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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학교와 연극 현장은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

[일그러진 학생 예술가의 초상] 개관기사

강보름_연출가

제185호

2020.08.20

이번 연극in의 기획은 “예술학교와 연극현장은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학생예술가의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연극영화학과 전공 대학은 서울 13개, 경기 16개, 인천 1개, 강원 1개, 충북 3개, 충남 7개, 세종 1개, 전북 1개, 경북 1개, 대구 2개, 부산 4개, 제주 1개 등 총 51곳이다. 입학 정원을 평균 30명이라고 가정하면 대략 한해 1,500명의 신입생이 입학하고, 4학년까지 합치면 6천여 명의 학생이 예술학교에 재학 중인 셈이다. 이 많은 학생예술가의 목소리는 현장까지 잘 들리지 않았는데, 학교 과정이 ‘예비’ 예술가로서의 수련 기간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 큰 이유일 것이다.

예술학교는 연극 현장에 진출하기 위한 경험과 인맥의 산실이다. 필자가 예술학교 바깥에서 연극을 시작했다가 예술학교를 욕망하고 현장 활동과 병행하게 된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꼭 예술학교를 졸업하지 않아도 연극을 할 수는 있지만, 비전공자는 전공자에 비해 다양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일례로, 연습실과 지원금 심사 면접에서 늘 부가적인 의심/질문을 받았다. ‘이럴 거면 왜 섭외에 응했나’, ‘1차 서류는 왜 통과시켰나’ 하는 의문이 들었음을 고백한다.

연극 현장에서 요구하는 전문가의 자질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내리기 힘들었다. 전공자 못지않게 다 잘해야 할 것 같은데, 그게 어려우니 늘 미안하고 위축되었다. 그런데 연출 전공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스스로나 타인에 의한 이런 종류의 의심/질문은 사라졌다. 예술학교와 연극 현장이 서로의 욕망을 채우는 필요충분의 공모 관계임을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았다.
한편, 2018년 미투 운동 당시에 예술학교 또한 현장과 마찬가지로 각종 성폭력, 위계 폭력의 온상이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이 찾아오면서, 예술학교 내의 근본적 변화를 지각하기도 전에 합리적 면피가 가능한 상황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대면이 불가능해지면서 생긴 위기는 지금까지 연극계와 예술학교가 맞이한 그 어떤 위기보다도 새롭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 예술가들의 현실에 대해 다시 질문해보고자 한다. 실기 중심의 수업과 실습에 큰 타격을 받은 예술학교 시스템이 코로나 이후에도 그대로 존속할 수 있을까. 처음 겪는 위기로 갈팡질팡한 1학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2학기에도 여전히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대안적 상상력으로 난국을 타개해나가는 연극 예술의 힘이 왜 학교 현장에서는 발휘되기 어려운 것일까.

어떤 교수는 “너희들은 소비자고 교수는 학교에 고용된 을이야. 너희가 갑이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대학 교수가 지원금 심사위원이고 공연을 보러오는 평가자이며, 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이 직장 동료가 되는 현실에서 이 말은 과연 온당한 발언일까. 백번 양보하더라도 소비자로서의 권리와 주체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열렬히 투쟁하지 않는) 학생예술가들의 무기력함 때문인 것처럼 들린다. 이는 또한 각 학교 학생회의 목소리와 ‘예술대학네트워크(예대넷)’를 지운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요즈음 느끼는 것들 중 하나는 학업과 현장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연극 바깥에서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예술학교의 일원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정말로 실습, 수업 과제, 공연 준비, 시험, 회의, 아르바이트로 너무 바쁘다. 그런 와중에 내가 보살펴야 할 집안일은 늘 뒷전이 되고 만다. 모든 일에 에너지를 쏟을 수 없으니 구조적 방관자도 되기 쉽다.

질문을 장려하지만 할 수 있는 질문이 정해져 있는 것 같아 눈치를 보게 된다. 모두가 모두에게 무례하게 피드백을 한다. 그러면서도 막상 중요한 문제인 표절이나 성폭력, 위계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하게 된다. 공연 횟수가 잦아질수록, 나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수록 자가 착취 혹은 타인 착취를 지속케 하는 불합리한 환경에 눈을 감고 싶어진다. 신체적, 정신적 취약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로 인해 여성, 퀴어 예술가들이 고통받고 장애인 예술가는 찾아볼 수조차 없다.

그래서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니고 싶은 예술학교의 모습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되었다. 경험을 많이 하는 것에만 중점을 두지 않고 한 번의 공연을 하더라도, 심지어 취소하게 되더라도 모두가 그 과정에서의 고민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분위기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예술학교와 연극 현장 간의 거리가 멀어야 건강한 것인지, 아니면 더 가까워져서 전공생들의 고민을 현장이 충족해줄 수 있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교수들이 생각하는 좋은 연극, 잘하는 연극이 현장의 그것과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학생예술가들이 체감할 수 있다면 좋겠다. 예술학교 학생들의 성향을 동질화하는 것은 집단의 결속력을 위해서는 효과적이지만 연극의 다양성을 해치는 일일 수도 있지 않을까.

또한 다양한 공동체의 일원이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예술학교가 시설의 접근성을 보장함으로써 예술학교에게는 ‘여전히’ 낯선 고민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모두의 취약함을 존중하는 태도를 연습할 수 있으면 좋겠다. 희곡의 대사 한 줄을 공들여 해석하는 것만큼 셋업날에도 우리가 서로의 안부와 안녕을 공들여 물을 수 있으면 좋겠다.

구조적 현실을 직시하고 이를 담론화하여 투쟁의 동력을 삼는 것이 본 기획의 주요한 목적은 아니다. 예술학교의 주체인 학생예술가의 상황과 맥락의 다종다양함을 고려하기 위한 ‘듣기’ 부터 선행하고자 한다. 학생예술가들이 미투와 코로나 이후의 예술학교에서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주체적인 학교생활을 위해 어떤 것들이 더 있어야/없어야 하는지, 예술학교 졸업 후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등 연극계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질문들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개관기사를 시작으로 예술학교 교강사 좌담회, 학생예술가 익명좌담회와 정리기사가 발행될 예정이다. 미래가 아닌 현재에 함께 존재하는 학생예술가들의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시고 들어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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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

강보름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rkdekdzh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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