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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가능성’에 매료된 순간

사운드디자이너 정혜수

김정_연출가

제151호

2018.11.08

혜수
대학교 때 신문방송학이랑 경영학을 전공했어요. 대학 들어가자마자 진로상담시간이 있었는데, MBTI 테스트도 하고 상담선생님이 상담을 해주시는데, 그게 등록금에 포함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 서비스 이용해야죠. 그냥 성적에 맞추어서 들어갔기도 했고요.(웃음) 상담 선생님이랑 이야기하는데 ‘아무거나 동아리에 들어가 봐라’, 하시더라고요. 동아리거리제 때 보니까 연극반이 딱 있더라고요. 바로 연극반 들어갔죠.(웃음) 저는 배우 할 생각도 없고. 원래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감독 같은 거 해봐야지. 이러고 그냥 들어갔어요. 그리고 저희 학교에 극장이 있거든요. 극장 기술을 배우고 싶어서 기술조교로 6년 정도 일했어요. 동아리 활동하면서 극장에서 기술도 배우고 대학 내내 그렇게 살았죠.
그럼 그 전에 대학교 오기 전에는 그냥 인문계 다니는 학생이었던 거예요?
혜수
네.
그런데 이렇게 대학 들어오자마자 연극작업을 제대로 하게 되었네요.
혜수
네. 그때는 미래에 대한 고민 없이 그냥 동아리가 재밌고 극장 일이 재밌어서 하고 있었는데 동아리에 친한 선배가 '같이 극단 만들어 볼래?'라고 제안했었어요. 근데 제가 이거를 업으로 해보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했더니. 그 고민을 같이 해보자고 그래서...(웃음)
흔히들 그렇게 발을 들이기 시작하죠.(웃음)
혜수
그렇게 같이 시작한 극단이 내년에 벌써 10년 차가 되네요. 생각해보니까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으니까 기간이 엄청 오래됐네요.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모를 때 시작했어요.
보통사람이 생각하기에 사운드디자인 이라고 했을 때 음악적인 부분과의 경계가 좀 헷갈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혜수
저는 확실히 뮤지션은 아니에요. 저는 제가 딱 좋아하는 부분을 경계지어서 작업하는 것 같아요. 저는 극장에서 일 해서 그런지 장비나 공간디자인을 되게 좋아해요. 공연이 올라갈 공간에서 어떤 소리를 어떻게 전달하느냐를 되게 중요시해요. 대부분 제가 들어가는 팀은 음악감독이 따로 있고 음악감독이 작업한 음악과 제가 만드는 소리를 공간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에 대한 고민을 하죠. 시스템디자인이라고 해요. 저는 그런 일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하다보면 시스템이나 설비들이 잘 갖춰진 극장 외에 대학로에 있는 소극장들은 굉장히 열악한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작업을 하세요. 너무 답답하지 않나요?
혜수
할 수 있는 데 까지 하죠. 답답하긴 한데. 어쩔 수 없잖아요. 거기 있는 장비들을 최대한 이용하고, 작은 스피커들을 심어서 하고, 나름 채널도 나눠보고 ,이런 식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런 곳에서 하는 재미가 또 있는 것 같아요.(웃음)
처음에 대학교 들어가서 연극동아리를 시작하고 극장에서 스태프로 일을 하고 또 바로 극단을 만들어서 지금까지 연극을 해오고 있잖아요. 대학 들어와서부터는 그냥 쭉 연극이었네요. 더 어렸을 때는 음악을 좋아했다고 했잖아요.
혜수
듣는 것까지.(웃음) 어렸을 때, 영국에서 살았어요. 영국은 음악 장르가 굉장히 다양해요. TOP10 차트를 봐도 그 안에 정말 다양한 장르들이 있어요. 대중적인 음악 중에서도 장르가 엄청 다양하죠. 음악을 엄청 즐겨들었어요. 그런 기억들이 영향을 줬겠죠. 단순하게 음악을 좋아해서 음악감독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 가서 동아리에 바로 들어갔었던 것 같고. 근데 작업하다 보니 음악보다 음향이 더 재밌어졌어요.
음악에서 음향으로... 어떤 점이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을까요. 어떤 계기 같은 게 있었나요?
혜수
‘소리의 가능성’에 매료된 순간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소리가 줄 수 있는 가능성. 2012년에 <코끼리>라는 작업을 했었어요.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었는데 1인극이었어요. 아버지 혼자 나와서 계속 소파에 앉아서 주저리주저리 이야기하는 1인극이었는데 영상이랑 음향이 많이 들어갔어요. 이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 음향으로 풀어주는 시퀀스가 있었는데 그게 별게 아니고 이 사람이 어떤 골목에 살고 어떤 일상을 보내는지에 대한 거였어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이 사람은 돈이 많이 없기 때문에 도로가 좁은 빌라에서 살 것 같아서 오토바이 지나가는 소리라던가 야채장수 소리 같은 것이 굉장히 가깝게 들려오고. 가까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들린다던가. 앞집이나 윗집에서 피아노 레슨을 받는 소리가 들린다던가. 이런 식으로 구성해 보는 거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리를 들었을 때 우리가 감각할 수 있는 그런 것들 있잖아요.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 감각으로 전해져 오는 정보들. 그런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어요. 그 작업을 하면서 ‘아 내가 이걸 좀 더 파야겠다.’, ‘더 깊게 들어가 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제 생각에 음악은 사실 경계 밖에서 들어가는 소리라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어떤 해석이 들어간 소리? 근데 음향은 정말 드라이하면서도 이 극 안에서 공기로 존재할 수 있는, 관객한테 정말 꾸밈없이 다가갈 수 있는, 숨으로 들이마셔서 관객이 느끼게 할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매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음향을 더 파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좋은 얘기네요. 비슷한 생각을 해요. 저도 연출로서 고민을 많이 하는 부분이에요. 음향뿐 아니라 그 공간만이 주는 느낌이라는 것인데요. 공간은 관객이 들어오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유기적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해요. 아까 이야기하셨듯이 그 안에 존재하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무한하게 많은데 우리는 너무 텍스트나 주제를 설명하려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요. 아까 말씀 하셨듯이 소리가 공기처럼 관객을 감싸고 있다가 순식간에 없어져 버리는 것 역시 아주 강력한 음향적 표현 중에 하나가 될 수 있겠죠. 아주 미세한 게임들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각 파트별로 공간을 아는 전문가들이 꼭 필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혜수
네, 맞아요. 공연을 만들어나가는데 있어서 스태프들이 모여서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건 참 재밌는 일이죠.
'연극데이트'는 자신을 많은 작업자에게 소개하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정혜수가 다른 음향디자이너와 다른 강점 같은 것은 무엇일까요.(웃음)
혜수
아...(웃음) 하하. 글쎄요. 저는 초반에 음향디자이너로서 아무것도 모를 때 시작을 해서. 계속 배우는 단계였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음향디자인에는 정답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아직 잘 모를 뿐이지 정답이 있는 일이다.’ 이런 식으로. 그런데 일을 해오다 보니까. 이제 조금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을 해서 실패를 너무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나는 아직 배워야 할 것도 많고 가야 할 길이 먼데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멋대로 실험하고 실패하면 일이 안 들어오겠지?(웃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도 작업하면서 ‘이럴 때는 이런 소리’ ‘이런 경우에는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편한데... ‘이제는 대차게 실험하고 실패해도 되지 않나. 너무 안전하게 작업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은 좀 실험하는 감각을 가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사실 연극작업이라는 것이 항상 예산이 뻔하고 한정되어 있어서 줄이고 줄이다 보면 꼭 있어야 하는 것과 아쉽지만 포기해야 하는 것들의 순서가 정해지게 되잖아요. 그런 지점에 있어서 음향 역시도 도드라지게 표현되거나 앞장서기가 쉽지 않은 포지션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혜수
그래서 점점 변태 같아지는 것 같아요.(웃음) 옛날에는 ‘음향디자이너로서 내 소리가 들려야 돼.’ 도드라지길 바랐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웃음) 근데 이제는 정말 배우들 목소리나 공간과의 ‘완벽한 밸런스 또는 합’ 그런 것에 완벽히 녹여냈을 때 가장 뿌듯해요. 안 들리는 게 맞으면 안 들려도 되고. 두 시간짜리 공연에 소스가 3개 밖에 없어도 되고. 무음이어도 되고. 그런 것은 상관없는데 이제는 다른 파트들이랑 완벽하게 합이 맞았을 때 가장 성취감이 큰 것 같아요.
과감하게 실패해 보고 싶다고 했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혜수
조금 더 과감하게 제시하고 좀 더 과감하게 실험하는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사실 많은 부분에 맞춰갔던 것 같아요. 후배이고 어렸기 때문에. 그렇다고 무조건 따라가는 건 아니었고 사실 제시를 많이 하는 편이긴 했지만.(웃음) 삶의 깊이도 다르고 작품 분석력도 다르니까 항상 저는 따라가는 입장이었어요. ‘내가 잘 몰라.’ 라고 항상 생각했었고 더 많이 작업해 본 사람의 말이 맞고, 항상 도달해야 되는 지점이 존재하고. ‘그것이 정답일거야.’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향해서 작업을 했던 거죠. 그때는 연출이 결정하는 단계에 와서 디자이너로서 의견을 관철시킬 자신도 없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것을 푸쉬 할 힘도 없었던 것 같아요. 근데 작업을 하다보면 정말 ‘정해진 답’이라는 것은 없고... 답이 있다면 연출과 함께 만들어내는 디자이너들끼리의 밸런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으로는 조금 더 실험적인 감각을 가지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하고 싶어요. 안전한 것이 아니라.
좋네요. 꼭 보고 싶어요. 그런 작업을.
혜수
근데 현실적으로 실패할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주어지지도 않아요. 제가 해왔던 방식들 안에서 안전한 것을 만들어 내기에도 빠듯한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좀 더 여유 있게 작업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다른 사운드디자이너 분들이랑 교류도 많이 하세요?
혜수
음.. 많이는 모르겠고 소수 있죠.(웃음) 사운드디자인을 하시는 분들은 많이 계시겠지만. 사실 현장에서 작업하는 분들은 소수니까... 그게 안타까워요. 왜 더 새로운 사람들이 안 나타날까. 그게 요즘 좀 고민이어서 그런 네트워크의 장을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사실 음향은 다른 파트보다 좀 외로운 파트거든요.(웃음) 왜냐하면 셋업하러 가면 무대든 조명이든 함께하는 크루들이 있는데 음향은 보통 혼자서 하거든요. 셋업도 혼자 하고 작업도 혼자 하고. 요새는 극장 들어갈 때 꼭 크루를 영입하는 편이에요. 왜냐면 작업경험이 없지만 사운드디자이너로 진입하고 싶은 분들이 몇몇 있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워하더라고요. 사실 처음에 페이를 제대로 받으면서 작업하기도 힘들고... 작업의 결과물이 있어야 그 작업을 보고, 의뢰가 들어오게 되고 그때부터 사이클이 시작이 되는 거잖아요. 근데 결과물이 없으니까. 시작 자체를 하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그런 부분을 좀 풀어보자는 생각으로 마음이 맞는 몇몇 작업자들끼리 모여서 네트워킹을 만들어 보려고요.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 음향디자이너들이 많아져야 저희도 저희가 하고 싶은 작업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거든요. 공연은 엄청나게 많은데 작업을 하고 있는 사운드디자이너들은 한정되어있다 보니까 성향에 맞지 않는 작업을 하게 되거나 작업에 충분한 시간을 쏟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디자이너 풀이 넓어지면 그만큼 다양한 작업들이 나올 거고 성향이 맞는 작업자들과 작업을 하면서 좀 더 퀄리티 있는 작업물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요. 전반적으로 공연도 더 다양해질 수 있을 것 같고요.
생각해 보면 몇 년 안된 이야기 같아요. 이전에는 음악감독 없는 공연도 엄청 많았고... 기존에 있는 음악들, BGM들 사용해서 공연 만드는 경우가 많았고 배우 막내나 조연출이 그 역할 맡아서 오퍼레이팅까지 하고. 사운드디자이너 혹은 음향디자이너라는 역할이 구분돼서 들어오는 분위기가 얼마 안된 것 같아요.
혜수
네, 맞아요. 제가 윗세대 디자이너들과 다음 세대 디자이너들의 중간에 있는 것 같아요. 그 중간다리 역할을 제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도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케이스라. 사실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으면서 작업을 해왔거든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웃음) 그런 역할을 네트워킹을 통해 가능하게끔 시작해 보고 싶어요.
그 역할(포지션)이 공연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혜수
다행히 사운드의 중요성에 대해 섬세하게 접근해 주시는 연출가들과 작업을 해서 차근차근 단계를 잘 밟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중요성을 잘 아는 연출가랑 함께 할 때 사운드디자인 쪽을 꿈꾸시는 분들이 계시면 같이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려고 해요.
사운드디자인을 꿈꾸는 분들로부터 문의가 쇄도할 것 같은데요.(웃음)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혜수
음... 너무 뻔한 답 같지만 제가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이어서... ‘커뮤니케이션’인 것 같아요. 사실 음향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그 작품에 관해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내가 생각하는 ‘이 작품의 결이나 작품이 무대화 되는 것에 대한 의미, 또는 가치’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다른 참여자분들이랑 이야기를 해야지 제가 길을 안 잃는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게 무엇이든. 작업이든 그 외의 이야기든. 같이 꿈을 꿀 수 있잖아요. 그러기에 저한테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같이 꿈을 꾼다는 말이 참 좋네요. 디자이너님은 작업을 해오면서 어떤 순간이 가장 좋았어요?
혜수
좋았던 순간... 음... 아... 어렵네요. 음...
아! 그럼... 어린 나이에 연극을 시작해서 아주 왕성하게 많은 작업을 해왔는데 힘든 시기는 없었나요?(웃음)
혜수
(웃음) 솔직히 말하면 제가 프로덕션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나이가 어리기도 하고 이전엔 더 어렸었고. 작업을 하다 보면 디자이너로서도 어려운 일을 많이 겪게 되더라고요. 성차별이나 여자 기술스태프로서 겪는 어려움 그런 것들도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항상... 내 자신보다 조금 더 강한 존재여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나는 아직 잘 모르고 배워가는 입장이다’라는 생각을 오랜 시간 가지고 있다 보니까. 쉽게 지쳤던 것 같아요. 작품을 올리고 나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맘이 안 좋았던 적도 많았어요. ‘나는 아직 부족해’ 생각 때문이었나... 내 자신이 갖고 있는 역량에 대해 조금씩 받아들이고 나를 탐구해야하는데 그런 좋은 시기를 놓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일을 쉬고 외국에 나가서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면서 나 자신을 탐구하자'라는 생각을 20대 중반부터 갖고 있었는데. 작업이 계속 이어지기도 했고 재미있을 것 같은 공연은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에 떠나지를 못 했어요. 그러다 작년에 마음을 먹고 다 내려두고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어요.
오, 너무 부럽다... 얼마나?
혜수
1년 정도요. 가서 공연과 전시를 많이 봤어요. 좋았죠. 우리가 하는 일, 연극이라는 일 자체가 타인에게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일이잖아요.근데 그 에너지를 온전히 나한테 쏟고, 내가 어떤 작업자인지, 어떤 걸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되게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나니까 되게 리프레쉬되고 용기도 생기고 좋았던 것 같아요. 자신이 없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그럴 수도 있지 스스로 다독이면서, 그렇게 1년 정도 떨어져 있다 다시 돌아왔어요. 일이 끊길 줄 알았는데 막상 들어오니까 찾아주는 분들도 있고 다행히 작업을 할 수 있었어요. 내가 1년 나가있었다고 해서 모든 게 변하진 않지만 내가 절실히 느끼고 강화된 부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작업에도 풀어낼 수 있었고... 좋은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내가 앞으로 이 작업을 계속해나가는데 있어서 어떻게 이 작업을 건강하게 할 것인지 돌이켜보는 시간이기도 했고.
아까 어려워했던 질문에 대한 답인 것 같은데요. 지금까지 작업을 해오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은 ‘작업을 멈추고 쉬는 시간’이었네요.(웃음)
혜수
하하. 그럴 수도 있네요. 완전히 여유롭게 모든 것을 멈추고 뒤돌아보는 시간.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게 그런 거 아닐까요. 완전히 스톱하지 않으면 쉬어지지 않으니까요. 작업을 하면서 여유까지 가지기엔 뭔가 느슨해지는 것 같고 쉽지 않죠.
혜수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내 삶도 있고, 긴 시간을 투자해서 작업 하나를 올릴 수 있는 여건도 되면 가장 좋죠.(웃음) 생각할 여유도 있고, 심적인 여유도 생기면 당연히 작업의 퀄리티도 좋아질 테고. 우리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니까 마감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런 여유 있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네요. 정혜수에게 연극이란?
혜수
하하.
‘대답하기 어려우시면 다음에 문자로 보내주세요...’ 이렇게 해서 나중에 받는 답보다 바로 딱 떠오른 것이 더 생생하고 좋더라고요.(웃음)
혜수
아... 지금 딱 생각나긴 했는데 너무 슬퍼요.(웃음) 현실적으로는 ‘연극은 제 밥벌이’예요. 음... 제 이상과 현실은 다르잖아요. 이상은... 사실... 그 이상적인 것을 찾고 있어요. 그것을 찾고 있으니 계속 이 일을 하는 거겠죠?(웃음) 사실 공연이 좋아서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작업이 너~무 힘들 때도 많죠. 작업이 너무 많아서 일주일에 극장을 세 군데나 돌아다니고 밤에 쪽잠 자면서 사운드 작업하고 그럴 때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주말도 없이?’ 어렸을 때는 ‘내가 사람들이 좋아서 하는 거야.’ 혹은 ‘나는 음향이 좋아서 하는 거야.’하는 답이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건 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일이 저에게 확실히 뭔가를 주고 있어요. 그 무언가가 분명 있는데 그거를 찾아가는 단계인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 연극은 (사운드디자이너 일은) 저에게 직업이죠. 먹고 사는 일. 하지만 그 이상의 것. 내가 찾고자 하는 그 플러스알파를 찾기 전까지는 못 그만둘 것 같아요.(웃음) 혹은 ‘아 이만하면 됐다. 할 만큼 했다.’는 지점에 다 다르면... 근데 그런 게 있을까요?(웃음)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전까지는 이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혹시 사운드디자이너 말고 다른 역할을 해보고 싶진 않으세요?
혜수
아, 저 대학교 때 연출도 해보고 배우도 해봤었어요. 근데 그건 정말 안 맞더라고요. 제 길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웃음) 공연 음향이 아니면 다른 장르의 음향작업을 했으면 했지 연극 안에서 다른 포지션은 안 할 것 같아요. 재미로서가 아닌 이상... 왜냐하면 제가 다른 파트를 굉장히 리스펙트 하거든요. 그 디자이너가 그 매체를 만드는데 있어서의 내공, 어떤 특별한 무언가, ‘키 디자인’ 같은 것... 그런 것은 아무나 못하는 거잖아요.
음... 디자이너님 이야기 들어 보니까. ‘그냥 공연 자체가 좋은 게 아닐까. 공연 자체가 좋고, 그렇게 좋아하는 연극이라는 것 안에서 다른 작업자를 존경하듯이 작업자로서 존경받을 만한 수준에 오른 그런 구성원이 되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혜수
그런 것 같네요. 저는 공연이 갖고 있는 다이내믹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게... 너무 살아 있잖아요. 너무너무 싫다가도... 좋은 공연, 좋은 결과물을 보면 내가 모르는 작업자인데도 그 사람이 너무 좋고 ‘아 저렇게 할 수도 있구나.’ 이런 자극을 많이 받아요. 그래서 다양한 작업들이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 하고요. 저 역시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실험적인 감각으로 좀 더 과감해지고 싶어요. 그래야만 작업자로서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생물로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그런 다양성을 실현하고 싶어요. 작업을 이어가면서... 아... 평생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평생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웃음)
혜수
큰일 났다. (웃음)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정혜수(사운드디자이너)
주요작품
<크리스천스> <요정의 왕>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 <브레인컨트롤> <상처투성이 운동장>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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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

김정 연출가
'프로젝트 내친김에' 연출

주요작품 <광장의 왕>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 <꿈> <손님들> 외
shinji840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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