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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가 만난 배우] 사막별의 오로라X김신록

나와 인물의 ‘고유감각’이 만날 때

김신록_배우

제170호

2019.10.24

이 글을 읽으시려는 독자님, 지금 앉아있는 혹은 서 있는 자신의 몸을 인식해보세요. 내 몸의 평형, 온도, 진동, 압력을 감각해보세요. 내 몸이 기울어지고 흔들리고 무엇인가를 쥐고 누르고 온도를 느끼는 감각을 통해 인물의 몸을 만난다는 것은 어떤 방식일까요. ‘사막별의 오로라’라는 2인 창작팀을 꾸리고 있는 김정, 황은후 배우를 만나 일반감각과 고유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일반감각과 고유감각에 대해 설명 부탁한다.
은후
일반감각이란 사람이 세포 층위에서부터 갖고 있는 감각을 말한다. 평형감각, 온도감각, 압력감각, 진동감각. 이 일반적인 감각들이 개인의 삶의 역사와 경험에 따라 각자 다른 결로 작동하면서 고유한 몸에 새겨진다. 이것이 한 사람의 고유한 감각, ‘고유감각’을 형성한다. 아울러 고유감각은 자신의 신체 위치, 자세, 움직임 등에 대한 감각으로, 우리 몸이 어디에 위치해 있고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는 감각이기도 하다. 일반감각이 고유감각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고 이해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오감이라고 말하는 시각, 청각, 후각, 촉각, 미각 등은 특수감각에 속한다.
일반감각과 고유감각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은후
기본적으로 우리 팀은 몸에 관심이 있다. 팀 소개에는 ‘몸’과 ‘여자’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갖는다고 되어있다. 이제까지의 작업은 ‘젠더를 수행하면서 살아가는 몸의 불안’에 집중되어있었다. 2014년 첫 작업부터 올해 재공연한 <메이크업 투 웨이크 업>까지 쭉 외모 강박을 추동하는 사회적 압박에 대해, 그 안에서 몸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 탐색했다. 우리는 그 몸을 ‘어쩔 줄 모르고 끊임없이 움직이는 불안한 몸’이라고 부른다.

이런 몸을 탐구하다 보니 흔히 생각하는 배우의 몸, ‘깨끗하고 경제적이고 중립적인’, ‘습관들이 제거된 바른 몸’으로는 구현이 힘들었다. 우리가 감각하고 있는 ‘불안의 몸’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나 보니까, 일단 ‘몸을 흐트러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새는 ‘흐트러트리는 것’을 탐구하고 있다. 목표와 행동 같은 것 말고, 목적 없는 행동들, 비어있는 순간들, 해석할 수 없는 단절 같은 것들이 오히려 ‘진짜’를 말해주는 것 같다. 이걸 어떻게 발견하고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일반감각과 고유감각이라는 개념을 발견했다.
이런 몸에 대한 호기심, 호감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 같다. 일본 연출가 오카다 토시키가 2013년에 서울에서 <현위치>라는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공연을 보는데 배우들이 계속 이상한 방식으로 몸을 꼬면서 방사능과 관련한 이야기를 했다. 보이지 않는 불안을 몸으로 어떻게 표현할지를 고민했던 것 같다. 보면서, 비일상적인 몸이지만 뭔가 ‘저거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명을 받았다. 그간 나는 ‘내가 무슨 마음인지 관객들이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식으로’, 어떻게 보면 제시적으로 몸을 사용했던 것 같다. 이제는 흐트러트리고 싶다.
  • 황은후
  • 김정
일반감각과 고유감각을 탐구하는 것이 몸을 흐트러트리는 데 어떤 방식으로 도움을 주나.
텍스트에 접근하기 전에 내 몸의 압력, 평형, 진동, 온도감각 등을 경험한다. 이때 놀라운 것은 가만히 있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라는 편견이 무색하게, ‘내 몸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때 그때의 감각과 마음에 집중하면 오히려 ‘몸은 가만히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한다. 여기서 이제껏 경험해보지 않은 ‘사이의 몸들’을 발견하게 되고, 이것이 결국은 단단하고 제시적인 몸을 흐트러뜨리는 게 된다.
‘사이의 몸’이라는 것을 효율적인 액션과 액션 사이에 발생하는 ‘무목적적인 몸’, 언어와 실제 사이의 ‘과정 중의 몸’ 등으로 이해하면 될까.
은후
맞다. 개인적인 몸을 관찰해보면, 틈새나 무의식에 접속하고 있는 몸의 감각들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고, 그런 걸 들여다보면 그게 ‘진짜’라는 생각이 든다. 요새 ‘틈새’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뷰포인트에서 ‘네거티브 스페이스’(비어있는 공간)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도, 덩어리가 아니라 덩어리들 ‘사이’에 있는 것들을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매 순간 근육과 관절을 통해 수용되는 고유감각과 접속하는 방식을 통해 목표를 가진 행동, 그러니까 ‘연기적 액션’을 하는 패턴에서 벗어나기를 시도해보고 있다.
조해진 작가의 『산책자의 행복』이라는 소설을 무대에 올리려고 연습 중이라고 들었다. 이 작업을 통해 몸을 흐트러트리는 것, 그럼으로써 몸의 사이, 혹은 여러 의미의 ‘틈새’들을 찾고 있는 건가.
은후
맞다. 막막하고 모호하지만 ‘진짜’라고 느껴지는 것을 찾고 있다. 『산책자의 행복』은 두 인물의 이야기인데, 한 사람이 이메일을 보내고 다른 한 사람이 마음속으로만 답장을 보낸다. 대화나 서사보다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탐색, 거기서 이어지는 사유로 이루어진 텍스트다. 실제로 행하지 않고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일도 여전히 ‘물질적인 것’인 것 같다. ‘사유와 기억을 배우가 어떻게 몸으로 번역할 수 있을 것인가’, ‘물질적으로 어떻게 겪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일반감각-평형, 진동, 온도, 압력감각을 통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인물을 물질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은후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일하는 인물이 있다고 치자. 내가 ‘그 인물이 되어서’ 살아보면서 그 사람의 감각을 몸에 입는 방식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나라는 사람에게 이미 형성되어 있는’ 압력, 평형, 온도, 진동에 대한 감각 혹은 기억들을 먼저 찾는 거다. 그리고 내 몸의 고유감각을 바탕으로 인물이 가지고 있을 법한 압력, 평형, 온도, 진동에 대한 감각을 만나는 것을 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즉흥 액서사이즈들을 할 때 인물인지 아닌지 모호한 경계에서, 오히려 ‘나 자신으로서 인물이 외부와 만나는 물질적인 감각들을 따라가 보려’ 하고 있다.
얼마 전에 뭔가 발견한 순간이 있었다. 연습 때 ‘배우인 나 자신에게 가장 강하게 작용하는 감각과 인물의 중요한 한 문장을 함께 가지고 인물의 방에 있어 보자’고 제안했다. 나는 ‘거절당하고 싶지 않았다’라는 인물의 문장을 선택했다. 배우인 나 자신은 압력감각에 예민한 사람이다. 내가 주먹을 쥐고 꺾고, 관절에 힘을 줌으로써 ‘내가 여기 있다’는 감각을 계속 몸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그 움직임이, 그 감각이 인물의 문장, ‘나는 거절당하고 싶지 않았다’와 아주 잘 맞아 들어간다고 생각하면서, 뭔가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쾌가 있었다. 사실적이거나 제시적이지 않았지만, 인물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후
‘인물과 맞닿았다’를 감각하는 것은 ‘인물이 이런 사람일 것이다’라고 추론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나의 고유감각과 인물의 고유감각이 만나는 순간이 있다. 일반감각은 복합적인 것들과 만날 수 있는, 상념이나 무의식과도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 같다. 꽉 쥔 주먹, 기울어진 몸, 공간에서 느끼는 몸의 압력 같은 것은 심리적으로도 잘 접속된다.
예전에는 ‘상상력’으로 인물에 접근했다. 인물을 둘러싼 환경, 전사 같은 것들. 너무 어려웠다, 상상도 안 되고. 전에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왔었다.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내가 탁 손을 들고 ‘상상이 너무 어렵다. 어떻게 상상력을 잘 발동시킬 수 있나’ 물었더니, ‘시나리오를 받으면 감독과 충분히 이야기하고 의상과 헤어를 바꾼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에 너무 충격을 받고 배신감마저 들었다. 마치 ‘나는 천재니까, 이렇게만 하면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아서. 그런데 막상 내가 해보니까, 의상 헤어를 통해 먼저 접근해 보니까,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게 가능해졌다. 쉬운 예로 맨발일 때와 구두를 신고 있을 때는 다르다. 대본을 읽고 연출과 충분히 이야기하면 인물에 대해 어렴풋하게 감이 오지 않나. 그 이해를 바탕으로 상상 대신 인물이 입었을 법한 의상을 입고 헤어를 하면 ‘감각이 발동’한다. 상상으로 접근했을 때보다 감각으로 접근했을 때가 훨씬 ‘직접적’이었다.
상상이라는 것을 멈춰 있는 시각 이미지나 스토리, 감각이 아닌 사고의 영역으로 이해하는 경우에 실제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은후
‘냄새를 맡는다, 본다, 듣는다.’ 이렇게 특수감각을 상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연습실 냄새만 나는데, 에어컨 소리만 나는데, 숲 냄새를 맡아라, 새소리를 들어라. 그런데 오히려 압력, 온도, 진동, 평형은 내가 몸으로 맞부딪히고 쥘 수 있는 실제적인 감각들이다. 이게 어떤 통로가 되는 것 같다. 게다가 압력은 물질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삶의 압력’ 같은 은유로 금방 번역이 되는 것 같다.
듣고 보니 고유감각이 ‘실제와 허구가 만나는 통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또 압력 감각이 삶의 압력, 압박 등으로 메타포화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흥미롭다.
이렇게 감각을 탐구하다 보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 위빠사나 명상을 가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고정되어 있는 실체라고 생각을 하지만 우리는 아주 작은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일관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매일 변하고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아주 위로가 됐다. 이 세계가, 내가, 고정되어 있다고 느낄 때 괴로운 것 같다. 모든 것은 입자고, 항상 변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놓이는 게 있더라. 내가 여기 있고 책상은 저기 따로 있어서 ‘내가 이 세계를 어떻게 살아가겠다!’가 아니고, 이 세상도 다 입자고, 나도 이 세상에 입자로서 흡수되어 있고, 나만 진동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함께 진동하고 있다는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
은후
이 작업을 하면서 번 아웃에서 살짝 회복하고 있는 상태다. 그래도 아직 기력도 없고 창조성이 불타 올라서 짠! 이렇게 되지는 않는다. 나라는 실체에 대한 자신감이나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감각을 더듬어 가는 방식’으로 작업해나가는 것이 위로가 된다. 나라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외부에 의해 기울어지고 쥐어지는 작은 디테일들, 작은 감각들의 수행을 통해, 나도 조금씩 만들어지고 인물도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다.
소설에 ‘살아있다는 감각’이라는 문구가 있다. 나는 이 말에 관심이 있다. 개인적인 역사에서 나는 많은 순간을 의무로 살아왔다. 연기도 잘해야 하고, 밥벌이도 잘해야 하고. 그러다 보니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일하는 기계 같기도 하고, 삶과 연기에 대해 전체적으로 회의가 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살아있다고 느낄까에 대해 깊게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사막별의 오로라’는 ‘지금 가장 들여다보고 싶은 주제’를 가장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매개로 연극을 선택한 것 같다. 『산책자의 행복』을 통해 ‘살아있다는 것’을 들여다보고 싶다.
이 글을 다 읽으신 독자님, 내 몸이 환경과 세상과 맞부딪히며 느끼는 평형, 온도, 압력, 진동이라는 실제적인 감각들, 그리고 그것이 내 몸에 새겨지는 고유한 방식이 무엇인지 짐작되시나요. 지금 내 옆에 있는 가족, 친구, 동료들과의 만남이, 나를 둘러싼 햇살, 바람, 거리, 가구들과의 연결이 매 순간 나를 ‘고유하게’ 만들다니, 그리고 이 고유한 감각을 통해 다른 누군가의 몸과 만날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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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록

김신록 배우, 창작자, 워크숍 리더
rock2d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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