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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이 만난 사람] 강한나X유혜민, 신혜인

예술을 통한, 범지구적 관계의 회복 가능성

강한나, 유혜민, 신혜인

제182호

2020.07.09

웹진의 청탁을 선뜻 받아들인 건, ‘연극in’의 이번 기획연재 ‘연극과 지구: 모두를 위한 연극’이라는 테마가, 올해 상반기 내내 나에게 체증처럼 얹혀있던 답답함과 갈증을 다소나마 해소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체증이란 건, 대체 이제 또 무슨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 걸까 골머리를 앓게 한 #팬데믹, #포스트코로나, #뉴노멀 따위의 키워드들로 얽혀있었다. 안 그래도 혼자 앓기보다는 대화가 필요한 시기였고, 이왕이면 자신의 창작 안에서 환경과 생태 관련 이슈들을 녹일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나에게 필요하다고 느꼈다. 마침맞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환경운동가 ‘금자’가 비닐 없는 망원시장을 만들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인도와 케냐 등을 찾아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 <쓰레기덕후소셜클럽>을 제작한 유혜민 감독 그리고 신혜인 피디. 작년에 러닝타임 40분의 단편으로 제작되었던 <쓰레기덕후소셜클럽>은 올해 장편 버전으로도 만들어진다. 후반 작업으로 한창 바쁜 그들의 작업실을 찾았다.
강한나
연극계에서는 작업 안에서 환경 관련 이슈를 풀어내는 시도가 드물다. 오죽하면 ‘연극in’에서 기획연재를 위해 설문조사를 했다. 연극계가 환경 이슈에 관심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가늠이 안 될 정도로 확인의 경험이 없었던 거다. 그나마 교육 목적으로 환경 관련 메시지들이 담긴 아동청소년극들이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고, 아시테지에도 간간이 올라오는 것 같다. 근데 사실 환경 문제라는 것이 아이들 교육문제만은 아니지 않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러 차원의 이슈들이 연결된 거시적인 구조의 문제고, 그렇기에 인간 사회의 보편적인 이야기들이 말해지는 연극 무대에서 관련 메시지가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그간 연극인들은 이 문제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덜했다.
신혜인
지금 하고 있는 작업에서 팬데믹이나 환경 이슈와 만나는 지점이 있나?
강한나
구상이 완전히 끝나진 않았지만 새로 쓰는 희곡이 관련 이슈를 담고 있다. 나는 극작가다 보니 글을 쓸 때 이왕이면 드라마가 잘 짜인 서사를 쓰고 싶은 마음이 늘 있다. 그래서 어떠한 쟁점이든 인간 사이의 관계 안에서 녹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환경 이슈에 캠페인성 메시지를 부각해서 작업한다고 해도 기획이나 연출들은 그 역할이 퇴색되지 않는 것 같은데, 극작가로서는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은 강박이 있다. 인간 안에서의 드라마가 메시지에 묻히지는 않나, 너무 교육적인 메시지를 푸시 하지 않나 하는 강박.
신혜인
우리도 비슷하다. 환경영화나 환경다큐라고 하면 교조적, 캠페인성으로 많이들 접근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쓰레기를 덜 버려야 돼!’ 는 가장 일차원적이고 피상적인 층위이고, 환경 문제라는 것이 결국에는 제대로 파고 들어가 보면, 인간 사회와 공동체가 삶의 빠른 속도와 효율의 압박으로 쓰레기를 자꾸만 만들어내게 부추기는 구조의 문제니까. 쓰레기는 상징적인 소재인 것이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일상을 돌아보게 만드는 게 우리 영화가 시작되는 포인트다.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에 대해서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야기하는 팀은 우리가 알기론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개인 작업자일 뿐이지 영화계 내의 환경 이슈의 흐름 자체를 캐치하고 있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그 흐름이 연극계보다는 조금 더 형성되어 있는 것 같긴 하다.
유혜민
어떻게 만들지는 어떻게 더 많은 사람을 포섭할지에 대한 고민도 포함하는 것 같다. 캠페인의 성격을 띠게 된다면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쉽게 더 잘 전달될 수도 있지만, 그 결과물이 창작자 스스로에게 만족스러울지는 의문이다. 메시지를 창작 안에서 어떻게 녹이느냐의 문제인데, 사실 나는 연극에서도 그런 흐름들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유린타운> 같은 작품은 지금의 이슈와 긴밀하게 연결되어있는 이야기고, <페스트>처럼 원작소설을 각색하는 것도 그런 흐름의 일환이다. 다만 정치사회적인 운동의 형태로는 연극 안에서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 시의성에 딱 맞춰서 디벨롭이 되거나 하지 않더라도, 작품 안에서의 맥락이 몇 년에 걸쳐 변화하거나, 해석이 달라지거나 하는 방식으로 연극 안에서 또 다른 창작물이 분명히 나타날 거다.
유혜민 감독
강한나
연극계 안에서는 아주 최근에 기후정의 창작집단을 선언한 콜렉티브 뒹굴이 있다. 그간 사회 전반 혹은 연극계 내 가장 시의성 있는 의제들에 대해 늘 최전방에서 고민해왔던 작업자들인데, 사실 뒹굴의 경우는 연극계 흐름을 대표한다기보다는 특수한 케이스인 것 같다. 시의성을 가진 정치사회적 운동의 성격으로 연극 안에서 환경 이슈가 사용된 예를 찾아보자면, 80년대 마당극이 민주화 운동의 흐름과 맥을 같이 할 때에 당시에는 마당극전문극단으로 활동했던 연우무대의 <나의 살던 고향은>이라는 공해풀이극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연우무대가 1984년 7월에 드라마센터 무대 위에 올린, 임진택 연출의 공해문제극 <나의 살던 고향은>은 심의된 대본과 다르게 올려졌다는 이유로 한국연극사상 초유로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6개월 공연 정지 처분을 받았다)
신혜인
연극도 영화도 글로벌한 무대에서는 환경 이슈를 이야기해온 리더들이 많고 그 흐름이 잘 형성이 돼 있는데, 한국은 다큐멘터리든 극영화든 ‘환경’을 정말 딱 원포인트 이슈화하는 작업들이 많지가 않다. 매년 열리는 서울환경영화제도 사실 영화라는 매체가 대중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익숙하기 때문에 영화제를 형식으로 취한 것이지, 만약에 연극이 더 익숙한 형태였다면 환경연극제가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그냥 한국사회가 전반적으로 이 이슈에 느린 것 같다, 연극계와 영화계의 차이라기보다는 지역과 문화의 차이다. 유럽, 영미권과 같이 환경문제에 좀 더 선진화되었다든가, 중국이나 인도처럼 쓰레기 위기가 정말 심각해서 해결이 시급한 지역에서는 오히려 이슈 형성이 잘 되어있는데, 한국사회는 쓰레기 처리 문제를 잘 은폐한다. 우리는 분리배출을 하고, 거리도 깨끗하고, 쓰레기 문제가 별로 심각하지 않다는 식으로. 사실 한국은 너무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이라는 인식이 없다. 그래서 담론 형성이 더 잘 안 되는 것 같다.
유혜민
실제로 환경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영화들도 꼭 기후위기나 환경 이슈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오히려 페미니즘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동물권을 제외하고는 작년에도 환경 이슈를 이야기하는 한국영화는 거의 없었다. 굉장히 작은 시장이고, 관객층도 작다. 극영화나 웹드라마 시장에서는 좀 더 인류세적이거나 디스토피아적인 장르 스토리에 환경이라는 장치를 사용하는 것 같다. 영화산업도 서서히 티 안 나게 변하지, 영화인들이 이 이슈에 몰입되어 있고 이런 건 전혀 아니다. 우리 팀은 마이너 중의 마이너다.
신혜인
역으로 그래서 사람들에게 우리 작품이 잘 알려진 것 같다. 생경하니까. 영화 프로덕션은 쓰레기 발생이 무척 심각하다. 현장에서 다들 일회용품 쓰고 플라스틱 쓰고 이런 문화가 너무 보편화돼 있다. 효율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다 보니 그렇다. 우리도 제작하면서 그런 습관을 바꿔보려고 일종의 과정실험을 해 보지만 쉽게 잘 되지 않는다. 우리라고 완벽하게 실천하고 있는 건 아니다. 갈 길이 멀다.
신혜인 피디

혜민과 혜인의 작업실은 ‘알맹상점’이라고 하는 공간에 위치해 있다. (linktr.ee/almangmarket) 알맹상점은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는 슬로건의 리필스테이션이다. 말 그대로 포장재를 가져가면 충전재를 살 수 있다. 내가 간 날도 혜인은 직접 가져온 베개커버에다가 상점에서 산 메밀을 넣고 있었다.

강한나
작품의 주인공 ‘금자’는 영화의 콘텐츠면서 이 팀의 작품 밖 일상과 행동에서도 하나의 콘텐츠가 되는 것 같다. 유감독님이 운영하고 계신 사이트 플라스틱 프리 플랫폼 ‘피프리미’(pfree.me)도 금자의 활동이 주요 콘텐츠라 할 수 있는데, 살펴보니 ‘쓰레기’라는 키워드로 DB백과 내지는 쓰레기 포털이라 해도 될 정도로 알짜정보가 모여 있었다. 사이트가 더 널리 노출되면 좋겠다.
쓰레기덕후소셜클럽 유튜브 트레일러영상
유혜민
<쓰레기덕후소셜클럽> 단편 버전은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강한나
저의 딜레마, 즉 ‘인간의 드라마 안에 생태문제를 어떻게 녹일 것이냐’하는 지점에서 약간 힌트가 된 것 같다. 나는 만 5년 정도 비거니즘을 실천해오고 있고 항상 이걸 작품에 녹이고 싶은데 늘 어렵다. 페미니즘 같은 경우는 드라마화하기가 좀 더 수월한데, (물론 쉬운 것은 결코 아니다) 환경이나 생태문제 이런 쪽으로 가면 캠페인성 메시지가 드러나게 되기 더 쉬운 것 같다. 그런데 금자는 쓰레기를 매체로 해서 계속해서 ‘관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산재 사고로 사망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가방에 공통적으로 인스턴트 편의점 음식이 들어있었다는 게 단적인 장면으로 확 와 닿았다. 빠르고 편한 속성이 일회용 용기 안에 함축되어 있듯이, 속도와 효율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은 소모품이 된다. 금자는 플라스틱이 관계를 막고 있다고 말한다. 플라스틱 문화는 빠름/편의/기계적인 삶을 상징한다. 온라인 쇼핑과 택배 문화 역시 제일 싸고 제일 편하고 빠르지만 일회용품의 소비를 만들어내면서 관계를 단절시킨다고 금자는 말한다. 금자의 실천은 느림/불편/관계의 가치를 회복하는 삶이고, 결국 세월호를 비롯한 안전문제, 노동권, 인권, 소수자이슈, 탈육식 등등의 문제들은 거시적으로는 제로웨이스트와 같은 맥락으로 통한다는 걸 깨달았다. 금자의 언어가 엄청난 통찰이 되었고, 새 글을 쓸 때 중요한 영감이 될 것 같다.
신혜인
어떤 토픽의 흐름이건 처음엔 자연스럽게 직설화법을 취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담론의 레이어가 복잡다양하게 축적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너무나 명확하면서도 새롭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전달할수록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다. 지금 단계에서는 은유적 상징적으로 세련되게 돌려 표현하면 오히려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도 단편 버전에서는 직설화법으로 시작했고, 그로 인해 미학적으로 해소되지 못했던 것들을 장편화 과정을 통해 해결하려 하는 것이다. 시간을 좀 두고, 객관화가 되고, 거리두기가 되면서 어느 정도 관조가 가능할 때 소위 예술로서 가치 있는 무언가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 같다. 미학적인 욕심은 몹시 나지만, 그래도 우리는 시간을 두고 시행착오를 지나며 수순을 천천히 밟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유혜민
비거니즘도 환경 문제도 지금 이 순간 이걸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은 사실 이 문제의 중요성을 너무 절실하게 느끼기 때문에 당연히 직설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문제가 돼 버린 이야기들을 하고 싶어서 조바심이 무지 나는데도 어떻게 하면 영화적으로 잘 전달할 수 있는지 계속 균형의 지점을 찾는다. 근데 그런 지점들은 생각보다 사소한 것들인 것 같다. 플라스틱 컵이 산더미로 쌓여있는 센 이미지보다도, 사람들이 플라스틱 컵을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지? 하는 히스토리 안에서의 재밌는 요소들 말이다. 연극 안에서도 그런 실험들이 가능한 영역이 분명 있을 것이다.
강한나
환경 문제도 그렇고, 노동문제, 안전문제, 페미니즘, 반성폭력 등의 이슈들로 작업을 할 때, 텍스트 내에서의 구현뿐만 아니라 작업 과정과 일상의 실천과 동기화시키는 노력이 항상 중요한 것 같다. 아까 말씀드린, ‘연극in’에서 진행하는 설문조사 링크에 들어가서 작성해봤는데, 구체적인 실천으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문항이 있었다. 잠깐 생각해봤는데, 요새 유행하는 캠페인성 챌린지가 떠올랐다. 프로덕션 기간 중 일주일 중 하루는 ‘제로플라스틱데이’라든가, 동물성프리 식단으로만 먹는다든가, 금연 챌린지 같은 식으로 프로덕션 단위로 인증하는 걸 힙하고 트렌디한 놀이처럼 유행시킨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강한나 극작가
유혜민
성폭력반대연극인행동에서 <불편한 연극> 책자를 만든 것처럼 매뉴얼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연극 하면서 할 수 있는 친환경적 실천을 매뉴얼화 하는 것이다. 챌린지만으로는 일회성이기 때문에, 이것을 스탠다드화 하려면 매뉴얼은 있어야 할 것 같다. 구체적인 행동과 실천이라는 건 누가 하는 걸 따라 할 때 더 하기 쉬운 건데 모르면 못하니까.
신혜인
연극 프로덕션은 어떨 때 쓰레기가 많이 나오나? 소품 같은 것 재사용률은 낮은 편인가?
강한나
소품 셰어가 어떠한 플랫폼 같은 걸로 활발히 이뤄지는 것 같진 않다. 다만 연극 프로덕션은 제작비가 항상 쪼들리기 때문에 소품은 구할 수 있는 한 중고품으로 사용하려는 것 같다.
신혜인
세트 폐기물 같은 걸 활용해서 뭔가 해 볼 수 있는 작업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유혜민
다 경제적인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된 것 같다. 재사용을 하려면 애초에 처음 만들 때 세트 자체를 고퀄로 만들어야 또 쓸 텐데, 그러려면 돈이 또 많이 들고, 저렴하게 만들다 보니 또 쓰기 어렵고. 오히려 상업프로덕션은 소품팀이 체계적으로 관리를 하니까 창고에 잘 저장해놓고 할 수 있는데, 작은 프로덕션일수록 폐기물이 더 많이 나온다.
강한나
많은 문제들에 있어서 오히려 메이저한 영역에서는 덜 심각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공연계에서 관객 유치는 코로나와 상관없이 늘 어려웠지만, 지금 시국에도 어떤 상업뮤지컬들은 매진 행렬을 이뤄내고 있다. 항상 손실과 타격을 정통으로 맞는 건 마이너한 영역이다. 게다가 문화행정이나 공공의 주체들이 이 시국에 연극인들을 더 힘들게 한다. 기껏 한다는 게 공공극장 일괄 폐쇄해버리는 정도다. 아예 다 포기하고 손 놔버리는 게 아니라 전염의 위험을 돌파하고 잘 방역하면서 공연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을 문화행정이 해줘야 하는데, 그 역할을 잘 못 하고 있다. 오히려 민간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방역 매뉴얼 개발도 하고, 이런 고민은 소규모 민간에서 더 치열하게 하고 있다.
유혜민
영화계에서도 코로나 시국 초반에는 원래 상업영화 위주의 피해지원을 해줬었다. 그래서 독립영화협회나 독립창작자들이 목소리를 모아서 의견을 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고 정책적인 피드백이 생겨났다.
신혜인
포스트코로나라든가 뉴노멀이라고 했을 때 어떠한 대응이나 해결책 같은 것을 예술가들 사이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영역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유혜민
영화계도 똑같이 멘붕이다. 연극도 영화도 극장 안에서 관람할 때의 집단체험에서 오는 현장성과 대면성, 상호작용이 분명히 있는데, 관람 형태가 전부 다 1인 기기나 IPTV 같은 실내 활동으로 돌아가게 될 때 그 관람법이 달라졌을 때 오는 좌절감이 영화인으로서 크다. 그런 점에서 대안적인 형태라는 건 어떤 답도 내릴 수 없는 것 같다. 우리 프로덕션도 2년 동안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이 장편 버전이 넷플릭스나 다른 관람 형태로 이를테면 15분씩 끊어서 에피소드식 형태로 공개되거나 한다면 진짜 그 좌절감이 엄청날 것 같다.
신혜인
근데 사실 영화산업에서 극장의 하락세는 코로나 이전부터 있었다. 그래서 나는 비단 코로나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도 올 사람은 올 거라는 생각이 있다. 관객들은 사실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작품을 보러 가고 싶으면 개인적으로 방역을 열심히 할 거다. <극한직업>을 볼 사람들이 넷플릭스 <킹덤>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파이가 옮겨간 거지,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볼 사람이 넷플릭스로 옮겨간 건 아니라는 거다. 당연히 전체 파이는 확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극장을 가는 것이 일종의 이벤트였던 사람들은 이제 극장을 덜 찾을 거고, 어차피 작은 파이의 어차피 적은 골수 관객들이 코어이기 때문에.
유혜민
그치만 어쨌든 그랬을 때에 전체적인 생태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작은 화면으로 봤을 때 가장 매력적이거나 가장 짧은 호흡의 영화들에 더 많이 투자가 될 거고, 플랫폼이 달라지면 작품의 결이나 창작 방식도 다 달라져야 할 거다.
혜민과 혜인은 대표작 <쓰레기덕후소셜클럽>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사실 환경문제보다도 여성인권 문제에 더 먼저 관심을 갖고 모인 팀이었다. 둘은 쓰레기 문제로 작업을 하면서 이 문제가 젠더 문제와 사슬처럼 얽혀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강한나
단편 버전에서도 보면 인도에서 쓰레기 분류작업을 불가촉천민 여성들이 하는데, 그건 그들이 쓰레기 관련 정보를 더 잘 알아서 그렇고, 더 잘 안다는 건 주로 그걸 여성들이 해왔기 때문이다. 어느 나라건 간에 꼭 필요하지만 누구나 꺼리는 일 중에서도 특히나 소위 ‘가사노동’으로 분류되는 일들에 여성노동자들이 내몰린다.
신혜인
인도에서는 같은 쓰레기산업이라고 해도 자본을 보유하고 지식이나 네트워크가 조금이라도 더 있어야 할 수 있는 거대분류산업은 전부 다 남성들이 담당한다.
유혜민
기후위기도 마찬가지다. 가장 먼저 기후난민의 위기에 처할 사람들은 제3세계 여성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가 여성창작자라 더 잘 보이는 걸 수도 있다.
강한나
최근 2-3년간 작품을 통해 생각해야 할 의제들이 많았고 그 고민이 주로 반성폭력, 젠더 이슈 중심이었는데, 올해 들어 갖고 가야 할 의제의 레이어가 한 층 더 추가된 것 같다. 어떤 이슈는 가져가면서 어떤 이슈는 놓치고 하는 건 모순된 것 같다.
신혜인
그 다층적인 이슈들은 하고 싶은 이야기 한 가지가 있으면 거기에 다 묻어나는 것 같다. 잘 녹여내진 못해도 묻어는 나온다.
강한나
그 말이 모든 쟁점에서 무결하게 만족을 시키는 작품을 써야만 한다는 강박을 덜어주는 것 같다.
혜인은 어떤 문제가 대책이나 실천으로 이어지려면 자꾸 공포와 위축의 결로 가기보다는 좀 더 희망적인 분위기로 동기부여가 되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반년 가까이 지방의 외진 자택에 지박령처럼 칩거하면서 내린 결론도 그와 다르지 않다. 비대면의 시대를 불러온 질병은 역설적이게도 서로 간의 돌봄과 상호의존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인간사회라고 해서 그 의존의 범위가 인간종 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진실 역시 모두가 체감하였다. 관계 가치의 회복이라고 할 때 그 시야는 훨씬 더 범지구적인 차원까지 확장되어야 마땅하다. 그 확장된 감수성은 일상에서의 시도, 그리고 연극인으로서 작업에서의 시도들이 쌓여갈 때 생겨날 것이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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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나X유혜민, 신혜인

강한나X유혜민, 신혜인
강한나_극작가
희곡을 쓴다. 최근 2-3년간 인권, 젠더, 소수자이슈 등의 의제들에 눈을 뜨면서 무슨 글을 어떻게 쓸 것인가 몹시 난감해하며 작업방식을 찾아 나가던 와중에, 2020년 팬데믹이라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더더욱 난감해하고 있다.
www.facebook.com/PsycheLamp

유혜민_다큐멘터리 감독
대학에서 극영화를 공부하고 다년간 상업영화 현장에서 일했다. 여성인권에 대한 관심으로 여성환경연대(시민단체)와 함께 ‘문제는 마네킹이야’, ‘네일숍 유해물질’, ‘여성의 월경권’ 등을 주제로 짧은 다큐멘터리 작업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시작했다. 현재는 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하는 여성 캐릭터를 중심으로 장편 다큐멘터리 <쓰레기덕후소셜클럽>을 만들고 있다.
 http://filmgom.creatorlink.net  인스타그램 - @filmgomori

신혜인_영화 프로듀서
환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환경 파괴범. 다큐멘터리 <쓰레기덕후소셜클럽> 프로듀서를 시작하고 천지가 개벽했다. 초특급 맥시멀리스트로 살아오던 삶의 일부를 청산하고 텀블러를 항상 들고 다니는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쓰레기 많이 버리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본인이 변화하게 될 정도라면 이 영화는 승산이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영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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