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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대소동이 나에게 준 감동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 <커뮤니티 대소동>

전주연

217호

2022.04.28

친구에게서 연극을 보자는 연락이 왔다. 어떤 연극이냐고 물었더니 빛이 차단된 어둠 속에서의 공연이라고 했다. 게다가 관객이 가만히 앉아서 관람하는 연극이 아니라 낯선 사람들과 소통하며 춤까지 춰야 한다는 말에 적잖이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빛조차 구분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음악을 좋아하긴 하지만 춤은 춰 본적도, 다른 사람이 추는 춤을 본 적도 없기에 내가 추는 춤이, 아니 내 몸짓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 얼마나 웃기게 보일까? 춤 비슷하게 보이기나 할까? 수많은 생각이 몇 초 동안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내가 망설이는 동안 친구의 설득이 이어졌다. 어차피 암전 공연이면 모든 배우와 관객이 시각장애인과 같지 않겠냐고…. 친구의 말에 공감되는 바가 있어 함께 가 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형식의 공연이었기에 기대와 긴장 속에서 티켓을 수령한 후 안내 요원의 팔을 잡고 첫 번째 부스에 도착했다. 내 별칭과 우주에서 들렸으면 하는 소리를 녹음해야 한다는 말에 조금은 당황했지만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시키는 대로 했다. 다음 부스에서는 안대를 착용했는데 그제야 다른 비장애인들이 나와 같은 과정으로 안내를 받으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걸음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걱정이 되었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걸까?
공연 관람을 위한 준비, 아니 공연 참여라고 해야겠다. 단계별로 서로 다른 안내자의 도움을 받아, 어색한 목소리로 녹음을 하는 일, 안대를 착용하는 일, 그리고 나누어 준 양말로 갈아 신는 일 등을 특별히 설치한 부스에서 차례대로 진행한 것은 각별한 배려 같았다. 안대를 한 채 양말을 갈아 신는 일은 비장애인에게는 꽤 힘들고 당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특히 누군가 보고 듣고 있다면 말이다. 그래서 참여자를 배려하여 그런 부스들을 마련해 두었으리라. 장애인이든 아니든 우리는 모두 서툰 일을 하거나 낯선 상황에 처할 때 소심해지고 부끄러움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하여 문득,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그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다 나의 당혹감을 가려준 부스였구나 하는 깨달음에 가슴 따뜻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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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공감: 연출] <커뮤니티 대소동> 2021년 창작과정공유 당시 현장 사진

극장 안으로 들어서니 바닥에 닿는 발의 느낌이 예사롭지 않았다. 거칠고, 부드럽고, 폭신하고, 딱딱하고 심지어는 돗자리의 질감까지 느껴졌다. 왜 바닥을 이렇게 다양한 질감의 소재로 깔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쯤 안내 요원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거친 느낌의 길만 끝까지 잘 따라가면 길을 잃더라도 자신의 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다’라고.
그제야 바닥을 여러 가지 질감의 소재로 덮어 배치한 이유를 깨달았다. 참여자가 길을 찾을 때 랜드마크로 이용하도록 하려는 세심한 배려인 것이다. 실제로 우리 시각장애인은 보행을 하거나 차를 타고 이동할 때 길바닥의 질감을 발이나 몸으로 느껴 길이나 목표 지점을 찾기 때문이다. 물론,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하나의 길이 동일한 질감으로 이루어져 있지도 않을뿐더러 정연하고 질서 있게 배치되어 있지도 않다. 수십 번을 헤매며 익혀 놓은 길에 예상치 못한 것들 이를 테면 자동차, 자전거 등이 길을 막고 놓여 있어 우리를 당혹하고 혼란스럽게 하기 일쑤다. 때로는 부딪혀 깨지고 상처 입어 피를 흘리기도 한다. 그래도 우리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누군가가 있음에 다시금 딱 하고 켜지는 희망의 소리를 듣는다. 의자마다 점자와 양각하여 표시한 번호의 숫자까지….
사람은 처지가 같거나 비슷할 때 동질감을 느끼고 상대를 친근하게 여기는 법. 커뮤니티의 여러 구성원들과 함께 우주인이 되어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낯선 이들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소통하면서 점차 동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안대를 벗으라고 했을 때 사실 내 마음에는 작은 빛이라도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일었다. 구성원 모두가 나처럼 길을 잃고 헤매는 상황에서 또 발을 더듬어 자리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있을 때 그리고 도움을 청하는 박수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올 때 비로소 모두가 나처럼 빛이 완전히 차단된, 다시 말해 시각이 없는 상태임을 확신하게 되었다. 비록 일시적이라 할지라도….
얼굴과 표정을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그들도 나처럼 목소리와 어조 그리고 사용하는 어휘만으로 화자에 대한 이러저러한 인상들을 떠올렸으리라. 함께 춤추고 몸 인사를 나누고 길을 잃은 혼란 속에서 서로 부딪히며, 불편함 대신 친근감이 그리고 공동체 의식 같은 것이 가슴을 채워 갔다. 아울러 공동체의 일부로서 나의 참여가 만들어 가는 공연에 대한 기대치도 높아졌다. 시각장애인에게는 일상과 유사한 경험이지만 비장애인들에게는 꽤나 특별한 경험이었으리라. 이 모든 것들을 세심하게 기획하고 배치한 공연 관계자들의 애씀에 감탄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나와 같은 우리 시각장애인들의 삶은 어쩌면 이런 대소동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일일이 다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크고 작은 수많은 도움들이 우리가 헤매던 유형, 무형의 길을 찾아 준 아늑하고 따뜻한 부스였음을, 그래서 우리가 겪어 왔고 앞으로도 겪어야 할 대소동이 그리 절망적이지만은 않음을 이 공연을 통해 자각한다. 내가 사는 세상의 이 따뜻함으로 가슴 한켠에 작은 행복의 방점을 찍어 본다.

[사진제공: 국립극단]

국립극단 [창작공감: 연출] <커뮤니티 대소동>
일자
2022.3.30 ~ 4.10

장소
국립극단 소극장 판

연출
이진엽
공동창작
김가은, 김경림, 김민서, 김시락, 박규민, 박하늘, 이애리, 이진엽, 장영, 조재헌, 최선애, 최원석
구성
장영
무대
송성원
음악·음향
김성환
조연출
최현정
출연
김경림, 김민서, 김시락, 박규민, 박하늘, 이애리, 조재헌, 최선애, 최원석
관련정보
http://www.ntck.or.kr/ko/performance/info/257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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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연

전주연
안녕하세요. 초코, 우유라는 백문조를 키우고 있는 새 엄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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