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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학교 선생님, 학생예술가를 이야기 하다

[일그러진 학생 예술가의 초상] #학교 강사/교수편

정리_정진세

186호

2020.09.10

일시 : 2020. 8. 7. 금. 오전 11시
장소 : 서울연극센터 아카데미룸
참석 : 김수업 유강연 채연수 오학습
진행 : 박수강
정리 : 정진세(본지 총괄에디터)

※본 좌담회는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2단계로 격상되기 이전에 진행하였습니다. 참여자 및 진행 스탭의 체온 측정 및 문진표 작성의 기본 방역수칙을 준수하였습니다.
김수업
A대에서 연극영화학과에서 이론 수업, 연극사, 비평과 같은 전공 수업을 맡고 있고, 다음 학기에는 B대에서도 공연 예술 관련된 교양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수업(가명)입니다.
유강연
안녕하세요. 저는 유강연(가명)이라고 합니다. 연기수업이나 장면연구 수업, 즉흥 수업을 오래 해오다가, D대에 임용되었습니다. 임용된 이후, 연기 수업, 공연제작 워크숍 수업, 연출 수업, 호흡과 발성 수업 등을 했는데,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거의 모든 분야를 다 하고 있습니다.
오학습
안녕하세요. 저는 연출하는 오학습(가명)입니다. T대에서 강의를 하는데 주로 실기 수업을 합니다. 이론 수업은 하지 않고, 연극제작실습, 연극연출기초, 무대연출 이렇게 연출의 커리큘럼 흐름대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채연수
안녕하세요. 저는 채연수(가명)라고 하고요. H대, Y대, T대에서 연극과 희곡, 드라마투르기 관련된 이론 수업들 하고 있어요. 연극전공 학생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코로나시대_학교풍경 #비대면수업 #교육적_거리두기
박수강
저는 토론수업을 줌(Zoom), 화상 강의로 했어요. 요즘에는 개인정보유출이나 범죄 노출 위험 때문에 아무도 화면을 켜지 않더라고요. 허공을 보고 수업을 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이 한 학기 동안 진행되었죠. Z대는 실시간 강의도 권장하지 않아서 창작 수업을 녹화로 진행해야 하는 상황도 있었어요. 저 혼자 논평도 했다가 대본도 읽었습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한 거죠. 다들 어떻게 수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오학습
저는 웹엑스(Webex)를 사용했는데, 화면을 끄는 것은 안 되겠다 싶어서 부담스럽지 않으면 카메라를 켜달라고 했어요. 다른 이론 수업에서 접속만 해놓고 다른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제보도 있어서요. 제가 맡고 있던 수업은 연극제작실습과 연극연출기초 두 가지였어요. 최종적으로 공연을 올리고 관객과 소통하는 게 수업의 마무리인데, 외부 관객을 받기 어려웠죠. 이런 상황마저도 공연 제작 수업의 교육적인 맥락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초반 한 달 정도는 장소의 확장성을 가지고 라이브니스(liveness)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자는 시도를 했는데, 영상만 도저히 보고 있을 수 없는 지루함이 있었어요. 그때 한창 SNS에서 예술가들의 콘텐츠가 많이 업로드되었는데요, 어느 순간 ‘저게 누굴 위한 창작일까’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떻게든 접촉의 방식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학교에서 안전한 공간을 찾아 관객들이 몇 미터씩 떨어지고, 배우들도 관객으로부터 떨어져서 야외공연을 했었습니다.
제가 있는 곳은 종합대학이다 보니까 예술대학에 친화적이진 않아요, 갑자기 신규수업까지 다 영상으로 하라고 하는데, 말이 안 되는 거예요. 해외사례를 보니까 코로나 상황이 나아지는 3주 동안 집중 워크숍처럼, 15주차 수업을 몰아서 하는 식의 수업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방향을 제안했는데, 상황이 좋아질 거라고 아무도 담보하지 못하기에 유예했고... 최종적으로 합의를 한 것은 학과별로 5과목 정도는 오프라인 수업을 하는 것이었어요. 10명 이하의 학생을 대상으로 마스크 착용과 온도 체크를 하고 대면 수업을 진행한 게 5월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박수강
받았던 가이드라인 중에서 제일 황당했던 건 한 층에 5개의 강의실을 마련하고 학생들이 6명씩 나눠 들어가게 한 다음에, 한 강의실에서 10분 수업하고, 옆방으로 가서 똑같은 걸 10분 수업하고, 이렇게 순환하면서 수업을 진행해도 된다는 거예요. 그게 과연 교육적으로 효과가 있는 방식이라고 생각을 하는 건가, 황당했어요.
채연수
노래, 가창, 춤 같은 실기 수업들은 7-8주까지 수업을 안 했었거든요, 학생들도 불만이고 학교도 불안한 거예요,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듣는 가창 수업인데, 각 학생에게 15분씩을 배당한 거예요. 학생들이 복도에 줄을 서서 한명 당 15분씩, 그렇게 학기 말까지 수업을 했대요. 선생님과 학생들의 피로도는 쌓이고, 학과에서도 미안해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비대면 수업을 했어요. 학교에서 20명 이하는 대면 수업을 진행해도 된다고 하길래, 학생들에게 물어봤어요. 대부분이 원하지 않았어요. 이미 비대면 수업을 하고 있는데, 한 수업을 위해서 학교에 나오기가 번거롭다는 거죠. 학교의 입맛에 맞게 제작, 납품하는 식으로 실시간 수업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강의를 찍어서 업로드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비대면 수업은 일방적인 지식전달의 수업밖에 안 돼서 아쉬웠는데, 이번 학기에 유독 희곡에 관련된 질문이 많은 거예요. 사실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이론적으로 많은 질문을 하지는 않거든요. 왜 그런지 생각했는데 제작 수업이 낭독공연으로 진행되면서 텍스트 분석이 필요했던 거예요. ‘학생들이 텍스트를 집중해서 보는 훈련은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오학습
실기수업을 듣는 학생들 입장에서 제일 힘들었던 점은 체화하는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 같아요. 등록금에 연습실이나 기자재를 사용하는 것이 포함되어 있는데 4월까지는 연습실을 폐쇄했고, 5월부터도 일부 개방이었어요. 간담회 자리에서 학생대표가 ‘학생들은 배운 걸 반복 연습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학교 연습실이 폐쇄되어 학생들끼리 돈을 모아서 외부 개인 연습실을 빌려서 하고 있다. 학교가 안전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 학생들을 더 위험한 환경으로 내모는 것 아니냐’라고 얘기를 했을 때 학교 측에서도 답변을 제대로 하지 못했죠.
1학년 같은 경우는 다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고, 한 수업만 대면으로 진행되었는데 경남 창원이 집인 친구가 있는 거예요. 그러면 한 수업 때문에 통학을 하거나 자취방을 구해야 하는 건데 그럴 수가 없어서 촬영한 영상을 보내거나 하는 식으로 수업을 들었어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수업권을 침해한 사례라고 할 수 있죠.
박수강
F대는 재밌는 공지가 여러 번 나왔었는데, 대면과 비대면이 모두 가능한 수업을 하라는 거예요. 원하는 학생들은 학교에 와서 듣고, 서울에 오지 못하는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수업을 받더라도 절대로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게 하라는 거죠. 또 하나는 30명 이하의 수업은 대면을 할지 비대면을 할지 강사 재량에 맡겨두는 거예요. 만약에 수업을 대면으로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전부 강사 책임이 되는 거죠. 학교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뉘앙스를 너무 강하게 담고 있는 공지였죠. 학교에서 공지를 한 번 낼 때마다 논란이 계속 커지기만 하는 그런 시간들이었어요.
유강연
교육부, 학교 본부, 예술대 각각의 지침에 대해, 결정권자와 책임자에 대한 근거가 없던 게 제일 힘들고 혼란스러웠던 것 같아요.
처음 줌 수업을 했을 때는 어떤 면에서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2, 3주 차 정도 지나면 만나서 해결해야 할 것들이 생기는데, 더 이상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건 서로에게 힘든 일인 거예요. 그래서 휴강을 하고, 5월부터 대면 실기수업을 재개했어요. 한 강의실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세 시간 수업을 두 시간씩 두 분반으로 나누어 진행했어요. 가능하면 야외에서 수업하고 실내에서 수업할 때에는 마스크를 쓰고.
워크숍 수업 때 학생들이 계속 ‘저희 계속 공연할 수 있어요?’라고 묻더라고요. 제가 결정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학생들에게 ‘우리는 무조건 공연을 한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팀별로 세, 네 명씩 모여서 수업할 수 있는 작품을 선정하기도 했고요. 공연을 한다는 근거가 딱 두 가지였어요. 민간극장은 4월 이후로 공연을 계속 했었잖아요. 그런데 극장, 공연과 관련해서 확진자가 생기거나 전파되는 사례가 당시에도 없었거든요. 학생들한테 질병관리본부에서 얘기하는 방역수칙을 학생들이 철저하게 지켜주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무조건 공연을 하겠다고 했어요.
학기 초에 신입생들하고 전화상담을 했었는데 거의 모든 학생이 대면 수업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학교가 지방에 있다 보니까 학생들 대부분이 기숙사에 들어오거나 자취를 하고, 통학이 없어요. 그래서 학생들의 3분의 2 정도는 이미 3월에 방을 잡아 놓고 월세를 내고 있었고, 3분의 1 정도는 대면이 정해지면 바로 어떻게든 내려가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1학년들은 주말마다 계속 다 본가로 올라가거든요. 그런 상황을 체크해야 했었고. 매일 뉴스를 보면서 확진자 수 추이에 따라서 ‘오늘 휴강을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고민했어요.
휴강이 많았기 때문에 보강을 다 해야 하잖아요. 5월 이후에 정규 수업과 보강 수업이 학생들한테 몰아친 거예요. 보강 수업 잡는 게 일이었어요.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6시간 보강 수업을 잡아서, 한 시간 반씩 똑같은 수업을 네 번을 하는 거죠. 신기하게 학생들이 토요일 아침 9시인데도 나오더라고요. 코로나 아닐 때는 보기 힘든 광경이거든요. 근데 신기할 정도로 학생들이 너무 열심히 하더라고요. 혹시나 일이 터질까 가슴은 쪼그라드는데, 수업은 오히려 처절하고 치열하게 했던 것 같아요. 야외수업을 많이 했는데 학생들은 정말 생소한 경험으로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굉장히 좋아했어요.
김수업
저는 이론 수업을 하다 보니까 대면 수업은 꿈도 꿀 수 없는 환경이었어요. 학생 수도 많고, 이론 수업이고, 교양 수업이고. 그래서 마지막 시험 날 딱 한 번 만났습니다. 슬프더라고요. 저는 반가운데 학생들은 전혀 반갑지 않고, 초면에 시험지를 들이대는 실례를 범하고. 저는 주로 PPT로 강의를 하다 보니까 영상으로 만드는 작업만 하면 돼서 상대적으로 수월한 형편이었어요. 그런데 원격수업을 처음 하고,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이다 보니까 쉽지만은 않았어요. 접속환경이 불확실하다는 것 때문에, 내 말이 전달되고 있는가도 불확실했고, 학생들의 인터넷 연결 상태도 확인할 수 없고. 계속 채팅창을 보면서 진행해야 해서 집중도 안 되고요. 저는 가급적 미리 녹화된 영상으로 강의를 한 뒤에 실시간으로 질의응답하고 토론하는 식으로 수업을 했었어요. 또 하나는 과제물. 공연을 보고 감상문을 쓰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인데 학생들에게 공연장에 가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공연장에서 확진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걸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심하고 가라고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실제로 공연장에 갔다 온 학생들이 혹시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결국은 공연 실황 영상을 보고 감상을 쓰는 형태로 과제를 낼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죠.
유강연
과제에 대한 컴플레인은 없었나요? 많은 온라인 수업에서 과제를 내주니까 학생들이 과제가 너무 많다고 컴플레인이 들어왔다더라고요. 본부에서 ‘학생들에게 과제 내주지 마세요’라는 지침이 내려오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어요.
김수업
초반에 조별 발표 준비가 어렵다는 항의성 질문을 하는 학생들이 있었어요.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어렵더라도 한번 해보라고 했어요. 연극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협업을 경험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거든요. 결국 각자 영상을 만들어서 합쳐서 하기도 하고, 후반부에는 카페에 모여서 실시간으로 발표를 하기도 하고 그랬었는데요.
앞에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학생들이 화면에 나타나려고 하지 않아서 많이 힘들었어요. 정말 벽보고 대화하는 느낌. 듣고 있다는 피드백이 없으니까요. G대 같은 경우에는 학생회 차원에서 초상권 문제에 대한 항의가 있어서, 강제할 수는 없었고 매번 괜찮은 사람은 켜달라고 부탁을 했었죠. 몇몇 친구들이 고맙게 얼굴을 드러내 줘서 그 친구들 보면서 수업을 해야 했던 상황이었습니다.
대면 수업이 시작된 뒤에, 학교에서 실기 대면 수업을 하고, 비대면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어딘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도 있었어요. 많은 학생이 이동하면서 버스 안, 혹은 걸어가면서 수업을 듣는데 그 부분도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박수강
비대면 수업을 하게 되면서 예측하지 못한 상황들이 발생하는군요.
김수업
초상권도 초상권이지만, 얼굴을 보여줄 수 없거나 토론에 목소리로 참여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수업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라고 강요하기가 참 힘들었어요. 다른 것보다 ‘이 학생들에게 웹캠이 준비되어있나? 마이크는 있는가? 인터넷은 되는가?’라는 의문이 들었거든요. 많은 학생이 카페나 공공장소에서 수업에 참여했는데, 아마도 자신의 자취방이나 집에서는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겠죠. 밖에서 수업을 듣다 보니 시끄러워서 마이크를 켤 수가 없거나, 혹은 장비가 적절히 준비되지 않았던 거죠. 원격수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그런 기본적인 시설 혹은 환경을 학교나 정부에서 일단 제공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대면 수업을 받고자 등록한 학생들에게 그 모든 원격 수업 장비와 환경을 학생들이 각자 알아서 준비하라고 하는 건 교육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박수강
수업 끝나고 한 학생에게 연락이 왔어요. ‘중간에 튕겨가지고 못 들어갔어요.’라고 하는데 화상수업 시스템에 학생이 언제, 몇 번 접속했는지가 나와요. 보니까 75분 수업 동안 스무 번이 넘게 튕긴 거예요. 결국에는 수업 중간부터 못 들어왔어요. 저는 매시간 강의를 녹화해서 접속이 잘 안 된 친구들에게는 대체할 수 있게 보내줬어요. 또 걱정됐었던 게, 극장 근처 카페에 와있으면 제 주변에 W대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는 거예요. 심지어 저는 거기 앉아서 강의를 만들고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가 안전할까. 비대면이라고 해도 학교에 안 갈 뿐이지 학생들이 어딘가 위험한 상황에서 수업을 들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유강연
그게 정말 심각한 고민이었어요. 정말로 학생들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까. 아무리 야외에서 수업하고, 환기시키고, 소독하고, 마스크를 써도 안전을 담보할 수 없잖아요. 대면 수업을 밀어붙이는 게 정말 안전한 선택인가 큰 걱정을 했어요.
김수업
저도 최소한 한 번은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도 철 지난 생각이라는 걸 시험을 보고 나서 생각하게 됐어요. 기말시험을 본다니까 한 학생이 시험도 그냥 비대면으로 하면 안 되냐고 질문을 하고, 왜 그러냐고 했더니 시험장, 학교까지 오는 길이 걱정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유강연
한편으로는 인간관계의 문제인 것 같아요. 대면 수업 전까지는 누가 동기인지, 누가 선배인지도 모르고, 소속감이라는 게 없잖아요. 동기들 수업인데도 한동안은 ‘누구 씨, 안녕하세요, 누구 씨, 어떠셨어요’ 이런 대화가 일반적이었어요. 또 신입생들은 2, 3학년들 워크숍 작업에 스태프나 오퍼로 참여하거나, 학과의 유지에 필요한 일들을 하잖아요. 코로나 이후로 그런 걸 완전히 못 하게 했거든요. 수업도 비대면으로 하는데 수업 외적인 것을 대면으로 하는 게 말이 안 되니까. 1학년들은 수업 외에, 흔히 대학 생활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못 하게 된 거죠. 그러니까 이 친구들이 정말로 고립되어있더라고요. 좋게 얘기하면 학교생활이 여유로워졌어요. 수업 끝나면 할 게 없어서 방에 가 있거나, 오히려 카페로 몰리고. 학기 말에 상담을 해보면 어디 섬에 갇힌 것처럼 한 학기를 보낸 것 같대요. 그런 현상들이 좀 고민이 되더라고요. 전통적인 의미의 연극영화과, 제작 시스템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는 연극영화과 같은 경우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는 고민이 들었어요. 예전처럼 혹은 제작 방식의, 워크숍 중심의 커리큘럼이 이제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채연수
코로나 이후로 당연했었던 것들이 조금씩 달라지는 감각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예술학교에서 과제를 내 줄 때 되게 부담스러웠거든요. 학기 초에 페이퍼를 받으면, ‘선생님 과제 너무 많이 내주지 마세요, 저희 너무 바빠요.’ 내지는 ‘저희 점심시간이 없는데 수업 10분만 일찍 끝내주시면 안 돼요?’ 이런 걸 적어 내는 거예요. 수업도 들어야 하고, 제작을 위해서 이것저것 해야 하는 것도 너무 많고. 그러니까 항상 되게 부담스러웠는데 생각해보면 사실은 그게 당연한 게 아니라 변화가 필요한 지점이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미투이후의_예술학교 #예술학교의_현황 #학생예술가의_연극공부
채연수
예술학교의 현재 예술가를 길러내는 방식이라든지, 아니면 현장예술하고 얼마나 예술학교의 교육이 연결될 수 있는지 이런 지점들을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미투 이후의 학교 변화도 같이 포함해서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미투가 한창 진행일 때 예술학교에서 연극하는 친구들하고 수업을 했었는데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한쪽에서는 미투로 인해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는 반면에, 이 학생들이 듣는 수업은 여전히 변하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그리스 비극인 오레스테스 삼부작을 공연하는데 클리타임네스트라 연기를 하는 여학생에게 ‘얘는 그냥 미친년이야, 그냥 미친년처럼 연기를 해’라는 식의 지시가 여전히 내려오고 있어요. 그런 이상한 감각들이 공존하는 시기였죠. 저는 예술학교의 교육이 많이 변하지는 않은 것 같다는 체감을 하면서 강의를 했었거든요.
오학습
미투와 같은 변화가 실질적으로 일어나는 곳에는 진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 학교에서 있었던 세 가지 진통을 이야기를 드리자면, 하나는 희곡을 연구해서 발표하는 연기 수업이 있었어요. 희곡의 작가가 미투 때문에 문제가 되었는데 그걸 모르고 희곡 선택을 한 거죠. 중간부쯤에 왔을 때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생들이 만들어 둔 걸 포기 했었어요. 이전까지는 미투 운동이 있다고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학교의 문화나 교육의 과정에까지 이어지지는 않았거든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었죠. 다른 하나는 제 수업 때였는데, 연출 개론서를 선택했는데, 번역자가 미투 가해자로 지목된 거예요. 교재를 이미 산 사람도 있었고, 일부 학생 중에는 굳이 왜 교재를 바꿔야 하는지 생각하지 못한 학생도 있었어요. 저도 그걸 충분히 납득시킬만한 논리들을 쌓지 못하고 있었던 시기였고요.
지난 2학기 때 가장 큰 진통이 있었는데, 연극제작실습 수업이었는데 작품 자체가 초연됐을 때, 굉장히 호평을 받은 작품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시점의 성인지 감수성에서 봤을 때 여성 인물들이 굉장히 대상화되어있고 남성중심적인 작품인 거예요. 연출부 학생들이 문제제기를 했는데, 팀 안에 있는 남자 선배들과 강하게 충돌을 한 거예요. 그 수업을 담당한 선생님이 계셨는데, 조연출은 그 선생님의 현장 작업도 문제가 있다고 얘기를 한 거죠. 그 과정을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 선생님들도 충분히 고민하거나 교육이 있지 않았고, 있어도 충분치 않았다고 생각해요. 그런 공부가 학생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스킬이 되는데, 단순히 빈약한 언어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거죠. 이런 진통들을 겪으면서 ‘총체적으로, 지속적으로 공부하고 교육받는 노력이 필요하겠다, 같이 언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채연수
저는 미투 운동 이후에 일단 저부터 좀 바꿔야겠다고 생각해서 여성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희곡들을 읽게 하는 수업을 계속하고 있어요.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희곡 선택의 기준과 의도를 분명하게 전달해요. 셰익스피어를 수업할 때도 다른 관점에서, 예컨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그의 작품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음도 이야기하고요. 저의 수업은 대체로 한 학기는 서양희곡을 읽고, 한 학기는 한국희곡을 읽거든요. 그런데 한국희곡 중에는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적절한 희곡을 찾기가 퍽 어려워서, 서양희곡을 각색한 작품을 읽고 대조해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어요. 남학생들도 세상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수업인 것 같아서 좋았다는 반응을 들었던 적도 있고요. 그리고 연극과 같은 경우에, 기수문화가 강하고 이상한 체계가 있었는데, 근래에는 관등성명같은 문화들이 사라지고 선후배 사이에 존칭 쓰는 문화가 생겼어요. 특히 제작 중심의 학교들은 기수문화가 세잖아요. 학생들이 제작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 최근에는 서로 조심하는 문화가 확실하게 정착한 것 같아요. 또 학생들이 폭력적인 상황에 처하게 되었을 때 이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인 것 같아요. 어떤 단계를 밟아가야 하는지, 학과에서는 누구를 찾아가야 하고, 학교의 어떤 창구를 통해서 컴플레인 할 수 있고, 이런 단계들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조심하고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최근 1학년, 2학년 학생들의 이런 인식이 강하게 장착되어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고등학생 때, 미투와 같은 격변기를 겪었고, 페미니즘이나 젠더이론에 대해서 충분히 학습된 상태로 대학에 들어오니까 더 예민하고 예리한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에 제가 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여성학, 페미니즘 이론 같은 교양 수업들이 인기가 없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교양 수업이 되게 인기가 많아서 수강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학교 현장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수강
이번학기에 학생들에게 공연 실황을 보게 했어요. 학생들이 감상문을 보냈는데, 4학년들은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공연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라도 보니 좋네요.’ 그런 식의 감상이 있는데, 2학년 학생들은 공연이 너무너무 괴롭다는 거예요. 너무 여성학대적이고, 자기는 ‘이런 식으로 여성을 학대하지 않는 한국연극을 본 적이 없었다’는 거죠. 학생들 리뷰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든 거예요. 말씀하신 것처럼 1, 2학년일수록 이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김수업
저도 작품선정에 있어서 고민이 많은데요. 의식적으로 여성작가의 작품을 우선적으로 선정하기도 하고, 남성작가라고 하더라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들을 선정하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예전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시대적 한계도 같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나마 그 당시 평균보다 성인지 감수성이 한 걸음이라도 나은 형편이었다면, 그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셰익스피어 같은 경우에 이미 정점에 있기 때문에 그런 작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떻게 보면 학교라는 공간이 연극사적으로 의미 있었던 작품들을 다뤄주는 것이 필요하니까. 그 사람들이 가진 한계를 얘기하면서도 동시에 작품의 의미 혹은 작품의 가치 직접 보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주어야 한다는 고민이 있어요.
유강연
우리 학교 같은 경우는, 희곡이나 공연의 선택 이전에 훨씬 더 일차원적인 문제, 관계 맺기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가장 큰 변화는 매뉴얼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일이 터졌을 때 어떤 과정을 거쳐서, 누구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매뉴얼이 생겼죠. 그리고 교수들의 성인지 감수성 교육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일상의 변화도 있습니다. 수업 안에서 교수들이 ‘말조심 해야지’라는 의식이 생겼죠. 그런 면에서 변화들이 눈에 띄는 것 같고요. 하지만 ‘조심해야지’라는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인식으로 우리가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우리학교 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에서도 위계와 관련된 사건들이 있었어요. 교수와 학생 사이에 존재하는 위계, 성인지 감수성의 문제를 학생들이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표면적으로는 변화하고, 노력하고, 달라지고 있는데 근본적으로 다른 변화가 필요한 거죠.
‘교수’에 대한 역할, 지위, 위상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수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요. 표면적으로만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보이지, 실제로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공유하고 있나?’라는 점에서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는 내가 학생들과의 관계 설정을 잘하면 학생들끼리, 선후배끼리, 동료들끼리, 작업자로서 혹은 예술을 하는 입장으로서 조금 더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미투 시기를 겪은 학생들은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여전히 상처가 남아있는 것 같았어요. 그런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조직문화, 서열문화가 너무 피폐하게 스며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연극하는 것 자체를 굉장히 고통스러워하는 학생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밝아지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연극을 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김수업
예술학교 같은 경우에 다른 전공을 하고 있는데 연극을 교양 수업으로 듣고, 연극을 부전공으로 선택하는 친구들도 있더라고요. 자기 전공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가 다른 데서 길을 찾기도 하고, 그런 가능성을 열어두는 커리큘럼이 있어야 하는데 많은 경우에 전공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이 너무 많으니까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박수강
제가 이번 학기 희곡 창작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희곡작가가 되고 싶은데 희곡작가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평론가가 되고 싶은데 평론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였어요. 국문과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학과였고 분명히 창작 수업도 있는데, 커리큘럼이 너무 창작과 동떨어져 있는 거예요. 이 학과 역시도 예술가를 길러내는 학과인데 창작 수업이 하나 덩그러니 있으니까 학생들이 도대체 현장에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를 모르는 거예요.
유강연
저는 임용되기 전에 정말 많은 학교에 다녔는데 어느 학교에 가도 늘 받는 질문이 ‘선생님 대학로에서 공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였어요. 지방의 연극영화과를 다니는 학생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학로에서 공연하는 거거든요. 그러면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서울에 아는 사람이 있니?’, ‘없어요.’, ‘일단 거처를 마련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해야 하고. 혹시나 좋아하는 극단이 있다면 오디션을 보거나, 서울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는 재교육 프로그램을 다시 들으면서 서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하고 관계를 맺으렴.’ 제가 지금 말한 것들은 학기 중에 하고 있는 수업과 아무 상관이 없는 거예요. 이게 현장에서 활동하면서도, 지방에 강의를 하면서도 늘 들었던 자괴감이거든요.
오학습
조금 다른 맥락에서 이야기하자면, 저는 예술대학의 커리큘럼이랄까 학교의 교육이 오히려 현장과 유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현장을 쫓아가거나 현장에 나가기 위한 커리큘럼이 됐을 때 학교에서 할 수 있는 게 보수화되는 것 같거든요. 나올 수 있는 결과들도 그렇고. 연극을 공부하는 방식이나 접근도 현장에 나와서 바로 작업할 수 있게 하는 노하우를 알려주는 게 예술대학의 커리큘럼이 되어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유강연
학교 학생들의 워크숍을 보면 현장에서 하는 공연에 5년, 10년 뒤처진 느낌을 받아요. 젊은 학생들인데 현장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느낌을 받아요. 뭘 갖춰야 하나, 어떻게 이끌어야 하나 고민해보면 ‘컨템퍼러리하다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기본을 안 할 수도 없죠.
김수업
연극사 수업을 해보면 전공 학생들의 작품에 대한 이해가 되게 고정되어 있어요. ‘이거 예전에 입시학원에서 배운 내용 아닌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어요. 굉장히 오래된 자료나 그림을 가지고 온다든지, 표준화되어있는 어떤 틀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학교에서 깨뜨려주고, 도전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새로운 걸 시도하기보다는 예전 것들에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쉬워요. 저 스스로에게 부여한 과제이기도 해요. 어떻게 이 학생들에게 다른 관점, 다른 시선으로 보게 할 것인가.
박수강
입시를 짧게는 1년, 길게는 중학생 때부터 4년, 5년씩 하기에, 대학에 입학하면 ‘연극을 이렇게 해야 해’라는 규칙 같은 게 딱 형성이 되어 있어요. 그걸 깨부수기가 어렵더라고요. 현장에 친밀하게, 기민하게 촉각을 세우고 계신 선생님들은 그걸 깨려고 노력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학교도 많죠. 그러면 정체된 것을 계속 답습만 하는 그런 수업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학교마다 선생님의 스타일에 따라서 다르게 흘러가는 부분이 있겠죠.
최근에 제가 다니는 학교에서 교육과정 개편을 했거든요. 교과과정을 다 세분화시켜서 이론 수업은 줄이고 테크닉 위주로 수업을 재편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희곡을 어떻게 분석해야 하는지 모르는 막막한 4학년의 학생을 만나게 돼요. 예술대학은 기술과 기예만 남겨두고 인문학 수업을 증발시켜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수업
저도 지금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E대 같은 경우도 제가 하고 있는 수업이 거의 이론의 전부더라고요. 일개 강사가 연극영화과 전공의 이론을 다 맡고 있구나, 이런 부담감이 생겼죠. 아무튼 이론 수업 비중이 적다라는 걸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작품에 대해서 분석하고, 이야기하는 기회가 없다 보니까 새로운 것들을 시도해볼 기회가 적은 게 아닌가 싶어요. 교양 수업을 하다 보면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작품을 읽어내는 방식이 오히려 더 신선할 때가 있거든요. 작품 자체만 가지고 접근을 하게 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상식이라든지 다양한 배경지식을 통해서 작품을 읽어내는 거예요. 오히려 연극을 전공한 학생들은 그런 훈련이 많이 부족하죠. 정말 작품을 읽고 이야기하는 걸까, 라는 의문이 드는 거죠.
#학생예술가의_구체적인_고민 #새로운시대_새로운세대 #소진된_학생예술가의_삶
유강연
저희 때만 해도 연극을 늦게 하거나 남몰래 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지금 1학년들 같은 경우는 대체로 다 빨라요. 집안에 반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 때보다는 좋은 환경이라고 느꼈습니다. 많은 학생이 연극영화과 입학을 발판으로 ‘어떻게 현장에서 바로 활동하지?’라는 고민을 일찍부터 해요. 이미 1학년 때 소속사가 있는 학생들도 많고요. 실제로 학기 중에 소속사를 통해서 영화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요즘에는 많아요. 물론 ‘4학년 때까지 훈련 열심히 하고 연극을 하고 싶어요’ 하는 진지한 학생들도 있죠. 그런데 많은 학생이 연기를 직업으로 생각하고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조급함을 갖고 있어요.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달라요. 많은 다른 교수님들은 ‘왜 활동을 못 하게 해요? 기획사에서 누구 관심 있다고 하면 빨리 보내서 활동하게 하면 학교 이름도 알리고 좋은 거지’라고 얘기하시기도 하고. 저는 그래도 자기의 시간을 갖고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찾고, 사색과 훈련의 시간을 갖길 원하는데 그게 학생들한테 받아들여질 시기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수업
엄청난 입시경쟁을 뚫고 들어오는 요즘 학생들은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교양 수업을 하다 보면 그렇지 못한 학생들이 가끔 있거든요. ‘부모님의 반대를 뚫고 갔어야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도 있고요.
채연수
문제는 연극이 너무 하고 싶어서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는데, 3, 4학년 되면 연극에 진절머리가 나는 거예요. 그런 학생들이 태반이죠. 더 이상 연극을 하고 싶지 않은데, 연극과는 타전공으로 복수전공하거나 이탈하기도 어려워요. 대부분 제작실기 과정에서 너무 혹독한 시간을 보내면서 상처를 받고, 그런 과정에서 ‘이거는 내가 할 짓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을 낸 거죠. 이 학생들이 하는 고민이 ‘나는 연극밖에 배운 게 없는데’ 교양수업도 제대로 들어보지 못하고 연극만 했으니까... 그래서 다른 직업에 도전할 만한 역량이 자기에게 충분하지 않다고 회의적으로 생각해요. 공연예술이나 TV, 방송, 영화를 다 포함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확률이 너무 낮잖아요. 학생 60명이라고 치면 한 학년에 제대로 활동을 할 만한 학생은 두세 명 정도로 보니까요. 그런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까 ‘나는 할 수 있어’가 아니라, ‘나는 이제는 못 할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이런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기가 저도 너무 막막한 거예요. 이미 중학교, 고등학교 때부터 너무 많은 시간을 써버린 친구들이라서. 다른 길을 제대로 제안해주지 못할 때 선생으로 자괴감이 들어요.
박수강
‘현장에서 제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런 얘기를 물어볼 때가 고통스러운 상황이죠. ‘대학원에 가도 될까요?’ 이런 질문을 듣기도 하고요.
채연수
대학원에 오는 학생들이 많아졌어요. 더 배우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이런 열정이 있어서 온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되니까 남은 게 대학원인거죠. 또 2년의 시간이 지나고. 시간만 흘려보내면서 또 그때 가서 ‘뭘 해야 할까요?’ 똑같은 질문을 내뱉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아프죠.
#현장에서_어떤_관심을_가져야_할까 #학생예술가들을_위한_플랫폼
김수업
다른 분야를 보면 인턴 같은 제도가 있잖아요. 예술이라는 분야의 특성상 학생예술가가 대학로 현장에서 공연하려면 어떤 프로페셔널한 수준에 도달한 사람만 거기에 갈 수가 있어요. 그게 아니라 학생이라는 그 위치, 그 수준 그대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들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다른 분야에서 하고 있는 인턴제도들을 연극계에서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재단이나 지원을 받아서 하는 프로젝트라면 티오(T.O.)를 만들고, 학교와 극단이 연계된다든지 이런 식으로 해서 최소한 한 번씩은 경험해볼 수 있는, 그래서 아까 말씀하셨던 ‘대학로에서 공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아주 작지만 구체적인 답을 제시하는 거죠. 직접 경험해보고 이게 좋아서 더 열심히 할 수도 있고, 아니다 싶어서 빨리 다른 길을 찾을 수도 있고, 이런 기회를 제공하는 통로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유강연
졸업하고 나서 실제로 활동하는 현장 작업자들을 만나기까지 한 3년에서 5년, 그 사이를 채워줄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는 게 예전부터 많은 선생님이 해오던 말씀 같은데요. 원론적으로는 학교가 레퍼토리 극단이나 극장을 운영해서 졸업생들을 모아 현장으로 보낼 수 있는 중간 역할을 해주면 좋죠. 지금은 그게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졸업생들은 극단의 연수단원으로 들어가거나, 차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살펴보는데요, 차세대도 갓 졸업한 학생이 들어가기는 어렵거든요.
정진세
십년 전만 해도 학교 이름을 내건 레퍼토리 극단이 있었는데, 아마도 이 극단 또한 운영의 문제, 공정함의 문제 등으로 사라졌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 미투 전후로는 기성 극단에 연수단원으로 들어가는 게 위계 폭력과 착취에 노출된다는 이유로 많은 젊은 예술가들이 꺼려하기도 하고요. 취지가 좋았지만, 연극계의 문제들로 인해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던 제도들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미투 이후의 버전으로 갱신하는 것이죠.
유강연
제가 학생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서울연극센터의 ‘플레이업 아카데미’나 ‘워크숍’이 있다는 정도예요. 그런데 많은 졸업생이 ‘저희 같은 사람은 경력이 없어서 넣어도 안 돼요.’ 이렇게 말해요. 그런 부분이 완화되거나, 졸업하고 1~3년 사이의 예술가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근본적으로는 학생예술가들을 위한 구조적인 공간이나 플랫폼이 없다는 게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젊은 연극제’도 그런 공간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은 학생들이 젊은 연극제를 대학로에서 삼일 정도 공연할 수 있는 기회로만 생각하고 있다는 데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물론 그것도 좋은 기회겠지만요. 교수들이 적극적으로 책임지지 않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겠지만 한편으로는, 학생들 또한 스스로 그런 공간,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박수강
지금까지 예술학교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이후에는 예술학교 학생들이 당사자의 입장에서 논의할 예정인데요, 많은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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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정진세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장,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공연예술 현장에서 창작과 비평 등의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lilytulip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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