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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리어프리: 안전하고 장벽 없는 연극노동을 꿈꾼 사람들

미친 존재감 <우리는 미쳤다!> 영상상영회

림보

제213호

2022.01.27

2021년 12월 말, 영상회 후기를 쓰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부터, 이 글이 ‘정신장애’라는 말을 마주했던 개인적인 경험을 되짚고 정리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정신질환/장애라는 주제를 강의를 통해 처음 만나던 날, 인권교육 활동을 하면서 교육자료에 종종 소개하던 축제 ‘매드 프라이드’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던 날, 그런데 그 축제를 준비하는 와중에 부당한 경험을 한 정신장애인 당사자들과 만난 일, 그들이 겪은 일을 드러내는 연대의 시간으로 뛰어들던 경험과 결국 멀어진 관계, 실패한 문제 제기…. 그리고 <우리는 미쳤다!> 공연 상영회. 이 과정들은 모르던 세계를 만났다는 잠시의 기쁨보다는 좌절과 실패로 기억되는 관계가 또렷하게 새겨진 경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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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응하지 않는, 통제하기 어려운 사람들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낙인

2019년 6월, <장애와 질병의 경계를 묻다>를 주제로 한 강좌가 노들장애학 궁리소에서 열렸다. 3회차 강좌의 제목이 ‘광기를 둘러싼 복잡성’이었다. (그때는 미친 존재감 프로젝트에 관계를 맺고 있는 송승연 연구자가 강사라는 것을 당연히 몰랐다) 정신장애/정신질환은 대체 뭘까…. 강의를 들으면서 더 궁금해졌다. 의학적인 진단을 받는 사람이 있으니까 실체가 없다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구소련에서 반체제인사에게 ‘나태 분열증’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정신병원에 감금하고 정신의학적 치료라는 이름 아래, 정치적 학대를 했더라는, 강의 초반에 나온 이야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길들이려다 만들어진 것이 정신질환/장애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훅 밀려들었던 것 같다. 그날 남긴 메모는 이랬다. ‘정신장애/질환은 결국 모든 사람을 사회 규범적인 존재로 훈육하고 싶은 권력의지 때문에 생긴 것은 아닐까. 정신장애인은 그 권력의지, 그러니까 통제하려는 시스템의 요구대로 살지 않으려 애쓰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축제 ‘매드 프라이드’가 지키지 못한 것?

2021년 1월 정신장애인 당사자 예술단체 안티카에서 벌어진 괴롭힘과 폭력에 대한 공론화가 시작됐다. 매드 프라이드 조직위원회의 많은 역할을 도맡았던 이 단체는 정신장애인 당사자 예술단체를 표방하며 다양한 창작 예술을 통해 관계 맺고 치유하자는 취지로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외부적으로 표방하는 것과 단체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달랐고, 결국 참여하던 사람들이 단체를 떠나는 일이 많았다. 자신들의 경험을 폭력 또는 괴롭힘이라고 정의한 사람들이 ‘안티카 대응 모임’(이하 ‘대응 모임’)을 만들어 이 문제를 공론화기로 결정하는 일도, 문제를 드러낸 후의 과정을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일도 쉽지 않았다.
‘대응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단체를 만들거나, 공연이나 전시를 만들어보기 위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고, 의견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았다. 문제점을 드러내는 일에 마음을 모으는 것과 달리 새로운 일을 모색하는 과정에서의 토론과 조율이 어려웠다. 민주적인 관계를 꿈꿨지만, 그것이 연습과 훈련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단체를 준비하려던 그들도, 나도, 미처 떠올리지 못했다.
‘정신장애’라는 개념을 마치 하나의 동일한 특징을 지닌 장애를 일컫는 것처럼 이해했다는 것, 그래서 사람마다의 다양한 차이와 다른 경험을 고려하는데 서투르기도 했다는 것, 각자 경험하는 증상과 힘겨움이 더 잘 보였다는 것, 책임을 지는 일이 무섭고 힘들었고, 그래서 지지부진하고 오래 걸리던 이야기들에 조금씩 지쳐가다가 싸움이 잦아진 것.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와중에 조력자의 자리에만 머물러 있기를 고집하던 내 모습까지, 2020년 초겨울부터 1년이 못 되는 시간 동안 이어온 만남은 아프게 끝났다고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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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고통을 공연한 이들

상영회는 기대 이상으로 큰 위로를 주었다. 미친 존재감의 <우리는 미쳤다!>는 2021년 11월에 공연했는데, 줄어든 좌석과 광속클릭에 무능한 똥손 탓에 공연을 보지 못한 것을 한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공연장의 공기는 어땠을까. 배우들의 호흡을 함께 해야 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그럼에도 상영회에 와서 다행이었다.
배우들이 각자의 장애와 증상을 겪어온 시간을 돌아보며, 공부도 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창조하고 연습했을 시간이 고스란히 보였다. 2021년 5월 이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과 두 차례 인권교육을 진행했는데, 그들과 공연을 만드는 과정 일부를 함께 했다는 뿌듯함도 함께 남아 기꺼이 박수를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상영회가 열리는 ‘모므로살롱’도, 거기서 마신 뱅쇼도 좋았다. 장원장, 김한글의 사전공연이 반가웠다. 2019년 늦가을 광화문 광장에서 그들의 공연을 처음 봤다. 정신의학과 의사인 장원장과 그를 찾아온 김한글의 대화를 바탕으로 쓰인 곡 <대화(RECOVERY) (featuring 김한글)>는 2019년부터 계속 좋아했던 곡이다. “제 삶이 이 모양인데 어떻게 자부심을 갖는 게 가능해요?”라는 가사의 ‘제 삶이’를 계속 ‘세상이’로 듣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이 문제지 내 삶이 문제는 아니라고 늘 생각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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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관계에 대한 절망이 있었고, 마음이 아팠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간이 있었다. 2018년 겨울부터 2020년까지 마음의 고통이 신체의 고통으로 드러나는 경험을 했다. 너무 뜨거운 여름에는 침대며 소파에 땀을 쏟으면서도 잠자는 일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집 밖을 나가는 게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피부가 뒤집어지고 다리가 아프다 마비가 오는 건가 싶을 만큼 움직여지지 않았던, ‘외로운, 위태로운, 괴로운 날들’1)이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고 쓸 수 있지만, 도저히 한마디도 하기 어려웠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상담을 받고 한약을 먹고 단식을 하고 운동을 하면서 살아보려고 애썼다.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의 경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공연’한다는 것은 얼마만큼의 용기를 내야 하는 일일까. 그 용기를 헤아리다 보니 <우리는 미쳤다!>가 더욱 고마웠다.

모두 서로에게 액팅 버디가 되었다

특히 첫 장면이 좋았다. 배우들이 쪼르륵 앉아서 자기를 소개하고, 다른 배우들이 그의 멋진 면을 한마디씩 덧붙이는데, 모두 안전하고 평온해 보였다. 서로에게 ‘액팅 버디’가 되었다는 것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순간이 아닌가 싶었다. 상영회 소책자에 소개된 액팅 버디라는 역할은 활동지원사도 아니고 연기 전문 훈련가도 아닌 듯했다.
천해인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연기한 왈왈은 불안하거나 부정적인 마음이 생기면 자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쓰러지곤 한다. 프로젝트 구성원들은 왈왈이 연기할 때 도와주면서 왈왈의 고난인 환청, ‘상상’을 연기하는 역할을 할 사람을 섭외하기로 한다. 이 사람을 액팅 버디라고 불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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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미쳤다!> 기획과 공동연출로 참여한 손성연 씨에게 액팅 버디가 만들어진 과정을 조금 더 질문하려 이메일을 보냈다. 그는 작업 과정 내내 ‘연극을 잘한다는 게 뭘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고 했다. 연극배우는 발음이 정확해야 하고 발성도 좋아야 하고, 몸의 움직임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요구를 받는 전문 기술직이기도 하다. 그런데 해인 역의 왈왈과 로운 역의 연우는 노트를 보며 연기를 했고, 왈왈은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더불어 연습을 시작하면서부터 공연에 관계하는 모든 참여자 사이의 동등한 관계를 고민하며 함께 창작하는 환경에서의 배리어프리를 주제로 토론하는 와중에, 모두 서로에게 액팅 버디가 되어주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사실 액팅 버디는 액팅 코치라는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러나 액팅 코치는 연기를 가르치는 사람, 훈련하는 사람이다. 그 역할을 이 프로젝트에 수용하는 것이 ‘전문성으로 인한 위계’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처럼 느껴졌던 듯하다.

연극이라는 노동과 배리어프리

손성연 씨는 더 약한 누군가를 위해 지원하고 배려하기보다는 “연습과정에서 모두에게 필요한 배리어프리를 탐색하다 보니, 결국 모두 안전하게 공연한다는 건 모두 다 함께 만들어 내는 것이지, 특별한 액팅 버디의 역할이 필요 없음을 자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배리어프리를 안전한 창작/공연환경을 만드는 것이며, 창작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연습과 공연에 걸쳐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는 손성연 씨의 말이 반가웠다.
배리어프리는 1974년 ‘장벽 없는 건축 설계(barrier free design)’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부터 세상에 알려진 말이다. 건축물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등의 물리적 장벽을 없애는 것부터 문화·정보의 전달과 제도/법률적 장벽, 심리·정신적 장벽까지 점차 논의가 확장되는 중이기는 하다.
배리어프리를 표방하는 연극이 창작의 결과물인 공연 현장에서 문자/수어통역과 음성해설을 제공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고,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요구되는 모든 노동에 다양한 장애와 아픔을 가진 몸들은 어떻게 ‘함께’ 참여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고민하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게 연극이라는 노동에만 해당하는 얘기는 아니다.
몸이나 마음의 힘이 소진된 사람들, 어리고 작은 몸을 가진 사람들, 남성중심으로 설계된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 비장애인 중심의 ‘정상성’에 근거해 무능력한 존재, 노동할 수 없는 몸으로 배제되는 장애인, 우리에게 착취당하는 동물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존재가 존중받으며 일하는 것이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학교와 일터와 극장과 미술관, 그리고 공장과 작업실에 배리어프리를 구현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공연/상영회가 던지는 질문이 단지 연극에서의 배리어프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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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예준미]

  1. 연우의 캐릭터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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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보

림보
‘세상이 함부로 대하는 존재’들을 편드는 사람. 모성이라는 말을 포장하려는 시도를 대체로 싫어한다. 최근에는 IW31(International Waters31 국경 없는 모두의 바다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에서 ‘보호’를 문제 삼는 활동을 하고 있다. 함께 지은 책으로 『십 대 밑바닥 노동』, 『회사가 사라졌다』, 『김용균, 김용균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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