혜화동1번지 세월호 기획 [2022∞세월호]가 그 대답을 해주길 바랐던 것 같다. ‘올해에도’ ‘계속해서’ ‘세월호를’ ‘극장에서’ ‘말하는’ 이유를 먼저 찾아서 들려줬으면 하는 게으른 관객의 태만이다.

8년간, 그리고 지난 5년간 아무것도 건너가지 못한 채로 시간이 흘렀다. 참사를 만든 지난 정부와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얘기했지만 하지 못한 정부 5년이 꼬박 지나 8주기가 되었다. 지금까지 유가족들은 모든 수단을 찾아 싸웠지만 아직도 해경 123정장 외에 처벌된 사람은 없다. 기억공간은 축소됐고, 사참위 활동 기간은 끝나가고, 대통령 기록물이 공개될 일도 요원해 보인다. 이토록 현실은 의뭉스러울 만치 묵묵부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심도, 동력도 조금씩 사그라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새 혐오는 목소리를 얻었다. 무기력과 두려움도 한 자리씩 차지했다.

진이 빠지는 세계 안에서 혜화동1번지 [2022∞세월호]는 ‘세월호로부터 출발하여 지금, 그리고 다음을 향한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2014년 세월호와 2022년 현재를 질문으로 잇고 이내 그 질문을 미래, 다음으로 연결해 보낸다. 희생자와 생존자, 유가족의 슬픔과 고통을 함부로 안다고 이야기할 수 없으며 동일시할 수 없는 층위가 존재하지만, 사회구성원 저마다 세월호 참사 이후의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고 믿는다).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고 망각했고, 부재와 기억의 시간을 겪었고, 고통을 유보하거나 직면했다. 국가 폭력을 감지하는, 사회적 고통을 공감하는, 모두의 안전을 처음으로 함께 이야기하는 경험을 했다.
참사 이후 8년이라는 가족들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 공연,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의 <기억 여행>이 막을 내리고, 그다음 순서를 이어받은 신작 희곡 낭독공연 세 편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세월호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그 너머를 상상한다.

김윤식 작가와 극단 동의 <고인돌 위에 서서>는 고통을 외면하거나 직면하며 세월호의 감각을 환기시킨다. 댐 아래 수몰된 고인돌을 찾는 열성적인 고고학자로 시작한 이야기는 사고로 인한 상실 이후의 시간을 극복하기 위해 위태롭지만 물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시간으로 흘러간다. 납득하기 어려운 갑작스러운 죽음 후에 오는 상실의 감각을 수몰된 고인돌의 것과 연결한다. 석경이 부단하게 고통 위에 서려고 노력하는 순간 관객 역시 또 다른 참사나 상실로 연결되며 끝까지 도와주겠다고 함께 기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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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위에 서서>

조원재 작가와 래빗홀씨어터의 <7일>은 <보팔, Bhopal(1984~)>(2019)의 스핀오프 작업이다. 이번에는 가스누출 참사 이후 일주일간 공장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고 오랫동안 잊으려 노력했던 인물을 그린다. 그런데 기묘하게 세월호 참사 이후 과정과 계속해서 겹쳐진다. 8년 전의 세월호 참사와 그 후에 일어났고, 우리가 목도했던 일들을 다시 한번 환기시키는 과정이다. 지나간 날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지금도 어디선가 발생하고 있을 사고를 ‘우리’가 손을 잡고 바라볼 수 있을지.

2
<7일>

허선혜 작가와 별세대의 <괴담>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느새 다가오는 국가 폭력을 화두로 삼는다. 금이 간 원자력발전소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괴담을 만드는, 피폭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한 명이라도 더 구해내고 싶은 청소년 진조가 있다. 위험을 경고하는 건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우스꽝스러웠지만, 모두가 가야 하는 ‘다음’ 세계로 넘어가는 진지한 연대였음을 확인한다. 느리게 다가와 알 수 없었거나 외면했었지만 ‘끝까지 가보는’ 시도를 통해 결국 세월호를, 진상 규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앞으로 이 사회를 같이 살아내야 한다는 절박한 연대의 외침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복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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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저마다 선택한 방식은 다르지만, 세 작가가 세월호로부터 출발해 다음으로 가는 질문의 어느 꼭지를 ‘어둠 속에서도 손잡고 가보기’라고 생각한다고 느낀다. 비단 세월호를 더 오래 기억하겠다는 것뿐 아니라 세월호를 겪은 우리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 연대의 외피를 넓힌다. 진창 같은 시간 안에서 나와 그 너머로 가보자는 손짓이다. 혜화동1번지 [2022∞세월호]는 ‘올해에도’ ‘계속해서’ ‘세월호를’ ‘극장에서’ ‘말하며’ 애도의 울타리를 확장해간다.

낭독으로 선보여진 세 작품은 5월 중 출판사 서로여는책을 통해 E-book 『세월호∞희곡선』으로 발간된다. 그리고 기획 의도대로 어딘가에서 그 ‘다음’의 세월호 무대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끝까지 밝히고 책임자를 제대로 처벌해, 안전한 미래에서 그다음의 너머로 넘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사진 제공: ⓒ한민주]

혜화동1번지 [2022∞세월호] 신작 희곡 낭독공연
관련정보
https://zerosquare.me/sewolontheatre/23617

김윤식X극단 동 <고인돌 위에 서서>

일자
2022.4.12 ~ 4.13

김윤식
연출
강량원
출연
유은숙, 신소영, 윤민웅, 송주희
조연출
이은미
조명
고귀경
낭독을위한음악
정진화

조원재X래빗홀씨어터 <7일>

일자
2022.4.14 ~ 4.15

조원재
연출
윤혜숙
출연
전석찬, 조의진, 강혜련, 이유주, 노기용, 이지수
음향
임서진
음악
박소연
조명
고귀경

허선혜X별세대 <괴담>

일자
2022.4.16 ~ 4.17

허선혜
출연
김별, 박세인, 양대은
조명
고귀경
자막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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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서연

송서연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hsoooso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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