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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임으로 말할 것 같으면

(구)신체행동연기술 스터디

양대은

제214호

2022.02.24

안녕하세요. (구)신행연입니다.

아직 이름도 없는, 한때는 신행연1)이라는 가명이 있었지만 이제는 다른 성격을 띠고자 전환을 꾀하는 이 모임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았지만, 당최 글의 골자가 잡히지 않았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모임과 스터디가 활력을 잃어가는 와중에 우리의 모임이 돌담에서 피어난 푸른 새싹일 리 만무했다. 하지만 시국의 영향 아래에 랜선 만남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이 모임의 존재가 기획 의도에 꽤 아이러니한 방식으로 부합하는 것 같았다. 다만 한 가지, 이 모임의 모호한 정체성이 발목을 잡았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주제가 어느 정도 명확하거나 글쓴이가 대상을 향해 벅찬 감정이나 타오르는 열정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단어와 단어를 이어 문장을 빚을 수 있다. 허나 누구도 이 이름 없는 모임의 초목표를 알지 못한다. 모임의 기승과 전결을 헤아리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지난 모임에서도 증명되었다. 모임의 이름을 짓기 위해 구성원들이 안간힘을 써서 마흔아홉 개의 후보를 쏟아냈지만 ‘이거다!’ 하는 확신은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굴러라동동’이 마음에 들었다. 다수의 표를 획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쪼록 동동의 어감이 모두에게 귀엽게 다가갔길 바랄 뿐이다.
그리하여 이 글은 현재 연기하는 사람 다섯 명으로 구성된 모임을 울퉁불퉁하게나마 묘사하려는 시도이다. 왜 우리는 (구)신행연이었다가 여기까지 오게 된 걸까?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갈팡질팡하면서 왜 모임을 지속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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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술을 배워보자고 모였으나

바야흐로 2021년 2월, 작년 이맘때였다. 하지은 배우의 연락을 받았다. 스터디 모임에 관심이 있는지, 참여할 의향이 있는지 등의 내용이었다. 곧 단톡방이 만들어졌다. 그곳에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주관한 ‘PLAY-UP 아카데미: 신체행동으로 설계하는 연기기술’(이하 아카데미)에서 만난 배우들이 있었다. “다음에는 만나서 해봐요!”라는 굳은 의지를 주고받은 지 석 달이 지난 후였다.
2020년 10월, 아카데미는 열흘 동안 줌(zoom)에서 매일 세 시간씩 진행되었다. 강량원 연출은 처음으로 온라인에서 신체행동 연기술 수업을 열게 되었다고 말했다. 우리는 큰 네모 안에서 자기소개를 했고 작은 네모 안에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수업은 새로운 개념의 연속이었다. 당연히 첫술에 이해가 되지 않았고 너도나도 질문을 이어갔다. 간신히 손에 잡혔다고 여기게 될 때쯤이면 완전히 반대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몸에 입히고 연기로 구현하는 과정에서의 실패는 덤이었다. 알다가도 모르겠는 혼돈 속에서 매일 과제를 소화해야 하는 빽빽한 일정이었다. 새벽 미명이 드리우고 창밖에 새가 지저귀는 타이밍에 맞춰 비로소 과제를 제출하고 나면 곧 랜선 동료들을 만날 시간이었다. 무릎까지 내려온 다크써클을 주워 담으며 배우들은 자신의 연기를 촬영한 영상을 공유했다.
전체 화면 속 표정과 대사를 통해 우리는 발표자가 연기한 인물이 만나는 세계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인물이 만나는 세계는 작용들로 구성되었기에 배우가 작용을 하나하나 만나면 인물의 세계도 만날 수 있었다. 이때 배우들은 각자 다른 작용을 만나고 그에 따라 작용표를 작성했다. 때문에 자신의 언어로 작성된 작용표는 그 자체로 흥미로웠다. 단순하고 직관적으로 쓰인 작용표가 있는가 하면 어떤 작용표에는 뚜렷하고 강렬한 이미지가 적혀 있기도 했다. 개개인의 경험과 언어가 다른 만큼이나 각자에게 작용이 일어나는 순간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짧게는 일 년, 길게는 15년 넘게 연극을 해온 서로가 수업 내용 못지않게 새롭게 감각된 순간이었다.

어디로 갈지 몰라 이것저것 시도하다가

신체행동연기술 스터디 첫날은 오프라인에서 처음 대면하는 날이기도 했다. 사전 회의에서 우리는 각자 과제를 정했다. 수업에서 첫 번째 과제로 다뤘던 ‘컵 씻기’였다. 연습실에 도착하자마자 부랴부랴 컵 씻는 장면을 연습했다. 황혜란 배우가 도착했다. 짧은 인사를 주고받고 우리는 각자의 컵을 씻느라 바빴다. 하지은 배우가 도착했고 첫 모임의 시작을 알리는 컵 씻기를 진행했다. 컵 씻기가 끝나고 우리는 서로의 컵 씻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실재하지 않는 사물과의 작용이 마임과 어떻게 다른지, 자연스러움과 자연스러움을 연기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인지, 신체의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작용을 어떻게 설계하고 만날 것인지 등 묵혀두었던 언어들이 쏟아졌다. 그렇게 첫 모임이 끝났다. 우리는 연기와 연기 설계를 언어화할 수 있는 이 매혹적인 메소드를 복습하기 위해, 나아가 수업에서 미처 다루지 못했던 범위까지 실습하기 위해 8회차의 스터디를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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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오프라인 모임에서 컵을 씻고 있다.

두 번째 모임부터는 첫 모임에 미처 참여하지 못했던 신지원 배우와 김미란 배우도 함께했다.2) 모임은 2주에 한 번씩, 일정을 맞추기 어려울 때는 3주마다 진행되었다. 아카데미 수업에서 매일 주어졌던 과제를 2~3주에 걸쳐 수행한 셈이었다. 사물, 생각, 사람 상대를 거쳐 소설의 장면을 발췌해 1인 장면을 연기했다. 5월(10회차)과 6월(11회차)에는 수업에서는 시도하지 못했던 2인 장면을 발표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집중도 있는 연습과 발표를 위해 화천 예술텃밭에 방문해 2박 3일의 워크숍을 갖기도 했다. 체홉의 <갈매기> 중 2인 장면을 골라 인물을 나눈 다음, 작용표를 작성하고 각자 연습 시간을 가진 뒤 상대 배우와 발표를 했다. 스터디는 그렇게 일단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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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예술텃밭에서 2박 3일 워크숍을 진행했다.

서로의 세계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는

그럼에도 모임은 계속되었다. 마무리가 되지 않아서라고 말할 수도 있고 아직 스터디를 덜 한 것 같아서라고도 말할 수 있지만,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모임은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소설 『내가 말하고 있잖아』와 희곡 『별무리』를 읽으며 ‘작용’과 ‘세계’에 대한 담화를 이어나갔다. 인물이 만나는 세계에 대한 논의의 끝에는 항상 배우 개인이 만나는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개인이 배우로서 갖는 위치성이 모두의 흥미를 자극한 것이다. 즉 연극계라는 자칫 단일해 보이는 세계에서 각자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왔길래 이제껏 만나기는커녕 소식을 접하지도 못했는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주제를 증폭시킨 첫 키워드는 의외로 ‘화이트아웃’이었다. 다섯 명이 이제껏 겪었던 무대 위 돌발상황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다양했다. 흥미로운 건 화이트아웃이 발생했을 당시 개인의 상태와 개인이 처한 환경과의 상관관계였다. 그 안에는 개인의 연기방법론과 더불어 자신이 속한 단체, 주변 동료와의 관계, 변화하는 연극계의 흐름 등이 녹아 있었다. 거칠게 말해, 하나의 에피소드가 곧 작은 연극사이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는 어떤 우리가 될까?

현재 (구)신행연은 구성원의 각기 다른 배경과 경험에 초점을 맞춰 일종의 아카이빙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2016년에 있었던 연극 경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나눴고 보다 구체적인 공유를 위해 당시의 기록이 남아있는 사진, 오브제, 글을 모아서 발표하고 질의응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6년 전을 돌아보는 작업은 과거의 나를 재의미화하는 동시에 내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점들을 이어보며 지형을 그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우리는 서로 헤아리기도 어려운 고유하고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으며, 놀랍게도 같은 장소에서 공통의 경험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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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의 흔적이 깃든 사진, 글, 오브제를 가져와 나누고 있다.

순전히 흥미로워서 시작해 느슨하게 이어지고 있는 아카이빙 작업이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당장 다음 모임의 주제도 정해지지 않았다. 이제까지 나름의 목표를 갖고 모였던 프로젝트나 모임과 비교하면 종종 물음표가 뜨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전제하고 시작하지 않은 이 모임이 묘하게 안정적이다.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고 즐거운 질문들을 야기한다. 서로의 세계가 궁금한 우리는 어떤 만남을 이어가게 될까? 우리는 어떻게 이어져 어디에 도달하게 될까? 우리는 어떤 우리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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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혜란 배우가 2022 타임라인 가안을 발표하고 있다. 2022년,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사진제공: 김미란, 신지원, 양대은, 하지은, 황혜란]

  1. 신체행동연기의 줄임말
  2. 박찬호 배우는 4회차부터 11회차까지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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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대은

양대은
주로 배우로 연극에 참여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dan_pppppuriiii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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