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연극인이 만난 사람] 이산X강유가람

‘우리’와 ‘나’사이를 자유롭게 오가기 위한 페미니즘

이산, 강유가람

제158호

2019.04.25

인터뷰 녹취를 풀기 위해 녹음파일을 재생했다. 녹음기 사용법을 알려준 '연극in' 에디터의 ‘녹음은 이렇게...’의 말꼬리에 나와 강유가람 감독의 감탄이 듀엣처럼 따라붙었다. ‘우와 신기하다’, ‘우와’, ‘귀여워요’, ‘되게 신기하다!’ 하하. 웃음이 터졌다. 메아리처럼 주고받은 감탄사들이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며 여러 번 덜어낸 ‘저도 비슷해요’ ‘맞아요’를 비롯한 여러 추임새들의 전주곡처럼 들렸다.
인터뷰 내내 우리는 여성의 이야기를 작품에 담는 작업자이자 페미니스트 활동가로 살아가면서 겪는 소소한 기쁨과 오랜 고민들을 나누며 서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강유가람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낙태 이슈를 다큐와 픽션이 혼합된 형태로 그린 조세영 감독의 영화 <자, 이제 댄스타임> 작업 현장이었다. 낙태 경험을 이야기할 출연자를 찾기가 너무나 어려웠던 당시를 기억하기에, 그 후 8년이 지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을 맞이한 감격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미투운동 이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한국독립영화협회(이하 한독협)에서 각자의 일로 만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주어진 일 외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던 터라, 요즘의 근황을 물으며 말문을 열었다.
  • 강유가람

  • 이산

강유가람
<마이페미니즘(가제)> 작업을 편집하고 있다. 1990년대 말, 2000년대 중반까지 소위 ‘영페미’로 불리며 활동했던 페미니스트들 중 여성단체나 연구영역으로 가지 않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페미니스트로 어떻게 살고 있나 궁금했다. 작년에 한독협 성폭력사건 대책위원회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부분을 타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페미니스트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일상에 이미 페미니즘이 배어서 삶이 구축되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보면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페미니즘 이슈를 지속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일상과 관계를 충분히 여성주의적으로 만들어 나가더라.
이산
총여학생회 활동 후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면서 평생 여성단체에서 일할 줄로만 알다가 그만두고 연극을 시작했고, 여성단원만 있는 극단 목요일오후한시에서 활동했었다. 극단을 나와 마임을 시작하고 나서는 연극하는 일상에서 여성이슈를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주변에서 ‘나 마임하는 누구 알아, 누구의 공연을 봤어, 워크숍에 갔어’ 하면 남성 공연자였다. 마임하는 선배들과 작품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고, 마임으로 할 수 있는 작품 세계의 가능성을 더 알고 싶고, 물어보고 싶은데, 여성모델을 찾기가 어려웠다. 남성중심 문화가 강하다보니 기존의 협회에 선뜻 다가갈 마음은 생기지 않고 여성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것 자체가 불안하게 느껴졌다.
강유가람
‘언니네트워크’ 편집팀에서 주기적으로 글도 쓰고, 여성학 공부도 하고, 그러다 독립영화판에 왔다. 사회적으로 한창 활동할 나이로 보는 30대에 새로운 영역에 들어왔으니 초짜로서 당연히 배워야할 것도 많고, 그러다 보니 목소리 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영희야 놀자’라는 팀 안에 있었고 여성작업자들과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안정하거나 차별당하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하며 제작을 했는데, 미투 국면에 들어서자 내가 몰랐던 독립영화판에서의 권위나 위계가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목소리를 내는 장에 가야할 것 같은 생각도 했고. 책임의식도 많이 느꼈다.
이산
미투운동으로 묻혀 있던 성폭력 피해가 드러나면서 많은 조직이나 공동체가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방법을 고민했다. 한독협의 상황은 어땠는지 듣고 싶다.
강유가람
한독협 성평등위원회는 2011년대 초반에 꾸려졌고 사건 처리 내규도 그때 마련되었다. 작년에 사건 논의를 하면서 기존 규정에 의거하여 논의를 하려고 보니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중앙운영위원회 위원, 성평등위원회 위원, 관심있는 회원 등이 함께 규약을 수정했다. 남순아 감독님이 성평등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새로운 이슈를 많이 가져오고, 포럼도 제안했다. 영화계 해시태그 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성평등위원회 활동도 발맞추어 가게 된 것 같다. 남순아 감독님이 작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성희롱예방교육 책자를 만들었을 때, 한독협 총회나 모임에서 성평등에 관련된 약속문을 읽을 때, 그런 시도에서 희망을 보기도 한다.
성폭력사건 대책위에서는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도출하는 것까지는 할 수 있었는데, 한독협 내부로 문제의식을 확산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느꼈다. 공격을 당할까봐 두렵기도 했다. 웹으로 공지하고 메일링 했을 때는 반응이 너무 없기도 해서 관심이 없는 걸까, 있는데 무시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사법기관도 아닌 대책위의 결정내용에 대해 ‘과하다’는 의견이 왔을 때 대응할 논거도 있어야 했고, 공동체를 설득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이산
폭력이나 차별에 대해 사건화 하여 공동체 내에서 다뤄온 경험, 공동체가 질서를 갖추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낄 때 참고할 절차와 체계가 부족하다. 구조의 문제를 보지 않고 개인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문화에서는 성폭력을 공동체의 문제로 이야기하기가 너무 어렵다. 이게 왜 공동체의 문제인지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데, 조치를 취하는 체계를 만드는 것까지 책임지게 된다. 공동체가 대책위를 확실히 신임하지 않고 성폭력 사건에 대해 거리를 두고 싶어 하거나 대책위를 비판할 준비만 되어있는 상태라면 과부하가 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해자에 대한 조치라고 부를 만한 것을 뭐라도 해보려면 이런 과정을 밟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체계를 만드는 건 그것대로 천천히 하고, 그 와중에 사건 처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체계가 부족함을 인정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진행하면 좋겠다. 더 많이 통찰하고 더 많이 보는 사람들이 더 큰 책임을 지는 상황을 곳곳에서 보면서, 동료를 만난 기쁨에 반갑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성폭력 이슈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여성들에게만 씌우는 현실을 보게 된다.
강유가람 감독은 영화 <모래>를 시작으로 광장의 ‘페미존’을 다룬 <시국페미>, 기지촌에서 생활하는 여성들을 만난 <이태원> 등을 연출했다. 그 자신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사회적 소수자로서 여성들이 장착하게 되는 시선’으로 여성들의 일상이 드러난 공간을 영화에 담았다. 섹슈얼리티의 통제,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노동의 평가절하 등 여성의 일상을 한 올 한 올 풀어내다보면 젠더에 의한 차별에서 벗어나는 사회로 가는 길이 아득히 멀어 보일 때가 있다. 더 멀리까지 보기 위해 까치발을 들고 눈을 가늘게 뜨다보면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겪는 차별에 대한 감각이 더욱 예민해져가곤 했다. 이 감각에서 오는 자극을 놓치지 않고 작업으로 가져오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산
마임으로 처음 만든 작품이 <벌레>라는 단편이었는데, 스스로의 성폭력 피해경험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피해의 기억이 사라졌으면 했지만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면서, ‘이 기억이랑 어떻게 같이 살지?’, ‘어떻게 화해하지?’라는 질문을 시작했다. 그래서 주인공의 방에 바퀴벌레가 들어왔고, 너무 싫은데 잡히지도 않아 어쩔 줄 모르는 장면을 담았다. 작년에 만든 <스턴트맘>의 경우, 지인들의 육아 경험과 나의 일상을 섞어가며 만들었는데 내가 어느새 싱글맘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료, 친구, 가족, 파트너가 자기 자신을 남성 가부장의 위치에 놓고 나를 대한다고 느낀 경험들이 있었는데, 그래서인지 내 작품에서 가부장 ‘없는’ 일상이 반영된 것 같다. 여성의 이야기를 담다보면 나의 일상과 공명하는 지점을 새롭게 발견하면서 ‘내가 이래서 이 이야기에 끌렸을까’ 묻게 되는 경험이 생긴다.
강유가람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장착된 감각, 시선이 있어도 내가 스스로 처음부터 여성주의 의식이 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주변을 보면 간혹 그런 시각을 타고났다고 느껴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감각이라는 것도 배우고 습득해야 얻어지는 것이고 여자라서 자동적으로 획득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첫 번째 영화 <모래>를 작업한 건 한창 독립을 생각하던 때였다. 내 한 몸 뉘일 공간을 여성으로서 찾아낸다는 게 쉽지 않다는 생각. 한국사회의 복지는 개인의 책임으로 돌아가는데, 나의 사회적 안전망은 불안정하고. 결혼하지 않는 삶, 이성애 핵가족을 꾸리지 않는 삶에 대한 공포,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포착되었다고 본다. <이태원>은 처음에는 공간으로 접근했다. ‘후커힐’이라고 부르는 성매매 집결지가 있다는 것은 2006년에 지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용산 재개발을 여성의 시선으로 보자는 기획의 일환으로 남일당부터 후커힐까지 걸어가는 워크숍에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 후커힐에서 미군에게 살해된 기지촌 여성이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누군가가 어떤 일을 한다는 이유로 정체성이 하나로만 정해지는 것, 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고 ‘이런 사람이다’라고 낙인화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보였다. 그래서 이 분들을 이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로, 주민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로 담고 싶었다. ‘성을 살 수 있다’는 것은 여성문제에서 핵심적인 문제라고 본다. 언젠가는 그런 서비스를 ‘살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가부장제와 성산업의 맥락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들과 아웃리치를 많이 나갔다. 그 분들이 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여성으로서 여성의 시각을 담는 이야기를 계속 만들어오는 것에 대해, 왜 이런 주제에 계속 천착하느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남성 감독들은 왜 남성이야기를 계속 다루십니까하는 질문은 받지 않는다. 남성 감독에게도 왜 이렇게 남성이야기를 계속 다루는가 물어보면 본인들의 서사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까.
이산
남성서사는 ‘남성서사’가 아닌 여러 이름을 가진다. 권력게임, 범죄물, 사회문제, 로맨스 등. 남성의 노동문제는 노동문제이고, 자본주의 문제이고, 여성의 노동문제는 여성문제다. 여성의 모든 서사를 ‘여성이슈’로 쉽게 묶는 현실이 안타깝다.
강유가람
<시국페미>는 주로 여성관객이 많았고 남성관객의 비율이 높은 환경은 만나기 어렵다. 그래서 남성관객의 질문이 다양하게 나올 때 그런 환경이 반갑기도 하면서 긴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남성들의 질문은 대개 ‘모르는 걸 말하는 것을 폭력이라고 하지 말자, 왜 여자들 얘기만 담느냐, 페미존에 남자는 없었냐.’ 와 같은 것이다. 모를 수 있다는 것도 권력일 수 있다. 남성들이 궁금해 하는 지점을 보면 너무 자신의 입장에만 기반해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잘 대답하기가 힘들다.
이산
그 기반이 돌로 된 성벽 같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과연 그 사람과 그 기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영화 프레임에 남성이 없다는 것을 문제로 여기는 감각, 자기가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감각이 얼마나 문제인지 상대는 모른다. 여성의 서사는 확실히 남성중심적인 객관성, 중립성의 기준과 계속 부딪친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런 충돌이 없는 세계에서, 누군가의 객관성이나 중립성의 기준으로 나의 서사를 판단당하지 않는 세계에서는 어떻게 나의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을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강유가람
공부를 많이 해야 되는구나, 언어를 단련시켜야하는구나 생각했다. 예전부터 그런 방식으로 공부를 해왔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닥치면 달랐다. 공부의 길이 끝이 없구나 싶다. 페미니스트면 말발도 좋아야하고 논리적이어야 하고 키보드 워리어도 되어야할 것 같은데, 논쟁하며 싸우는 걸 잘 못하니까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못 하니까 나에게 맞지 않는 방법인 것 같기도 하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면 되고 나는 다른 일을 하면 되는데, 개입해야하는데 개입하지 않는 내가 비겁한 건가 싶을 때도 있다.
<마이페미니즘(가제)> 작업에서 이런 고민들도 나누고 싶었다. 일상에서 여성주의자로서의 면면을 어떻게 가져갈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스타일도 다르고, 장기적인 그림을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도 있는 걸 보니까, 내가 당장 이런 걸 바꿀 순 없어도 다른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는데 너무 강박적으로 생각했나 싶었다. 내가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정말 들면서, 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건 오만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고, 논의의 장에 새롭게 유입될 수 있는 여러 사람들을 발견하는 눈이 우리에게 주어지기를.
이산
여성주의적 입장을 표현하는 방식,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방식에 있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식이 많지 않아 보인다. 내가 모든 운동 방식에 다 위화감 없이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 굉장한 나의 오만이 아니었을지. 작업에 몰입하면 주변을 돌보지 않는다고, 여성 이슈에 목소리를 내면 작업에 몰입하지 않는다고 여성작업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내면화 되어있음을 느낀다. 목소리를 내는 방식,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며 활동하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조금씩 나아가보게 된다.
강유가람 감독은 <시국페미>를 작업하면서, 광장에 나선 페미니스트들이 ‘페미존’을 어떻게 만들었고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터뷰를 담았다. 거침없고 에너지 넘치는 인터뷰들을 의미있게 재구성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전에 활동해온 여성활동가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놓치지 않았다. 이 글에 미처 담기지 못한 인터뷰 내용에는 서로에게 힘을 주었던 멋진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 작업자로서 누군가에게 제안하고 요청하는 입장에 있을 때 자칫 차별을 공고히 하는데 기여할 수도 있다는 감각, 작업 환경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 수 있는 실천들을 더듬어가며 스쳐가는 고민들이 있었다. 우리는 누군가 자신의 여성주의적 일상을 꾸리면서 놓아준 용기와 통찰의 징검다리를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또 누군가에게 더 멀리 가닿을 다리를 놓고 있다. 여성이 더 이상 여성으로만 묶이지 않는 세상, 다름이 드러나는 곳마다 환대의 빛이 꺼지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 강유가람 감독의 <이태원>은 ‘독립영화 반짝반짝전’(2019.5.9~6.5)에서 관람할 수 있다.(https://indiespace.kr/4318)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강유가람X이산

강유가람X이산
강유가람_다큐멘터리 감독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와 부동산 문제를 다룬 <모래>(2011) 연출, 여성의 임신중절을 다룬 <자, 이제 댄스타임>(2013) 공동제작, 기지촌에서 살아온 여성들의 삶과 공간의 변화를 다룬 <이태원>(2016), 박근혜 정권 퇴진 정국에서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다룬 <시국페미>(2017)를 연출했다. 여성의 역사와 공간의 변화를 기록하는 데 관심이 많다.
twitter.com/motomy

이산_마임배우
2009년 말부터 2014년까지 즉흥연극 극단 목요일오후한시 단원으로 활동했다. 문래창작촌 스튜디오QDA의 옴니버스 공연 <철공소에 핀 극장>에 참여하여 단편 마임을 만들어왔다. 2016년 마임옴니버스 <구름텃밭>, 2018년 마임옴니버스 <스턴트맘>을 발표했다. 무대와 객석에서 몸의 감각이 열리는 순간, 행복한 상상을 북돋는 순간을 일으키고 싶어 마임작품으로 관객을 만난다.
sanlee.mime@gmail.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