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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아닌데로 쏘아올린 이미경의 돌직구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작가 이미경

김은성_극작가

웹진 19호

2013.03.07

작가 이미경
  • 2012년 연극계는 70분짜리 소극장 연극 <그게 아닌데>의 해였다. 대학로 연극이 가야할 좌표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동아연극상, 대한민국연극대상, 한국연극협회 베스트 7, 한국연극평론가협회 베스트 3까지 휩쓴 화제작의 작가는 놀랍게도 올해 도전 9년 만에 신춘문예에 당선된 마흔 둘의 중고신인이었다. 길고 긴 워밍업을 끝내고 이제 막 마운드로 향하는 준비된 작가의 묵직한 포부를 들어봤다.
  • 9년만의 당선

    요즘은 어떤 작품을 준비 중인가?
    올 가을에 공연 될 ‘봄작가 겨울무대’에 올릴 작품을 쓰려고 준비 중이다. 한국공연예술센터에서 신춘문예에 당선된 신인작가들을 위한 좋은 기회를 만들어주셔서 장막극을 쓸 기회를 얻었다. 겨울에 서초구청 경비원이 동사한 사건을 가지고 쓰려고 하고 있는데 아직 시놉시스를 완성하지 못했다. 아직은 구상중이다.

    구청 경비원이 구청장이 내린 벌로 맹추위의 야외에서 밤샘 근무를 서다가 얼어 죽은 사실은 사건당시에 사회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다. 돌아보니 지금은 잠잠해졌다. 나도 잊고 있었다.
    그렇다. 사실 비슷한 사건이 하나 더 있는데 그 사건 역시 함께 음미하는 중이다. 홍수 때 시민을 구하려다 익사한 경찰이 있었다. 몸을 던진 희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나중에는 동상까지 세워졌다고 한다. 그런데 나중에 의혹이 불거져 나왔다. 사실은 상관의 판단실수로 내려진 잘못된 지시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는 의혹이었다. 상관이 자신의 실수를 숨기기 위해 사고를 미화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논란이 일었었다. 그런데 그 사건 역시 지금은 누구도 기억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 우리는 너무도 금방 잊어버린다. 이런 저런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작품에 잘 담을 수 있을 지는 아직 모르겠다.

    작년에 <그게 아닌데>로 굉장한 주목을 받았는데?
    얼떨떨했다. 사실 큰 기대를 안했던 작품이었다. 가수 싸이가 이런 기분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 싸이도 그냥 유튜브에 올렸을 뿐이었는데 대중들이 엄청 좋아했다. 나는 김광보 연출과 작업을 하는 것만으로 마냥 좋았는데 여러 좋은 결과가 이어져서 기뻤다. 사실 아, 왜 이렇게 이 작품에 상을 몰아주지? 하는 의문도 들었다. 이 작품이 이렇게까지 좋은 평가를 받아도 되나?

    신작에 대한 부담감이 클 것 같은데?
    아니다. 전혀 없다. 아직 부담 갖고 그럴 처지가 아니다. 대학로에 나와도 알아보는 사람 하나 없다. (웃음)

    올해 신춘문예에도 당선이 됐는데?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우울군 슬픈읍 늙으면>이 당선됐다. 김윤철, 이병훈 선생님이 심사위원이셨는데 김윤철 선생님이 "너 요즘 자주 본다. 장하다"며 안아주셨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작년에 이런저런 좋은 일이 많았지만 신춘문예 당선이 내 작가 인생의 출발이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기뻤다.

    도전을 시작한지 몇 번만의 당선인가?
    나는 굉장히 집요한 사람이다. 쉽게 포기하고 좌절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운전면허부터 해서 살면서 시험이든 뭐든 뭔가 한 번에 붙은 적이 없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다시 도전했다. 신춘문예는 2005년부터 응모하기 시작했으니 9년 만에 당선된 거다. 서른셋에 시작해 마흔 둘에 당선이 됐다.

    그동안 지칠 만도 했을 텐데?
    몇 번 최종심사에 오른 적은 있었다. 아, 난 여기서 끝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멈출 수가 없더라. 스스로 만든 이상한 기준이 있었다. 신춘문예로 등단해야만 한다.

    그토록 원하던 당선이다. 기분이 어떤가?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정말 쓰는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글로 말해야 한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다. 대학로에서 이런저런 사람들도 많이 알아가게 되고, 술자리도 많아지고 하겠지만 결국 작가는 작품이 없으면 의미가 없는 존재다.
작가 이미경
  • 결혼 3년차 선생님

    결혼을 했고 현직 교사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 올해로 결혼 3년차다. 결혼을 한 이후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 남편이 오늘 인터뷰에 가서 "일이 다 잘 되는 게 남편 덕이라 말하고 와" 하더라. (웃음)

    남편과의 호흡은 어떤가?
    방송국 드라마 피디 출신이라 많은 도움이 된다. 내가 어떤 작품을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면 신선하다, 진부하다 바로 평을 해준다. 좋은 동반자다.

    학생들은 어느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가?
    망원동에 있는 동교초등학교로 발령이 났다. 올해는 담임은 안 맡고 3학년 영어를 가르치게 됐다. 이제 며칠 후면 학교로 출근이다.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
    (웃음) 아니다. 방학 때 작품을 좀 썼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아쉬워서 그런 것 같다. 나는 학교가 좋다. 아이들이랑 정신연령이 잘 맞는다. 나같이 헐렁하고 구멍이 많은 선생도 있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학교에 나간다.

    교사로서 행복과 보람을 느낄 때는?
    스물아홉에 시작했는데 이제 대학생이 된 아이들, 군대에 간 제자들도 있다. 가끔 찾아오는 제자들을 만나면 녀석들이 주로 뭘 같이 먹었던 이야기를 많이 한다. 아침에 교실에서 토스트 구워 먹었던 이야기, 고기 사달라고 졸랐던 아이들에게 소고기 사줘서 못 먹은 아이들이 부러워했다는 이야기….

    아침에 교실에서 토스트 구워 먹은 이야기가 궁금한데?
    아침을 못 먹고 학교에 오는 아이들을 위해서 교실에 토스트기를 두고 빵을 구워 먹였다.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중에는 유독 불우한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런 친구들에게 한마디라도 더해주려는 선생님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 자체가 행복이고 보람이다.
  • 작가 이미경
  • 무대뽀 정신을 배우다

    고향은?
    서울이다. 상계동에서 태어났지만 줄곧 홍제동에서 자랐다.

    어떻게 자랐나?
    어려서부터 엄마랑 끈끈하게 지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버지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집이 몹시 힘들어진 적이 있었다. 이리저리 도망 다니며 살았던 때가 있는데 그렇게 힘든 시절에도 어머니의 교육열은 정말 대단했다. 특히 1남 3녀 중 장녀인 나에 대한 기대가 굉장히 크셨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가르치시려고 애를 많이 쓰셨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적이 곤두박질치기 전까지는 나 역시 오직 공부밖에 모르면서 자랐다.

    고2때 성적이 급락한 이유는?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 그때부터 작가적 기질이 꽃피기 시작한 것인가?
    그건 아니다. 어렸을 때부터 학교 백일장 나가면 상을 많이 받아서 막연하게 내가 글을 잘 쓰는 재능이 있구나, 정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공부만 하던 내가 책에 빠지게 된 이유는 독특한 친구 때문이었다. 같은 반에 꼴등을 도맡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날라리가 아니라 책벌레였다. 프로이드를 읽고 와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런 수준의 애였다. 유식해 보이는 게 좋았다. 멋있어 보였다. 그 친구 영향을 많이 받았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어려운 책 들고 다니며 허세를 좀 부리고 다녔다. 그런데… 고3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누구보다도 힘든 고3을 보냈을 것 같다.
    나도 나지만 당시 막내 남동생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지금도 막내를 생각하면 가엾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학입시도 힘겹게 준비했을 텐데?
    전기시험은 떨어지고 후기시험을 보고 성균관대 영어교육과에 들어갔다.

    대학생활은 어땠나?
    재미가 없었다. 원래 불문과에 들어가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사범대를 가라고 하시더라. 선생님이 되는 것으로 진로를 잡고 입학했지만 불문과 청강을 계속 했을 만큼 전공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이제 슬슬 연극이야기가 나올 분위가 된 것 같다.
    과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니 학생회관을 쏘다녔다. 1학년 때는 관악부에 들어가서 이런저런 악기를 만지며 놀다가 한동안은 산악부에 들어가 산타고 놀았다. 그러다 2학년 때 사범대 연극반을 만나게 됐다.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에게 “대학을 가면 연극을 한번 해봐라. 좋은 경험이 될 거다. 그런데 딱 한번만 해라. 계속하면 마약과도 같은 거라서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어쩐지 그 선생님 연극하셨을 것 같은데?
    맞다. 극단 오늘에서 연출가로 활동하셨던 김상렬 선생님이신데 아직도 대학로에서 활동하고 계신지는 모르겠다. 다시 만나면 엄청 반가울 거다.

    연극반과의 궁합은 어땠나?
    (웃음) 내가 가면 당연히 주인공을 할 줄 알았는데 1인 몇 역을 시키는 거다. 내심 실망했다. (웃음) 다리오 포 작품 <안 내놔, 못 내놔>를 공연했다. 재밌고 좋은 경험이었지만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더라. 아르바이트 뛰느라 바쁜데 수업도 못 들어가게 되고 힘들더라.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편이 마지막 작품이었다.

    이후 대학생활은 어땠나?
    졸업할 때 되니까 친구들 대부분이 이런저런 고시를 준비하더라. 나는 내게 닥친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도망치는 마음으로 고모가 살고 있던 뉴욕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됐다.

    뉴욕에는 얼마나?
    1년을 보내고 왔다. 아, 문화적인 충격이 컸다. 삶의 가치관에 큰 변화가 왔다. 미래에 대해 낙천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여러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가 그동안 인생을 너무 빡빡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뉴욕에 가기 전까지는 바르고 소심하고 답답한 모범적인 스타일이었다면 다녀온 후로는 무대뽀 정신이라고 할까? 보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생겨났던 것 같다.

    김광보에게 직접 전화를
작가 이미경
  • 아직까지도 극작을 시작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학교 졸업 후에 교사가 됐다. 교사가 되고 나니 막연하게 갖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욕망이 되살아나더라. 대략 2000년 즈음이었을 것이다. 극단 연우무대에서 김태웅 작가가 극작워크숍을 진행했었다. 6개월 과정의 수업을 받았는데 재미있었다. 그러던 중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전문사 과정에 극작전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시험을 보고 입학하게 됐다.

    학교생활은?
    아, 너무 재밌었다. 공부가 재밌는 걸 처음 느꼈다. 모든 수업이 다 재미있었다.

    그중에서도 기억나는 수업이 있다면?
    박조열 선생님이 1년간 담당선생님이셨는데 아직까지도 큰 힘을 주시는 분이다. 내게 희곡을 쓸 수 있는 용기를 주셨다. 이진아 평론가의 수업 러시아 연출론도 재밌었다. 러시아에서 막 돌아온 열정적인 에너지가 기억에 남는다.

    작품은 많이 썼나?
    단막극 몇 편을 썼다. 작품에 대한 성과는 없었다. 성실하게 선생님 말씀 잘 들으며 다작하는 스타일이었는데 내가 작가로서 가능성이 있는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더라. 2006년에 졸업을 하고 2008년에 장막희곡 <택배 왔습니다>를 처음으로 썼는데 창작희곡 활성화 지원사업이었던 '창작예찬'에 선정되면서 용기를 얻었다. 그런데….

    얼굴이 어두워졌는데?
    음… 과정상에 있어서 아직은 밝히기 싫은 일로 큰 충격을 받았다. 선정된 작품이 납득하기 힘든 문제로 중도탈락 되면서 마음이 몹시도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 연극판에 대한 회의, 굉장히 더러운 현실을 목격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는 희곡을 쓰기 싫다는 생각이 들더라.

    어떻게 극복했는가?
    나는 글을 쓸 때가 행복하다. 내가 의미 있어지는 순간이다. 글을 쓸 때의 그 희열을 포기할 수 없었다. 글을 안 쓰고는 못 살 것 같더라. 그래서 소설로 전업을 해볼까도 생각을 했다. 하지만 소설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희곡에 대한 애정을 버릴 수가 없었다. 다른 장르로 가더라도 희곡에서 방점을 찍고 가고 싶었다.

    그 시간이 오히려 좋은 약이 됐을 것 같은데?
    돌아보니 그렇다. 마음을 다잡고 쓴 2010년 작품 <무덤이 바뀌었어요>로 대전 창작희곡 공모에서 대상을 수상하게 됐다.

    <그게 아닌데>가 그 다음 작품인가?
    그렇다. 2011년에 신작희곡페스티벌에 당선되면서 극단 청우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당선작 낭독공연을 한다고 하기에 김광보 연출가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만나본 적도 없었고 통화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마음속으로 가장 믿고 신뢰하고 있던 연출가가 내 작품을 맡아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전화를 걸었던 거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더니 부산이라고 하면서 잠깐 전화를 끊어보라고 하더라. 잠시 후에 전화가 왔다. 연출을 맡아보겠다고 하더라. 나중에 그런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밝히시더라. 대본도 안 읽어보고 맡겠다고 했던 적은 처음이라며 신기해했다. 뭔가 나의 간절한 에너지를 느끼지 않았을까?

    직접 만나본 김광보 연출가와의 호흡은 어땠나?
    공부가 됐다. 낭독공연 거친 다음에 작품이 마음에 든다며 공연을 하자고 했다. 27장짜리 단막극을 40페이지 넘게 늘려 달라고 해서 결국 42페이지 분량으로 만들어냈다. 이 과정이 나에게 큰 공부가 됐다. 극중 의사와 엄마 역할의 비중을 늘리면서 작품이 보다 풍성해짐을 경험하게 된 거다.
2013 신춘문예 단막극제 2013 신춘문예 단막극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우울군 슬픈읍 늙으면>

기간 : 2013.03.21~2013.03.26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발로 쓰는 작가

    곧 신춘문예 당선작 공연이 시작될 텐데?
    그렇다. 내 작품 <우울군 슬픈읍 늙으면>은 최재오 연출로 무대에 오른다. 3월 21일 아르코소극장에서 막이 열린다.

    연습실에는 가봤는가?
    독회 하는 걸 보러갔는데 배우들 느낌이 담백하고 좋더라. 기대가 된다.

    올해 작가로서 목표가 있다면?
    올해는 작품 두 개 쓰는 것. 직장에 다니다 보니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다. 퇴근하면 바로 카페에 가서 3시간 정도 글을 쓴다. 일단 집에 가면 집안일들이 눈에 들어오니까. 방학이 중요한 기회였는데 이번 방학에는 작품을 못 썼다. 열심히 써야 한다.

    김광보 말고 만나고 싶은 연출가가 있다면?
    고선웅과 박근형.

    내 희곡에 출연했으면 하는 점찍어둔 배우는?
    서이숙. 내가 보기에 연기를 가장 잘 하는 배우다.

    교과서로 삼는 희곡을 꼽자면?
    장 주네의 <하녀들>, 마틴 맥도너의 <필로우맨>이다. 코르테스와 하이네 뮐러의 희곡도 좋아한다.

    존경하는 극작가가 있다면?
    궁극적으로는 나는 희극을 쓰고 싶다. 코미디야 말로 정말 쓰기 어려운 희곡이다. 실컷 웃었는데 눈물 나는 그런 연극을 쓰고 싶다. 그래서 아리스토파네스. 내 이메일 이름도 아리스토파네스다.
작가 이미경
  • 10년 후에 어떤 작가가 되어 있고 싶은가?
    아직 생각 안 해봤다. 음… 나는 정직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돌직구 같은 글쓰기를 하고 싶다.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글만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시사적인 것에 관심이 많은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게 있다. 뭔가를 알면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는데 그동안 나는 알고 있으면 그것으로 이미 행동을 했다고 착각하고 살아오지는 않았느냐는 거다. 앞으로는 발로 쓰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이미경이 생각하기에 희곡이란 무엇인가?
    희곡이란, 음… 너무나 진부한 이야기지만,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 노점의 상인처럼 좌판을 깔아놓는 일인 것 같다. 골동품이 아니라 지금 사용가능한 물건, 그게 희곡 아닐까?

    이미경이 생각하는 연극은?
    자유로운 곳. 솔직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연극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인간 자유에 대한 욕망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연극은 자유다.
  • 작가 이미경
  • 이미경 (극작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 전문사 졸업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 박사과정 재학
    2011 제14회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
    2011 제3회 대전 창작희곡 공모 대상
    2012 <그게 아닌데> 공연
    - 한국연극평론가협회 '2012 올해의 연극 베스트3’
    - 월간<한국연극>선정‘2012 공연 베스트7’
    -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
    - 동아연극상 작품상
    2013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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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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