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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오로지) 나의 것

극단 백수광부 < Is God Is >

영이

217호

2022.04.28

연극 <Is GOD Is>는 4월 14일부터 24일까지 혜화동 선돌극장에서 선보인 작품으로, 작년 11월 국내 초연으로 올렸던 공연을 올해 재공연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작가 앨리샤 해리스는 이 공연의 대본으로 사용된 희곡 <Is God Is>를 통해 2016년 미국 극작 재단 (American Playwriting Foundation)에서 Relentless Award를 수상하였고, 연출 장일수는 작년도의 이 공연이 데뷔작이다.
오로지 검은색으로만 이루어진 무대는 드문드문 화상 자국들과 그물들로 뒤덮여 있다. 이 화상 자국은 연극의 주요 인물, 쌍둥이 러신과 아나이아,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 몸 또한 뒤덮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쌍둥이는 화상을 입은 뒤 18년 동안 어머니 없이 살아오며 자신들에게 화상을 입힌 화마로 인해 어머니가 죽은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머니에게서 붉은색 편지를 받게 되고, 병상에 누워 온몸이 녹아내린 채 아직까지 살아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쌍둥이는 어머니를 만나기 전, 어머니는 자신들을 낳아준 존재이기 때문에 신과 다름없다고 정의 내린다. 그렇게 정의 내려진 “신”은 쌍둥이들의 몸을 태운 범인이 바로 그들의 아버지이자 자신의 남편이라는 진실을 밝히며, 그를 찾아가서 죽이고 그의 시체 조각을 가져다 달라는 소원, 혹은 명령을 전한다. 쌍둥이는 그렇게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 “신”의 전언을 수행하기 위해 아버지를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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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하게 압착된 시간과 공간

공연이 시작하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러신과 아나이아이다. 배우들은 무대 위로 나오자마자 자신의 인물을 설명하며, 또한 각 인물이 극 속에서 행위하고 있는 행동을 대사와 함께 발화한다. 러신의 대사를 예로 들자면, “러신은 우편함에서 편지를 꺼낸다, 편지가 왔어.”와 같은 식이다. 사실 행위의 설명 부분까지 넓게 보면 전부 대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극 속 인물의 행위를 대사로 집어넣는 형식은 러신과 아나이아뿐만 아니라 후에 등장하는 척 홀, 앤지, 라일리, 그리고 스카치에게까지 적용된다. 등장인물들이 때로는 혼자, 때로는 함께 등장해 각자가 극 중 시간 속에서 행하고 있는 동작들을 대사로 직접 발화하는 것은 극 중 시간과 공연의 시간을 완벽하게 분리시킨다. 배우들이 대사를 소리 내는 공연의 시간이 관객의 시간과 함께 흐르는 반면, 앤지가 장바구니를 들어 올리는 행위의 시간은 그저 그녀 대사가 읊어지는 시간 속으로 얇게 압축되고, 그 동작 본연의 시간성은 완전히 휘발되어 사라지고 만다. 이는 여러 인물들이 함께 자신들의 행위들을 대사로 전달할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각자의 행위들에 부여된 고유한 시간 단위들이 마치 전부 압착 프레스에 넣고 꽈악 눌러놓은 것처럼, 모두가 비슷비슷하게 평평한 모습으로 변조되어 대사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공간의 경우는, 각자 다른 장소들에 위치한 것으로 설정된 여러 인물들이 하나의 무대 위에 다 같이 올라와 있는 문법이 연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양식이라 하더라도, 앞서 설명한 납작한 시간성 때문에 그러한 공간성의 “당연한” 납작함조차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선명하고 낯설게 나타나게 된다. 러신과 아나이아가 쫓는 아버지의 새 아내인 앤지가 무거운 장바구니를 문 앞에서 들어 올리고 있는 동안에 그녀의 쌍둥이 아들들, 라일리와 스카치가 한쪽은 화분에 물을 주고, 한쪽은 엉터리 시를 쓰고 있는 모습은 모두 한 장면, 한 무대 안에서 펼쳐진다. 마치 자신의 장바구니를 외면하며 딴청을 피우고 있는 아들들의 모습이 앤지의 눈에는 같은 공간에 있는 것처럼 안 봐도 뻔하다는 것을, 더할 나위 없이 납작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렇게 보통이라면 공연에서 실시간으로 수행되었어야 할 행위들이 납작하게 평면화된 채 제시되는 것은, 증언의 형태로 나타나는 화마에 대한 어머니의 기억을 그와는 반대로 아주 생생하게 입체화시켜주는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러신과 아나이아가 찾아간 어머니는 온몸에 화상을 입어 환자복 밖으로 보이는 그 어떤 부위에서도 맨들맨들한 피부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병상 위에 누워있다. 18년 만에 찾아온 딸들을 맞이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뿌리까지 타들어 간 기관지로 인해 새되고 녹슬어 있다. 그러나 딸들이 사건의 진상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자신의 몸을 태운 그 날의 기억을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차츰차츰 맑고 웅장해지며, 화상을 입기 전 젊은 날의 건강함과 지금까지 18년간 쌓아온 분노와 증오 모두를 담아내는 깊은 목소리로 변한다.
증언이 진행되며, 이와 같이 화상을 입고 죽어가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제 복수를 명하는 신의 목소리가 되어감과 동시에, 무대 한 편에서는 아나이아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의 어머니를 대신해 증언 속 그날의 어머니 형상을 재현한다. 그동안에, 어머니의 몸 위에 불을 붙인 아버지의 형상은 검은색 중절모를 깊게 눌러 써 얼굴을 알아볼 수 없는 두 명의 남자 배우의 모습으로 등장하는데, 이 중 한 명은 땅딸막한 중년의 남성, 다른 한 명은 훤칠하게 키가 큰 젊은 남성이다. 이렇게 아나이아가 증언 속 어머니를 재현하며 자신의 눈앞에 서로 다른 두 개의 검은 실루엣을 등장시키는 것은, 그녀가 어머니의 기억 속 젊은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늙은 현재 모습을 동시에 떠올리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처럼 어머니의 증언은 어머니 자신의 현재와 과거, 그리고 그것을 몸으로 체험하고 체현하는 아나이아의 현재와 과거라는 두터운 시간의 겹들로 인해, 당장이라도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일처럼 뜨겁고 진하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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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이아의 유폐와 복수

러신과 아나이아 모두 신체에 화상을 입었지만 그 화상의 정도는 서로 같지가 않다. 러신은 목 뒤, 어깨 아래로만 화상을 입어 옷과 머리칼로 가릴 수 있는 정도의 흉터만이 남았고, 아나이아는 얼굴 전체가 녹아내렸다가 다시 굳은 형상을 하고 있다. 러신과 아나이아는 화상의 정도가 다르듯이 복수에 대한 태도도 다르다. 러신은 아버지를 살해하는 데에 거리낌 없을 뿐 아니라 그 외에 연관된 다른 인물들을 살해하는 데에 적극적이기까지 하다. 그런 러신의 과격한 행보에 아나이아는 끊임없이 반기를 들며, 어느 순간에는 “만일 너가 아버지 외에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린다면 나는 너를 떠나겠다”라고 선언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둘의 태도 차이는 서로 다른 흉터를 안고 성장하며, 마찬가지로 다르게 형성된 둘의 인격 차이와도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러신과 아나이아가 처음 등장해 스스로의 외모와 성격을 설명하는 장면에서 아나이아는 “얼굴이 못생긴 여자애는 싸가지 조차 없을 수가 없다”라고 말하고, 러신은 이를 받아 자신이 “아나이아의 몫까지 받아서 싸가지 없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러신은 아나이아보다 흉터가 적어 비교적 외향적으로 컸기 때문에 현재 복수의 행위도 좀 더 망설임 없이 행할 수 있는 것이고 분노의 표출도 멈춤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신이 아나이아보다 분노가 적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머니의 증언에 따르면 아나이아는 특이하게도 흉터를 입기 전부터 마음이 여렸다고 한다. 그래서 편지도 아나이아가 아닌 러신에게만 보냈다고 말이다. 하지만 만일 서로 다른 흉터의 양으로 인해 극 중에서 설명되듯이 러신보다 아나이아가 더욱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차별과 혐오를 당해왔다면, 그런 선천적 유약함도 그녀에게 분노와 증오가 쌓이는 것을 막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축적의 양은 그녀가 스스로의 몸으로 받아낸 혐오의 양과 비례해 결코 러신이 가진 것보다 적지도 않으리라. 그럼에도 아나이아는 러신에게 “너는 마음도 동정심도 없냐”라며 비난하고, 이에 러신은 “나도 마음과 동정심은 있다, 신에게만”이라고 대답한다. 러신은 이어서 “신이 아닌 다른 사람, 내가 마음과 동정심을 가져야 할 다른 사람을 어디 데려와 봐라”라고 일갈하지만 아나이아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한다.
러신이 질문했을 때 아나이아에게 마음과 동정심을 가져야 할 다른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여린 마음을 이후에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간다. 그녀는 아버지가 새 아내와 결혼해서 낳은 쌍둥이 중 한 명, 라일리와 대화를 나누고는 무언가 교감을 이뤘다고 생각해, 후에 다른 쌍둥이 스카치를 칼로 찔러 죽이고 나서 찾아온 러신이 라일리까지 죽이려 하는 것을 방해하려 든다. 그러나 라일리는 자신의 동생을 죽인 눈앞의 쌍둥이가 자신과 교감을 하든 말든, 즉각 아나이아의 목을 조른다. 러신은 라일리의 머리를 돌이 든 양말로 쳐서 쓰러뜨리지만 다시 일어난 라일리와 몸싸움 끝에 쓰러지게 된다. 정신을 차린 아나이아는 언니를 구하기 위해 라일리의 머리를 양말로 쳐서 깨부숴 죽인다. 이후 러신이 정신을 잃은 사이 찾아온 아버지와의 대면도 라일리와의 대면과 비슷하게 이루어진다. 아나이아는 아버지의 설득과 회유에 넘어가 그를 죽이는 걸 망설이다가 역으로 공격당하고 그사이 일어난 러신이 그녀를 구함으로써 목숨을 부지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몸에 불을 붙였을 때, 그가 일어나 러신을 끌어안고 동귀어진하려 할 때, 아나이아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녀는 라일리를 죽이고 나서 자신이 “해냈다”며 이제야 자신의 그 유약함과 나약함을 벗어던진 듯이 외쳤지만 결국 러신이 아버지와 함께 불에 타고 있을 땐 그녀가 갇혀있던 “상냥함이라는 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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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이아의 유약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그녀가 자신의 복수를 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이다. 러신의 경우 자신이 어머니가 없는 사이 양아버지들의 손에 맡겨져 학대받았다는 사실, 평생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에 언젠가 한 번은 발 디딜 “기반”을 얻어보고 싶다는 사실 등을 말하며 자기 자신이 가진 분노와 증오의 뿌리를, 지금 자신이 행하려 하는 복수의 뿌리를, 되짚어 본다. 그녀는 자신의 복수가 어머니의 복수, “신”의 복수라고 말하지만 그것을 행하는 기저에는 어디까지나 그녀 자신의 원한이 깔려 있었다. 하지만 아나이아는 처음부터 자신이 복수라는 미명하에 살인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회의했고, 그녀가 자신이 당한 폭력, 혹은 자신이 가진 분노의 경험 따위를 입 밖으로 꺼내는 장면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앞서서 이미 말했듯이 숨길 수 없는 흉터를 가지고 러신보다 더욱 극명한 혐오와 차별을 마주하며 살아왔던 아나이아에게 정말로 분노가 존재하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아나이아의 분노는 밖으로 향하지 않는 사이 그녀 자신을 갉아 먹어왔던 것이 분명하다. “언제나 그렇듯이 고개를 들지 못하는” 그녀는 자신의 분노를 가지고 세상과 마주할 수 없었고, 세상을 향한 스스로의 복수 또한 가질 수가 없었다. 따라서 아나이아는 어머니, “신”의 복수라는 명목이 없는 상태에서는 복수를 향해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그런 명목을 가진 상태에서조차 끊임없이 망설일 수밖에 없는 모라토리엄에 빠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즉, “아나이아는 이러기엔 너무 피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나이아는 결국 복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한다. 아나이아는 아버지와 라일리, 스카치, 그리고 앤지의 시체 조각들을 가져가 어머니에게 전한다. 아나이아는 자신에게 흉터가 남은 것은 어머니가 불에 타며 자신을 끌어안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버지한테서 들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듣지 못한다. 아나이아는 조용히 돌이 든 양말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고 어머니는 숨이 끊긴다. 결국 아나이아는 오로지 자신의 것인 복수를 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복수도 아니고, “신”의 복수도 아니고. “나”의 복수를 말이다. 타인의 복수를 하려고 해서야 아버지의 말마따나, “퍼즐의 조각들을 전부” 맞춰볼 수가 없는 셈이다. 그것은 자신의 퍼즐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제공: 극단 백수광부]

극단 백수광부 <Is God Is>
일자
2022.4.14 ~ 4.24

장소
선돌극장

앨리샤 해리스
번역
함유선
연출
장일수
출연
정은경, 민병욱, 박하영, 문법준, 전주영, 신대철
드라마터그
손신형
무대
김지아
조명
김성구
의상
박인선
음악
타무라료
사운드
박현민
사진
이노아
영상
윤호섭
촬영
플레이슈터
기획
한정후
무대감독
조문정
조연출
안현근
조명오퍼레이터
서별
음향오퍼레이터
차진영
영상오퍼레이터
심태연
제작
극단 백수광부
관련정보
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200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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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이

영이
폭력과 고통, 그리고 분열의 상관 관계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다. 『정서 지도 그리기』, 『밑 빠진 독(毒)에 물 붓기』, 『월간 종이』 등 제작. 제2회 <게임제너레이션> 게임비평공모전 수상.
https://twitter.com/monthly_pap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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