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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 시민의 현재진행형 고민: 운동과 법 사이의 실천적 사유

2021 평등의 이어달리기 온라인 농성 ‘3시의 페미니즘: 평등을 꿈꾸는 예술’

강보름

제206호

2021.09.30

“‘문화예술계의 권력구조’라는 말은 너무 거대하고 추상적인 말이어서, 권력을 가진 사람이 가해자가 되거나 성차별의 핵심 인물일 때, 나는 그 사람의 영향 바깥에서 어떻게 활동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평등을 꿈꾸는 예술’이라는 말은 아직 평등이 도래하지 않은 예술계의 권력구조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렇다면 ‘누구의’ ‘어떤’ 평등을 꿈꿀 것인지를 우리에게 묻는다.
이는 필자가 9월 16일 목요일 3시에 참관한 행사의 부제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주최로 9월 1일 시작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2021 평등의 이어달리기 온라인 농성’의 마지막 순서였다. ‘3시의 페미니즘’1)이라는 꼭지의 이름이 기대감을 불러일으켰고, 본 좌담이 예술계 내부가 아니라 차별금지법이라는 범주 안에서 시민들과 함께 담론을 나누는 자리라는 점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문화예술계 역시 작은 한국 사회이며, 차별금지법이 절실하게 필요한 현장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현장에서 관련 문제의식을 갖고 활동해온 고주영 독립 프로듀서, 송진희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 대표, 오빛나리 우롱센텐스 대표가 오혜진 문학평론가 진행으로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각자 “나에게 차별금지법이란?”이라는 문장에 답하는 것으로 서두를 열었다. ‘힘’, ‘집’, ‘상식을 합의하는 것’이라는 세 사람의 답을 들으며 나의 답은 무엇인지 고민해보았다. ‘숨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의 숨통은 좀 트였는가. 답은 이 행사가 기획되었다는 사실과 필요성 그 자체에 있다. 세 명의 패널은 공통적으로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매개로 국가와 종속적인 관계를 맺는 현 시스템을 지적하면서, 균열을 내기 위한 각자의 전략을 공유하였다.
고주영은 ‘독립’이라는 단어를 프로듀서 직함 앞에 달고, 오빛나리와 송진희는 문단과 미술계라는 기성 제도 바깥의 동료들과 연대체를 꾸려 활동하고 있다.
물론 당연하게도 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오빛나리는 “우리가 가진 목소리로 승부하는 건 고단한 일”이며, “독립출판과 개인출판사가 대안으로 보이고 낭만적으로 비치기도 하는데 지속이 어렵다”라는 현실을 고백하였다. “문단의 바깥에서 여러 시도를 하면서 상징화된 권력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어떤 형체로든 작업물을 내거나 작가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확장할 수 있는 권위에 대한 욕망이 내 안에 존재”하며, “독립적인 시도를 하는 건 시작점일 뿐 끝이나 도착점이 아니다”와 같은 문장은 미투 이후 분열 중인 나에게 위로와 실마리를 던져주는 문장이었다.
고주영은 ‘작품이 결국 누구의 결과물, 소유물로 기록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극작가, 연출가의 이름으로 작업이 기록되는 공연예술 관습 안에서 독립 기획자의 위치는 어디인가? 이 상태로 언제까지 이 생태계 안에서 독립의 이름을 달고 작업을 지속할 수 있을까? 더 많은 재원과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권력 층위들이 있는데 그것과 어떻게 결탁하지 않고, 영업하지 않고, 언제까지 독자적으로 밀고 실현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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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농성 화면 캡쳐

최근 백상예술대상을 제외하면 프로듀서는 수상 후보에 오른 적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편 고주영은 서울 연극계 내 친페미니즘적, 친퀴어적, 친장애적 작업이 많이 일어나는 최근의 현상을 언급하였다. ‘페미니즘 연극제’를 플랫폼 삼아 그다음 장으로 나아가는 작가, 배우, 기획자가 생겼고, 민간에서 시작된 소수자 감수성 관련 작업이 공공으로 흡수되어 국공립극장에서도 관련 작업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이 외형적 성장에만 치중될지 지켜보는 관객의 중요성에 힘을 실었다.
송진희는 지역의 경우 남성 기득권 네트워크가 더욱 견고하여 섭외 행사가 취소되는 등 백래시를 겪고 있는 현실을 언급하면서, 우리가 여성 리더, 여성 대표의 얼굴을 더 많이 확인할 때 남성중심주의와 서울중심주의가 조금씩 해체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웹진 연극in에서도 소개된 바 있는 부산문화예술계 반성폭력연대의 활동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키워드는 ‘표현의 자유’와 ‘예술 비평’이었다. 현재 작품과 관련하여 논의할 수 있는 비평적 언어가 표현의 자유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표현의 자유가 차별과 혐오의 정당화에 오용되는 현상에 대해 짚어본 후, 다양한 갈래의 언어로 해석할 수 있는 더 많은 언어가 필요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오혜진에 따르면 성평등 예술은 ‘주류 대 비주류, 종속적 방식의 묘사에서 벗어나 미적인 실험에 대한 긍정적이고 창발적인 기획의 요청이자 이질적인 사람들이 다양하고 흥미롭게 공존하는 방식을 개발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다음 키워드는 ‘예술계 반성폭력 실천 운동’이었다. 공연예술계 현장에서는 2020년 9월 예술가들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KTS(한국공연예술자치규약)가 배포되어 사용되고 있다. 고주영은 프로덕션을 시작할 때 KTS 워킹그룹 멤버 중 1인을 초청하여 워크숍을 하고, 팀 내 자치규약을 갱신하고 업데이트하는 사례와 함께 이러한 문화운동이 공공에서 제도화되면서 문제적으로 변형되는 현실을 지적하였다.
마지막 키워드 ‘예술인 권리보장법’에 대해 오빛나리는 “예술인이 무엇이고, 왜 존재해야 하고, 어떻게 교육하고 사회인으로서 활동할 것인지 사회적 합의가 전혀 없었”으며, 예술인을 단일한 정체성으로 보는 시각 자체에서 사각지대가 생겨남을 지적하였다. 그의 말처럼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예술인의 권리와 책임에 관하여 새로운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시작이지 해답 그 자체가 아니다. 더 많은 공론장을 형성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작업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예술인 권리보장법’ 자리에 ‘차별금지법’이라는 단어를 넣어도 마찬가지이다. 법의 적용을 받는 범주의 사람들은 단일한 정체성으로 묶이기 어렵기 때문에, 법은 사회적 논의와 정책적 공백을 다양하게 상상하게 되는 하나의 매개로서 필요한 것이다.
쏜살같이 흐른 1시간 동안 펼쳐진 현재진행형 고민과 고단함을 들으면서, 동시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이자 동료 예술가라는 연대의 조건을 확인했다. 문화예술계 차원의 연대와 차별금지법 제정, 평등을 향한 운동과 법 사이의 실천적 사유는 계속되어야 한다.

[사진제공 : 차별금지법제정연대]

  1. 성차별에서 기인한 67%의 성별 임금격차를 반영하여 여성은 오후 3시에 노동을 멈추고 퇴근하자는 공동행동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꼭지는 종교, 여성 주거권, 여성 노동, 성적 괴롭힘, 성별임금격차, 질병권, 운동권, 정치/사회, 페미니즘 교육, 성/재생산권, 언론 등 다양한 각도에서 성평등 의제를 공유하기 위한 취지로 기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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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

강보름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rkdekdzh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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