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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예술가, 스스로를 말하다

[일그러진 학생 예술가의 초상] #학생예술가편

정리_강보름

187호

2020.09.24

일시 : 2020. 8. 19. 수. 오후 1시 30분
장소 : 온라인 화상 회의
참석 : 김강남, 이강북, 박강동, 정강서
사회/정리 : 강보름(본지 편집위원)
#예술학교 #학생예술가 #예비연극인 #등록금내는 소비자
김강남
안녕하세요. A대에서 연기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이강북
안녕하세요. B대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하는 학생입니다.
박강동
안녕하세요. 저는 C대에서 연출 전공하고 있습니다.
정강서
안녕하세요. D대에서 연기 전공하는 정강서입니다.
강보름
연극 전공을 하는 학생예술가로서 본인의 정체성을 예비연극인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현장의 일원으로 느끼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김강남
제가 연극인이라는 생각은 잘 안 들어요. 학교에서 연극을 하고 있긴 한데, 관객층이 항상 입시생, 가족, 학내 구성원으로만 되어 있어서 폭넓은 관객층과 만나는 게 아니잖아요. 연극인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예비연극인에 가까운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혹은 예비연극인이 되고 싶지만, 등록금만 내는 소비자인 것 같을 때도 있어요. 교육 서비스를 이용하는 측면에서요.
이강북
저도 공연하면 대부분 관객층이 지인들 아니면 입시생이다보니 교내에서 연극인이라고 느낄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연극뿐만 아니라 영화 쪽도 아는 사람끼리만 찍고, 보는 사람도 다 같은 사람들이다 보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간혹가다 외부 작업에 간다고 해도 누구누구 교수님 제자로 배우는 느낌으로 가지, 일에 참여한다는 느낌으로 가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예비연극인이라고 하는 게 가장 근접하지 않나 싶어요.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등록금을 내는 소비자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정강서
저도 동의해요. 학교 학생들이 졸업하고 나서 전부 연극을 해야겠다, 아니면 영화 쪽으로 가야겠다 하는 사람들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단순히 연기가 정말 재미있어서 온 사람도 많고 다른 걸 하다가 온 사람들도 많고 되게 다양해요. 그래서 현장이라고 느껴지지는 않아요. 밖에서 작품을 하더라도 거의 교수님 소개로 가는 경우가 많고, 보통은 학교 내에서만 작품을 하고 졸업하고 나서 서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창작한 것을 가지고 나가요. 그래서 예비연극인이 맞는 것 같아요.
박강동
저희 학과는 영화 전공생과 연극 전공생이 함께 수업을 듣고 있고요. 커리큘럼도 졸업 공연, 졸업 영화 외에는 크게 차이를 두고 있지 않아서 예비연극인, 예비영화인이 구분된 상태는 아니에요. 그런데 수요층을 봤을 때 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보다는 영상을 하고 싶어 하는 학생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는 교육 서비스와 관련해서 되게 많은 생각을 했어요. 실기 수업을 하느냐 마느냐, 등교를 어떻게 하느냐에 대해서 학교와 학생회 측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학교가 교육기관이 아니라 사업체라는 인상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예술학부 입장과 학교를 운영하는 사업체로서의 행정이 부딪힐 때가 많아요.
코로나 시국과 관련하여 학내에서 전달한 여러 공지사항들 (각 학교 홈페이지 화면캡쳐)
#등록금과 커리큘럼 #부족한 실기실 #능동적이지 않은 태도 #바쁜 학교생활
강보름
네 분이 공통으로 말씀해주신 게 사업체인 대학에 등록금을 내고 교육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라고 느낀다고 하셨는데 그 얘기를 더 나눠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술학교에서 지금 배우고 있는 커리큘럼이 지금 하고 있는, 혹은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연극 활동과 밀착되어 있다고 느끼고 계신가요?
박강동
커리큘럼 부분도 있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교내 연극 활동은 참여하는 사람도 졸업을 위해서 수업을 듣는 거지, 진심으로 어떤 주제와 텍스트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너무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느낌을 받아요. 그게 학교에서 작업하면서 아쉬운 부분이에요. 예를 들면 어떤 주제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고, 공연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생산적인 스터디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부분이 있는데, 교내 작업은 주제에 대해 깊게 탐구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김강남
현장에 나가보지 않아서 학교에서 배운 것들이 어떻게 연계될 수 있을지 아직 감이 잘 오지 않아요. 그런데 학교 커리큘럼을 보면 기술적인 측면에 치우쳐 있다고 해야 할까요, 수업에서 그냥 춤을 배우고 노래를 배우고 연기 화술 훈련을 하는 식이지, 예술에 대해 밀도 있고 심도 깊게 고민하거나 공부하는 느낌은 잘 못 받아요.
정강서
학교마다 다른 것 같아요. 오히려 저는 학교에서 심도 있게 배운다고 생각하거든요. 졸업한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학교에서 들었던 화술 수업, 호흡과 발성 같은 수업들이 기반이 된다고 해요. 교수님들이 많이 알려주셨기 때문에 밖에서도 극단에 들어가거나 연기 활동을 하면서 도움이 많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물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끼리만 모이면 좋은데, 그게 아니라 ‘나는 학교 졸업만 하면 돼’ 하는 학생들이 많이 모이면 수업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이 모이느냐에 달린 거죠.
지난 7월, 국회에서 있었던 대학교 관련 공론의 장 포스터

지난 7월, 국회에서 있었던 대학교 관련 공론의 장 포스터

강보름
혹시 수업이 너무 타이트하고 스케줄이 빡빡해서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 아닌가 궁금해요. 일단 원래 수업의 목적 자체가 기술적인 테크닉만 배우는 건 아니잖아요. 예술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 테크닉이 만들어진 것일 텐데, 수업시간이 너무 짧거나 학생 수가 많아서 그 안에 담긴 고민이나 철학을 제대로 익힐 시간이 부족한 것 아닌가 싶어요. 등록금도 일반 대학에 비해 비싸잖아요. 그래서 자꾸 수업의 질을 따지게 되는데, 등록금에 비해 충분히 뭔가를 고민하고 배우고 있다고 느껴지는지가 궁금합니다.
이강북
저희는 커리큘럼 자체가 고등학교처럼 짜여 있어요. 세부전공 빼고는 모든 시간표를 교수님들이 다 짜주시거든요. 다른 과 친구들보다 시간표 자체도 엄청 타이트한데, 방학 때도 수업을 추가로 하기 때문에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실기실도 많이 쓰고 디자인과이다 보니 제작소도 많이 써요. 학생 입장에서 쉽게 못 쓰는 물건이나, 외부 현장에 없는 물건들이 오히려 학교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학교 인프라가 훨씬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외부에 나갔을 때, 프로들만 모여 있는 작업인데 ‘어떻게 학교보다 시설이 낙후되어 있지? 왜 시스템이 안 되어 있는 거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는 더 꼼꼼히 준비하고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들일 수 있는데, 학교 밖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거죠. 그런데 코로나 터지고부터는 대면을 못 하게 되면서 실기수업이 아예 안 되니까 등록금이 진짜 아깝다고 생각했고, 휴학하는 친구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박강동
저는 이것도 학교마다 다르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저희는 예술대학이 일반 대학 에 속해 있어요. 예술대학 학생은 실습지원비라는 명목으로 100만 원을 더 내는데, 그것에 비해서는 제공받는 것이 전혀 없다고 느껴요. 실습실도 부족하고 제작 수업에 대한 지원도 많이 없는 상태에요. 수업마다 예산이 없어서 프로젝트 하는 팀들이 개인적으로 지출을 많이 하거든요. 학교에서 어렵게 작업하다 보니까, 외부에서는 오히려 좀 더 자유롭다고 느껴요. 환경도 더 괜찮고요.
학교 측에서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 입장을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론 본인이 느끼는 불편함을 크게 목소리 내서 말하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 다니면서 되게 답답했던 지점 중 하나에요. 어떤 의견을 수렴할 때도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편은 아니에요. 그래서 환경이 개선되는 데 불리한 지점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강북
사실 학생들이 교수님들 눈치를 안 보려야 안 볼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저희도 워낙 소수로 이루어진 과이다 보니 교수평가를 비판적으로 하면 찾아내는 교수님들도 있어요. 그걸 수업 때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시기도 하고요. 학생들은 불만이 있어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다들 크게 움직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김강남
저는 일반 대학도 다녀 보고 예술대학에 진학한 케이스인데요, 두 학교의 스케줄을 비교해보자면, 일반 대학은 수업이 끝나면 온전히 저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고 기껏 해봐야 팀플 같은 일정이 있어요. 예술대학 같은 경우에는 수업이 끝나면 바로 연습에 들어가서 새벽까지 하고, 아침에 바로 또 수업을 들어가는 생활이 반복돼요. 확실히 예술대학에서 자기 시간이 없는 것도 맞아요. 앞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교수님의 영향력이 워낙 세고요. 이 바닥이 좁다는 것 때문에 강력하게 나서서 반기를 들기 힘든 문화가 자리 잡고 있어요. 서로서로 뒷얘기 나오는 것도 너무 많고, 학생 사회도 너무 좁아요. 민주적인 자치 기구 활동도 일반 대학에 비해 너무 축소되어 있고, 너무 제약이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강동
필연적으로 모든 예술은 학생 스스로 체화하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수업은 일주일에 6-8시간밖에 안 되지만 그 외에 본인이 수업에서 배운 것을 따로 익히려면 연습실이 필요해요. 근데 학교에서 안 된다고 하면, 결국 학생들이 자기 돈을 내서 외부 연습실을 빌리라는 게 되잖아요. 그런데도 학생들은 그 시간이 필요하니까 더욱 불특정 다수가 오가는 외부 공간으로 나갈 수밖에 없어요. 학교만 아니면 학생들이 어떤 상황에 내몰려도 상관없다는 건가? 이런 불만이 제기되는 거죠.
점점 더 개인화되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학생 입장에서도 학교가 나에게 해주는 게 없으니 나도 빨리 외부로 나가겠다는 것도 있어요. 그렇게 말하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고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대학교 등록금 관련한 기사들 (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미투운동이후의 학교/교육/학생 #코로나시대의 수업
정강서
저는 미투 이후에 학교의 판도가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직접 겪지는 못했지만, 선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많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해요. 영향력 있는 교수님 아래서 눈치 보고 잘 보여야 하는 게 분명히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사라지고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오히려 조심스러워진 부분도 있다고 해요. 학생들이 좀 더 자유롭게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1학기는 코로나 이후에는 거의 줌으로 수업을 했어요. 공연은 선택이었는데, 비대면으로 낭독공연을 하거나 재학생들만 거리두기 하면서 볼 수 있게끔 했었어요. 저희 팀은 줌으로 공연을 했는데 사실 학생들은 불만이 엄청 많았거든요. 400만 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면서 배우는 건 없고 그냥 대화 나누고 공연하는 게 끝이니까 휴학하고 싶다는 친구들도 되게 많이 생겼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라 또 학생들이 불안에 떨고 있거든요. 그래서 앞으로 학교에서 확실하게 방역을 해주고 모여서 해도 된다는 확답을 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자꾸 하지 말라고 하고, 하고 싶으면 너희가 책임져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거든요.
박강동
페미니즘 운동이 미투를 계기로 대중화되면서부터 분위기가 좀 달라졌던 것 같아요. 연출전공의 여성 동료들이 연기전공 여성 배우들과 작업 과정에 있어서 서로에게 원했던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편하게 하고 있어요. 그게 19, 20년도 들어서 가시화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강북
저희 학교는 몇몇 교수님들의 파워가 너무 세서 그분들이 인정을 해주지 않으면 이 분야 전공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교수님들 중에 가스라이팅 하시는 분들이 은근히 많더라고요. 이 판이 좁은데 “지금 내 라인을 잘 타지 않으면 과연 네가 나중에 외부로 나가서 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워낙 가스라이팅을 하니까, 사실 학교가 전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불안감에 교수님이 하라고 하면 전부 다 해야 되는 줄 알아요. 어느 순간 수동적으로 ‘아, 이 교수님은 이런 걸 좋아하시니까 이렇게 해 가야겠다’ 하고 ‘교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으니까 하면 안 되겠다’ 하고. 생각해보니 이런 일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이것 때문에 우울증 치료를 받는 친구들도 많았어요. 미투 이후로 좀 더 조심하는 분위기가 있긴 하지만, 개개의 교수님들은 아직까지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수업에 대해서는 크게 불만은 없지만, 시키는 것만 따라 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일까, 하는 의문이 최근에 많이 들었어요.
#자기존중이_가능한가? #연극의 폐쇄성 #예술학교의_현재는_예술계의_미래인가 #장래의_나
강보름
학교생활이 자기 존중이 가능한 환경인지 궁금해요. 치열한 입시를 거쳐서 여기 들어왔는데, 과연 내가 졸업하고 계속 예술 활동을 할 것인가를 특히 코로나 이후에 많이 고민하고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연극계하고 예술학교가 굉장히 밀착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그런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게 가속화될 것 같다는 위기감도 있어요. 그렇다면 연극계가 각성해야 하는 문제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교수님들이 학생들에게 일을 시키거나 행사에 동원하는 방식, 마치 예비 자원으로 소모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코로나 이후에 과연 학교-현장이 연결된 생태계가 지속 가능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박강동
연극의 폐쇄성이라는 게 있잖아요. 일반 대중들이 쉽게 연극을 접할 수 있지도 않고, 선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특정 관심층 아니면.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이번 코로나가 터지고 공연을 이어가는 것에 되게 싸늘한 반응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게 똑같이 학교에 적용이 되는 것 같아요. 연극 현장도 그렇지만 학교도 마찬가지로 항상 보는 사람들만 보고, 만드는데 코로나 이후 예술학교나 현장이 전반적으로 이런 고민을 다시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정강서
저는 영상으로 연극을 한다는 것에 회의감이 많이 들더라고요. 앞으로 내가 졸업하고도 연극 무대에 못 서고, 이런 식으로 공연을 해야 한다면 정말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물론, 학교가 너무 먼 곳에 있어서 오지 못했던 지인들이 줌을 통해 공연을 볼 수 있게 돼서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근데 막상 연기하는 배우나 연출들은 이건 정말 아닌 것 같다, 연극만의 묘미가 있고 부딪히면서 오가는 희열감이 있는데, 그걸 아예 못하고 기계적으로 대사만 주고받고 있으니까 이건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다면 공연을 올리는 것보다 장면 분석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어요. 희곡에 대해서 심도 깊게 분석한다든가 토론하는 게 오히려 이 시기에 더 얻어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공론과 성토의 장이 되어버린 예술학교 엘리베이터 안의 대자보 풍경
김강남
전보다 수업의 질이 너무 떨어진 것 같아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학교가 12시 이후로는 개방하지 않겠다, 주말에는 개방하지 않겠다는 제약을 두면서 연습이 좀 더 효율성을 가지게 된 측면도 있어요. 그전에는 무턱대고 밤샘 연습하고 일상에 지장을 줄 정도로 했던 것들이 코로나 이후로 응축되면서 좋아진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근데 또 여러 불확실성이 많아서 학생들이 불안에 떨고 있어요. 갑자기 비대면으로 수업한다고 학교 측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서 통보하는 거죠. 연습실도 교수님이 노래를 녹음해서 제출하라고 하면 학생들은 어쩔 수 없이 외부 연습실을 찾아가야 하는 거죠. 이런 게 반복되는 애로사항이에요. 학생들의 상황을 파악하거나 그들의 속내를 듣는 노력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요.
이강북
코로나 이후에 선배들이나 교수님들의 작업이 취소되는 경우가 너무 많고, 무기한으로 연장된 것도 많아요. 시장 자체가 죽은 게 너무 잘 보이더라고요. 저는 졸업하면 연극 쪽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과연 이쪽 길로 가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너무 불안정한 거죠. 실제로 연극하는 분들 중에 투잡 하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래서 좀 더 안정적으로 방송국에 취직하거나 다른 미디어 쪽으로 가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진로 자체를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주변에는 연극 말고 다른 공부를 시작한 친구들도 많고요. 연극을 한다 해도 디자인을 하되, 상황 자체에 영향을 많이 받는 불안정한 연극은 안 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많아요.
김강남
저도 코로나 이후로 연극에 미래가 없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는데요. 대안이라고 하는 것들이 다른 미디어나 영상파트이다 보니까 결국 어쩔 수 없이 답은 영상예술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동시에 이걸 공연이라고 할 수 있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학교에서도 관중 없이 공연하고, 카메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는 식으로 공연을 했는데, 영화랑 뭐가 다른 거지?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요. 연기 전공 학생들은 연극, 영화, 방송 중 선택하는데 이번 학기에 영화로 간 학생들이 압도적으로 많았어요. 연극은 이제 정말 죽어간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학교나 교수님들을 보면 대안이 없어요. 그런데 저는 이번 학기에도 연극 제작을 선택했어요. 2학기도 1학기처럼 우물쭈물하다가 관객 열 명 받아서 하거나 무관중으로 온라인 스트리밍하는 식으로 진행할 것 같은데, 저는 지금 되게 암담하고 잘 모르겠어요. 미래에 대한 고민도 너무 크고 영화로 가야 하나? 생각도 정말 많이 하고 있고요.
박강동
한편으로는 코로나 이후로 앞으로 연극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학생들도 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형식에 대한 고민이죠. 다양한 방식의 공연이 있는데, 그걸 별로 원치 않는 학생도 있었는데, 최근 들어 이전의 방식으로 공연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면서, 새로운 생각들이 열리고 있지 않나 해요. 외부에서는 어떤 사회적인 문제나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에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즉각적으로 소통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학교 내에서는 아니어서 그 부분이 좀 답답했었는데 그것도 차츰 변화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떤 현장성, 실제로 얼굴을 맞대고 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없어진 건 정말 아쉽고 불만이 많은데, 형식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굉장히 새로운 작업을 하게 되고 다른 방향으로 논의가 발전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은 개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강보름
지금 학교는 만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연극의 형식에 대해 학생들이 새롭게 고민하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셨어요. 학교나 교수들 중 누구에게도 해답이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미투 이전부터 계속해서 문제가 되었던 연극의 폐쇄성과 관련된 부분이 오히려 코로나 이후에 학생예술가들의 주체적인 고민으로 연결되는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다만 비대면 수업 위주라서 등록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는 학교 당국과 학생 주체가 다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비대면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오랜시간 비어있는 학내 실습실 모습
#다시 돌아가면 예술학교에 입학할 것인가
정강서
다시 돌아간다면 예술학교에 오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일반 학과에 가서 경험해보고 싶었던 다른 것들도 많거든요. 학교가 지역에 있는 게 장점이자 단점인데, 놀거리도 없고 학교에 있는 시간이 진짜 많아요. 그래서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다 자취를 하거든요. 너무 늦게 끝나기도 하고요. 다 같이 으쌰으쌰해서 연극을 하는 건 좋은데, 개인 시간이 많이 없다 보니까 나름의 고충이 있었거든요. 나중에 연극이나 영화 쪽을 간다 하더라도 요즘은 다른 과에 가서도 충분히 연기를 배울 수 있고, 학원에서도 잘 가르쳐주니까 다른 곳에서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학에 와서 큰 걸 기대했는데 막상 와보니까 입시랑 별반 다를 게 없다고 느껴지는 부분도 많았어요.
박강동
저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데요. 예술학교에 입학하는 이유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나의 작업을 하고 싶어서인 거잖아요. 학생 개개인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작업으로 승화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학교에서는 그런 작업을 어떻게 하는지는 잘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아요. 오는 2학기는 아마도 더 힘들어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학교 내에서 연극 작업을 멈추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이강북
공감이 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학교에 다시 입학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물론 수동적으로, 교수님 입맛대로 공부하는 것, 기술적인 부분만 단순하게 배우는 것, 개인 시간이 너무 없다 보니 대학생인데 여행 한 번 못 가봤다는 것 등의 아쉬움도 있어요. 오로지 연극만 하는 사람들이 돼서 아쉬움은 큰데, 그럼에도 예술학교에 오고 싶은 건, 이곳은 저처럼 예술을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잖아요. 그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 자체가 생성된다는 게 저한테는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다양한 사람들과 있다 보니 다양한 생각들을 배운다는 장점이 있어요. 물론 인문대나 이공계를 가도 그런 사람들이 있겠지만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은 예술대에 훨씬 많잖아요. 오늘 온라인으로 이야기 나누면서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들이 다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어느 대학이나 연극하는 쪽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에 위로가 되기도 했어요. 이런 사람들이 좀 더 많이 모여서 불만 사항이나 아쉽게 생각하는 부분을 이야기하고, 학교 측에서도 빨리 피드백해 주는 태도를 보여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됐어요.
김강남
저도 오늘 다양한 학교의 다양한 전공을 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고 공감이 가는 부분도 있었어요. 한편으로 내가 경험한 것과 정말 다르구나 하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다시 돌아가도 예술학교에 입학할 것 같아요. 왜냐면 코로나 전에는 지금보다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훨씬 더 높았고 분명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예술 활동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직까지 인맥이나 학연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걸 너무 많이 봤기 때문에 그런 기회가 조금이라도 있는 곳을 택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상황에서도 학생들이 어떻게 우리의 목소리를 내고, 어떻게 더 학교 문화를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강보름
오늘 네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웹진 연극in에서는 어떤 목소리를 듣고 고민을 이어 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동시에 같은 학생예술가로서 학교생활에 치이지 않고 어떻게 주체적인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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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름

강보름 프로젝트 레디메이드 연출가
연출작으로 <레디메이드 인생>, <우리가 고아였을 때>,<모던걸타임즈> 등이 있다.
rkdekdzh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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