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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엄마/예술가가 바라보는 이 시대

[홈 스윗 홈] 집의 재발견

황재희_배우

192호

2020.12.03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아침 7시 36분.
키즈노트 키즈노트1) 알림이 울린다. “재원생 학부모 코로나19 양성판정 안내- 재원생 학부모님 중 한 분이 코로나19 양성판정을 받으셔서 이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영유아 등원에 참고하여 주세요. 자세한 사항은 다시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엄마들의 단톡방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큰 아이(6세)와 작은 아이(4세) 반까지 두 개의 단톡방이 각기 다른 양상을 띠었는데 둘 다 무겁고도 어두웠지만, 활기가 넘쳤다. ‘개인정보법에 근거하여 누군지는 알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어느 반인지는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거 아닌가요, 급히 연차를 써서 아이를 찾으러 가려구요, 저 지금 응급환자 보러왔는데 이분을 봐도 되는 건지 참 어렵네요, 할머니 부를까 하다가 접촉자만 더 늘릴까 봐, 저도 아이들이랑 분리해서 마스크 꼭 하고 계시라고 했어요, 저희도 모두 자가격리 해야 할까요 등등’

때마침 남편이 지방으로 공연을 떠나서 동료 배우들과 접촉 중일 텐데 어쩌지? 남편에게는 얼른 연락하여 사실을 알리고 마스크를 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였다. 어제 마리와 엄마가 함께였는데 어쩌지... 엄마는 유방암 판정을 받고 항암 치료 중이시다. 전염되면 고위험군이므로 치료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아이들과 지금 집에서 마스크를 하고 있어야 하나. 머리가 아프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린 그림 : 코로나 보다 강력한 웃음 바이러스

집에서 아이들과 함께 그린 그림 : 코로나 보다 강력한 웃음 바이러스

그리고 아침 9시 33분.
“재원생 학부모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한 폐쇄안내- 현재 재원생 학부모 코로나19 확진으로 인해 아이는 오늘 검사를 할 예정이며 검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본 원은 구청의 명령에 따라 일시 폐쇄합니다. 코로나19 관련 어린이집 폐쇄기준은 재원아동 또는 종사자가 확진자 또는 접촉자인 경우 시.군.구청에 신고, 시설 일시폐쇄(출입금지) 조치입니다. 이에 양해 부탁드리며 검사 결과는 다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엄마들은 어느 반인지도 알았고, 아이의 부모 중 ‘엄마’가 확진자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동선이 분명히 겹치는데 왜 선생님은 우리반과 동선이 안 겹치니 안심하라고 했는지, 분노한 엄마들도 있었다.

밤 8시 46분.
“(생략) .... 현재 원아는 자가격리 중이며 판정결과는 밤늦게나 새벽에 나온다고 합니다. 결과가 나오는 대로 공지를 통해 대처방안을 안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두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힘드시더라도 외출을 자제하시고 결과를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토록 손에 땀을 쥐며 키즈노트 알림을 기다린 적이 있었던가.

밤 9시 36분.
“오늘 원아 판정결과는 예상보다 늦을 것 같다고 하시네요. 내일이나 모레 알려주겠다는 안내를 받으셨다고 합니다. 오늘 확진자와 접촉자가 많아 검사 건수가 늘어나서 안내가 늦어지나 봅니다. 어린이집에서는 안내를 기다리지 않고 내일 이른 시간에 보건소 측에 문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밤 9시 58분.
“어린이집의 일시 폐쇄로 교직원도 자택에서 대기 중인 상태입니다. 그러나 부득이하게 긴급돌봄이 필요한 원아가 있을 시 담임교사에게 알려주시면 당직교사를 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긴급돌봄 시간을 함께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의 얼굴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 아이가 제발 무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랐다.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기
확진 판정을 받은 아이의 엄마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아이를 안아줄 수도 없다. 아이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 같은 엄마로서 피가 끓는 듯 했다. 지난한 이 고통의 시간은 도대체 언제쯤에나 끝이 날까.

미사일처럼 빗발치던 엄마들의 메시지가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그래, 타인의 고통은 두 번째 아니 세 번째쯤이다. 다른 원에서는 분란이 일어나 퇴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확진자가 아닌데 확진자로 지목이라도 당할라치면 명예훼손으로 당장 고발하느니 어쩌느니 그런단다. 새벽에 잠이 깨곤 하였다.

무서운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일을 못 하게 되면 어쩌지. 아이가 있는 집의 부모들은 특히 더 조심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어떻게 처신을 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이게 누구의 잘못인가?’ 소스라쳤다. 나 역시 남을 원망하고 탓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는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지난 반세기 동안 동물로부터 시작된 감염병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광우병, 에이즈, 말라리아. 백신도 소용없다. 코로나도 변종되어 계속된다면 장기간 우리와 공존할 것이다. 증오와 편견은 한 국가를 넘어선 세계적 문제이다. 나 또한 누군가에는 감염의 원인일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처럼 아주 빠르고 조용히 타인을 향한 혐오와 나를 향한 혐오가 퍼진다. 우리는 과연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지난 2월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동안 인이가 집에서 반 친구에게 쓴 편지 “개나리 보러가자. 코로나 때문에. 건강해. 잘 지내요”
지난 2월 코로나 때문에 유치원에 가지 못하는 동안 인이가 집에서 반 친구에게 쓴 편지
“개나리 보러가자. 코로나 때문에. 건강해. 잘 지내요”
나는 예술가로서 엄마로서 아빠로서 방향성을 고민한다. 무대에 오르는 객체로서, 연대하는 노동자 연극인으로서, 오로지 우리 부모들만 쳐다보는 아이들의 커다란 우주이자 세계로서, 과연 어떻게 나아가야할까?
함께 예술하는 우리 가족
지난했던 여름날 남편은 두 편의 공연을 준비 중이었고 드라마 촬영도 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에 바로 나와 큰 딸이 함께 출연하기 때문에 엄청 바빴다. ‘여름방학’ 이건, ‘거리두기 단계 격상’ 때문이건 간에 둘째 아이까지 합하여 우리 넷은 아침부터 연습실로 출근했다. 저녁 땐 아이와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연습을 더하였다. 연출부도 겸하였기에 밤에는 연습일지를 작성하였다. 몸을 많이 움직이고 소리도 많이 내었기에 연습을 마치면 마스크가 침과 땀으로 푸욱 젖었다. 어떻게 두 아이와 함께 마스크를 끼고 연습실 여기저기 떠돌며 그 시간들을 버텼을까.
인형을 뒤집어쓴 딸 인이와 나.

인형을 뒤집어쓴 딸 인이와 나.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자 인형엄마 엄정애 선생님, 독립공연예술가들과 함께 인형을 제작하고 인형극을 발표함으로써(온라인 스트리밍) 워크숍을 마무리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모두들 강의실에 남아 또는 집으로 가져가서 인형을 만들기 바빴다. 집에서 무언가 할 때면 항상 아이들이 자그마한 손으로 나를 돕는다. 인형극 발표 때도 큰 딸 인이는 앞다리를 맡았다(나는 히말라야의 야크를 만들었는데 인이는 앞다리, 나는 뒷다리).

인이가 출연한 남편의 공연은 런타임이 장장 세 시간이어서 공연이 있는 날 아이의 일정을 따라다니기 바빴다. 가정보육과 홈스쿨링을 하고 특별활동도 안전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도왔다. 부모들은 공감할 거다. 아이들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역수칙을 지키는 적응력은 정말이지 매우 놀랍다. 그래서 더욱 미안하고 짠한 마음이다.

상당수가 코로나 시대 어린이집과 유치원이 무조건 휴원하는 줄 아는데 그렇지는 않다. 부모가 일을 하면 아이를 돌봐줄 시설이나 도우미가 필요하기 때문에 대부분 ‘긴급보육’이란 형태 아래 운영된다. 특히 영어 유치원과 같이 고액의 수업비를 지불하는 사립유치원에서는 커리큘럼 진행이 중요하기 때문에 - 꽤나 위험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 아이들이 등원하는 걸 보았다. 코로나 시대에는 교육과 마찬가지로 보육에도 많은 고민과 선택과 결정이 필요하다.

우리 가족 역시 코로나를 뚫고 악착같이 살았다. 그러는 동안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친정어머니는 유방암 판정을 받았다. 참 많이 울고 웃었다.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어떻게 과연 이 어렵고 힘든 시기를 견디어냈을까. 사람과 바이러스가 한데 뭉쳐서 살고 있다.
그래도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집에서...)
띠리링. 11월 20일 금요일 아침 9시 26분
“정상 등원 안내- 원아와 가족의 검사결과 ‘음성’판정이 나와 11월 23일(월)부터 어린이집이 정상 운영됨을 알려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첨부자료로 확인바랍니다. 모두가 마음 졸이며 기다리셨을 텐데 안심되는 안내를 하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통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엄마들의 단톡방은 다시금 활기를 띄었다. ‘이제 외출해도 되니 아이와 함께 반차 시간 마음껏 누리겠다, 눈물이 난다, 꿈도 꿨었다, 이제 마음 놓을 수 있겠다....’ 엄마들의 웃음소리가 여기까지 전해지는 듯하였다. 확진 판정을 받은 그 엄마는 커다란 고통의 증상 없이 잘 견디고 있을까. 아이는 자가격리 기간 동안 어떻게 지내고 있는 걸까. 엄마는 얼마나 자신의 아이와 살을 부비고 싶을까.
산책하는 수키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나는 닭이 되어 아이들에게 갔다. 함께 사진도 찍고 많이 웃으며 놀았다. 예술적 상상은 언제나 우울한 시간을 즐겁게 만드는 힘이 있다.
11월 24일 화요일.
코로나19 재확산에 따라 또다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어린이집 휴원 명령이 떨어졌다. 당분간 나는 아이들의 삼시세끼를 책임지고 가정보육 및 홈스쿨 모드로 돌입한다. 어느새 겨울.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분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기도드린다. 우리는 모두 이어져있다.
[사진 제공 : 황재희]
  1. 어린이집과 유치원에서 선생님과 학부형들이 나누는 생활기록부 혹은 알림장 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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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재희

황재희 배우
시의적時宜的 사건들을 고찰하고 비판하며 소통하기를 좋아한다. “정의 사랑 혁명”의 세상을 꿈꾼다. 최근 여성 최초의 등단작가, 독립운동가, 노동자, 사회주의 운동가 등으로 분하여 무대에 올랐다. 2008년 극단미추 입단. <정의의 사람들> <아름다운 낯선 여인> <자매> 외 다수 작품에 출연/연출하였다. 남편 역시 배우 동지이며, 큰 딸 ‘인’ 작은 딸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
@jaehee_sophiahwang
https://www.facebook.com/jaehee.hwang.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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