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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난이도

김지연

210호

2021.11.25

지난해, 현장의 큐레이터, 드라마투르그들과 함께 씨엠이라는 일종의 연구모임을 꾸렸다. 우리의 고민은 단순했다. 예술생태계에서 매개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은 무슨 일을 하는가. 우리는 왜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고, 그렇게 불릴 수밖에 없는가. 현장에서 매개자들은 큐레이터, 드라마투르그, 리서처, 기획자, 프로듀서, 비평가, 연구자, 코디네이터의 역할을 넘나들며 상황에 따라 정체성을 확장시키면서 활동한다. 첨단의 기술력, 막강한 자본력이 세상의 변화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창작환경의 구조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고 다변화되었다. 하나의 작품 안에서 협업해야 하는 전문가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이들의 전문성은 ‘작품’이라는 공동의 목표 안으로 수렴된다. 그럴수록 콘텐츠 생산의 안팎에서 서로 다른 전문성, 서로 다른 우선순위, 하나의 단어나 상황에 대한 서로 다른 정의를 가지고 일하는 이들을 연결하고 조율하고 비평하는 조력자, 연결자, 협업자로서 매개자의 역량을 향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각예술가들은 마치 영화나 드라마, 공연 제작 현장을 운영하듯 대규모 크루를 꾸려 작품을 생산하고, 작품 안으로, 전시 공간 안으로 연극인이나 무용가를 초대한다. 배우는 시각예술가의 카메라 앞에서 ‘공연화’되지 않아도 다른 의미를 생산할 수 있는 연기를 펼치고, 무용가는 작가의 오브제, 전시와 교감하면서 움직인다. 공연예술가들은 무대 위의 서사를 다른 관점과 기술력을 활용해 펼쳐나가면서 기존의 공연 형식에 갇히지 않는, 어떤 다른 방향성을 꿈꾼다. 무대디자이너로 시각예술가를 초대하거나, 그의 영상작품을 무대로 올려 보낸다. 이제 공연에 큐레이터가 합류하거나, 전시에서 드라마투르그가 조력하는 일은 낯설지 않다. 나 역시, 시각예술분야의 큐레이터지만, 최근에는 무용 공연에서 드라마투르그로 일을 해보면서 시각예술계에서는 일반적이나 공연예술계에서는 새로울 수 있을 법한 감수성을 안무가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하나의 정체성 안에 나를 가두지 않고, 올 라운드 플레이어로서 일하는 것은 한편 흥미롭다. 그 무엇도 견고하게 고착되어 있지 않아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창작의 현장에서, 서로 다른 창작 언어, 소통의 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오가면서 전과 다른 방식의 선택과 결정을 수행하며 창작을 조력하는 일에는 희열이 있다.

함부르크 미니어처 원더랜드 전시장과 오퍼레이팅 룸
함부르크 미니어처 원더랜드 전시장과 오퍼레이팅 룸

장르가 섞이고,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협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알게 된 것 중 하나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은 이들이 생각보다 서로의 언어를 습관적으로 오역하거나, 그 작동방식에 무심하다는 점이었다. 어떤 모임 자리에서 무용가 한 분이, 자신이 시각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시각예술가들은 공연예술의 매커니즘을 너무 모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전시회에서 퍼포먼스를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지만, 세부적인 내용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없었다고 했다. 전시장의 작품 사이에서 내가 어떤 움직임을 만들어야 하는지, 어떤 동선을 그어야 하는지에 대한 작가의 아이디어는 전혀 없었고, 그저 알아서 움직이면 충분하다고 했다는데, 이 무용가는 그런 디렉션을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전했다.

공연계 사람들로부터 시각예술계와의 협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와 유사한 사례에 대해서는 종종 들었다. 작가가 아무 디렉션을 주지 않아 내가 안무를 짜고 움직였는데, 그것이 그저 카메라만 설치한, 전시장 한 켠을 내준 작가의 작품이 된다는 점이 이상하다는 말, 배우의 등퇴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전시장에 공연예술가의 움직임을 배치하니, 이 상황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 등등. 반면, 공연예술계와 협업하는 시각예술가들도 공연시스템을 향한 의문을 가지고 있다. 공연장의 무대 제작을 의뢰받고 작업했는데, 공연기획사 측에서는 그 작품을 ‘작품’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대디자인을 위한 사례비를 주었고, 무대제작비 역시 공연기획사 측에서 제공했으므로, 이 무대미술품은 기획사의 소유이며, 작가는 이에 대해 어떤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시각예술가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논리다. 작가의 손을 타고 생산된 것은 무대미술로 쓰이든, 전시장에 설치되든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갖는다. 작품의 저작권은 창작자 본인에게 있고, 이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갖고자 한다면 작품가에 맞춰 구입하는 절차를 갖춰야 한다. 제대로 된 작품매입의 과정을 거쳐 소장한다면 문제가 있을 이유가 없다. 최소의 창작비를 받고 제작한 작품에 대한 소유권을, 제작비 지급 주체가 기획사라는 이유로 기획사에서 가져간다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강탈당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작품의 가치는 그 제작비를 상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씨엠 멤버들과 매개자들의 용어에 대한 책을 준비하면서 ‘공감하다’라는 동사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슷한 것 같지만, 결국 모두 다른 존재인 우리들은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을까. 공감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서로의 입장과 논리를 상대방에게 관철시키고, 상대방의 의견을 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매개의 지형을 살피다 보니, 예술가들이 창작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새롭게 시작하는 기분이 든다.

[사진 제공: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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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김지연 d/p 디렉터, 전시기획, 미술비평
김지연은 국문학, 미술사, 미술이론을 공부했다. 정신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최근에는 전시 형식이 비물질적인 요소들을 가시화하는 전략을 살피는 중이다. 가나아트센터, 학고재갤러리 기획자로 일했고, 세계문자심포지아, 제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는 <예술가들의 대화> 등이 있다. 현재는 1인 기획사이자 출판사인 소환사와 전시공간 d/p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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