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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이 만난 사람] 김지혜X배해률

세상의 말로 무대에서 말할 때

배해률, 김지혜

제171호

2019.11.07

연극 <래러미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만난 책이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 <래러미 프로젝트>의 대사는 허구의 세계가 아닌 우리 세계에 현존하는, 현존했던 말로 이뤄져 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를 읽고 난 뒤, 이 말들이 갖는 의미는 분명해졌지만, 한편으로는 말 한마디, 한 마디가 갖는 무게감도 더해졌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 선생님을 만났다.
김지혜
배해률
<래러미 프로젝트>를 준비할 때,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작품 속 나오는 대사에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언어들이 많았는데, 처음에는 알지 못했으나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발견하게 되는 차별의 언어들이 있었다. 특히 『선량한 차별주의자』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사람들이 각자 인식하는 ‘정의의 범위’가 달랐을 때 나오는 차별의 말들이 <래러미 프로젝트> 안에서도 여러 번 등장했다. 예를 들면 ‘우리 마을은 정말 살기 좋은 마을이에요’ 같은 식의 말.
김지혜
같은 마을 안에 사는 사람이라도 소수자로서 사는 사람은 경험이 매우 다르다. 북새통의 <래러미 프로젝트>가 시도했던 무대 세팅 자체가 주는 의미도 컸다. 관객들의 자리도 무대 위에 있는 것. 관객으로서 경험할 때, 작품의 세계 속에 내가 일부로 들어가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보통 차별의 이슈를 대할 때, 약간 남의 이야기로 보기도 쉬운데,‘아 누가 차별받는다’,‘마음이 안 좋다’를 넘어서 내가 그 세계의 일부가 되어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배우가 관객들에게 말 걸기를 한다. 대개의 관객이 무대 위의 배우가 나에게 말 안 시켰으면 좋겠다는 태도가 있듯이, 일상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할 때 나한테는 말을 안 시켰으면 좋겠다는 태도가 있는 것 같다. <래러미 프로젝트>는 두 개의 감각이 겹쳐져 비슷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세팅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이번 공연은 주변에서 내게 말 걸기를 할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돌아볼 수 있는 공연이었다.
배해률
배해률
<래러미 프로젝트>의 연습은 배우로서 말의 무게를 배워가는 과정이었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는 당사자가 관객 중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고민. 당사자들 앞에서 당사자가 아닐 수도 있는 배우들이 그 차별의 아픔을 재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도 고민했다. 혹은 그 대사들이 당사자들에게는 폭력적으로 다가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김지혜
나도 연구자로서 인터뷰 같은 걸 할 때, 조심하려고 한다. 현재진행형인 이야기를 하게 되면 잔잔했던 감정이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인터뷰를 할 때는, 오늘 밤에 들어가서 힘들 수도 있는데, 혹시 그렇다면 연락하라고, 필요한 연락처 같은 것을 주기도 한다. 그런 종류의 것들, 나의 상처를 드러내는 것들은 윤리적인 측면이 중요할 것 같다. 미리 고지하거나, 끝나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고민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배해률
희곡을 쓸 때도 같은 고민을 한다. 극작가로서 내가 쓴 말이, 무대 위에 올라가고, 또 그 전에 다른 협업자를 만나고, 이 말들이 갖는 무게 자체가 다르구나, 그냥 나는 재미로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윤리적으로 말을 하는, 쓰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김지혜
흥미롭다. 극작가들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말하는 프로세스는 그 다음 단계, 단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기보다는, 듣는 사람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듣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과정으로 들린다. 새롭게 느껴진다.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할 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왜 못하게 해?’라고 하면서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듣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검열이라고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어떻게 하면 말을 더 잘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될 수도 있는 것 같다. 듣는 사람이 불편하다고 이야기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나에 대한 압박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상대를, 관객을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관객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소통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윤리적으로 말을 하고 싶다는 건 이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에 대해 고민한다는 말인 것 같다. 그러다 보면 묻게 되고, 듣게 되고, 그럼 나도 점점 더 여러 세계를 알게 된다. 기존에 보지 못했었던 세계를 알게 되는 확장 효과가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표현의 수준과는 다른 표현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배해률
그런 고민을 하게 되면서 일상생활에서 던져지는 말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작업할 때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희곡이 다른 작업자들을 만나고, 극장 안에서 관객들이 이 말을 또다시 감각하게 되는 과정이 무섭기도 했다. 내 말이 그 과정 안에서 2차 가해를 일으키지 않을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예를 들어,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폭력이 무대 위에서 재현되는 순간, 관객 중에 비슷한 폭력을 경험한 사람이 앉아있다면 어떻게 하나 하는 고민.
김지혜
대개 말을 잘못하는 경우는 내가 말하는 그곳에 누군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까먹었을 때, 어떤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었을 때. (있는 걸 알면서도 그럴 수도 있다.) 예컨대 이 자리에 이주민은 없겠지, 당연히 여기는 다 젊은 사람이야, 모두 다 서울 사람이야, 나도 모르게 여기 함께 모인 사람들에 대해서 전제하고 있는 게 있을 때, 우리가 말을 할 때 누군가를 알게 모르게, (아니, 사실은 듣는 사람은 알게) 배제하는 그런 식의 표현 발언, 혹은 대상화하는 표현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당사자가 있다면?’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배해률
가끔씩 폭력의 순간을 극적인 재미로 만들려고 부러 이를 무대 위에서 재현하는 작품을 객석에서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힘들다.
극작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인물을 가장 괴롭게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보라는 말을 듣는다. 이제는 그 괴롭힘이 결국 관객을 만났을 때 어떻게 감각될 수 있을지까지 고민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더불어, ‘정의의 범위’가 제대로 넓어지고 있구나 스스로 믿는 순간, 놓치고 있는 또 다른 지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김지혜
그 놓치고 있는 범위에 대한 불안은, 놓치고 있는 그 범위의 사람이 지금까지 자신의 삶에 없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이 아닐까 싶다. 관계를 확장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관계들이 다양하게 이루어져 오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이를 배우는 것이 더 힘들기도 하다. 당사자에게 물어봐도 되는 걸까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커뮤니티 안에 지속해서 관계를 만든다면 달라질 것이다.
예컨대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매년 당사자의 이야기로 공연을 한다. 당사자들이 연극 작업의 구성원이 되면, 그 안에서 자연스레 여러 이야기를 같이 나눌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배해률
앞으로의 작업도 소수자의 이야기를 무대 위에서 말하는 것을 지속해서 하고 싶다. 연극뿐만 아니라, TV를 틀거나, 지나가다 보는 영화 포스터에도 우리 사회의 소수자는 배제되어있다. 소수자의 이야기를 꺼내면 관객이 작품을 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보는 콘텐츠가 뭔지 모르겠고, 관습적으로 그냥 그렇게 여겨지는 게 있지 않을까, 싶었다.
김지혜
소수자의 이야기가 아주 특정한 어떤 집단의 이야기라기보다 삶의 이야기, 일상의 이야기임을 말했으면 좋겠다. 기존의 어떤 이야기들은 당사자가 관객 안에 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지도 않고, 고정관념을 만들고, 자극하는 방식으로 소수자를 그린다. 그렇게 형성된 고정관념이 너무 세서 무너뜨리기가 어려운 게 아닐까. 특정 방식의 재현이 익숙해지지는 않았을까? 소수자를 특정 집단으로 규정하기보단 어떻게 일상의 삶 안에 들어와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이면 좋겠다.
누구든 어떤 면에서 다수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소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이 모두가 ‘나도 힘들어’라 말하며 누구와도 연대하지 않는 이유가 되면 안 된다. 누구의 문제도 들어주지 않는, 모두에게 불행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소수라고 했을 때 다 같이 귀를 기울이는 것이 필요하다.
희곡의 말은 다른 작업자들을 만나고, 또 결국 관객에게로 넘어간다. 내가 보지 못한 ‘정의의 범위’가 내 곁에 또 객석에 있을 수 있다. <래러미 프로젝트>뿐만이 아니다. 작품 속의 세계는 결국 우리 세계의 누군가와 만날 것이다. 그래서, 계속, 무대 위를 상상할 때 고민하게 된다. 희곡의 말들이 점점 무거워진다.
그래서, 다시, <래러미 프로젝트>와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세계.
김지혜
<래러미 프로젝트>를 보면서 우리나라의 성소수자 이슈가 떠올랐다.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동성애자 군인을 색출하고 처벌하는데 사용되는 군형법 92조의 6항과 추행죄 문제다. 한 인터뷰에서 만난 청소년은 학교에서 당할 괴롭힘이 두려워 본인이 게이라는 사실을 감추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 청소년이 ‘군대 가면 또 어떻게 숨기죠?’라고 했다. 군형법에서 동성애자를 처벌한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동성애를 범죄화하는 존엄성 침해의 문제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사생활이 24시간 노출되는, 그런 공간의 문제도 있다. 군대라는 환경은 래러미의 너무나도 심각하게 가혹한 버전, 잠시도 숨을 공간이 없는, 그런데 강제로 가야만 하는 곳이다.
배해률
성소수자의 경우에는 만약 군대 내에서 폭력을 당했을 경우, 커밍아웃을 하지 않고, 가해자의 폭력 사실을 고발하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군대 내에서 참고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군대 내에서 지금도 많은 사람이 자살하고 있는데, 그중 성소수자인데 끝내 말하지 못하고 군대 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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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X배해률
김지혜
깅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관해 가르치고 연구한다. 이주민, 성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 관련 현안에 관심을 가지고 현장과 밀접한 연구를 통해 사회에 구체적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법·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사회복지와 법을 공부하고 서울특별시립아동상담치료센터, 헌법재판소 등 기관에서 일했으며, 다수의 연구 논문과 『선량한 차별주의자』, 『아무도 몰랐던 이야기』(공저), 『인권행정 길라잡이』(공저) 등을 쓰고, 『헌법의 약속』, 『사회보장론 입문』을 번역했다. jihyekim@gwnu.ac.kr

배해률
극작가. 혐오하지 않는 세상을 꿈꾸며, 혐오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희곡<그럼에도 불구하고>,<비엔나소시지야채볶음>,<7번국도>를 썼다. 최근에는 연극 <래러미 프로젝트>에 배우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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