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공연계 여러 현장을 직접 찾아가 취재하고 그 모습을 담아냅니다.

축제의 이름으로 반란을 선포하고, 반란의 이름으로 축제를 벌이는 여성들 제1회 전북여성문화예술제 <N의 반란>

오빛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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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의 이름

열차를 놓치는 바람에 예상보다 늦게 전주에 도착했다. 나는 허겁지겁 한옥마을 거리를 가로질렀다. 높은 건물 없어 말끔하고 푸른 하늘 아래 공사에 한창인 전동성당과 한옥을 따와 그럴싸해 보이는 건물들 앞에서 한복이나 길거리 음식 등을 권유하는 호객 행위가 다소 투박한 풍경으로 어우러졌다. 관광지로 유명한 명소답게 한껏 한복을 차려입은 연인들의 웃음소리와 카메라 셔터 터지는 소리가 뒤엉켰다. 그 길 끝자락에 제 1회 전북여성문화예술제 <N의 반란>이 열리는 카페 더스토리가 있었다. 미디어와 지자체에서 홍보하는 바로 ‘그’ 전주, 전주, 전주를 울부짖는 것 같은 여러 음식, 한복, 소품을 홍보하는 입간판 사이에 <N의 반란>을 알리는 입간판과 포스터가 보였다. 뭐랄까, 도전적이다, 싶었다. 이런 관광 명소 한복판에서 여성문화예술제를 연다는 것은…. 무섭지는 않았을까? 야유나 공격을 받는 건 아닐까? 놀랍게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N의 반란> 팸플릿에도 소개되어 있듯, 비수도권 지역에서 예술가로서, 여성으로서, 페미니즘을 말하고 창작을 하는 것과 그와 관련한 사유를 공유할 커뮤니티를 찾는 것은 무척 고되고 어려운 일이다. 바야흐로 누구나 페미니즘에 대한 의견을 가진 시대다. 하지만 대개 힘 있는 사람들의 발화에서 ‘페미니즘’은 그 진의와 맥락이 소거된 채 조롱과 야유의 대상으로, 심지어는 차별을 강화하고 혐오를 촉진하는 단어로 쓰이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명한 사실이 있다. 여전히 많은 여성들은 일터와 일상 가릴 것 없이 성차별과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예술계에서 오랜 시간동안 성차별과 성폭력을 예술의 이름으로 포장하고 은폐해왔다는 것은 그다지 놀랄만한 사실도 아니다. 2016년 트위터를 통해 고발되었던 여러 예술계 내의 성폭력들은 예술 커뮤니티에 대한 이해와 접근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혀 낯설지 않은 내용이었다. 그것이 사실은 차별이고 폭력이었다는 점이, 그렇게 호명할 수도 있었다는 점이 낯설었을 뿐. 노동자이자 창작자로서 작업장에 나서야 하는 여성예술인들은 자신이 너무나 사랑했던 대상이자 주체로서 행위했던 예술 속에서 차별과 폭력을 발견하는 아이러니를 겪었다.
차별과 폭력은 인간을 무기력하게 하고 사회와 소통하기 어렵게 만들며 한 개인의 잠재력과 인간으로서 응당 부여받아야 했을, 동시에 자유롭게 누렸어야 했을 권리를 빼앗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여성예술인들을 잃어야만 했을까? 그런데 여기에 그 아이러니를 겪고도 다른 역사를 쓰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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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이름으로 반란을 선포하고, 반란의 이름으로 축제를 벌이는 여성들

첫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지만 여전히 입구가 붐볐다. 소박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구성된 카페 1층은 여성 작가들의 작품 판매 매대와 부스로 이루어져 있었다. 팸플릿을 받아 2층으로 올라가니 전시 공간과 공연 공간이 한 눈에 들어왔다. 3월 13일, 14일 양일 진행된 축제는 총 여섯 팀의 공연과 토크콘서트로 구성되었다. 한 공연 당 30분 진행되고, 토크콘서트는 2시간 분량이었다. 1층 매대와 2층 전시 공간은 공연의 진행 여부와 상관없이 마감 시간까지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두 번째 공연 팀인 가야금 앙상블 <월향>의 무대가 진행 중이었다. 곡 소개가 이어졌다. “이 곡은 인간의 희노애락 중 사랑의 반짝임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어요.” 부드럽고도 힘 있는, 날카롭지만 경쾌한 가야금 선율이 이어졌다. 누구든지 한 번 들으면 절로 흥이 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소리였다. 나는 어쩐지 즐겁고도 버거운 기분이 들었다. 반란 속에서도 사랑의 반짝임을 말하다니, 아 정말 사람들 못됐다…. 너무 자연스럽게 극적으로 몰입하게 하잖나.
토크콘서트는 상당히 놀라운 자리였다. 책방 토닥토닥의 책방지기님의 진행 아래 보자기 아트, 클래식 성악, 판소리, 문화재단 실무 영역에서 활동하는 네 명의 여성들이 모였다. 한 눈에 보기에도 연령대와 활동 영역이 모두 다른 여성들이었는데, 그들이 모인 시각적 모습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코로나 19의 상황으로 대면 콘텐츠 자체를 향유하기 힘들어졌지만, 그중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여러 여성예술인들을 동시에 만나는 일은 더욱 귀한 일이다. 게다가 고전적인 예술 분야부터 문화재단에서 실무자로 일하는 여성까지 한 자리에서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걸 볼 수 있다니, 이 야심차고 다부진 기획이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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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더 환상적이었다. 아니, 여태 경험해보지 못한 황홀경이었다는 의미로 환상적이라고 쓴 것이 아니다. 어쩐지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는데 그게 되게 재밌었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전북지역에서 여성예술인으로서 일한다는 것의 고충, 페미니즘을 접하게 된 계기, 각자에게 페미니즘이 갖는 의미, 예술 작업을 할 때 페미니즘을 고려하는 방법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이야기의 방향성이 제각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참 재밌고 신선했다. 이 토크콘서트 안에서 ‘페미니즘’은 정확히 그 맥락이 합의되지 않은 채, ‘페미니스트로서 창작을 하는 것’, ‘페미니즘적인 실천을 예술 활동에 녹이는 것’, ‘여성 창작자 지원 사업을 활용하는 것’,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것’, ‘페미니즘을 소비하는 방법’ 등과 혼합되어 사용되었다. 하지만 아무도 정밀하게 다투지 않았다. 서로 다른 얘기를 하는 것 같아도 다 같이 경청하고 서로의 흐름에 맞추어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나누었다.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모두 긴장감보다는 설렘으로 관객들과 눈을 맞추고 있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순간이 또 있다. 사회자가 성악과 판소리의 한 부분을 즉석에서 보여줄 수 있는지 요청하는 순간이 있었다. 갑자기 보여줄 수 있을까? 사전에 합의가 된 내용일까? 위력 관계가 형성된 무대이거나 예술인을 전문가로 보는 것이 아닌 오락 요소로만 바라봐 부적절한 요청이나 대우를 받았던 예술인들의 여러 사례를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인지 잠시 반사적으로 의문이 들었는데, 그 의문이 무색하게도 토크콘서트는 한순간 빛나는 공연 무대가 되었고 두 분은 한순간에 관객을 사로잡는 출연자로 돌변했다. 아, 그렇지. 나도 금세 경계심이 허물어졌다. 맞아. 나라도 저런 재능과 감각을 가졌다면 온 세상에 보여주고 싶을 것이다. 그것을 잘 알아줄 것 같은 무대 위에서라면 더욱. 모두가 편안하고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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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뮤지컬 드라마 팀 <아띠>와 다원예술 팀 <하이댄스퍼포먼스>의 공연을 관람했다. 모든 공연들은 관객과의 거리감이 적었다. 카페라는 공간적 특성도 있었겠지만, 이 축제에서는 일반적인 공연 무대처럼 화려하거나 정밀한 조명을 연출하지 않았다. 너무 어둡지도 않았고, 지나치게 밝지도 않았다. 한낮의 햇빛은 블라인드와 포스터를 넘어 완만하게 번졌다. 무대 위 모든 소품과 일상적인 옷차림마저도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은 오히려 무대와 공연자를 더욱 깊게 이해하게 만들었다. 관객들에게 관람의 사각지대는 없었다. 하나의 초점에 매료되어 관람하기보다는 관람자에 따라서 해석의 여지가 다양하도록 그저 놓여 있는 무대였다. 그것을 관람하는 과정으로 하여금 이것이 극이라는 느낌보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을 목격한 느낌이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창작 작업 과정에 나도 참여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그래서 관객과 공연자의 관계를 넘어 무대와 공연자들을 현실에 존재하는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이입할 여지가 많았다. 그 점들이 예상치 못하게 어설프거나 예상치 못하게 매혹적이었다. 축제의 이름으로 반란을 선포하고, 반란의 이름으로 축제를 벌이는 재기발랄한 전북의 여성예술인들이 N의 뒤에 감춰 있었던 한 개인 개인의 이름을, 삶을 외치는 모습이었다.

반란의 목적

말에 대해 생각한다. 2층 계단으로 이어지는 벽에는 응원 메시지와 후원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전북 지역에 이러한 예술제가 생겨서 너무나 반갑고,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의 앞으로의 행보 또한 응원한다는 메시지가 주를 이루었다. 특별히 극적인 요소 없고, 충분히 나올법한 말인데, 동시에 그것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별로 어려운 말도 아닌데, 전시의 일부가 될 만큼 가치가 있고 힘이 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이 모든 아이러니에 맞서는 힘을 실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을 건네고 받을 공간과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란’은 자칫 들으면 굉장히 극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주는 단어다. 어떠한 문제에 반대하여 내란과 소란을 일으킨다는 의미인데, 이 내란과 소란을 일으켜 얻고 싶은 목표란 사실 그저 평화로운 일상이다. 모든 축제는 언젠가 끝이 나고, 축제가 끝이 나면 참여자들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웃으며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하고 평화로운 일상이 없다. 우리는 죽지 않는 한 일상을 짊어져야 하는 인간의 운명을 타고났다. 이미 차별과 폭력으로 점철된 일상이 있다면, 그것은 일상이기 때문에 더욱 괴로운 일이 된다. 지나치게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남성중심적이고 성차별, 성폭력에 노출된 일상을 다시 오롯한 나의 일상으로 바로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 생애주기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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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오는 열차 안에서 나는 팸플릿에 쓰여 있는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에 관한 말을 반복해서 읽었다.

……본 단체의 발족 이전까지 지역 문화예술계에서는 예술 장르의 구분 없이 오로지 여성예술인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이나 기구가 전혀 없었습니다. ……작업 중 발생한 사고나 개인이 속한 단체 안에서 생기는 불합리한 사건, 공정하지 못한 대우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화할 소통기구가 부재했던 것입니다.
……본 단체는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습니다. 평판과 인맥으로 직위와 기회를 갖게 되는 기존의 문화예술계에서 피해당사자의 목소리에 집중하며 여성의 인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쩌면 예술 활동과 각종 심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활동인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본 단체의 최종적인 목표는 여성예술인이 동등하게 결정권을 가지고 어떤 창작현장에서도 성적대상으로 소비되지 않으며 공평하고 공정하게 평가받고 자유롭게 창작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입니다 .

앞으로도 반란이 자주 일어났으면 좋겠다. 아예 그냥 밥 먹듯이 무작정 일어났으면 좋겠다. 모든 축제는 언젠가 끝이 나버린다면, 끝이 날 때마다 또 다른 축제가 있었으면 좋겠다. 결국은 오늘의 축제가 우리의 일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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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

제1회 전북여성문화예술제 <N의 반란> 현장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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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빛나리

오빛나리
2016년 문단내 성폭력 고발자에 연대한 <탈선> 대표로 활동했다. 지금은 자유로운 문학 창작 모임 <우롱센텐스>로 활동중이다.
<지극히 사적인 페미니즘> 공저자. 문화예술계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강사. 놀랍게도 연극 <스탠드 업 그라운드 업 vol.2>에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lilly_j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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