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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기회와 가치를 일궈낼 수 있도록
예술텃밭을 응원하며

[연극인이 만난 사람] 강량원 X 김소연 X 배요섭 X 전윤환 X 황혜란

정리_연극in 편집부

제239호

2023.08.10

일시:
2023년 7월 26일 20시 - 22시

장소:
서울연극센터 2층 다목적실

참여:
강량원(극단 동/연출), 김소연(평론가), 배요섭(궁리소 묻다/연출), 전윤환(앤드씨어터/연출), 황혜란(궁리소 묻다/배우)

참관:
김상민(서울연극센터 웹진 연극in 담당자), 김예은, 차정훈(이상 궁리소 묻다/PD), 최수진(궁리소 묻다/배우)

기록:
예준미(웹진 연극in 에디터)
배요섭
강원도 화천의 문화공간 예술텃밭(이하 예술텃밭)의 지금 상황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시작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공연창작집단 뛰다(궁리소 묻다의 전신, 이하 뛰다)는 2009년부터 화천군과 업무협약을 맺고 신명분교장을 예술텃밭으로 운영해왔습니다. 2021년부터는 궁리소 묻다(이하 묻다)가 관리·위탁형 계약을 체결했는데요. 지난 2월 화천군에서 예술텃밭의 위탁운영 계약 종료를 통보해, 올해 말까지만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2) 군에서 제안한 방식은 공개입찰을 하라는 건데, 우리가 아닌 누구라도 더 많은 금액을 제안 입찰하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거든요. 이 자체가 지속적으로 작업을 유지하기에 불안한 조건이죠.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방식도 아니고요. 이대로 조건을 수용하거나 물러나는 건 예술텃밭과 관계 맺은 예술가들,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화천군을 설득하는 중이고요.
저희는 화천군과 민간이 협력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우고, 논의의 방향을 잡고 싶거든요. 화천군 입장에서는 관광 효과, 지역 홍보 효과에 관심이 많은 것 같은데, 다른 어떤 논의가 가능할지 고민이에요. 저희가 과정을 잘 모르는 부분도 있고, 지금 대응하고 준비하는 방식이 맞는지 회의도 있고요.
지금은 예술텃밭이 해온 활동을 정량적으로 문서화하고 있어요. 여기에 정성적 증거들, 이곳을 거쳐 간 사람들의 편지들을 덧붙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예술텃밭에 오고 간 사람들의 경험을 모으고 있고요. SNS에 글을 올리거나 이메일, 손편지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리고 구체적인 항목으로 공간에 대한 의미를 짚어줄 수 있는 질문들로 설문을 받고 있거든요. 공간을 방문한 사람들, 방문하지 않아도 관심 있는 사람, 예술가, 관객들까지, 현재 700여 명의 답변을 모았습니다. 법률자문도 구하고 있는데요. 10여 년 동안 여러 활동을 하면서 공간의 가치를 높였고, 그것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근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구체적인 보상을 요구할 수도 있고, 필요하다면 공간 사용에 대한 우선권을 주장할 수 있다고요.
예술텃밭의 상황을 계기로 지역에 대한 이야기, 공공성, 공공기관과의 소통 등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예술가들의 작업은 공공성을 요구받는데, 서울보다 유독 지역에서 이런 증명을 요구받으면 위축되기도 하고요. 단지 예술텃밭을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의 정체성과 존엄성을 갖출 수 있는 환경을 갖추는 게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방적 방식의 공공성으로 예술가의 활동을 재단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민간 예술단체가 공공단체나 행정가들과 어떻게 소통하고 협력해야 할지 그런 사례도 듣고 싶습니다.
대화 전경. 대화에 참여한 이들이 사각형으로 책상을 배치해 둘러앉아 있다. 
            뒤쪽으로 참관하는 이들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인다.

공연예술 레지던시 공간으로서 예술텃밭

배요섭
예술텃밭이 묻다의 개별 창작공간이기도 했지만, 레지던시 공간으로서 정체성이 컸다고 생각해요. 공간을 통해 여러 예술가의 네트워크가 형성된 것도 큰 성과죠. 공공이나 민간에 공연예술인들이 교류할 수 있는 이런 레지던시 공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 필요성을 주목해야 하기도 하고요.
전윤환
제가 활동하는 앤드씨어터의 경우 인천아트플랫폼에서 3년간 입주단체로 활동했어요. 당시 재정적 어려움이 있었고, 다른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었는데도 공간이 있다는 게 저희한테 큰 기댈 곳이 되어줬어요. 연습 공간을 제공받아 무언가를 지속하는 것뿐만 아니라 많은 창작자를 만났거든요. 시각예술 작가들이나, 다른 공연예술 창작자들, 해외 예술가들을 만나고 이야기할 기회가 저희의 창작 세계를 다양하게 하는 씨앗이 되어줬던 것 같거든요. 그 뒤에 저희가 다른 곳에서 상주단체를 하거나 다른 지원사업을 받아가면서 재정적 안정도는 높아졌는데도, 한편의 공허함이 있었어요. 공간이 주는 공허함이요.
상주단체를 그만두고 강화도에 레지던시 공간을 만들었던 이유도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밥을 먹고, 창작 이야기를 하고, 속박 없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어요. 창작자들이 안전하고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그것이 굉장한 가능성을 만들어준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도 예술텃밭을 보면서 그런 공간을 꿈꿨는데, 예술텃밭을 비롯한 다른 곳들이 굉장히 안타까운 시간을 겪는 모습을 보면서 후배 창작자이면서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이 들어요. 어디까지 공공과 같이 해야 하고 어디까지 우리가 자생 자력으로 해야 할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땅부터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팀에서 실제로 부동산을 알아보기 시작했고요.
김소연
지금 계시는 곳도 셋집이죠?
배요섭
거기서 월세 올리겠다고 하면…
전윤환
나가야 하죠. 공공에서 세 들어 살더라도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는 현실에서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어디까지 할 수 있을까요.
김소연
지자체가 정책의 변화를 꾀할 수는 있는데, 문제는 그러한 정책 변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온 공간의 의미를 지워버릴 때 어떻게 이 충돌을 해결해야 하냐는 것이죠. 화천군의 정책 방향에 십 년이 넘는 시간과 화천군, 마을주민 그리고 뛰다와 묻다와 여러 아티스트들이 함께 만들어온 공간의 의미가 고려되지 않고 있어요. 마치 예쁘고 특색 있는 가게들이 도시의 한적한 동네에 들어서고 그 거리가 활성화되면 건물주가 높은 임대료로 가게들을 내쫓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보는 것 같습니다. 건물주 화천군과 예술텃밭을 운영해온 뛰다와 묻다의 현재가 그런 사건들과 겹쳐 보입니다.
배요섭
공간을 오갈 가능성이, 비단 창작 단체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예술가에게 열려있을 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해요. 집 한 채일지라도 공간을 유지하는 데는 많은 공력이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공간을 거쳐 간 사람들이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지켜보면서 운영을 계속하게 되는 동력을 얻어요. 그동안에는 그냥 막연하게 뿌듯한 일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편지들을 받아보면서 공간의 가치나 의미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어요. 많은 분들이 공간에서 경험했던 것들이 작업하는 데 어떤 힘이 되었고, 어떤 만남을 가능하게 했고, 어떤 변화들을 만들었는지에 대한 증언들을 나눠주셨거든요.
김소연
저도 SNS에 올라온 편지들 봤어요. 연극을 하면서 예술텃밭만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지나도 남아 있는 특별한 경험이 있는데, 그런 경험들이 대개 나의 기억, 나의 경험으로 남잖아요. 그런데 예술텃밭에 대한 편지들을 보면서 편지를 쓴 이의 기억과 경험이 내 기억과 경험으로 이어지면서 우리의 경험이 되더라고요. 사실 연극이 공동작업이고 관객들도 일시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진다고 하지만, 연극이 끝나면 개개인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래서인지 이렇게 연결되고 함께 한다는 감각이 낯설고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배요섭
저희가 처음 뛰다 시작했을 때, 창단한 지 일 년밖에 안 됐을 때였는데 연습할 공간이 없는 거예요. 뛰다의 첫 대학로 공연 기획을 도와준 극단 미추 기획자님에게 무작정 연락했죠. 며칠만이라도 연습할 수 있냐, 그랬더니 일주일간 공간을 무료로 쓰게 해줬어요. 그땐 이렇게 화천에 오게 될 줄은 몰랐지만, 그런 경험이 쌓여서 이런 공간을 꿈꾸게 됐던 것 같아요. 화천 공간도 여건이 갖추어지고 난 뒤엔 필요한 단체에게 공간을 개방하려고 노력했고요. 그런 도움을 한번 경험한 사람들은 보은처럼 다시 다른 예술가들에게 베푼다는 생각을 했고 실제로 경험도 하는 것 같아요.

‘지역’의 예술가, 예술단체, 예술공간

평론가 김소연. 펀칭이 들어간 하얀 블라우스를 입었다. 짧은 단발머리에 투명한 테의 안경을 쓰고 있다. 
            몸 앞쪽으로 양손을 들어 무언가를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김소연
김소연
임의로 구분해본다면, 지금은 탈대학로 2기인 것 같아요. 90년대 이후로 대학로라는 장소가 연극의 상징처럼 자리 잡으면서 이에 저항하는, 대안으로서의 연극을 꿈꾸는 탈대학로적 지향이 생겨났다고 보거든요. 극단 미추가 양주로 갔던 것이나 극단 무천이 죽산으로 갔던 것을 탈대학로 1기라고 볼 수 있는데, 극단 무천의 죽산 야외극장에서의 작업들은 대학로 소극장 연극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연극이었죠. 노뜰과 뛰다는 2기라고 볼 수 있는데, 둘 다 모두 공공장소(폐교)에 자리를 잡았고, 자신들의 창작작업만을 이어가는 게 아니라 그 공간에서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하면서 자연스럽게 레지던시 공간을 만들었죠. 노뜰은 일찍부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했고요. 그런데 두 공간 모두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공공장소에 자리 잡았는데, 더 불안정한 거죠. 노뜰의 후용공연예술센터는 강원도 교육청 소유인데, 폐교를 일괄 매각하겠다고 하면서 공간 운영이 불안정해졌죠.
강량원
거긴 어떻게 됐어요?
김소연
일단 3년 연장 계약을 했다고 해요. 그동안 시간을 두고 타협점을 찾아보자는 상태라고 합니다.
배요섭
자기 공간이면 훨씬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해요. 예를 들면 덴마크 오딘 극단 같은 경우는 시에서 극단에게 옛날 헛간을 줬어요.
강량원
아예 소유권을 넘겨줬군요.
배요섭
네. 그러니까 공간을 사용하면서, 필요한 대로 더 짓기도 하고 지금은 극장도 세 개 정도 있고 사무실과 게스트하우스도 있거든요.
강량원
오딘 극단이 소유권을 갖고 공간을 운영했던 것처럼 묻다도 예술텃밭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쓰러져가는 폐교를 이렇게 많은 예술가들이 찾게 만들었고, 어떤 장소를 지켜낸 공동체 활동의 의미가 공유되었잖아요.
김소연
정책 방향을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공적 지원의 공공성을 살려 해결할 방법을 찾는 사례들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입장을 조정해서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그런 경험이 필요하죠. 그렇지 않으면 예술가들에 대한 공적 지원은 권력의 시혜가 될 수밖에 없죠. 권력의 입장이 바뀌면 불안정해지잖아요. 예술텃밭과 후용공연예술센터의 소유권은 지자체나 교육청이 가지고 있지만, 그 공간의 공공성이나 개방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온 건 뛰다와 노뜰이죠.
강량원
대학로 안에서 공연들이 비슷비슷해지고, 그러면서 다른 것을 해야 한다는 의지나 의도들이 또 다른 장소나 극장을 찾는 동력이 된다고 보거든요. 다양성을 원하는 창작자들이 극장이 아닌 공간을 찾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아요. 각자 다른 풍경이나 사람들, 경제수단을 가진 지역에 살게 되면 생각과 감각이 변하게 되니까요. 그러니까 현재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활동이 건강한 예술생태계를 위해 어떤 기능을 하고 있는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이런 지역 극단이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저에게는 탈대학로 1기의 기억이 오롯이 남아 있어요. 무천에서, 미추에 가서 공연을 본 거. 단순히 공연뿐만 아니라 자연과 그 지역의 모든 것을 만나는 경험을 했거든요. 기차나 차를 타고 극장까지 가는 길, 풍경, 모든 경험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저에게 생생해요. 관객뿐만 아니라 창작자들에게도 지역이 주는 감각이 있을 거예요. 서울에서와는 다른 감각들이 충돌하면서 제3의 길을 열어 줄 거고, 예술가들에게는 사실상 그런 공간이 창작에 있어서 필수적인 것 같아요.
황혜란
2년 전 즉흥수행법 워크숍을 할 때 만난 사람들끼리 지난주에 예술텃밭에서 공연을 했어요. 그런 장면이 아닌데, 한 배우가 울컥해서 대사를 하는 거예요. 나중에 이야기해보니까 ‘내가 이 마룻바닥을 다시는 디딜 수 없을지도 몰라’ 하면서 울음이 터졌다고 하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하는 사람에게 공간이 주는 영감이라는 건 너무 중요하잖아요. 10년 동안 화천에 있다 서울에 오니까 몸이 작동하지 않더라고요. 공간이 주는 힘에서 다른 경험, 차이가 만들어지는데, 이걸 설득하기가 너무 어려워요.
전윤환
지역에서 예술을 하고 공간을 운영한다는 것은, 지금 세상이 주는 신호와 다른, 반대 신호를 보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끝없이 경쟁과 진화를 요구하고 서울, 중앙으로 가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는데, 지역에서의 공간 운영은 다른 방향으로 가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주는 것 같아요. 방 한 켠, 극장 공간을 나누고 연결되는 감각들이란 게, 도시에서 생각해 보면 우화 같은 일이죠. 이 우화 같은 일이 어디선가는 현실이고 실체인데 밀려나고 없어지고 있어요.
연출가 전윤환. 베이지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투 블록 컷의 머리를 한쪽으로 넘겼다. 
            왼팔에 노란 밴드의 팔찌를 하고 있으며, 손을 턱에 얹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전윤환

개인의 예술작업들이 공공의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가

전윤환
공공성을 이야기할 때 항상 기준이 되는 건 정량화된 수치인 것 같아요. 관객이 얼마나 많이 왔고, 유료 티켓이 얼마나 판매됐고. 이건 서울도 지역도, 공공극장도 마찬가지예요. 결국 다양성은 사라지고 유명한 스타들을 부르고. 창작자들도 압박을 받죠. 무조건 잘못됐다는 건 아니지만 가장 행정 편의적인 방법으로 공공성을 획득하겠다는 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강량원
코로나와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굉장히 안 좋아지고 예술도 영향을 받잖아요. 이런 식으로 많은 예산을 줄여야 하는 때가 오면 가장 먼저 위축되는 건 예술 활동이에요. 예술은 필수적인 경제활동에 포함되지 않으니까요. 저는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주장할 수는 없어요. 그게 우리의 딜레마인 것 같거든요. 십여 년 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해서 예술이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합의된 줄 알았어요. 그리고 더 나아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이런 대화를 하다 보니까 기시감이 드네요.
김소연
저는 우리나라 행정의 공공성이 정량주의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공적 재원과 규정에 의해서 집행되는 걸 공공성으로 이해하죠. 마치 금과옥조처럼 규정을 이야기하지만, 규정은 늘 해석되는 거고 해석은 권력에 따라 달라지죠. 정량성만의 문제가 아닌 거예요. 재원의 문제도 중요하지만, 실행에서는 규정의 ‘해석’에 대한 권한을 공무원이나 행정권력만이 갖는 게 아니라 정책이 실행될 때 함께 하는 민간에게도 나누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강량원
예술텃밭에서 근 3년간 해오신 기후위기 워크숍3)이 인상적이었어요. 묻다는 뛰다 당시 <노래하듯이 햄릿>을 할 때부터 큰 대도구를 사용하거나, 무대를 짓지 않는 작업을 시작했어요. 최근에 와서 그것이 얼마나 기후위기에 잘 대응한 공연 제작 방식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돼요. 이런 데서 두 가지 공공성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첫 번째는 기후위기에 당면한 최근 예술계가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한 예술을 할 수 있는가. 이미 십 년 전에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행동을 하고 3년 전부터 이런 워크숍을 했단 말이죠. 전체 연극계 안에서도 드문 사례고, 묻다와 예술텃밭이 그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한국 연극에 영향을 미쳐왔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생태공동체에 대한 제안이었어요. 단독으로 무언가를 하는 어려움에 공동으로 대응해나가자는 제안을 한 거잖아요. 지금 사실상 전 세계가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으로 지역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일을 이미 십 년 전부터 해왔다는 거죠. 그러면 그 이야기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꼭 지역이라서가 아니라, 연극 단체들은 늘 공동체를 생각하잖아요. 도시에서는 먹고 사는 일 때문에 공동체를 꾸리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늘 뛰다를 생각하게 되죠. 저들처럼 하고 싶다, 성공적인 모델로도 기능하는 것 같거든요.
연출가 강량원. 동그란 안경을 쓰고 칼라가 있는 남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흰 머리와 검은 머리가 섞여 머리가 은빛으로 보인다. 먼 곳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강량원
김소연
그리고 이 공간의 운영을 돌아보면, 화천군이 소유하고 있고 또 화천군의 지원도 있었지만, 중앙정부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원문화재단 등의 지원으로 이루어진 활동도 있죠. 그걸 매개한 것이 뛰다고요. 이 말은 이 공간의 공공성에 소유주인 화천군의 정책만이 아니라 중앙정부, 예술지원기관, 광역문화재단 등의 정책도 함께 연루되어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지금 이 문제가 화천군과 예술텃밭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동안 다양한 정책적 목표로 이 공간에서 쌓아왔던 예술활동과 그러한 활동의 공공성을 화천군의 정책으로 무너뜨리거나 지워버리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이런 점들도 공론화되었으면 하고요.

민간 예술단체가 지역 자치단체(공무원)와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방법

배요섭
결국 민간 예술가들과 공공의 행정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책을 만들어 갈 수 있을지. 비슷한 여러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기에 다른 사례를 찾아보고도 있어요.
황혜란
실제로 잘 소통하고 협력해서 활동하는 단체나 사례를 공유해주셔도 좋고요.
김소연
지금까지 예술텃밭이 가장 모범적인 사례 아니었나요? 화천군이 폐교였던 이곳을 군 소유로 하게 된 것도 뛰다가 이곳에 자리 잡게 된 게 계기였잖아요.
배요섭
예술텃밭이 모범적일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 좋은 디딤돌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첫 번째는 저희가 만났던 군수님과 담당 계장님이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마인드로 임해주셨어요. 그래서 10년이라는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지속적으로 방향성을 가질 수 있었죠. 담당 계장님이 동지생태아트빌리지 사업을 제안해서 공간들을 조성할 수 있는 여건이 됐던 건데 그게 큰 힘이 되었어요.
두 번째는 최근에 저희를 담당했던 과장님과 계장님이 어떻게든 이 공간을 이후 십 년 동안 사용할 수 있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줬어요. 그전의 MOU는 군수 재량으로 할 수 있던 행정형식인데 조례나 규칙 없이 했거든요. 더 이상 지속할 수 있는 근거가 없으니까 남아 있는 조례를 활용해서 공간 운영을 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신 거죠. 담당자가 교체되면서 공들여서 만들어놓은 계약서가 원점으로 돌아가고 이 상황이 되었지만요. 공무원들의 의지로 좋은 방법을 찾아가는 경험을 했는데, 지금 또 새로 온 분들은 아무 권한이 없는 것처럼 말씀하고요.
김소연
그게 사실 지역 정치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거든요. 지역단체장이 갖는 영향력이 너무 큰데 공무원들은 순환 근무 때문에 계속 바뀌어서 예술텃밭의 시간을 정확히 이해하고 합리적 정책을 찾아내기엔 역부족이죠. 담당자가 규정과 근거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느냐, 반대하느냐의 문제도 원론적으로 보면 담당자 개인의 선의가 아니라 정책이 입안되고 실행되는 과정의 합리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서울문화재단 예술청공동운영단이 와해되는 것을 보면서 짧은 칼럼을 하나 썼는데, ‘우리는 더 나은 실패를 하는가’라는 제목을 썼거든요. 실패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실패가 더 나은 실패였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매번 주장과 주장이 부딪히다가 힘없는 예술가들만 나가떨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이런 문제 제기가 절차의 투명성이나 합리성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과정에서 원론적인 문제들과 구체적인 개선점을 발견할 수도 있고, 그렇다면 그것은 실패의 중요한 과정이지 않을까요.
배요섭
이건 설득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경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화천에 계신 분들을 보면 예술적 경험을 한 분들이 너무 적어요.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게 예술이 필수적이라는 걸 설득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 시간이 더 필요하지 않나 싶었어요. 저희가 십여 년 있었지만,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에 지금까지의 작업을 정리해보니까 엄청 많더라고요.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 느끼니까 좌절감이 들어요. 우리가 가진 한계인 것 같아요.
황혜란
한 단체가 할 수 있는 노력으로는 최선을 다했죠. 하지만 효과가 나타나는 임계점을 넘지 못한 것 같아요.
전윤환
화천에 방문했을 때 신기했던 게 주소를 찍고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왜 주소를 얘기했어요, 그냥 뛰다라고 얘기하지”라고 하시는 거예요. 또 기후예술가들 두세 명과 같이 농협에 갔는데 근무하시는 분이 “뛰다 왔어요?”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아셨냐니까 “그냥 분위기가 그래요” 하시는데, 지역에 예술가들이 있다는 걸 화천에 있는 주민들이 다 알고 있다는 건 엄청난 거 아닌가요. 제가 있는 강화도에서는 아무도 모르거든요.
황혜란
다른 방식을 궁리해보고 있지만, 화천에서 살아온 경험으로는 좋은 방식으로 해결될 거라는 가능성은 잘 안 보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되는 건, 이게 좋은 실패는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십여 년 전에 있던 일이 되풀이된다고 해도 다른 과정과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조금 더 나은 실패를 향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그걸 예술텃밭과 관계를 맺었던 분들이 주도해주신다는 게 저희 선배들과 다른 실패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어떤 결과가 되든 이것에 같이 동참했던 분들에게 큰 힘으로 남을 거라는 생각이 들고요.
김소연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량원
저도요.
황혜란
배요섭 연출이 뛰다를 보낼 때 ‘자연사한다’는 말을 했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예술텃밭은 돌연사하는 것인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뛰다를 보내본 입장에서, 어떤 단체를 보내야 할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예술텃밭은 좋은 죽음이 아니라는 느낌도 들고요.
배우 황혜란과 연출가 배요섭이 나란히 앉아 있다. 
            황혜란은 굵은 웨이브가 있는 단발머리에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회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배요섭은 두피가 보일 정도의 짧은 머리에 턱을 살짝 덮는 수염을 길렀으며,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있다. 
            검은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고, 왼팔에는 검은색 토시를 하고 있다. 
            두 사람이 앉은 책상 위에는 종이와 펜, 텀블러 등이 놓여 있다.
황혜란(좌), 배요섭(우)
배요섭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화천뿐만 아니라 각 단위별로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한두 사람의 생각으로 결정하고 따르는 게 반복될 것이라는 암울한 생각이 자꾸 드네요. 화천에서 지내온 시간을 돌아보니까, 어려움이 반복되는 건 그런 방식으로 일이 진행되는 분위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강량원
이런 논의들은 마무리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계속되면 좋을 것 같고요. 의미나 가치를 이야기하는 것을 넘어, 어떤 방법으로 지킬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는 자리면 좋을 것 같아요. 의미를 기리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좋은 일이잖아요. 있어야 뭐라도 하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니까요.
김소연
더 나은 실패를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좋은 결과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거죠. 그 마음도 있는 것 같아요. 이런 방식으로 남고 싶지 않다.
전윤환
연극 하면서 계속 뺏기고 사라지는 극장들만 만나게 되고 이럴 때 한 번도 승리해본 경험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좌절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대안을 꿈꿀 수 있게 해준 좋은 사례와 공간들이 눈앞에서 좌절되는 걸 보는 게 괴롭고, 누군가 한 명의 생각으로 그 역사들이 사라진다는 게 너무 아이러니하기도 하고요.
배요섭
오늘 시간 내주셔서 감사드리고 어쨌건 묻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보겠습니다.
김소연
같이 해요. 예술텃밭이 지금 겪고 있는 이런 상황들이 한편으로는 너무 익숙해서 놀랍죠. 지금 이런 논의가 한국에서 공적 지원으로 창작활동을 하면서 창작활동 자체의 공공성을 더 깊고 더 넓게 확장하고, 그 가치를 공유해서 더 많은 사람을 설득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면 좋겠어요.

[사진: 김지성 jasonk17@naver.com]

  1. 궁리소 묻다의 홈페이지, 예술텃밭을 위한 응원과 위로의 편지를 요청하는 글의 제목을 빌려왔다.
  2. 예술텃밭 운영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래 사이트를 참고. http://muddha.org/muddha-news/for-tutbatartsfarm-2023/
  3. https://www.sfac.or.kr/theater/WZ020600/webzine_view.do?wtIdx=1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