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너메뉴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메뉴 바로가기

공연계 환경 활동 탐색

[연극과 지구: 모두를 위한 연극] 마지막 기사

유혜영

제184호

2020.08.06

올해 초 우연히 찾은 런던의 소극장 게이트씨어터에서 흥미로운 안내문을 발견했다. ‘우리의 선언(Our manifesto)’에 한 작품마다 오직 20%만 새 것을 사용하겠다고 했으므로 그 출처를 투명하게 밝힌다는 내용이었다. ‘우리의 선언’이 뭘까? 안내문에는 이번 공연에 쓰인 무대, 의상, 소품, 조명의 출처가 ‘새 것’과 ‘재사용 및 대여’로 나뉘어 표기되어 있었는데, 다른 극장, 의류나 잡화 브랜드, 유명 중고 매장 등의 이름이 줄줄이 적혀 있었다. 짧은 공연을 위해 잠시 지었다가 허무는 무대에 죄책감을 느끼던 몇몇 디자이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또한 그런 불편한 감정에서 시작된 것이었을까? 무대 재활용의 정확한 비율을 정하고, 지키고, 공개하는 극장의 활동은 가히 혁명적으로 느껴졌다.
게이트씨어터가 공표한 ‘우리의 선언’이란 정확히는 ‘우리의 미래를 위한 선언’으로, 과정과 형식이 ‘정치적’일 것과 우리의 작업이 자연과 기후를 포함한 세계의 일부일 것을 명시하며, 무대의 재활용과 같은 여러 구체적인 실천을 약속한 것이었다.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 선언은 필자에게 극장의 역할과 연극의 의미를 지구와 미래라는 보다 넓은 차원의 시공간으로 확장하게 하는 계기였다. (선언 전문 www.gatetheatre.co.uk/manifesto-for-our-future)

극장 안 세계와 우리가 사는 세계를 함께 고민하는 활동은 다양한 차원으로 꾸준히 있어 왔고, 사실 환경에 관해서라면 비교적 쉽게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실천들도 있다. 앞선 기사에서 다룬 설문조사를 통해 창작자들과 공공극장들이 공유해 준 크고 작은 활동들은 현장이 감지하는 문제의식과 변화 의지를 어렴풋하게나마 확인시켜 주었다. 이번 기사에서는 이러한 현장의 실천을 모아보고 돌아보고 고민하며, [연극과 지구: 모두를 위한 연극] 기획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1. 무대와 소품을 공유하기
무대 스탭을 중심으로 공연을 제작하고 기획하는 ㈜스탭서울은 2013년 공연 쓰레기 재활용(Theatre Waste Recycle), 일명 ‘공쓰재’라는 플랫폼을 오픈하여 운영 중이다. 공연을 마친 물품을 나누고 싶은 ‘나누미’가 공쓰재 페이스북 계정에 글을 올리면, 물품이 필요한 ‘구하미’가 확인 후 직접 연락하여 물품을 받으면 된다. ‘구하미’가 먼저 글을 올리는 것 역시 가능하다. 이 간단하고 분명한 공유 원리를 공공의 시스템으로 구축하고, 개인이 접근 가능한 네트워크를 넓혀 더욱 활발한 공유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공쓰재가 맡고 있다.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 공연 철수하는 날 극장에서 바로 양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주인을 찾지 못한 세트나 소품들이 제3의 창고에 쌓이면, 이는 또 다른 ‘쓰레기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공쓰재의 우려다. 공이 많이 들어간 세트이든, 고가의 소품이든 용도를 다한 물품이라면 최선을 다해 나누고자 하는 자발적 나누미들이 있어 공유는 꾸준히 계속되고 있다.
공쓰재의 기획 의도 및 운영 원리 (제공: 공쓰재)
공쓰재는 오픈 당시 페이스북 팔로워가 한 달 만에 5,000명을 넘어섰을 만큼 크게 주목받았고, 서울시 공유기업으로 선정되어 운영비의 일정액을 지원받기도 했지만, 이용자들의 범위나 규모, 네트워크 방식 등이 정체되어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과제를 던지기도 한다. 수익 없는 캠페인성 사업을 민간 기업이 단독으로 지속/개발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공쓰재 담당자의 설명으로는, 공공 지원금도 사용처에 제한이 있어 큰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공쓰재로부터 시작된 공연계의 변화가 더 멀리 영향을 미치려면 지속가능한 무대 예술을 고민하는 목소리가 더 크게 모아져야 할 것이다. 더불어 공공극장 또는 국립예술단체가 자산으로 소유하고 있는 무대, 의상, 소품 등이 민간과 공유될 수는 없는지 잠재된 변화의 가능성을 계속해서 발견해나갈 필요도 있을 것이다.
2. 티켓과 홍보물 전환하기

고속버스나 기차, 비행기를 탈 때는 물론, 영화를 볼 때도 스마트 폰 안의 티켓을 꺼내는 것이 익숙해지고 있다. 모바일 티켓은 스마트 폰 문화의 확대와 편의성은 물론, 티켓 발권 비용과 분실 위험을 줄인다는 이유로도 이미 여러 분야에 도입되었다. 최근 공연계에서도 유사한 이유로 모바일 티켓의 도입이 검토 및 시도되고 있다.1) 큰 비닐에 묶여 매표소로 배송되는 티켓 용지 더미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면, 환경적인 측면에서도 분명 유익할 것이다.

게이트씨어터 리유저블 티켓

해외에서는 유명 극장가 뮤지컬이나 연극하는 몇몇 공공 극장에서 이미 모바일 티켓을 사용하고 있지만, 국내외 할 것 없이 여전히 종이 티켓이 우세다. 여기에는 스마트 폰 사용이 어려운 관객들, 티켓 운영 시스템 전환의 어려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여력 부족 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티켓 자체를 기념품으로 소장하고자 하는 관객 욕구와 그 문화도 한 몫 한다. 그렇다면 관객에게 선택지를 주는 것은 어떨까. 앞서 언급한 게이트씨어터는 리유저블(Reusable) 티켓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손에 잡히는 티켓의 물성도 지켜주면서 추억은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방법의 하나가 아닐까 한다.
티켓과 나란히 떠오르는 것이 공연 포스터와 리플릿이다. 이제는 거의 전적으로 온라인을 통한 홍보마케팅 채널을 이용하면서도 여전히 상당량의 종이 홍보물이 제작되어 무용하게 버려지고 있다. 코팅된 종이는 재활용도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남산예술센터와 삼일로창고극장의 홍보물 온라인화는 매우 반가운 소식이다. 공연 타깃의 대다수가 온라인 접근성이 좋은 관객이라면, 종이 홍보물은 오히려 특별한 경우를 위해 선택적으로 제작될 수 있을 것이다. 2018년부터 프로그램북을 온라인으로 무료 공개해온 국립극단의 행보 또한, 지구 환경과 관객 모두를 위한 실천으로써 계속되기를 바란다.

3. 일회용을 거부하기
앞선 기사에서 다룬 연극in 설문조사에서 ‘창작 및 작업 현장에서 환경을 위해 실천하는 활동’으로 응답자 58명 중 50명이 ‘개인 컵 사용과 일회용품 사용 자제’라고 답변했다. 연습실에서 사용되는 종이컵이나 물티슈, 배달 음식을 먹을 때마다 발생하는 일회용 용기와 식기들은 작업 현장에서 가장 흔하게 버려지는 쓰레기이자 일회용품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지만, 그만큼 익숙하기에 바꾸기가 쉽지 않은데도 이미 많은 연극인이 일회용을 거부하는 활동을 실천하고 있었다. 개인 컵과 개인 식기 사용은 안전과 환경 모두를 지키는 대안이 되고 있는 것이다.
‘트레쉬버스터즈’가 제작한 다회용기 (제공: 트레쉬버스터즈)
일회용품을 애용하는 또 다른 현장은 축제다. 2019년 설립된 ‘트레쉬버스터즈’는 축제나 행사장에서 직접 제작한 다회용기를 빌려주고 반납하도록 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반납된 용기는 세척하여 다음 행사에 다시 사용한다. 2019년 8월 난지 한강공원에서 열린 제4회 서울인기페스티벌에서 처음 선보인 다회용기는 전년도 대비 98%의 쓰레기 감소 결과를 가져왔고, ‘트레쉬버스터즈’가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계기가 되었다.2) 축제를 기획하던 기획자가 현장의 경험을 담아 시작한 만큼 축제를 더욱 즐겁게 하는 활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덧붙이자면, 소규모 행사를 지원하는 피넛(P.NOT)도 있다. 사회적 책임을 고민하는 성균관대 동아리 인액터스 플레이그라운드는 작년부터 제로 플라스틱 행동을 해오다 브랜드명을 피넛으로 바꾸고 본격적으로 식기대여 서비스를 런칭했다. 피넛은 식기 대여와 배송, 수거, 세척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축제나 행사가 많이 취소되는 바람에 이들의 활약을 목격할 기회도 줄어들었지만, 식사나 다과를 제공하는 중소규모의 워크숍이나 모임에서도 더는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날이 곧 오리라 기대한다.
4. 불편함을 공부하기
코로나19의 여파로 기후위기, 나아가 지구 환경 전반에 관한 관심이 커지면서 ‘공부’를 통해 작업현장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모임들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 7월 13일부터 문화공간 길담에서는 대기과학자 조천호 박사의 책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텍스트로 ‘예술인 기후위기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에너지전환 협동조합과 ‘기후정의 창작집단’으로 거듭난 콜렉티브 뒹굴이 함께 준비한 이 세미나는 10명 내외의 소규모 인원이 모여 강의 듣고, 발제하고, 토론하는 말 그대로 공부 모임이다. 또한, 화천의 문화공간 예술텃밭에서는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ㅡ기후변화] ‘화천에서 환경을 말하다’라는 제목의 리서치 프로젝트가 올해 7월 말부터 12월까지 진행된다. 기후위기를 작업의 위기로, 삶의 위기이자 인간의 위기로 인식하는 기획 및 창작자들이 알면 알수록 불편해지는 지구의 진실을 적극적으로 대면하고, 이제 우리는 어떤 예술을 할 것인가 질문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인 기후위기 세미나’ 현장 (제공: 콜렉티브 뒹굴)
가까운 대학로에도 녹색철학을 설파해 온 공간들이 있다. 책방이음과 인문사회과학서점 풀무질이다. 혜화역 1번 출구에 있는 책방이음은 비영리공익서점으로 국제인권평화단체 ‘나와누리’의 사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여기서는 녹색연합 소식지나 기후변화센터에서 발행하는 무가지 CC(Climatus College)를 볼 수 있고, 녹색연합 회원이라면 도서를 10% 할인 받을 수도 있다. 성균관대로 올라가는 길목에 1985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풀무질에서는 『녹색평론』 읽기모임이 꾸준히 열리기도 했었는데, 최근에는 에코페미니즘 읽기 모임, 동물권 읽기 모임, 기후위기 읽기 모임 등이 매월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마무리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의 세세한 일상까지 완전히 변화시키는 것을 목격하며 연극의 존재 의미와 방식을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요즘이다. 내가 먹고 쓰고 행동하는 것이 이 커다란 지구의 온도를 올리고, 세계 기아와 빈곤과 불균형의 해결을 방해하며, 다종다양한 동물을 죽이는 일들 모두와 연결된다는 사실 또한 알아가고 있다. 살아있다는 것이 단지 기쁨이 아니라, 오염이고 책임이고 우연일 뿐이라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 혼란과 전환의 시대에 연극은 정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대에 어떤 것을 기대해야 하나.
사실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는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조천호 박사도 그건 '감수성'의 차원이라고 말한 바 있다. 우리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조차 못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레타 툰베리는 만일 사람들이 지금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안다면, 모두가 자기 옆에 나와 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모든 것은 그 ‘감수성’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안다. 환경문제 역시 그럴 것이다.
지금 당장 연극계의 대대적인 변화를 이뤄야 한다는 촉구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지구 환경의 변화를 한번 더 인지하고 감각해보고자 한 것이 이번 연극in 기획의 이유이고 목표였다. 예상보다 많은 공감과 실천을 확인한 것에 위안하면서도, 역시 더 나아가야 한다는 반성과 무력감을 함께 느낀다. 적어도 연극in이 우리가 빚진 존재들, 그들과 함께 만들 연극은 어떠해야 하는가 질문하고,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다.

*도움 주신 분
스탭서울 프로듀서 이윤숙 님
  1. ‘[FOCUS]공연 티켓의 새로운 시대’, 더뮤지컬, 2019.07.30. https://www.themusical.co.kr/Magazine/Detail?num=4209
  2. “ 일회용품 없는 ‘지속가능한 축제’ 만들어 드릴게요.”, 한겨레, 2020.01.16. http://www.hani.co.kr/arti/society/environment/924765.html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좋아요 선택 버튼

유혜영

유혜영
본지 前편집에디터. 공연이 일어나는 공간을 좋아하고, 기록하는 일과 기록되지 않는 사람들에 관심이 있다.
yoohy_87@naver.com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