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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이 만난 사람] 강보름X홍혜은

동일시도 타자화도 아닌 연대의 가능성을 꿈꾸며

강보름, 홍혜은

제176호

2020.02.20

“경험들로부터 만들어진 아이덴티티를 잘 간직하고, 나의 과거로부터 현재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잘 기록하고 증언하는,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잇는 다리 같은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 이토록 멋진 소망이라니. 홍혜은 작가 겸 활동가를 궁금해하며 혼자 내적 친분을 쌓아오다가 [대화] 코너를 핑계로 드디어 만남을 청했다.

#공동체_처돌이 #가족‘이라서’가 아니라 가족‘임에도’
#계급적인 공동체

보름
연극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공동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소속감이 없기도 하고, 주체적으로 속해 있는 것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던 차에 또래 여성 활동가인 혜은 씨의 글을 읽게 되었다. ‘내 삶의 방식을 유지하면서,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과 연극하며 살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가장 컸다. 혜은 씨는 SNS에서 ‘세계 제일 공동체 처돌이 콘테스트’ 같은 게 있다면 본인이 우승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나(웃음). 비혼지향 생활공동체라는 이름으로 구체적으로 실천 중인데, 이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친동생들도 소속되어있다는 것이 참신하게 느껴졌다.
혜은
2015년 메갈리아 이후 페미니즘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싶었던 넷 페미니스트들이 인터넷 커뮤니티로 모였고, 다른 식으로 연결되고 확장된 결과가 지금의 ‘공덕동하우스’이다.
흔히 혈연가족, 직계존비속 관계(부모)와 함께 살면 끈끈한 가족으로 여겨지고, 방계(형제자매)가족과 함께 사는 건 ‘둘 다 시집, 장가를 못 갔구나’라고 생각한다. 아예 혈연관계가 없는 이성이면 결혼 관계라고 간주하거나, 그냥 룸메이트거나. 그런데 이게 다 섞여 있으면 설명하기가 너무 어려워진다. 정상가족 중심의 주택 담보 대출 제도 내에서는 우리가 설명되지 않는다.
페미니스트들의 삶에서는 혈연가족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곧 페미니즘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된 경우가 많다. 혈연가족 경험이 폭력의 경험으로 재해석이 되기 때문에 실제로 그 관계를 끊지 않으면 제약이 생기고 끊임없이 정상성을 강요당하는 억압을 경험하게 된다. 나중에 깨달은 건 혈연가족도 그 이름이 그냥 주어졌을 때의 관계맺기와 양쪽이 문제점을 다 인식한 다음의 관계맺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었다.
여동생과는 처음부터 같이 살았다. 이건 좀 쉬웠다. 나중에 들어온 남동생의 경우는 심적 부대낌이 있었다. 몇 년 전까지는 엄청나게 가부장적인 큰누나였던 사람이 갑자기 7살 차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반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왜 띠동갑인 사람들과 친구로 지내는지, 나의 많은 변화를 설명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1년 동안은 계속 설명하고 합의하는 시기를 보냈다. 나는 나대로 이 친구가 공동체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계속 눈치 보고, 이 친구는 적응하느라고 고생하고. 나중에 들어보니 너무 의존적인 사이가 되면 안 되니까 이 질서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 자신이 먼저 이 공동체를 떠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았다고 하더라. 혈연가족‘이라서’가 아니라 혈연가족‘임에도’ 새로운 질서의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점이 이 공동체를 좀 더 풍부하게 한다고 생각한다.
보름
연극은 특히나 집단성이 강한 장르여서 유사가족이 되기 쉬운 것 같다. 문제점을 자각한 이후에도 작업과 고민을 별개로 하니까 현장이 바뀌지 않는 부분도 있다. 프로덕션을 꾸리고 작업하려면 나의 일상이 먼저 안정되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서 어렵기도 하고. 계급적인 관점 없이 연극 공동체를 바라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은 씨에게는 계급성이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다.
혜은
계급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공동체는 계급 이슈가 자기 문제가 아닌 사람들만 모여 있는 공동체, 그래서 자연스럽게 탈계급화된 공동체다. 계급의식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옵션이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 계급의식을 가진 사람들인 거다. ‘여러 사람이 함께 만드는 콘텐츠는 해당 공동체의 시각을 반영한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그 공동체가 말하고자 하는 이슈가 달라지고 관심을 갖는 지점과 푸는 방식과 추구하는 대안이 달라지는 것이다.
홍혜은

#의사소통 #공동체에_대한_서로간의_그림
#공동체의_질서는_하루아침에_만들어지지_않는다

보름
만약 내가 예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훌륭한 결과물을 보장할 수 없다면, 정서적인 교류나 원활한 소통 같은 보상이라도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고민이 든다. 그런데 작품 만들기에 치중하다 보면 소통할 시간이 부족하고 관계가 쌓일 만하면 끝나버린다. 이게 내가 속하고 싶은 공동체에 대한 상(像)이 불분명해서 생기는 고민인지, 다른 의사소통 방식에 대한 경험이 부족한 건지 모르겠다.
혜은
연극 만들기와 공동체와 관계맺기의 역량을 같이 고민하느라 힘들다는 말인데, 두 가지를 분리할 필요가 없다. 프로젝트팀의 경우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 절대적 시간이 쌓이지 않는다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하기도 한다. 기간은 얼마나 주어졌고, 목적은 무엇이냐에 따라서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고 맞는 걸 하는 것이 페미니즘적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계속 고민하다 보면 수월해질 것이라 믿는다.
‘공덕동하우스’도 수많은 실패의 경험을 참조하며 만들어졌다. 한때는 그 시절의 관계가 페미니즘적인 관계맺기라고 생각했는데 뒤돌아보면 사회구조를 답습하고 있기도 했다. 이런 문제점을 느끼고 고민하다 보니 1:1 연애 관계에까지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여성들에게 가족 내에서의 위치와 연인관계에서의 위치에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걸 계기로 한쪽으로는 비혼 공동체를, 한쪽으로는 탈 연애를 연결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한쪽에서 권력을 갖고, 한쪽은 종속된 관계는 억압이기도 하지만 즐거움이기도 하다. 이런 관계에 익숙한 우리가 3인 이상의 관계를 어떻게 평등하게 만들 것인가 고민하면서 공동체 상을 구축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보름
서로 존중받고 싶은 부분들을 규약처럼 정하고 작업을 시작하는 편인데, 작업이 끝나고 나서 “사실 더 친해지고 싶었는데 그게 좀 어려웠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내가 안전한 환경이 모두를 위해 안전한 환경일 거라 생각해서 취한 액션이 친밀함을 가로막는 벽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하니 또 고민이 되더라.
혜은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너무 다양한 사람들이 온다는 것이다. 이곳에 상처받을 수 있는 페미니스트가 있다는 걸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것에 대해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은 사람도 올 수 있다는 걸 생각하고 작업하니까 너무 힘들었다. 가상의 인물 두 명을 상정해놓고 양쪽을 다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한 셈이다.
규약이 처음부터 너무 촘촘하지 않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왜 이것이어야 하는지 고민이 없는 상황에서는 효과도 없다. 구체적으로 이 상황에서 이 규약이 적용될 거라고 상상하고 피드백을 주고받는 것이 필요하다.
‘공덕동하우스’는 새 멤버를 분기별로 한 명씩만 받는다. 새 멤버를 받는 것도 전원의 인준을 받는다. 그런데 아무 정보 없는 상태에서 승낙한 것을 전원 인준으로 볼 것인가, 각 멤버가 그 사람을 충분히 알아갈 기회를 주고 인준을 받을 것인가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러니까 한 줄의 명문 규약보다 그 밑에 깔린 전제들, 이것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천천히 하지만 폐쇄적이지 않게, 충분히 열려있으면서도 그 안의 질서가 없는 것은 아닌 공동체. 질서는 하루아침에 종이 한 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니까.

#친밀영역과_공공영역 #연극계란_어디까지인가

보름
‘잘살고 잘죽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친밀영역의 질 좋은 관계맺기와 공공영역의 시민 활동이 연결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지점이 인상 깊었다. 나도, 관객들도 연극 공동체 안에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장애연극, 퀴어연극을 통해 나 자신이 확장되는 걸 느끼면서 다양한 주체들과 함께 공동체에 적응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은
연극계는 어디까지인가?
보름
사실 잘 모르겠다.
혜은
여성계는?(웃음) ‘00계’라고 하면 닫힌 공간을 상상하게 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문단, 영화계, 연극계 이런 것은 필요에 따라 허상이라고 여겨지기도 하고, ‘연극계 안에서 세력을 넓히자’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하고. 그런데 오히려 연결 지점을 많이 만드는 쪽으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문학을, 미술을, 연극을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우리는 같다’고 생각했던 게 쫑난 것이 지금의 판국이지 않은가. 내 가치관과 관심사에 따라 ‘이걸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사람들뿐’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아닌가. 고립됐다고 생각하지 않고 층위를 달리해서 다른 연결망을 만들어 가면 생태계가 같이 커진다. 개인적으로는 지금은 그런 또 다른 접점을 찾아내는 때가 아닌가 싶다.
보름
동의한다. 연극계의 구습을 보며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을 넘어 ‘그렇다면 어떻게?’라는 질문을 이제 막 던지게 된 시기인 것 같다. 어떤 대사나 서사에 상처받는 관객들이 극장에 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나, 극장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니까 주제나 소재, 관심사 자체도 달라지더라. 그러다 보니 사람을 만나는 것도, 작품을 만드는 것도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만들고 싶더라. 혹시 좋아하는 창작자가 있는가?
혜은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들이 양적으로 쌓여야 취향도 생기는 것 같다. 작년에는 장애여성공감의 공연<빛나는>도 재밌게 봤고... 이런 고민을 나누는 젊은 여성 연출가들 혹은 배우들에게 주목하게 된다. 예전처럼 큰 극장의 공연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무대, 연출, 규모의 웅장함을 좋아한다기보다는 ‘누구의 이야기를 다루고 누구의 관점을 다루는가’로 관심사가 변했다. 소수자의 관점으로 연극을 시도하고 고민하는 작품들에 관심이 있다. 페미니즘 연극제도 보러 갔는데 연극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관객으로 가지만 페미니즘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보러 가니까 관객 풀도 확장되었던 것 같다. 이런 만남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페미니즘_공동체 #동일시도 타자화도 아닌 연대의 가능성

보름
나에게 페미니즘 공동체란?
혜은
나에게 있어 페미니스트는 ‘질서를 세우는 사람’이라는 게 가장 중요하다. ‘다른 질서가 주어졌을 때,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모을 수는 없을까’로 고민의 초점을 옮겨야 한다. 각자의 생각에 ‘어떤 것이 평등한 것이고, 어떤 것이 폭력이고,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폭력이 발생하지 않는 공동체는 없다. 그 이후를 어떻게 할 것인가, 폭력을 인지했을 때 이것이 왜 일어났는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을 모아보자는 게 더 중요하다. 이 조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
사회가 나눈 여성의 기준에 더해 어떤 시기 어떤 배경에서 본인이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으는 것도 사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을 가져온 것이다. ‘공덕동하우스’에는 ‘생물학적 여성만 받습니다’라는 조건이 없다. 실제로 “저 안에서 연애가 생기면 어쩌냐, 남녀가 같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페미니스트들은 “왜 비혼여성만 받지 않냐, 왜 비혼여성의 자리에 남자가 들어가냐”고도 한다. 우리 안에서는 성별만이 가장 중요한 조건이 아니다. 사람의 정체성은 훨씬 더 다양한데, 나에게는 젠더도 중요하고 계급도 중요하니까. 서로 대화하며 맞춰가야 할 너무 많은 차이가 있고, 그 차이 중에 성별이라는 하나의 층위가 있는 거다. 이런 고민을 거친 과정이 공덕동하우스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각자도생하면서 사회 질서의 해결책을 찾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에 창작자들이 갖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서사 창작물들은 별점으로 평가되곤 하지 않나. ‘재밌어, 재미없어’ 획일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이야기들을 경험하게끔 하는 사람들로서 역할이 있는 것 같다. 일상을 살아갈 때는 내 문제라고 여기지 않았던 고민들, 어떤 세계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 그래서 창작자들의 윤리 의식 고취와 페미니즘적인 서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2시간 30분의 꽉 찬 대화를 지면 관계상 다 담지 못해 너무나 아쉽다. 홍혜은 작가는 올해 새 단행본을 집필할 계획이 있다고 하니 관심 있는 독자분들은 함께 기다려주시길 바란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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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X홍혜은

강보름X홍혜은
강보름_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rkdekdzhd@hanmail.net

홍혜은_저술가/기획자.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
빈곤과 여성 이슈를 함께 고민한다. 함께 더 잘 살기위해 관점부터 바꾸는 일에 관심이 있다.
https://www.facebook.com/hyeeun.hon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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