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착



   어제를 기다린다. 내일은 어제가 슬프고 모레는 어제가 기쁘다. 글피에는 어제가 안달나고

   일주일 뒤에는 어제가 삭막하고 한 달이 지나면 어제가 눈을 감고 있다. 반년이 지나는 동안 어제는 동요하지 않는다. 어제의 계절이 돌아오는 날엔 어제가 눈초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집어올린 한 조각 피자의 치즈가 길게 늘어지는 이 시각에 전철이 다음 역으로 달리고 있다. 안내 방송이 울려퍼지고 누군가 데워놓은 자리가 천천히 식고 있다.

   햇빛이 들지 않는 방 안에서 어제가 꼬들꼬들 말라가고 검은 입술과 눈동자가 물기를 잃고

   어깨와 굳은 살 배긴 손이 어제에 파묻혀 있다. 그런 어제를 끌어안아본 적 없다.

   지하주차장을 걸으면 차례로 켜지는 하얀 조명 뒤로 차례로 꺼지는 조명이 어제를 감추고 있다. 아득하기도 하고 깜깜하기도 한 어제의 머리채를 붙잡고 있다. 대기실 소파에 앉아 어제의 발소리를 기다리고 카페 통유리로 어제의 실루엣에 흠칫하고

   사거리에서 어제를 두리번거린다. 전철이 지날 때마다 길바닥이 쿨렁거린다.

   어제를 기다린다. 어제는 아직 오지 않았고 앞으로 올 일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언젠가 만난 것만 같아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마주 오는 어제의 얼굴을 본다면 그때 차가운 의자에 앉아 함께 들었던 음악을 기억하느냐고 그리고 그날 지상에선 무슨 일이 벌어진 줄은 알고 있느냐고

   그래, 그런 일이 있었단 걸 떠올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알리



   안녕. 널 두고 떠날 거야. 서랍 안은 깜깜하겠지. 그건 네가 좀더 아늑하길 바라는 나의 성의야. 서랍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침대 밑은 어때. 먼지와 함께 구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은데. 내가 감춰둔 팬티들, 편지들. 신물나겠지. 그래도 심심하진 않을 거야. 편지를 들춰보면 너도 알게 될까… 절망이 뭔지도 모르는 녀석. 네게 악감정은 없어.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나설 거야. 철컥, 열쇠 돌아가는 소리가 나면 너도 그땐 실감할 수 있겠지. 나는 멀어지는 내 발소리를 들어본 적 없어.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봐도 아무 소리 나지 않았으니까. 나는 뒤통수가 파먹히는 기분에 사로잡힐 거야. 어항 속 물고기가 감전사 하지 않을까, 뒤집어놓은 양말에서 발톱이 자라는 게 아닐까, 수도꼭지에서 새부리가 뚝뚝 떨어지는 건 아닌지. 그러니까 무얼 두고 왔는지. 그건 너와 비슷하지만 또 너무 달라서 종잡을 수가 없어. 침대 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옷걸이에 걸어줄까. 열린 창으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가 너를 쥐고 흔들 거야. 누구의 잘못은 아니었을 테지만. 비가 온다 해도 상관없어. 나는 물구나무 선 채 떠나면 되니까. 구멍 뚫린 네 마음이 창밖으로 줄줄 새나갈지도 모르겠어. 그래도 너는 아무 말 해주지 않고. 네게 목줄을 걸고 함께 문을 나설까. 네가 기뻐 날뛰는 모습에 나는 당혹스럽겠지.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단지 난…… 이제 널 떠난다고 말한 지도 몇 시간이 지난 건지. 내가 말했잖아. 끝끝내 네게 작별할 수 없게 될 거야. 나는 역시나 널 놓아줄 수 없는 걸까, 알리. 안녕.




김두형

일상의 자연스러움에 파묻히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살아 있습니다. 당신의 안부가 궁금합니다.
나는 버리고 싶은 것들이 많습니다. 국적과 성별로부터 과거와 미래, 감정과 감각 따위에 이르는 것들을 말입니다. 그로부터 새로운 무언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나는 인간 없는 인간에 대해 골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어디로 가 부딪혀 언제를 서성이고 있을까요. 어떤 의미도 필요 없이 말입니다.
절망과 희망의 바깥에서 우리의 말이 끊임없길 바랍니다.
요즘 나는 그렇습니다.

2018/02/27
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