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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인이 만난 사람] 이승희 X 이향하

판소리적인 감각

이향하, 이승희

제199호

2021.04.29

향하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판소리를 만드는 단체, 입과손스튜디오의 고수 이향하입니다.
승희
저는 이향하 씨와 함께 입과손스튜디오(이하 입과손)에서 판소리를 만들고 부르는 소리꾼 이승희입니다.
향하
저는 연락을 받고 ‘어? 연극in에서 왜 나를 섭외하지? 나는 국악인인데...’하는 생각이 들었었어요.
승희
저도 향하 씨한테 연락을 받고 연극in에서 ‘전통예술을 하는 우리에게 무엇이 궁금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향하
저는 연극in의 이 대화 코너를 재미있게 읽어오던 독자이기도 했고, 이렇게 불러주니 감사하다는 생각은 들었는데, 대화 상대를 선택하는 게 어렵더라고요. 며칠간 고민하다가 고수에게는 뗄 수 없는 존재인 소리꾼이자 가장 가까운 작업자인 언니를 떠올렸죠. 입과손 시작한 지 4년 정도 되었는데,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이 어디 즈음 걸어가고 있는지 조금 떨어져서 이야기해보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요.
승희
그렇지! 고수가 오면 소리꾼이 같이 와야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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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_창작_사이
향하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도대체 연극in에서 판소리를 하는 우리를 왜 불렀을까요?
승희
판소리라는 장르 자체를 정의하기가 어렵잖아. 노래도 있고 연기도 있고 글도 있으니까, 판소리도 연극의 한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어서 우릴 부른 게 아닐까?
향하
맞아요. 국문학과 학회에 가면 판소리 전공이 있고, 해외에 가면 판소리를 ‘theater’로 구분하는데, 정작 우리는 음악대학에서 판소리를 배우니까... 판소리 참 종합예술이네요.(웃음)
승희
예전과 다르게 판소리 공연이 판이 아닌 극장에 올라가면서, 극장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을 갖추기 시작하고, 실제로 연극 연출가나 극작가와도 작업을 하니까 더더욱 연극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것 같아.
향하
그런데 막상 저는 우리를 ‘연극인, 혹은 연극적이다’ 라고 하면 좀 낯설어요.
승희
나도 나를 배우라고 이야기하는 분들을 만나면, ‘내가 소리보다는 연기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나?’ 싶고, 정체성에 대해서 되짚어 보게 돼. 내가 생각하기에는 소리꾼과 배우, 뮤지컬 배우는 다르다고 생각하는데 나를 같은 범주라고 이야기하면 사실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하고.
향하
맞아요. 뭔가 ‘연극적이다, 혹은 연극인이다’라고 했을 때, ‘맞아요!’ 하기에는 우리에게 연극하고는 다른 정체성이 있는 거 같고... 그게 어떻게 보면 판소리적 감각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우리한테 있는데 그것이 연극하고 교집합은 있지만 같은 모양으로 딱 겹쳐지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승희
안타까운 건 ‘판소리라는 장르가 아직 무엇이다’라고 모두가 인지하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점이야. 전과 다르게 많은 판소리들이 극장에 올라가고 관객을 만나고 있지만, 이 장르에 대해 정의하거나, 관객으로서 어떻게 판소리를 봐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과 훈련이 부족해서 익숙한 장르인 연극이나 뮤지컬에 빗대어서 한번 거쳐야 이해가 가능한 것이 아닐까?
향하
사실 판소리를 하나의 독립적인 장르로 인지하게 된 지는 얼마 안됐잖아요. 판소리가 전통예술의 한 갈래고, 그 안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으면서 선생님께 배운 소리를 그대로 학습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판소리 자체가 전통이다’라고 생각하며 지냈던 게 아닌가... 전통 판소리 다섯 바탕이 있을 뿐이지 판소리 그 자체가 전통은 아닌 건데, 이 둘 사이에서 개념적으로 오류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창작판소리 작업을 하면서도 ‘판소리는 이래야 해’라는 틀을 가지고 작업을 하던 시간이 있었고요. 판소리를 고유한 장르라고 인지하면서부터, 특히 입과손에서 ‘이래도 판소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많은 부분이 열리고 있는 것 같아요.
승희
맞아. 하는 사람들 스스로가 깨지는 게 가장 중요한데 내가 연식이 좀 되어서(웃음) 정말 보수적인 틀 안에서 판소리를 배우고 익혔는데,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사회에 나와서 활동을 하면서 판소리에 대한 다양한 실험을 하는 환경을 경험하면서 서서히 판소리에 대한 정의가 바뀌어 갔던 거 같아. 그 과정이 쉽지는 않았지.
향하
어쩌면 연극이라는 장르를 거울삼아 우리가 판소리에 대한 고정관념을 조금씩 깰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예를 들어 완창 판소리 프로젝트 같은 경우 전통판소리를 창작하겠다고 시작한 건데, 사실 이게 말이 안 되는 문장이잖아요. 전통을 창작한다?
승희
그랬었지.
향하
입과손 만들기도 전이었죠, 아마? 유현진 프로듀서(입과손 프로듀서)가 제안했던 거 기억나요? ‘왜 전통판소리는 <사천가>나 <억척가> 같은 창작판소리처럼 만들어서 하지 않는 거예요?’이렇게 물었을 때, 내 답은 ‘전통판소리는 원래 그렇게 하는 거야’ 였어요.
승희
난 ‘그러면 안 돼!’였지 (웃음)
향하
처음에는 ‘판소리를 잘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다’ 하고 웃어넘겼지만 후에 입과손을 만들고 작업을 시작 할 때, 그 말이 우리한테 지푸라기가 되었죠. 그때 ‘연극의 고전이 오랜 세월 재해석, 재창작 되면서 힘을 갖게 되는 것처럼 전통판소리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만들었던 첫 번째 완창판소리프로젝트 <동초제 심청가>에서 언니가 소리꾼이었잖아요. 올리기 전까지 우리 모두 ‘이게 전통판소리일까? 창작판소리일까? 그 중간 어디쯤일까?’ 뭐라고 딱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웠죠. 공연을 올리고 나서는 어땠나요?
승희
공연을 하는 순간이 참 재미있었어. 객석의 분위기가 따뜻했고, 무대 위에서도 전통 판소리 형식과 다르게 고수 세 명이 힘을 막 북돋아 주고, 음.. 뭐랄까? 소리꾼 혼자 이야기를 끌어가는 느낌이 아니라, 조명, 무대, 음악 모든 것이 함께 이야기를 하는 느낌이어서 훨씬 든든하고 신이 났어. 그러면서, ‘아, 이게 되는구나!’ 생각했지.
향하
맞아요. 공연이 끝나자마자 더 과감하게 바꿔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근데 나만 그러진 않았던 거 같아. 뒤풀이 때부터 ‘다음 완창은 어떻게 할까?’ 이런 이야기를 했으니까.
승희
그래서 두 번째 완창판소리프로젝트 <강산제 수궁가>에서는 좀 더 과감히 이야기와 형식을 건드릴 수 있었고, 보시는 분들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 처음에 심청가 했을 때는 욕도 많이 먹었잖아. 어중간하다고... (웃음) 그런데 수궁가에서는 많은 분들이 우리의 실험에 공감해 주셨던 것 같아. 실제로 심청가와 수궁가 사이 2년 동안 전통판소리를 재해석하는 작업들이 정말 많아졌지.
향하
전통판소리를 고전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생겼달까요?
승희
일반적으로 전통판소리 다섯 바탕(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춘향가, 적벽가)을 고전으로 보는 시각은 없었지. 그 안의 인물을 변형하거나 하는 작업은 있었지만, 전통판소리 자체를 동시대 감수성으로 바라보는 실험은 없었던 것 같아.
향하
그전에는 창작판소리라는 것이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진 창작판소리가 주를 이뤘다면, 요즘엔 창작판소리의 범주가 넓어진 것 같아요. 전통판소리 기반의 작업, 음악 중심의 창작판소리, 드라마 자체를 해체하는 형태 등 다양한 결과물들이 나오니깐 보는 재미도 확실히 늘어난 것 같아요.
승희
창작자로서도 자극을 많이 받지. 판소리에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니까. 2000년대 들어서면서 창작판소리 작업이 많아지고, 그러면서 판소리의 ‘드라마’가 많이 부각된 것 같아. 이전에는 판소리의 ‘음악’이 중심이었다면, 이 시기를 거치면서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판소리에서 많이 중요해졌지.
향하
판소리와 이야기는 뗄 수 없는 관계긴 하죠. 그런데 제 생각에 판소리는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그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 중요한 장르인 거 같아요. 이야기와 맞물리는 음악적 표현방법, 관객과 만나는 태도, 고수와 소리꾼의 관계, 여러 가지가 이야기를 돕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도 하나의 요소로 이 모든 것들과 균형을 이룰 때, 판소리적 재미가 생기는 거죠. 음악을 빛내기 위한 이야기도 있을 수 있는 거죠. 이런 맥락에서 창작판소리의 방향성도 여러 갈래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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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
#입과손스튜디오, #공동창작
향하
지난 10여 년간 함께하면서 느꼈던 건 ‘소리꾼 같지 않은 소리꾼이다’였어요. 성격도 성격이지만, 비빙이나 안은미컴퍼니의 작품들처럼 언니가 해 온 작업들도 그런 거 같구요. 어때요? 소리꾼으로 산다는 것은? (웃음)
승희
어떻게 보면 판소리의 위대함이라고 해야 할까, 이런 것이 유독 소리꾼에게 과하게 덮여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장르 하나를 특별히 세우는 순간, 그만큼 일반적인 정서와는 멀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특별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걸 대하는 소리꾼 스스로가 좀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판소리를 대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어. 그럼 이 장르를 만나는 다른 사람들도 좀 가깝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향하
작업을 하다 보면 소리꾼 스스로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잖아요. 예를 들어 밤샘 작업을 하는 도중에도 목 관리를 해야 한다던가, 작업이 밀리면서 대본을 외울 시간이 부족하다던가. 그럴 때 언니가 ‘괜찮아, 당연히 해야 하는 거지 뭐!’라고 이야기해주면 작업자로서 굉장히 고맙죠.
승희
소리꾼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들에 유난 떨 필요는 없는 거지. (웃음)
향하
그러니까 작업자로서는 더 갈 수 있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공연을 얼마 앞두지 않았을 때, 어떤 대사가 너무 이상하다든지, 어떤 대목의 소리를 이렇게 하면 좋겠다 싶은 것들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넘어갈 수도 있을 텐데 우리는 들어가기 직전까지 막 이야기하잖아요. (웃음)
승희
그것도 공동창작을 하면서 바뀐 부분인 것 같아. 그전에는 나도 되게 무대 위에서 완벽한 것만을 보여주고 싶은 소리꾼이었지. 공연 직전에 무언가가 바뀌어야 한다면 되게 불편했어. 그런데 공동창작을 하면서 여러 사람의 생각이 모였을 때, 나 혼자 작업할 때보다 훨씬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걸 알아버렸잖아. (웃음) 모두를 믿고 있으니까 공연 직전에 어떤 요구들이 들어와도 받아들이게 되는 거지. 들어보면 다 맞는 말이거든.
향하
공동창작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판소리를 공동창작 한다는 것도 처음에는 낯설었어요. 가능할까 싶었고요. 오랜 시간 판소리 작업을 해오면서 각각의 영역은 고유한 것이고 지켜져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가 전 과정을 함께한다는 결정을 내리는 것이 쉽진 않았어요. 전통판소리에서도 그렇고 지금까지의 창작판소리에 있어서도 소리꾼 중심의 작업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혼자만 가질 수도 있는 여러 가지 영역들(작, 작창 등)을 모두에게 오픈한 것인데, 소리꾼으로서 이 부분은 어땠나요?
승희
‘공동창작이 가능할까?’하는 의문은 있었지만, 반감은 없었던 것 같아. 처음 공동창작을 했을 때, 작창에 대해서 구체적인 방향을 함께 세우고, 내가 한 작창에 대해서도 함께 들여다보며 수정하는 과정들이 당황스러웠어. 피드백을 주고받기는 했어도 작창은 소리꾼의 고유한 영역인데, 어렵더라고. 그런데 작업을 점점 해 오면서는 좋았던 점이 더 많은 것 같아. 여러 가지 영감들이 다른 멤버들을 통해 더해지면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끄집어낼 수 있었던 것 같고. 너는 어땠어?
향하
나에게 입과손에서의 공동창작은 ‘판소리적인 감각’을 더 구체화 시킬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판소리를 오랫동안 다뤘던 소리꾼과 고수, 프로듀서가 각각의 역량을 총동원해서 ‘판소리’를 중심에 두고 작업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이전의 작업들보다는 조금 더 ‘판소리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고요. 머리를 맞대고 판소리를 만드는 다양한 실험을 할 때, 내가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더라도 사람들의 감각을 믿고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승희
'우리가 모이면 어떤 모양의 판소리도 만들어 볼 수 있겠다'라는 믿음이 생겼지. (웃음) 작업호흡은 확실히 생겼다. 그치? 그럼, 공동창작에서 '이런 건 좀 아쉬웠다' 하는 부분은 없었어?
향하
아무래도 만장일치 의사결정구조를 가지다 보니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는 거? 그리고 여섯 명의 생각을 모아서 하다 보니 실험을 하더라도 합의된 선까지 가는 것 같아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내야 하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지난 3년간 언니가 두산 아티스트로 작업했던 <몽중인 시리즈>가 좋았어요. 물론 그 작업에서도 입과손 멤버들이 함께 했지만, 좀 더 개인의 색깔이 드러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른 멤버들의 개인 작업이 더 활발하게 이뤄지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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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향하
#소리꾼, #고수
승희
그렇다면, 너가 생각하기에 판소리에서 빠질 수 없는 건 무엇이라고 생각해?
향하
아무래도 소리꾼과 고수가 아닐까요? 소리꾼과 고수 스스로 정체성을 어떻게 가지고 가느냐도 중요하고 그 둘의 관계를 어떻게 가지고 가느냐가 되게 중요한 것 같고요. 소리꾼이 무대 위에서 소리꾼으로 존재해야 고수도 고수로 존재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 언니가 연기만을 하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면 나는 애매해지는 거죠. 연주자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고.. (웃음) 그래서 우리가 대본을 쓰다가도 ‘어? 소리꾼이 사라졌네’, ‘고수가 안 보여’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무슨 소리야 하겠지만, 이야기 안에서 소리꾼과 고수가 사라질 때 판소리적인 재미가 사라진다는 감각이 있잖아요.
승희
내가 가장 창작판소리를 하면서 ‘중심을 잡고 있어야 겠다’는 것도 소리꾼의 정체성인거 같아. 나는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소리꾼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를 잘 전달하기 위해서 소리를 만들기도 하지만, 그 소리를 잘 표현하기 위해서 인물을 쓰기도 하는 것처럼, 어느 한 요소를 위해서 다른 요소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선택적으로 사용하는 것. 이게 판소리고 소리꾼인 것 같아. 사실 내가 이몽룡이나 월매를 표현해도 그게 연기라기보다는 ‘흉내 낸다’에 가까운 것 같거든. 헷갈리면 한 끗 차이로 배우가 되거나 가수가 되는 것 같아. 그래서 우리가 소리꾼이 사라졌다. 이런 이야기도 하는 것 같고.
향하
그러면 언니가 소리꾼으로서 무대에서 설 때, 관객에게 바라는 점이 있어요?
승희
관객도 마찬가지로 나를 ‘소리꾼’으로 봐줬으면 좋겠어. 사실 소리꾼들도 성향이 다 다르잖아. 어떤 소리꾼은 이야기꾼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해서 사회적 메시지나 시대 감수성에 예민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성음 자체에 관심이 많아서, 무엇보다도 소리에 집중하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연기적인 측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그런 성향에 따라 같은 판소리도 다르게 표현되니까 그런 재미를 좀 봐주셨음 좋겠어.
향하
정말 다양한 판소리들이 막 만들어지면 좋겠어.
승희
맞아. 다양한 모습의 소리꾼들도 나오면 좋겠고.
향하
그럼 언니는 판소리를 만드는데 있어서 어떤 부분에 흥미가 있어요?
승희
작창인 거 같아. 글은 사실 쓸 때 너무 힘들잖아. 글 쓸 때만 해도 작창 생각은 하나도 못하거든. 그런데 그렇게 다 써놓고 소리로 만들 때에는 재밌어. 글 쓸 때는 ‘술술 풀린다’ 이런 느낌은 없는데 작창과정에서는 좀 더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진행이 되니까 재밌는 거 같아. 너는 어때?
향하
나는 이야기 쓰는 과정이 재미있어요. 쓰는 과정은 저 역시도 어렵지만, ‘어떤 이야기를 판소리로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는 과정이 재밌죠. 저 같은 경우는 이야기를 쓰는 과정에서 소리꾼과 고수의 입장이나 표현 방법도 많이 그려지는 거 같아요.
승희
판소리로 어떻게 그려낼 지를 같이 설정하고 거기에 맞는 대본과 소리와 음악과 여러 가지 연희요소들을 상상하면서 하나의 창본을 그려가는 과정. 이게 우리 공동창작의 이유인거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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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씬의_확장
향하
많은 사람들이 판소리를 쓰고 만들고 부르면 좋겠어요. 언니가 두산아티스트로 작업을 하면서 우리가 그동안은 만나보지 못했던 연극 관객들, 일종의 ‘연극씬’이라는 것을 경험했잖아요. 그러면서 작업의 깊이나 방향이 많이 달라졌어요. 다른 의미의 귀명창을 만난 거죠. 그렇게 연극의 관객들이 판소리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이 판소리 혹은 국악의 씬을 넓이는 데 큰 힘이 되고, 그런 흐름이 반가운 것 같아요.
승희
소리꾼의 성향이 다양한 것처럼 판소리의 즐기는 관객이 넓어지면 좋겠다.
향하
판소리 관객층이 다양해지면서 우리도 성장한다는 느낌을 많이 받거든요. 다양한 니즈를 생각하게 되니까요. 조선후기에 판소리가 확 발전하게 된 계기도 그 당시 가장 큰 오락거리가 판소리라고 하잖아요.
승희
그렇지,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 당연히 발전할 수밖에 없지.
향하
근데, 저는 요즘이 그런 때라고 생각해요. 이날치도 그렇고 국립창극단의 작품들도 그렇고 그간 판소리를 다루는 공연이 확 늘어난 게 피부에 와 닿아요. 십년 전하고만 비교해 봐도 많이 달라진 거 같아요.
승희
짧은 시간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시간 안에 내가 많이 달라진 것처럼 내 주변의 소리꾼들도 여러 장르와 만나기도 하고 다양한 실험을 해 오면서 지금까지 계속 판소리의 기반을 쌓아오고 있었던 것 같아. 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판소리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었던 것 같아.
향하
입과손 하면서 ‘대단한 작품을 만들었나?’하면 아닌 것 같지만 판소리를 하는 사람으로서 조금 더 자유로워지긴 한 거 같아요.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프레임이 조금 유연해졌다고 해야 할까?
승희
맞아! 판소리에서 절대 바뀔 수 없다고 생각한 것들, 전통판소리를 창작하는 것을 하나하나 해 오면서 스스로 판소리에 대한 품이 넓어진 것 같아.
향하
여전히 우리는 연습 도중에 ‘이래도 되나?’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도 전과 달라진 건, ‘아님 말지!’라는 깡이 좀 생기고, 어떻게 만들어도 판소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거?
승희
정신승리인가? (웃음) 근데 공연으로 관객을 만났을 때, 내 예상보다 재밌게 보고 편안하게 판소리로 봐주실 때, 보람을 느껴. 감사하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계속 작업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 같아.
향하
자, 그럼 또 연습을 하러 가 볼까요? 원래 우리가 5년만 입과손 열심히 하고 아름답게 헤어지자고 했는데, 해보니까 앞으로 10년은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승희
맞아. 10년 전과 지금은 너무 다른데, 앞으로 10년 후에는 이 판이 또 어떻게 달라져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니까, 길게 즐겁게 해보자!
향하
(웃음) 저의 연극in 나들이에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승희
작업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할 여유도 없고 낯간지럽기도 했는데.. 막상 해보니 재밌네. 자 그럼 이제 진짜 연습실로 가 볼까?
향하
(웃음) 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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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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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X이향하

이승희X이향하
이승희_입과손스튜디오 소리꾼 소리꾼 이승희는 11살 때 판소리에 입문, 조소녀, 정회석, 송순섭 명창을 사사했다. 맑고 단단한 목을 가진 소리꾼으로, 무대 위에서 절제된 감정표현과 미니멀한 부채발림으로 ‘전형적이지 않고 모던한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입과손스튜디오에서 작, 작창, 연출까지 판소리 창작 전 과정을 공동창작 형식으로 작업한다. 2018년 두산아트센터의 DAC아티스트로 선정되어 춘향가를 바탕으로 한 <몽중인>시리즈를 선보였다.

이향하_입과손스튜디오 고수 고수 이향하는 조용복 명고에게 소리북을 사사했다.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여 판소리 고법의 확장을 실험하고 있으며 고수 이외에도 밴드, 다양한 장르의 극 음악제작 및 연주, 장단 연구 및 교육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2007년 판소리 <사천가>로 데뷔한 후 다양한 창작 판소리 작업을 이어오고 있으며 2017년 창단한 판소리 창작그룹 입과손스튜디오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lee_hyang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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