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뜨거운 배우를 꿈꾸는 사직구장 교복녀

[김은성의 연극데이트] 배우 서지유

김은성_극작가

웹진 25호

2013.06.05

“요즘 고등학생들 대단해요!” 한국시리즈 생중계 화면에 잡힌 치어리더 무대는 사직여고 여학생의 춤으로 점령되어 있었다. 혀를 내두르던 응원단장이 장래희망이 뭐냐고 묻자 “배우가 되고 싶어요!” 라고 소리쳤던 90년대의 교복녀는 2013년 <불멸의 여자>의 승아로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20년 전 연극반에서 시작된 ‘뜨거운 배우’를 향...

 

배우 서지유
  • “요즘 고등학생들 대단해요!” 한국시리즈 생중계 화면에 잡힌 치어리더 무대는 사직여고 여학생의 춤으로 점령되어 있었다. 혀를 내두르던 응원단장이 장래희망이 뭐냐고 묻자 “배우가 되고 싶어요!” 라고 소리쳤던 90년대의 교복녀는 2013년 <불멸의 여자>의 승아로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20년 전 연극반에서 시작된 ‘뜨거운 배우’를 향한 그녀의 무대여정을 들어보자.


    뜨거운 배우가 되자

    요즘 어떻게 지내는가?
    정신없이 연습하며 지낸다. 쉬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나를 위해서라도 잠깐이라도 환기가 필요하다.

    바쁘다는 건데 배우로서 배부른 고민 아닌가?
    맞다. 그래서 행복하기도 하다. 지금 연습하고 있는 작품은 6월 말에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올라가는 <태화강>이라는 뮤지컬이다.

    <태화강>은 어떤 작품인가?
    기원전 2세기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창작뮤지컬이다. 울산 태화강 반구대 암각화를 무대로 펼쳐지는 신화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다. 한국적인 느낌이 많이 나는 작품이다.

    올해 서울연극제에서 <불멸의 여자>로 신인연기상을 받았는데?
    기뻤다. 함께 공연한 선배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진짜 좋은 분들이랑 같이 해서 받은 상이라 생각한다. <불멸의 여자>는 최원석 작가와 신호 연출 콤비로 준비되던 작품이었다. 연습 시작을 앞두고 두 분이 교통사고를 당해 못 올라갈 줄 알았었다. 그런데 최원석 작가가 병실에서 연락을 했더라. 공연 할 테니 시간 비워두라고. 수상소감 발표하는데 돌아가신 신호 연출님이 생각이 나서 결국 울고 말았다.

    <불멸의 여자>는 어떤 작품인가?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인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메시지를 가지고 마트를 무대로 펼쳐지는 연극이다.

    어떤 역할로 출연했는가?
    승아라는 인물을 연기했다. 세상에는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권력 밑에서 본인이 무시당하는 것을 참고 살아가는 사람과 발끈 하는 사람이 있는데 승아는 권력에 대해 발끈하고 거기서 탈출을 시도하는 하는 인물이다.

    승아가 서지유에게 준 선물은 무엇인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오랜만에 무대의 치열함을 느꼈다. 어렸을 때 항상 ‘뜨거운 배우’가 되자는 주문을 많이 했었다. 그 주문에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작업이었다.

    뜨거움?
    나에게 배우의 뜨거움이란 살아있는 것, 생생한 것을 의미한다.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무대 위에서 뜨거운 배우가 되고 싶다. 뜨거움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으로 관객들에게 어떤 자극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불멸의 여자>대본을 처음으로 읽는 자리가 기억난다. 뜨거움을 느꼈다. 팽팽한 치열함이 느껴졌다.

    배우 서지유

  • 사직야구장의 교복녀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가?
    서울에서 태어났다. 나이는 30대 초중반이라고 해두자. (웃음)

    어떻게 자랐나?
    할머니, 할아버지 밑에서 컸는데, 맞벌이 하느라 바쁜 엄마, 아빠한테 가기 싫어하고 할머니를 너무 좋아해서 나중에 집에 가서 살게 되었을 때 엄마가 서운해 하셨던 기억이 난다.

    배우의 끼는 언제부터 느꼈나?
    어렸을 때부터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지만 배우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었다. 공부도 재밌었고, 친구들에게 뭔가를 설명해주는 일을 좋아했다.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 중학교 다닐 때 친구들에게 “우리 깜은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는 게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정작 나는 시큰둥했었던 것 같다.

    깜? 까무잡잡해서 붙여진 별명인가?
    아 맞다. 어떻게 알았나?

    우리 반에도 같은 이유로 '깜치'라 불리던 아이가 있었다. 그런데 친구들은 왜 연극영화과에 들어가라고 했을까?
    소풍가면 반 대표로 나가서 춤추고 노니까. (웃음)

    주로 무슨 춤을 추었나?
    이상은의 ‘담다디’. 투투와 룰라도 생각난다.

    그 시절 가장 잊을 수 없는 무대를 꼽자면?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다녔다. 사직여고. 사직야구장 근처라 종종 야구장에 놀러갔다. 그날은 롯데의 한국시리즈 경기였다.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고 야구를 보러갔는데 어쩌다가 치어리더 무대까지 올라가게 됐다. DJ DOC의 노래에 맞춰 춤을 췄는데 치어리더들도 다 내려오고 나 혼자 무대를 온통 채우게 됐다.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TV에 생중계 됐다고 하더라. 중계방송 캐스터가 “요즘 고등학생들 대단해요!” (웃음) 응원단장이 “장래희망을 안 들어볼 수 없죠?”하며 물었는데, “배우가 꿈입니다!” 소리치고 무대를 내려왔다.

    당시 자료화면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다. 아직 보지 못했는데…… 언젠가는 꼭 찾아서 보고 싶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배우의 꿈을 갖게 된 건가?
    그렇다. 연극반에 들어간 이유는 춤과 노래를 실컷 할 수 있을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연기는 해본 적이 없어서 두렵기도 했는데 하면 할수록 매력이 생기더라. 돌아보면 고등학교 생활을 온통 연극반에서 보냈다. 연기연습, 발성연습, 호흡연습, 작품연습…… 그 재미로 지냈다.

    발성연습? 호흡연습? 고등학교 연극반에서?
    경성대 연극영화과로 진학한 선배들이 모교에 와서 가르쳐주시곤 했다. 아침에 수업 전에는 개인 발성연습을 했고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는 단체로 호흡연습을 했다. 배우가 되고 싶었다. 춤보다 노래보다 연기가 가장 재미있었다. 연극을 굉장히 많이 봤다. 특히 연희단거리패 공연 정말 많이 봤다. 학교에 다니면서 우리극연구소 연수도 받았다. 교복입고 와서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훈련에 참여하는 걸 보고 단원들이 많이 신기해했다. 김소희 선배님도 생각난다. 귀여운 꼬마를 보듯 대해주셨다.

    연극반에서 올렸던 연극 중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면?
    <방황하는 별들> 같은 청소년연극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카타리나 역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배우 서지유
배우 서지유
  • 직장에서 다시 무대를 꿈꾸다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대는 없었나?
    심했다. 부산에 있는 모 대학교에 합격이 됐고, 부모님이 이미 등록까지 마친 상황이었다. 나는 서울예술대학교에 갈 생각으로 혼자서 몰래 진행을 했다. 막상 시험을 치러 서울에 가서 보니까 더더욱 욕심이 생겼다. 조금은 막연했던 바람이 이곳에 꼭 붙었으면 좋겠다는 의지로 바뀌었다. 열심히 노력했고 결국 합격을 했다. 엄마 아빠 앞에서 울고불고 허락을 받아서 겨우 서울로 왔다.

    대학 생활은 어땠나?
    내가 꿈꾸던 핑크빛의 시작일거라고 기대했는데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학교의 기운 자체가 굉장한 에너지로 넘쳐났는데 그 기운에 약간은 눌렸던 것 같다. 정말 튀는 친구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나는 일상에서 튀는 사람이 되는 것을 좋아하는 유형은 아니다. 누가 멍석을 깔아줘야 노는 스타일인데…… 매사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발산해 내는 친구들 사이에서 조금 위축됐다고나 할까?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이 되더라.

    20대 초반의 연기전공자들이라면 대부분 스타배우를 꿈꾸는데? 본인은 어땠나?
    스타? 아니다. 배우가 꿈이었다. 우선 배우로서 연기 잘한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다. 일단 좋은 배우가 되고 싶었다.

    학교에서 뭘 얻었나?
    공연의 경험이다. 좋은 공연장(지금의 남산예술센터)에서 공연을 올린 경험이 소중하게 남아있다.

    기억나는 작품은?
    졸업 작품이다. <갈매기>에 니나로 출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니나를 어떻게 했는지 정말 모르겠다. “나는 갈매기” 라는 말을 어떻게 했는지? 그 말을 그때 나는 알고 했을까?

    프로무대 데뷔는 어떤 작품으로 했나?
    <눈 나리는 밤>이라는 작품이다.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전옥의 명연기” 라는 말로 유명한 백조가극단 이야기였다. 전옥의 어린 딸 원희옥 역할을 맡았었다. 2001년 즈음으로 기억한다. 이후에 자연스럽게 선배들이 많이 불러줘서 여러 작품에 참여하게 됐다. 그러다가 더 이상 연기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무슨 이유로?
    음…… 가정형편 때문이었다. 집에 다달이 생활비를 보내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 형편이 이러하니 딱 1년만 회사에 취직해서 돈을 벌자는 마음으로 취직을 했다.

    무슨 일을 했나?
    현대카드사에 입사했다. 회사를 고를 때도 1년 후 무대복귀를 염두에 두었다. 배우는 몸이 생명이다. 몸이 상하지 않게 규칙적인 생활이 가능한 직장이 필요했다. 스물넷, 다섯 때였는데 정말 회사 열심히 다녔다.

    무대가 그립지 않던가?
    그 마음을 어떻게 말로 할 수 있을까? 캐스팅 제안 전화가 걸려올 때면 마음이 아팠다. 이런저런 긴 설명하기 싫어서 나중에는 연극하는 선후배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대학로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1년 후 무대복귀는 순탄하게 진행 되었나?
    1년이라는 공백이 정말 크더라.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길이 잘 보이지 않았다. 다시 무대로 돌아왔는데 뭔가 달라진 점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래공부를 시작하게 됐다. 꾸준히 하다 보니 노래실력이 늘어있더라. 그러다보니 뮤지컬에 출연할 욕심도 생겼고, 그래서 뮤지컬을 통해 무대에 복귀하게 됐다. 이후 몇 편의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활동하다가 뮤지컬 <싱글즈>를 통해서 배우로서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연극 복귀작은 어떤 작품이었나?
    차현석 연출의 <오셀로>에서 데스데모나 역할로 출연했다.

    이후에 출연한 연극은?
    <발칙한 로맨스>를 오래했고 정상철, 장두이 선배님과 함께했던 <쥐덫> 등에 출연했다.
  • 배우 서지유


    연극? 내가 숨 쉬는 공간

    서울연극제 신인연기상, 앞으로 연극 열심히 하라는 주문인데? 부담스럽지 않은가?
    직장을 다니다 스물일곱에 무대로 돌아와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보면 다작을 하고 있다. 휴식 없이 계속 달려왔다. 연극을 쉬었던 그 시간들이 만들어낸 갈급한 마음 때문일 것이다. 쭉쭉쭉 해왔는데……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이번 상은 나에게 ‘이제 연기에 대한 책임감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해’라는 질문을 던져줬다.

    연극하면 아무래도 돈을 많이 못 번다. 연극 계속 할 수 있는가?
    나는 연극배우가 될 거야, 연극배우로 사명을 가지고 살아갈 거야, 솔직히 그런 생각은 없다. 내 무대는 연극, 뮤지컬, 카메라 앞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생각은 있다. 연극은 죽을 때까지 할 거잖아? 연극무대는 언제든 내가 서 있고 싶은 공간이다. 하지만 나는 연극을 배고프게 할 생각은 없다. 좋은 무대의 가치를 돈으로도 인정받을 수 있는 환경과 현실이 되면 좋겠다. 중요한 것은 나는 연극을 계속 할 것이다.

    닮고 싶은 배우가 있다면?
    공연하면서 잠깐 만났던 나문희 선생님 생각이 난다. 연기도 존경스럽지만 무대 뒤의 모습에서 따뜻하고 풍요로운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을 챙겨줄 수 있는 깊은 배려가 느껴졌다. 동료들에게 부담이 되는 예민한 배우가 되고 싶지 않은 게 목표 중에 하나다.

    꼭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너무 많은데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역할 하나하나 잘 해가고 싶다. 감사하게도 또래에 할 수 있는 역할을 많이 하면서 나이를 먹어왔다. 오필리어, 데스데모나, 니나…… 대부분 여성스러움이 강한 역할들이었는데 <불멸의 여자>에서 자기표현이 강한 역할을 맡은 후로 그런 인물에게도 매력을 느낀다. 연기를 앞으로 1,2년 하고 말게 아니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나이를 잘 먹고 싶다.

    만나보고 싶거나 궁금한 연출가는?
    사실 어떤 연출가들이 있는지 아직 잘 모른다. 그분들도 저를 잘 모르겠지만. (웃음) 동료배우들이 힘들어했던 연출가를 만나보고 싶다. 그들이 힘들어했던 연출가를 만나면 나는 어떨까?

    서지유에게 연극은 뭔가?
    연극은 그냥 제 삶인데…… 음…… 생각을 좀 더 해볼게요. 음…… 연극이라는 공간은, 무대는 숨 쉬는 곳이다. 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니까 계속 해야겠죠, 계속.
  • 배우 서지유
  • 서지유 (배우)
    주요작품
    연극 <불멸의 여자><오셀로><국화꽃 향기><쥐덫><햄릿>
    <더 글라스><발칙한 로맨스><오픈유어 아이즈><고래기름> 외 다수
    뮤지컬 <싱글즈><사랑은 비를 타고><드라큘라:더 뮤지컬?>
    <로맨스 로맨스><찬스><파이브 코스 러브><요덕 스토리><결혼> 외 다수
    34회 서울 연극제 신인연기상 수상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김은성

김은성 극작가
극단 달나라동백꽃 대표
주요작품 <로풍찬유랑극장><뻘><목란언니><연변엄마><순우삼촌><시동라사>외 다수
본지 편집위원.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