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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는_소리 나는 말.wav

[이 편지는 연극에서 시작되어] 송섬별 X 목소

목소, 송섬별

제241호

2023.09.07

[이 편지는 연극에서 시작되어]는 두 편지글로 이루어진 대화입니다.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가 누군가에게 보낸 편지, 그리고 그 누군가로부터 도착한 답장을 함께 싣습니다.

기사의 제목인 “***_***.wav”는 두 필자가 제목으로 선택한 말들을 나란히 놓고, 사운드 파일의 확장자를 붙인 형태입니다. 서로는 서로가 어떤 말들을 선택했는지 모르고, 기사의 제목은 편집부가 그 말들을 수신할 때 완성됩니다.

별에게, 다시

귀중한 회신 고마워.
별의 편지를 받고, 우리가 각자 수행하는 번역의 어떤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어.
언어들 사이의 번역에는 아마도 문법과 정보, 뉘앙스 등 다양한 측면에서 좋은 번역과 옳은 번역, 틀린 번역, 나쁜 번역이 고루 존재할 수 있겠지. 그러나 사운드 디자인에 있어, 언어와 소리 사이에 일어나는 번역을 평가하는 것은 그보다 조금 더 까다로운 일인 것 같아.
중요한 문제겠지만, 언어를 둘러싼 우리 대화의 맥락을 고려해 사운드의 품질에 대한 평가는 과감히 차치해 볼게. 그 경우 사운드 디자인은 연극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만 비로소 의미가 발생하고, 또한 그것에 대한 평가가 가능해질 수 있을 거야. 편지에서, 단서들을 조합해 말이 되게 하는 것은 독자―관객의 몫일 거라고 별이 말했었지. 사운드 디자인의 경우에는 일종의 해석학적 순환 속에 위치한 해석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것이 되는 것 같아.
그러니 낱장 같은 편지 위에서는 정말로 옳음도 그름도 없을 테지만, 별의 편지에서 일부를 발췌해 소리로 번역한 후 그것을 다시 별에게 건네 보아.
다소 난감할 수 있는 부탁이지만, 그것을 별이 다시 글로 번역해 줄 수 있을까?
소리를 문자 언어로 번역하는 일의 기쁨과 어려움을 별과 한 번쯤은 나눠보고 싶다는, 작은 심술이 섞인 나의 기대를 헤아려주기를 바라. 내가 딛고 온 발췌한 말들은 별의 편지를 받고 그 뒤에 덧붙일게.
남은 더위를 통과하는 데 이것을 그리로 옮기는 일이 모쪼록 소소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발자국 소리, 노이즈, 새 날갯짓 소리, 새 울음소리, 일렁이는 사운드, 매미 소리, 빗소리, 여러 목소리가 웅얼거리는 듯한 사운드, 거리 소음 등이 순차적으로 흘러나온다.

2023년 8월, 목소 우정인 드림





친애하는 목소에게

소리를 만드는 것이 목소가 제일 잘하는 일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 소리를 듣고 별의 방식으로 번역, 해주면 좋겠다’는 이번 편지의 기획을 듣고 정말 재미있다 생각하며 선뜻 그러겠다 했지만 편지가 오기 전에도, 편지가 도착한 뒤에도, 쭉 망설이고 있었지. 왜냐하면 사실 번역을 하는 일은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 아니거든. 그렇다고 편지를 쓰는 일에 자신이 있는가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아. 내가 꾸준히 잘해온 일이 뭔가 떠올려보면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인 것 같아. 극장에.

편지를 받은 뒤,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을 봤어. ‘델마 혹은 그로토프스키’라는 이름을 가진 개의 사라짐에 관한 공연이었어. 접근성에 관한 안내사항과 유사시 극장을 빠져나간 모두의 집결지가 어디인지를 약 20분에 걸쳐 알려주는 공연이었고, 그 어떤 자리에서도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볼 수 없는 공연이기도 했어. 정확히는 무대라는 게 없고 객석이라는 게 없었어. 결국 수어통역사가 잘 보이는 자리를 골라 앉았어. 궁금했거든, 이 무대가 손의 언어로는 어떻게 번역될지. 그러나 무대 위의 일들은 등 뒤에서, 멀리서, 달리는 배우들과 함께 눈앞을 빠른 속도로 스쳐 가며 벌어졌어. 병결은 1번, 누군가의 죽음은 2번. 사라진 개는 결석 사유가 되지 못해. 그러나 죽은 개는 얼굴을 가리고 나면 여러 번 쓰일 수 있는 결석 사유가 되지.

2017년 처음 이 공연을 보았을 때 개는 그냥 개였어. 개의 이름에 들어 있는 ‘혹은’이 잠정적이고 미확정적인 것들 사이의 긴 침묵과 모호함을 생각하게 하는 것처럼 ‘그냥’은 언젠가의 애도를 위해 안배되어 있는 공간이었다는 것을 나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 수 있었지. 2023년에 이 공연을 보았을 때 나는 ‘그냥’에 넣고 싶은 말들이 많았지. 지난 공연과 이번 공연 사이에 놓여있던 시간 동안 많은 사라짐을 겪었고 대부분의 경우 1번도 2번도 누를 수가 없었어. 결석 사유가 되지 못했어. 때로는 모든 것이 개가, 아니 내가, 결석―부재할 사유가 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어.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은 2017년에서 2023년으로 오는 사이 개의 이야기에서 퀴어의 이야기로 번역되었어. 번역은 한 가지를 다른 한 가지로 바꾸는 일이 아니라 ‘혹은’ 또는 ‘그냥’ 속에 묻혀 있던 침묵과 모호함, 애도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고, 그것을 조금 더 섬세하게 끄집어내는 일 같아. 하수구 속에, 깊은 지하에 갇혀 있는 다른 존재, 다른 개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를 구해내는 것처럼. 아마도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은 또 한 번 번역될 수도 있을 거야.

하천에 있는 오리를 연속으로 촬영한 네 장의 사진이 2X2 프레임으로 배치되어 있다. 첫 번째 사진 속의 오리는 기다랗고 평평한 징검다리 위에서 회갈색의 깃털을 고른다. 
            두 번째 사진 속 오리는 징검다리 가장자리에 서서 멀리 물을 바라보고, 세 번째 사진 속 오리는 징검다리 근처 물 위에 떠 있다. 
            마지막 사진 속 오리는 수풀이 물의 표면을 가득 채운 하천을 헤엄쳐 가고 있다.

소리를 다시 글로 번역한다는 기획이 어떤 공연의 애매모호한 후기가 되고 말아 조금 실망했을까? 나는 목소가 2주 전에 보내온 소리를 아침마다 들었어. 때로는 밤에도 들었어. 쿵쿵, 잡음, 푸드득 날아가다 활짝 열리고 환하게 지저귀는 소리로 시작하는, 늦여름에 어울리는 소리이고 너와 나에게 어울리는 소리였지. 번역한다는 것은 결국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한 후기를 나름대로 써보는 것이 아닐까. 헤매고 있고, 갇혀 있고, 울고 있는 소리를 듣는 거야.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 구해내기 위해서 달리고 또 달리는 일, 후기를 썼다가 삭제하는 일. 잘 듣기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하더라. 나는 목소의 소리를 듣는 연습을 했어. 여러 번. 나중에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친애하는 별로부터



* 사운드 디자이너 목소가 번역가 송섬별의 이전 편지로부터 (새창으로 열기) 발췌해 소리로 번역한 말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말들

날아간다

떨고, 솟구치고, 헤매는 말들
뜨겁고 줄줄 흘러내리는, 말이 되지 않는 말

말이 안 되는 것들을 말이 안 되는 그대로

일제히 우는 소리

별안간 뜨겁게 번뜩이면서 온몸을 휩싸는, 아마도
말이 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은



[사진·사운드: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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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

목소
듣기의 연습을 통해 ‘들리는 것’과 ‘듣는 것’에 대한 질문을 수행 중이다. <앨리스 인 베드>, <홍평국전>,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스푸트니크> 등에 사운드 디자인으로 참여했다.
인스타그램 @morceauxx

송섬별

송섬별
자주 읽고 쓰고 옮기는 관객. 『자미』 등의 책을 옮겼고 <로드킬 인 더 씨어터>, <퇴장하는 등장> 등의 공연을 영문으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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