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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치/기능’으로서의 비평플랫폼을 제안하며

[기획] 비평플랫폼 시뮬레이션

정진세

195호

2021.02.18

1.
웹진 연극in은 “비평문화”를 주제로 총 4회에 걸쳐 기획연재를 시작합니다. 비평문화가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조건과 환경을 논해보는 ‘담론 과정’은 과감하게 축소하였습니다. 잊을 만하면 이뤄지는 비평에 대한 실태 점검은 생략하였습니다. 물론,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안을 마련하여 실천해보는 것이 웹진의 더 큰 관심사였음을 밝힙니다. 그리하여 연극in은 비평의 당사자인 창작자들간의 비평을 활성화하는 장치를 직접 설계해보기로 하였습니다.

비평플랫폼. 본 기획에 참여하는 멤버들(김신록, 정진세, 라시내, 최기섭)이 붙인 이름입니다. 간단하게 말하면, 비평플랫폼은 자신이 창작한/관람한 작품에 ‘비평’을 더하고 나누는 역할을 부여받아 참여하게 되는 자리/장치입니다.

일종의 미학적 공론장이되, 엄밀히 말해 완전히 개방된 형태는 아닙니다. 비평플랫폼에서 생각하는 참여자는, ‘여론’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미학적 주관으로서 ‘자기’를 걸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비평플랫폼은 해당작품과 연결성이 강한 사람, 작품에 대한 자기고민과 자기과제가 있는 사람, 그러니까 아무래도 창작자일 확률이 높습니다.

부연하자면, 비평플랫폼은 단순감상이나, 인상비평이나, 관련이론을 나누는 자리는 절대 아닙니다. 창작자와의 대화도, 관객과의 대화도 아닙니다. 해당작품에 대해서, 숙고의 과정을 거친, 그래서 발언하고 싶은 것이 많은, 논쟁이 벌어져도 이를 즐길 수밖에 없는, 스스로를 자발적으로 대표하는 ‘당사자’가 필요합니다.

대략 열 명 내외의 참가자가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장르, 다양한 역할이 섞여 있으면 더더욱 좋습니다. 비평플랫폼에서 나눈 말들은, 나중에 서로의 위치가 바뀌었을 때 여전히 유효합니다. 호스트였던 창작자는 게스트가 됩니다. 비평플랫폼은 ‘비평 품앗이’를 지향합니다.
2.
그럼 비평플랫폼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비평플랫폼의 호스트(공연자)는 초대된 참여자(관람자)에게 다음과 같은 과제를 사전에 예고합니다.
1. 무엇을 흥미롭게 보았는가?
2. 무엇에 아쉬움을 느꼈는가?
3. 어떤 질문이 생겨났는가?

가급적 공연이 끝난 후 1-2주 안에 모임을 가질 것을 권장합니다. 공연에 대한 기억이 사라지지 않고, 더불어 작품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임에서는 다음의 과정을 밟아나갑니다.
A. 작품이 상연되기까지 공연-창작자의 자기스토리 소개하기
(나는 어떤 단계와 과정을 거쳐 이 작품을 만들게 되었는가?)

B. 작품을 관람하기까지 관객-창작자의 자기스토리 소개하기
(나의 작업과 이 작품의 연결고리는 무엇인가? 나는 이들과 어떻게 연루되어 있는가?)

C. 공연에 대한 공통의 상 만들기
(내가 무대에서 확인한 사실(fact)을 함께 나누기)

D. 관객-창작자의 과제 공유 - 3가지 질문에 대한 응답 공유
(흥미롭게, 아쉽게, 새롭게 생겨난 질문, 덧붙이고 싶은 말)

E. 응답에 대한 공연-창작자의 대답
(새롭게 생겨난 질문에 대해 답하기, 비평에 대한 비평)

F. 대답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다각적 대화
(이 의제에 대해 더 논의할 이야기가 있는가? -에 까지 다다르기)

G. 타임아웃 혹은 합의된 종료
‘자기스토리’는 말 그대로, 이 작품과 연관된 주체로서 자신의 당사자성을 밝히는 것입니다.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왜 여기에서 말하게 되었는지를 솔직하게 밝히는 자리입니다. 참여자의 숫자에 따라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1시간 이상)

‘공통의 상(像)’ 만들기 작업은, 말 그대로 관객의 눈에 포착된 사실들을 나열하는 것입니다. 해석이나 의미가 덧대어지지 않은 채로, 지난 공연을 복기합니다. 빠짐없이 공연의 현상이 더해지고 나면, 이제 사전에 예고된 과제를 공유합니다. 비평할 거리들을 모으는 단계입니다. (2시간 이상)

그리고 본격적으로 비평적 피드백이 이뤄집니다. 관객의 질문에 창작자가 대답을 하고, 이를 다시 질문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제기된 의제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할 거리가 없을 때까지 논의를 지속합니다. 미학적 반성 단계에 이를 때까지, 연루된 자들이 서로간의 동질성과 차이점을 발견할 때까지, 준비해온 사유와 미학적인 의견이 다 떨어질 때까지, 가급적 중간에 멈추지 말고 계속합니다. 논의의 깊이에 따라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3시간 이상)

진행을 위해 비평플랫폼은 다음과 같은 규칙이 있습니다.
- 사회자가 없습니다. (칠판에 진행 매뉴얼이 적혀 있습니다)
- 플랫폼에서 나누었던 내용은 ‘기록’하여 참여자들에게 2주 내에 공유합니다.
- 다음번 비평 플랫폼을 예약할 수 있습니다. (대략적인 공연정보 공지필요)
- 있었으면 하는 규칙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3.
지난 2월 1일, 비평플랫폼을 시뮬레이션 해보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예상했던 4시간을 훌쩍 넘겨 진행되었습니다. 설계한 대로 진행된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습니다. 염려했던 뻔한 합평회나 진부한 코멘트를 나누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자세한 후기와 나눴던 대화 내용은 다음호 지면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미학적인 대화, 비평적 사유를 전개해 나가는 과정은 행복했습니다. 예술에 대해 논하는 일이 굉장히 오랜만이고, 낯설다는 인식도 들었습니다. 작품을 만들고, 이에 대해 토론하는 일이 연극예술가에게는 기본이고 당연해야 할진대, 그러한 경험과 너무 동떨어진 삶을 살아왔구나, 하는 반성이 들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비평문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실제적인 시도 혹은 훈련임을 재차 깨닫게 되었습니다.

연극in 웹진에서는 올해 ‘비평플랫폼’을 세 차례 더 진행할 예정입니다. 이 시뮬레이션에 함께할 창작자, 즉 기꺼이 ‘호스트’가 될 여러분을 모집합니다. 올해 공연을 예정하고 있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해당사항이 있습니다. 웹진에서는 비평플랫폼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공간과 기록을 지원하고 그 과정을 웹진에 게재하겠습니다. 위의 비평플랫폼 사용법을 통해, 비평적인 피드백을 나눠보고픈 예술가들은 다음의 메일주소로 신청을 해주세요. (webzine@sfac.or.kr)

비평플랫폼은 널리 공유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된 자리입니다. 부디 이러한 체험이 여러분들에게도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또 다른 트랙의 (관객들을 위한) 비평플랫폼 또한 고민해보겠습니다. 비평플랫폼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본 플랫폼의 설계에 있어서는 ‘독립예술창작포럼’과 ‘공연과 이론을 위한 모임’의 월례비평을 참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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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세

정진세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장, 서울프린지네트워크,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운영위원으로 활동했으며, 공연예술 현장에서 창작과 비평 등의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lilytulips@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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