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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와 선입견을 넘어 고유한 것을 찾다

[연극인이 만난 사람] 박인혜 X 조은희

박인혜

제234호

2023.05.25

‘연극인이 만난 사람’에서 대담 청탁을 받았다. ‘연극인’이란 말에 보라색 밑줄을 긋고 싶었다. 실상 연극인이라 불리는 일은 적지만, 어쩐지 근래 들어 연극과 관련된 자리에서 발언하거나, 지면이 주어지는 일이 많아졌다.
누구와 대화할까? 조은희 작가가 떠올랐다. 나처럼 연극 언저리에 꽤 오래 자리하고 있는 사람. 그녀와 처음 만난 건 지난해 어느 작업에서였다. 처음 만난 날, 우리는 마흔을 한 달 앞둔 기분을 공유하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그때 남겨놓은 수다를 떨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인혜 (이하 박)
이제 진짜 이야기할까요? (우리는 만나자마자 요즘 하는 작업에 관한 수다와 넋두리를 늘어놓는 중이었다)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해요. 연극in에서 청탁받고 은희 씨가 생각났어요. 은희 씨랑 저랑 공통점이 꽤 많더라고요. 첫 번째는 둘 다 연극 언저리에 있다. 그런데 되게 적극적으로, 짧지 않은 시간 있었다. 하하. 그리고 1인 중심 창작 작업을 주로 하는 거, 둘 다 고전이라는 장르에서 시작한 사람이다. 그런데 사실 그 고전에서 어쩌면 이제 다른 장르로 넘어갔다. 자의로 넘어갔다. 하하하. 이런 공통점들에 관해 이야기해 보면 어떨까 했어요. 그래서 궁금한데요. 이 코너의 이름이 ‘연극인이 만난 사람’이거든요. 은희 씨는 스스로를 어떻게 소개하고, 어디에 정체성을 두세요?
조은희 (이하 조)
글쎄요. 인혜 씨도 연기나 노래를 하고, 공연을 만들고, 글도 쓰고, 다양한 수식어가 있으시잖아요? 저도 기본적으로는 음악가, 작곡가, 사운드 아티스트, 음악감독 뭐 이런저런 것들로 불리는데요. 공연 창작자라고도 불리기도 하고, 때마다 조금씩 바뀌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음악가’로 불리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음악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은 많이 들어요.
음악가라는 걸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면요?
저는 ‘작곡가’라는 개념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사운드라는 것이 뭔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 그냥 작곡가에게 자연스러운 소재 중 하나이고, 저 또한 소재의 제한 없이 폭넓게 작업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인혜 씨는 어때요? 어떻게 불리기를 원하고 어떤 작업 포지션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는지 궁금해요.
저는 판소리 창작자. 사실 판소리 창작자라고 스스로 말하게 된 건 얼마 안 됐어요. 그전에는 판소리 배우 혹은 작창자, 더 전에는 소리꾼 혹은 국악인으로 불렸죠. 10년 전쯤 처음 한 생각인데요. 사람들이 원하고 상상하는, 혹은 소비하고 싶은 ‘소리꾼’의 이미지랑 저는 안 어울리더라고요. 그때 나름 계기가, 공연을 하게 됐는데 ‘남성 연주자는 갓을 쓰고, 여성 연주자는 쪽을 지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요즘은 좀 덜 해졌는데, 그때만 해도 판소리 할 때는 5:5 가르마를 타고 쪽을 져야 한다는 룰 같은 게 있었어요. 판소리하는 여성 소리꾼에게 요구되는 이미지가 고정적이라고 생각했죠. 스스로 코스튬을 결정할 수 없다는 데 반발감이 들었고요. 재밌는 건 70-80년대 여성 명창들 보면 쪽지지 않고 공연하는 사진들이 꽤 있거든요. 아무튼, 글을 직접 쓰고부터 스스로 판소리 창작자라고 하게 된 것 같아요. 음악 작업을 할 때도 당연히 창작자였지만, 뭐랄까 그냥 스스로 당위 같은 거죠.
은희 씨는 주로 다원 장르에서 활동을 많이 하셨잖아요. 작업에 관해 듣고 싶어요.
제 작업은 모두 음악이나 소리에서 시작해요. 음악가가 모든 개념과 아이디어를 디자인하고, 기획한 뒤에 조명이나 무대, 영상 등 다른 장르의 창작자들을 만나 협업하는 방식으로 같이 만들고 구체화하는 것 같아요.
좀 간편하게 이야기하면 음악가이자 연출가이기도 한 거네요.
그 연출가라는 단어를 쓰기가 참 어려웠던 것 같아요.
연출이라는 이름에 부여되는 어떤 권위 때문이기도 할까요. 저는 실제 연출 크레딧을 쓰는데도 최근에 어느 공연장에서 우연히 만난 분이 “연출님!”하고 부르는데, 순간 본능적으로 ‘이 사람이 나한테 장난치는 건가?’라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러면서 ‘아, 연출가라는 이름의 장벽이 참 높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게요. 저도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연출가’라고 불려서 생기는 권위도 있겠지만, 그 역할을 맡게 됨으로써 지게 되는 무게도 상당하죠.
판소리 창작자 박인혜. 카키색 셔츠를 입고 어깨에 살짝 닿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다. 왼손엔 펜을 들고 오른손은 목에 살짝 댄 채, 맞은 편에 앉은 조은희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다.
박인혜
은희 씨는 원래 클래식 작곡을 했던 거죠? 음악은 언제부터 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화성 음악을 익힌 것 같아요. 그리고 학교에서 합창단하고, 혼자 피아노 치고, 노래하고 이런 걸 너무 좋아했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중학교 때 선생님의 권유로 작곡을 전공하게 됐어요. 그때 선생님들이 현실적인 분들이어서 작곡을 하면 뭔가 더 많은 걸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셨던 것 같아요. 초등학교 때도 혼자 노래를 만들긴 했지만, 뭔지 잘 모르고 작곡가를 한번 해볼까 하면서 시작했는데, 예고와 대학에서 서양 음악 작곡을 전공했죠.
클래식 전공이었는데, 장르를 넘어가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클래식 전공자에 대한 선입견이 섞인 질문 같기도 하고요. 제 경험으로는 클래식계도 전통계만큼 견고하다는 인상이 있어요.
생각해 보면 저는 클래식이라기보다는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예고에 진학하면서 자연스럽게 클래식 문법을 배울 수 있는 음악대학으로 진학했고요. 대학 4학년 때 전자음악을 전공하신 분께 배우게 되면서 전자음악 쪽으로 관심이 생겨서 관련된 공연과 전시를 많이 보러 다녔는데, 그때 사운드아트나 미디어아트 같은 비교적 새로운 장르가 나름 붐이었거든요.
그 시기를 보통 2000년대 중반 정도라고 보죠?
맞아요. 그때 재밌는 게 되게 많았어요. 당시엔 소수의 마니아들만 사운드아트나 미디어아트라고 불리는 것들을 향유하는 분위기였죠. 그걸 보면서 ‘내가 아는 세계가 전부가 아니라, 또 다른 넓은 세계가 있구나’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죠.
그런 경험의 영향으로 대학원에서 음악 테크놀로지를 전공했어요. 그때 미디어아트를 하는 교수님들, 선배님들과 작업하면서 많이 배우고 자연스럽게 공연도 만들었어요.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것’을 만들어야 하는 분위기였고요.
그럼 연극 음악은 언제 시작했어요? 현장에 나와서 기억에 남는 음악 작업이나 애정을 가지고 작업한 것들도 궁금해요.
대학 2학년 때 다른 학교 연극학과 공연의 음악 만들어 주면서. 텐투텐으로 진짜 열심히. (웃음)
현장에서 이인수 연출님과 작업을 여러 편 했는데, 2016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상연한 <두 개의 방> 작업을 참 재미있게 했어요. 그리고 저는 음악을 만들 때 이해받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게 되게 중요하거든요.
이해받는다. 중요한 거 같아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사운드라는 게 누군가한테는 낯설 수도 있으니까, 때론 되게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분명 사전에 이야기를 나누고 만들었는데, 그 결과물이 서로 달라서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았거든요. 특히 예전에는 사운드를 무섭다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반응들이 좀 있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이인수 연출님은 음악이나 사운드에 대한 이해도 있고 많이 들어봐서, 제가 만드는 사운드를 좋아해주셨어요. 제가 뭔가를 낯설게 만들어도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이랄까요. 전 믿어주는 사람이 좋더라고요. (웃음) 좋은 경험을 함께하면 믿게 되잖아요.
비슷할 수도 있는데, 저는 전통 장르가 아닌 뮤지컬이나 연극, 드라마에서 판소리 작업을 의뢰받을 때, 설명을 많이 해야 하는 데서 피로감을 느껴요. 판소리에 대한 경험이 적을수록 그들이 판소리에 대해 가진 기존의 인식과 내가 아는 판소리가 크게 다를 때가 많아요. 예를 들면 작창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개념인지, 작창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지 오래 설명해야 해요. 어떤 사람은 판소리 아니리 투의 어조를 판소리 자체로 인식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작업 초반에 판소리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들더라고요.
맞아요. 가끔 제가 어떤 스타일로 작업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저를 섭외하는 경우도 있다 보니까, 작업하는 중간에 ‘사운드가 아니라 미디 편곡이 필요했구나’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될 때도 있죠. 새로운 걸 하고 싶다는 요청에 따라 만든 작업 결과물을 너무 낯설게 느끼는 경우도 있고요.
사운드 아티스트 조은희. 검은 셔츠를 입고 머리를 뒤로 묶었다. 맞은 편에 앉은 박인혜를 보며 이야기하고 있다.
조은희

이쯤 되니,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를 하는 사람들의 넋두리가 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이런 대화를 통해 작업의 어려움을 공유하는 게 때로 또 다른 힘이 되기도 하니까.

분명 판소리든 사운드든 장르에 대한 선입견이 많긴 한 것 같아요.
작업 이야기를 좀 더 해볼까요? ‘사운드스케이프’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사운드스케이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필드 레코딩이나, 야외에서의 소리 채집으로도 불리죠. 처음엔 공간을 담기 위해서 사운드스케이프를 사용했던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연극 작업을 할 때 실제 장소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사운드가 필요한 경우도 있잖아요.
작업실에만 계속 갇혀서 작업하다 보면 직접 나가서 걷고, 땅을 밟고, 냄새를 맡고, 그 분위기를 소리로 녹음하고 이런 게 가끔은 너무 재밌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어쩌면 훨씬 섬세한 접근 같네요.
맞아요. 내가 느끼고 보는 순간을 더 깊고 예민하게 경험하는 것, 그것을 기록했죠. 그러다가 다른 장르 사람들과 특정 장소를 함께 기록했어요. 그게 2015년도에 진행했던, ‘소리지도(사운드 맵)’ 프로젝트의 시작이었어요.
같은 공간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감각되는지?
네. 그 다른 생각이나 색깔 같은 것들을 조합하고 재구성하는 작업이었죠. 수원 화성, 한강, 태백산맥, 베를린과 파리, 그러다가 코로나 영향으로 가상공간에서도 시도했고요.
그리고 <포스트 음악극 시> 작업을 하셨어요. 이 공연의 대본을 어떻게 구성하셨을까 궁금했어요. 공연 소개를 보면 ‘음악 그 자체가 서사가 되어 극을 만든다’고 되어 있잖아요.
글을 쓰기는 하지만, 극작가나 드라마터그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죠. 이렇게 저렇게 계속 쓰고 있는데 어디 가서 글을 쓴다고는 말 못 할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작업을 시작하면 항상 뭔가를 계속 쓰게 돼요. 일기 같은 글이라도 제작진과 공유하기도 하고, 관객이 전시의 어느 지점에서 그걸 보게도 하고. 어쨌든 음악가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글을 쓰는 것 같아요.
어떤 기분인지 알 것 같아요. 배우나 음악가가 글을 쓸 때 발휘되고 발화되는 다른 힘이 있는 것 같거든요. 내가 가진 속성과 내가 익혀온 장르적 속성을 통해 글을 쓰게 되니까. 어쩌면 하고자 하는 장르에 적합한 방식이 아닐까 생각이 되고요.
인혜 씨가 이야기하는 걸 들으니 약간 힘이 되네요. 그러고 보면 음악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간혹 훨씬 더 재미있고 신선한 방식으로 음악에 접근할 때가 있어요. 그런 거랑 같은 맥락을 이야기해 주신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판소리라는 걸 오래 하면서, 은희 씨는 음악이라는 걸 오래 하면서 몸에 묻어있는 특유의 감각이 있잖아요. 저는 요즘 내 몸이 체득한, 그런 감각을 스스로 믿고 작업을 하거든요. 그래서 판소리를 체화한 사람이 쓴 글, 그 몸이 하는 연기,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한 연출, 이런 게 저의 힘이자 지향이에요. 판소리가 좀 보편적인 장르였다면 이런 고민도 안 했을 텐데, 어디 가도 판소리가 소수의 장르처럼 인식되고, 언어로 규명되지 않은 영역에 있거나 신비화가 되어 있는 것 같다는 기분이 자주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의 실체가, 그 개념이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 자주 던졌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저는 연출할 때 ‘가성비 연기’라는 개념을 통해 연기의 기준을 만들거든요. 판소리가 가진 발화의 특징, 그리고 최소한의 방식으로 인물을 오가는 판소리 연행의 특성을 구체화해서 연기에 적용하는 거죠. 몸이 알던 감각을 개념화하는 것이 늘 어렵지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판소리 창작자 박인혜.
갑자기 든 궁금증, 추상적인 질문인데요. 은희 씨가 대화 초반에 음악을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고 했는데 그때 은희 씨에게 ‘잘하는 음악’은 뭐에요?
(사이) 음. 그냥 내 것?
고유한 것?
맞아요. 나만의 오리지널리티랄까.

이야기하다 보니 너무나 뻔한 답에 이른 것 같지만, 사실 우리는 그 고유한 것을 끊임없이 찾으려고 아직도 이걸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예술가의 ‘작업의 역사’를 듣는 일은 재미있다. 그 개인의 역사 안에 안과 밖으로 펼쳐지는 고민들은 함께 공유할 만하다.

오늘도 수다가 길어서, 생각보다 시간이 짧네요. 마지막으로 은희 씨의 작업을 알게 됐을 때 처음 궁금했던 건데, 전통 음악 연주자들이랑 많이 작업하시잖아요. 저는 너무 오래 국악을 해서, 타 장르 사람들이 발견하는 국악이란 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거든요. 왜 국악기랑 같이 작업을 시작했어요?
음악을 만들다 보면 작곡가의 악보가 가지는 권위에 대해 생각하게 돼요. 작곡가가 만든 세계를 잘 구현하는 연주자. 이렇듯 작곡과 연주가 구분되어 있는 서양 음악 체계에서 연주자는 수동적인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 전통음악은 작곡과 연주가 구분되어 있지 않기도 하더라고요. 시나위나 즉흥과 같이 연주자에게 자유도가 많이 부여되기도 하고… 그렇게 훈련받은 연주자들과 함께 음악을 만들 때, 비록 저희가 사용하는 음악의 언어는 다르더라도 작업의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어요. 그런 이유에서인지 국악을 처음 만났을 때 살아있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저에게는 살아있게 들리는 것이 되게 중요한 것 같아요. 처음 연주를 함께했던 연주자들의 영향도 무척 컸고요.
분명 국악 특유의 질감이 있죠.
네. 거친 데서 오는 아름다움, 재단되어 있지 않은 데서 오는 것들이 무척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거기에서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사운드 디자이너 조은희.
소리꾼들은 “소리에 그늘이 생긴다”는 말을 많이 써요. 이 말은 긍정적으로 쓰이는 건데요, 매끈했던 목소리에 특유의 허스키하고 도톰한 소리가 나는 걸 말하죠.
작업을 여러 번 하셨으니까, 요즘은 어떠세요? 전통 음악과 관련해서 앞으로의 은희 씨 작업과의 접합점이랄까.
인혜 씨가 작업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은데요. 판소리를 긴 시간 동안 해 오셔서, 지금은 판소리가 아니어도 그 판소리의 어떤 핵심들이 여타 작업에도 녹아 있을 것 같거든요. 저도 클래식으로 시작해서, 전자음악, 사운드스케이프, 전통 음악 같은 것으로부터 경험한 음악의 요소들이 제가 무슨 작업을 하더라도 잘 녹여진다면 좋겠어요.

오랜 시간 고전을 해왔다는 것. 그게 ‘양날의 검’ 같다고 자주 생각했었다.
그 시간 동안 경험한 나와 그녀의 여러 감각이 각자의 몸 구석구석에 다른 모양과 형태의 세포처럼, 땀구멍처럼, 근육처럼 남아있지 않을까.
우린 앞으로 그 감각들을 어떻게 쓰게 될까.

연극을 좋아하는, 연극 언저리에서 고유의 것을 찾는 두 여자의 중구난방 대화.

끝.

서울연극센터 2층 공유랩에서 박인혜와 조은희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공간의 벽면과 천장이 모두 하얗고, 하얀 테이블이 일렬로 길게 놓여 있다. 두 사람이 앉은 테이블 너머로 초록 잎의 큰 화분이 보인다.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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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혜

박인혜
판소리 창작자, “판소리아지트 놀애박스” 대표. 판소리로 극을 만들고 연기한다. 10여 년간 판소리 배우이자 작창가로 활동했고, 2021년 <오버더떼창: 문전본풀이>로 극작·연출을 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 <판소리 쑛스토리>, <필경사 바틀비>, <판소리 오셀로>, 뮤지컬 <아랑가>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nohlaeinhye

조은희

조은희
클래식 작곡을 기반으로 사운드스케이프와 전자음악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 음악과 공연을 만드는 창작자이자 퍼포머이다. 주요 작업으로는 공간과 장소성에 기반한 <사운드맵 프로젝트>, 텍스트와 사운드의 관계성을 확장하며 서사를 실험하는 <포스트음악극> 연작이 있다.
인스타그램 @eunhee_21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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